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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

마음 속 생각을 노래하다

by 권석낙 2019. 9. 21.

마음 속 생각을 노래하다

< 李賀 : 790 ~ 816 >









날 저물면 詩(시) 짓는 일 끝내다가

문득 서리 내린 흰머리에 깜짝 놀라네

거울 보며 멋쩍은 웃음 짓는데

어찌 南山(남산)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리오

머리에는 頭巾(두건)조차 없고

苦蘖(고얼)로 물들인 옷을 벌써 입었네

그대는 맑은 시냇가의 물고기가

물만 먹고 自足(자족)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가





《감 상》

이 詩는 <李賀(이하)>가 進士科(진사과)에 응시도 해 보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인 昌谷(창곡)으로 돌아온 뼈아픈 좌절과 깊디깊은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더구나 겨우 17세의 나이에 머리가 半白(반백)이 된 것에 대한 충격과 그로 말미암아 비롯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과거에 응시도 하지 못한 울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 한 태도는 道家的(도가적)인 그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만큼 李賀가 "삶"에 대한 집착이 어떠했던가를 잘 보여 주는 詩이다.

그러나 결국 李賀는 이 세상에서 겨우 27년을 머물면서 233수의 詩만 남기고 다른 세상으로 떠나가고 말았다.




<李賀廟>

李賀는 중국 문학이 지니지 못했던 것을 넉넉하게 품고 있어서 비록 짧은 生(생)을 살았지만, 후세의 우리들에게 전하는 것은 너무나 많다.

譚嗣同(담사동), 魯迅(노신), 毛澤東(모택동), 이들은 혁명가로서 李賀를 끔찍이도 좋아하고 흠모한 사람들이다.

毛澤東의 "浣溪沙(완계사)" 속의 "一唱雄鷄天下白"은 바로 李賀의 "雄鷄一聲天下白"을 바꾼 것이다.

李相隱은 李賀를 評(평)하기를,

"그는 태도가 매우 불손하여 사람들에게 왕따를 당하였다. 그의 몸은 비록 온전하지는 않았지만, 무시무시한 知的(지적) 에네르기를 숨기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革命(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뒷세상의 李賀 팬들은 바로 그 점을 몹시 아까워한 것일 것이다.

李賀의 詩人으로서의 삶은 너무나도 외로웠다.

<나 이제 떠나려네[將發]>라는 詩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東 牀 卷 席 罷   濩 落 將 行 去

秋 白 遙 〃 空   日 滿 門 前 路

東牀(동상) 자리를 말아 치우고

떨어지는 잎새처럼 이제는 가야겠구나

가을이 하이얗게 아득한 하늘

눈부신 햇볕이 문 앞 길에 가득하기만……!


희대의 기이한 천재, 李賀는 元和(원화) 12년[817년], 자신의 고향 마을에서 어머니로부터 병 구완을 받던 도중에 너무나 짧은 그의 인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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