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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

蘭丁 魚孝善 선생님

by 권석낙 2019. 9. 21.





위 글씨와 그림은 아동 문학가, 蘭丁(난정) 魚孝善(어효선) 선생님께서 이 方外人에게 선물한 것이다.

"柳君(유군)은 굳이 흠을 잡자면 지나치게 介潔(개결)한 게 흠이란 말이야!"

라는 말씀과 함께……!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서대문의 허름한 술집에서 약주 한잔 하시고 나와 골목 모퉁이에 있는 옛날식 다방에 앉아 <秋史(추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秋史는 도자기로 치자면 고려청자야!"

"예? 고려청자라니요?"
"조선 백자는 문갑이나 사방탁자에 올려 놓아야 어울리는데, 阮堂(완당) 글씨는 그 어디에 걸어 놓아도 척 어울리거든!"

"아, 고려청자가 그렇군요."

"그럼, 그럼. 그만큼 개성이 뚜렷하다는 증좌지!"


솔직히 蘭丁 선생님은 이 "秋史"의 眞墨(진묵)을 여러 점 지니고 계셨다.

그런데 이 어른에게 어떤 사람이 秋史의 眞墨을 감정해 달라고 가져왔는데, 딱 보니, 대련 가운데 한 짝만 가져왔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게 다인가?"
고 물으니, 도리어,

"예~?"

하고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도저히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는 투였다는 것이다.

"아, 이게 원래는 두 폭으로 된 것인데, 모르는 사람들이 두 폭으로 된 한짝을 한 폭으로 나누어 둘로 팔아 먹은 것이야!"

라고 말해 주니, 그제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말이야, 욕심을 그렇게 부리면 안 돼. 秋史 작품을 병신 만들었잖아? 에이 쯔쯔쯧! 딱 보니, 眞墨이던데."

그러시면서 지금도 안타깝다는 듯이 한동안 앉아 창 밖을 바라보시더니,

"그런데 말이야. 柳君!"
"예?"

"피카소가 秋史를 실제로 만났다면 어땠을까?"

"……?"

"아마 모르긴 해도 秋史가 쓰는 벼루에 먹이나 갈았을 거야. 솜씨로 보자면 피카소가 秋史에 비해 택도 없거든!"

슬슬 나도 맞장구를 쳤다.

"에이, 먹을 어째 갈았겠습니까."

"허면?"

"연적에 물을 담는 심부름이나 겨우 했을 텐데요. 저 정도 쯤 되어야 먹 정도는 갈았겠지요."

"응? 어허허허허. 맞네 맞아!"

"아하하하하!"

"우리 어데 가서 한잔 더 할까?"

"예. 이번에는 제가 모십니다."

"아현동 시장에 가서 파전이나 <빈자떡> 어때?"

"흔쾌히 받아 모실까 말까요? 받아만 주시면 <빈대떡>으로 모셔 드립니다."

"땍~! 어허허허."


이 만남 이후로 더는 만나 볼 수 없는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빈대떡>과 <빈자떡>을 구분해서 쓰셨는데, <빈자떡>은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끼리 모여 안주로 먹는 것이고, <빈대떡>은 가난한 사람이 손님을 대접하여 먹는 것이라 하셨다.

그러니까 <貧者(빈자)>와 <賓待(빈대)>로 구분하여 쓰신 것이다.

그럴 듯하다.


그런데 흠이 <介潔>이라며 건네신 "水流花開(수류화개)"는 어떤 의미일까? 나름대로 새긴 뜻은,

[柳君, 자네가 아무리 介潔하다고 해도 이 세상이 바뀌거나 자네를 알아 주는 이 없을 터일세.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며 꽃이 피고 물은 제 스스로 흘러 가리니~!]

가 아닐까?

그러나 세상을 반이나 흘러 왔지만, 내 성벽은 전혀 고칠 마음 없으니, 그저 내 자리에 고요히 앉아 예전과 다름없이 지낼 것이다. 茶(차)를 반 이상 마셨다 하여 그 香氣(향기)가 결코 시들지 않듯이!


또 작은 그림 畵題(화제)에 이렇게 써 놓으셨다.

[내 집에 한 물건도 없지만, 다만 있는 것은 책 읽는 작은 책상 뿐이라네]

이다.

결국,

[柳君, 자네만이라도 介潔함을 지키라]

는 깊은 뜻이 아닐까?

오늘은 동네 짜장면 집에 가서 곱배기나 시켜 놓고 한번 <게걸>스럽게 먹어 볼까? 입이나마 결코 <介潔>스럽게 되진 않더라도!

아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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