與 天 下 人 作 陰 涼
천하 사람들을 위하여 서늘한 그늘이 되리라
| 이 구절은 芝山房이 즐겨 읊조리는 구절 가운데 하나이다. 唐(당)나라 禪僧(선승)인 臨濟(임제) 선사가 黃檗(황벽)에게서 수행을 하였으나, 開眼(개안)이 되지 않자, 자신의 무능함을 비통해하며 황벽으로부터 떠나가고자 하였다. 이 때 선배 제자였던 "睦州(목주)"가 넌즈시 황벽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힘써 수행하여 한 그루 커다란 나무가 되어 천하 사람들을 위한 서늘한 그늘이 되고자 합니다." 임제는 문득 자신의 눈이 커다랗게 열리는 것을 깨닫게 된다.
※ "禪(선)의 진리"는 일반적인 敎宗(교종)의 가르침 밖에서 직접 전달된다. 이러한 것을 일러 "敎外別傳)"이라 한다. 즉 직접적인 체험에 의한 방법으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불타의 가르침과 祖師(조사)의 禪道(선도)"가 다른 것은 아니다. 透過(투과)하지 못했을 때에는 스승은 아무 말 없이 손에 든 방울을 흔들 뿐이다. 수행자가 이를 보면 쓸데없는 변명을 생각하지 말고 대꾸도 말며 그냥 가만히 스승 앞을 물러나와 다시 용맹정진할 것이다. 스승의 "公案(공안)"은 자신의 못난 제자들을 "見性成佛(견성성불)" 시키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인 것이다. 스승된 사람은 그 무엇보다 제자들을 깨닫게[見性]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이것이 理致(이치)의 公案(공안)이다] 다시 그 깨달음을 더욱 깊게 하여 일상 생활 속에서 그 개달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만 한다.[이것은 바로 機關(기관)의 公案(공안)이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그 깨달음의 향기[깨달았다는 태도]를 없애어 禪(선)의 최종 목적인 "참된 인간성[無位眞人(무위진인) 또는 無相自己(무상자기)라고도 한다]"을 실현시켜야 한다.[이것이 바로 向上(향상)의 公案(공안)이다]
곧 "禪語(선어)"의 글자 뜻에만 얽매이지 말 것이다. 禪語가 품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헤아리도록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禪語(선어)를 읽되 이를 훌쩍 뛰어넘을 것을 필요로 한다. 즉 "안다[知]"는 일이 바로 "超越(초월)"하는 것 아닌가!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