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㊳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㊳ | |
| 1 | 子曰 有敎면 無類니라. |
| 2 | 자왈 유교면 무류니라.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르침이 있으면 부류(部類)가 없다.”라고 하셨다. |
| 4 | The Master said, “In teaching there should be no distinction of classes.”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㊳ |
| 子曰 有敎無類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르침이 있으면 부류(部類)가 없다.”라고 하셨다. 人性皆善 而其類有善惡之殊者 氣習之染也 故君子有敎 則人皆可以復於善 而不當復論其類之惡矣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지만, 그 부류에 선과 악의 다름이 있는 것은 氣와 습성이 물들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군자의 가르침이 있으면 곧 사람들은 모두 선에 돌아갈 수 있으니, 그 부류가 악한지 다시 논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은 것이다. 南軒張氏曰 人所稟之資 雖有不同 然無有善惡之類一定而不可變者 蓋均是人也 原其降衷 何嘗不善 故聖人有敎焉 所以反之於善也 敎之行 愚者可使之明 柔者可使之强 豈有氣質之不可變者乎 然堯舜之子不肖 則氣類又若有異 何也 蓋氣有可反之理 人有能反之道而敎有善反之功 其卒莫之能反者 則以其自暴自棄而已 남헌장씨가 말하길, “사람이 품부 받은 자질은 비록 같지 않음이 있지만, 그러나 선악의 부류가 한번 정해져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니, 대체로 모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부여받은 본성에 거슬러 가보면, 어찌 일찍이 선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그러므로 성인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선으로 돌이키기 위한 것이다. 가르침이 행해지면, 어리석은 자도 밝아지게 만들 수 있고, 나약한 자도 강하게 만들 수 있으니, 어찌 기질이 변하지 않는 자가 있겠는가? 그러나 요순의 아들도 불초했던 것은 기질의 부류에 또한 다름이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러한가? 대체로 氣에는 돌이킬 수 있는 이치가 있고, 사람은 능히 돌이킬 수 있는 도를 갖고 있으며, 가르침에는 잘 돌이키는 공이 있는데, 그럼에도 끝내 능히 돌이킬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자포자기했기 때문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人之性同乎一理而已 然其品類則有善惡之異者 何哉 蓋於其始生也已有氣稟淸濁之分 及其少長也又有習染邪正之異 苟欲合其異而反其同 則在乎敎耳 故君師有敎化之妙 則人皆可以復其善而自無爲惡之人 豈可復論其類之惡哉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람의 본성은 하나의 이치와 같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 등급의 부류에 선악의 다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대체로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 이미 기품의 청탁이 구분됨이 있고, 그가 자라게 되면 다시 습관의 물들임이 기울거나 바른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로 그 다른 것을 합하여 그 같은 것으로 돌이키고자 한다면, 오직 가르침에 달려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임금과 스승이 교화의 오묘함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선을 회복할 수 있어 저절로 악을 행하는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부류의 악을 다시 논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洪氏曰 聖人之敎如雨露之於萬物 夫豈有所擇哉 홍씨가 말하길, “성인의 가르침은 마치 비와 이슬이 만물에 내리는 것과 같으니, 무릇 어찌 고르는 바가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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