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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㉜

by 권석낙 2026. 6. 17.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㉜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㉜
1 子曰 知及之오도 仁不能守之면 雖得之나 必失之니라 知及之하며 仁能守之라도 不莊以涖之則民不敬이니라 知及之하며 仁能守之하며 莊以之라도 動之不以禮면 未善也니라.  
2 자왈 지급지오도 인불능수지면 수득지나 필실지니라 지급지하며 인능수지라도 부장이리지즉민불경이니라 지급지하며 인능수지하며 장이리지라도 동지불이례면 미선야니라.  
3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하게 백성을 대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지 않는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으며 장엄하게 백성에게 임하더라도 예로써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4The Master said, “When a man's knowledge is sufficient to attain, and his virtue is not sufficient to enable him to hold, whatever he may have gained, he will lose again. 

When his knowledge is sufficient to attain, and he has virtue enough to hold fast, if he cannot govern with dignity, the people will not respect him.

When his knowledge is sufficient to attain, and he has virtue enough to hold fast; when he governs also with dignity, yet if he try to move the people contrary to the rules of propriety:-- full excellence is not reached.”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㉜
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 知足以知此理 而私欲間之 則無以有之於身矣
지혜는 이 이치를 알기에 족하나, 사사로운 욕심이 끼어들면, 곧 제 몸에 그것을 갖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程子曰 知及之 仁不能守之 無得也
정자가 말하길, “지혜는 그에 미치지만, 仁이 그것을 지킬 수 없다면, 얻은 것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知及之 仁不能守之 此言中人以下也 若夫眞知 未有不能守者
지혜가 그에 미치지만 仁이 이를 지킬 수 없다고 하면, 이는 중인 이하를 말한 것이다. 만약 진정 지혜로운 저 사람들이라면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新安陳氏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學而知之明 則知及而得之矣 不能無私力行 而守之不固 雖得之 必失之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은 지혜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仁에 가깝다. 배워서 아는 것이 밝으면, 지혜가 미쳐서 그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심 없이 힘써 행하지 못하여 지킴이 공고하지 못하면, 비록 얻더라고 반드시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知及之 仁能守之 不莊以涖之 則民不敬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더라도 장엄하게 백성을 대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그를 공경하지 않는다.

涖 臨也 謂臨民也 知此理而無私欲以間之 則所知者在我而不失矣 然猶有不莊者 蓋氣習之偏 或有厚於內而不嚴於外者 是以民不見其可畏而慢易之 下句放此
涖는 임한다는 것으로 백성들에게 임한다는 말이다. 이 이치를 알고 또한 사욕으로 그것을 간섭함이 없으면, 곧 아는 바가 나에게 있게 되어 이를 잃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장엄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은, 대개 기운과 습성이 치우쳐서 간혹 안에는 두터우나 밖에 엄하지 못한 경우가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으로 백성들이 그에게서 두려워할 만한 것을 보지 못하고 그에 대하여 거만을 떨고 쉽게 여긴다. 이하 구절도 이와 같다.

張子曰 所謂知及之必欲仁守之者 恐其難得必失耳 知之非難 行之惟難 此守所以貴乎篤也
장자가 말하길, “소위 지혜가 거기에 미치면 반드시 仁으로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그것이 얻기가 어렵고 또 얻어도 반드시 잃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행하는 것이 오직 어려울 따름이다. 이는 지킴에 있어 독실함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問知及之仁不能守之固不可 仁旣能守之而猶有不莊之戒 集註謂有氣習之偏 何耶 潛室陳氏曰 蓋雖是有仁能持守 然當臨涖之時 擧動之際 此心小懈 卽妄念便生 須是逐時照管 令罅縫不開 才有罅縫 便有氣習之偏 此是聖賢點檢身上工夫周密處 雖是本體已造醇美 猶恐節目上有疵 又須逐節照管要令盡善盡美
누군가 묻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나 仁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것은 본래 안 되는 것이고, 仁이 이미 능히 그것을 지킬 수 있어도 그래도 장엄하지 못하는 것에 관한 경계가 있는데, 집주에서는 이를 氣習의 치우침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무슨 말인가요?”라고 하였다. 잠실진씨가 말하길, “대체로 비록 이렇게 仁으로 능히 붙잡아 지킬 수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백성들에게 임하는 때와 거동할 즈음에 당하여 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지면(게을러지면), 곧 망령된 생각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반드시 때에 따라 비추고 관리하여 틈새가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새가 있게 되면, 곧 氣習의 치우침이 생겨나는데, 이것이 바로 성현들이 자신의 몸을 점검하는 공부를 주도면밀하게 한 부분이다. 비록 本體가 이미 순수하고 아름다운 지경에 나아갔더라도 그래도 節目 위에 하자가 있는지 두려워하고, 또다시 모름지기 節目을 쫓아가 비추고 관리함으로써 전부 다 선하고 다 아름답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다.

知及之 仁能守之 莊以涖之 動之不以禮 未善也
지혜가 거기에 미치며 인(仁)이 그것을 지킬 수 있으며 장엄하게 백성에게 임하더라도 예로써 그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다.

動之 動民也 猶曰鼓舞而作興之云爾 禮 謂義理之節文
動之란 백성을 동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곧 고무시켜 흥이 나게 한다는 말과 같다. 禮는 의리의 節文(절도와 격식)을 말한다.

朱子曰 動字不是感動之動 是使民底意思 謂使民去做這件事亦有禮 是使之以禮 下梢禮字歸在民身上
주자가 말하길, “動자는 감동한다는 動이 아니고, 백성을 부린다는 뜻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가서 이러한 일을 하게 만드는 것에도 역시 禮가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예로써 백성을 부린다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 아래 끝에 있는 禮자는 백성들의 몸 위로 돌아가는 것이다.”고 하였다.

動之是指民說 如蒐田獮狩就其中 敎之少長有序之事 便是使之以禮 蓋使他以此事 此事有禮存也
동원한다는 것은 백성을 가리켜서 말한 것인데, 예컨대 봄 사냥, 여름 사냥, 가을 사냥, 겨울 사냥을 하면서 백성들 가운데로 나아가 그들에게 장유유서의 일을 시킨다면, 이것이 바로 예로써 백성을 부리는 것이다. 대체로 그들을 이러한 일로 부리면 이러한 일에 예가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 愚謂 學至於仁 則善有諸己而大本立矣 涖之不莊 動之不以禮 乃其氣稟學問之小疵 然亦非盡善之道也 故夫子歷言之 使知德愈全則責愈備 不可以爲小節而忽之也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배움이 인에 이르면 곧 선은 자기 안에 갖고 있게 되어 큰 근본이 세워진다. 백성에 임하되 장엄하지 않고, 움직이되 예로써 하지 않는 것은 그저 그 기품과 학문의 작은 하자일 뿐이지만, 그러나 이것은 역시 최선의 도는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부자께서 누차 그것을 말씀하시어, 덕이 온전할수록 책임도 더 갖추어야 하고 작은 절차라 여겨 그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

朱子曰 固有生成底 然亦不可專主氣質 蓋亦有學底
주자가 말하길, “본래 나면서부터 완성된 것이 있다. 그러나 또한 오로지 기질에만 주안점을 두어서는 안 된다. 대체로 또한 배울 것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不莊氣質之偏也 不以禮學問之闕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장중하지 못한 것은 기질이 치우친 것이고, 예로써 부리지 못한 것은 학문이 부족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知及之如大學知至 仁守之如意誠 涖不莊動不以禮如所謂不得其正 所謂敖惰而辟之類 知及仁守是明德工夫 下面是新民工夫
주자가 말하길, “지혜가 거기에 미친다는 것은 대학에서 말하는 앎이 지극함와 같고, 仁이 그것을 지킨다는 것은 대학의 뜻이 정성스럽다와 같으며, 백성들에게 임하면서 장중하지 못하고 백성을 동원하면서 예로써 하지 못하는 것은 이른바 제 올바름을 얻지 못함이나 소위 오만하고 게을러서 편벽됨의 부류와 같은 것이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으로 지키는 것은 바로 덕을 밝히는 공부이고, 그 아래는 백성을 새롭게 하는 공부다.”라고 하였다.

問知及仁守到仁是極了 却又要莊涖動以禮底工夫 如何 曰 人自有此心 純粹不走失 而於接物治民時 少些莊嚴意思 自不足以使人敬 此便是未盡善處 又問此是要本末工夫兼備否 曰 固是 但須先有知及仁守做箇根本 方好去檢點其餘 便無處無事不善 若根本不立又有何可點檢處
누군가 묻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이 그것을 지켜내어 仁에 이르렀다면 이는 이미 지극한 것인데, 그럼에도 다시 장엄함으로 임하고 예로써 동원하는 공부를 요구하는 것은 어째서 그렇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사람이 스스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 순수함을 잃게 되지 않지만, 외물과 접하고 백성을 다스릴 때 장엄한 뜻이 부족하면, 저절로 사람들로 하여금 공경하도록 만들기에 부족하게 되니, 이것이 바로 아직 전부다 善하지는 않다는 부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다시 묻기를, “이것은 근본과 말단의 공부를 겸비하라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진실로 그러하다. 다만 모름지기 먼저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이 그것을 지켜내는 것을 근본으로 삼음이 있어야만, 바야흐로 그 나머지를 점검하기가 좋으니, 이렇게 되면 곧 선하지 않은 곳도 선하지 않는 일도 없는 것이다. 만약 근본이 서 있지 않다면, 또 무슨 점검할 만한 곳이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或問 知及仁守 爲學之事也 莊涖禮動 爲政之事也 然爲學之事 雖未及乎爲政 至於接物處家之際 亦非莊涖禮動 不能爲也 爲政者 雖不專於爲學 然非知識之明而持守之固 亦無以爲臨政之地矣
혹자가 묻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이 그것을 지켜내는 것은 학문을 하는 일이고, 장엄하게 임하고 예로써 동원하는 것은 정사를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학문을 하는 일이, 비록 정사를 하는 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외물을 접하고 가사를 처리하는 즈음에 이르면, 역시 장엄하게 임하고 예로써 동원하는 것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정사를 하는 것은 비록 학문을 하는 것에 전일하지 않지만, 그러나 지식이 밝고 지킴이 견고하지 않으면, 이 역시 정사에 임하는 터전(발판)으로 삼을 수가 없는 것이다.

此一章 當以仁爲主 所謂知及之 所以求吾仁 涖之動之 所以持養吾仁者
이 한 장에서는 仁을 위주로 해야 마땅하니, 이른바 지혜가 거기에 미친다는 것은 내 仁을 추구하는 것이고, 임하고 동원한다는 것은 내 仁을 붙잡아 기르는 것이다.

或問此章 曰 大抵發明內外本末之序 極爲完備 而其要以仁爲重 仁能守之 則大本已立 雖臨民不以莊動民不以禮 亦其支節之小失耳 然亦不可不自警省以求盡善而全其德也
혹자가 이 장에 대하여 물었다. 말하길, “대저 내외와 본말의 차례를 드러내어 밝힌 것이 지극히 완비되어 있으나, 그 요체는 仁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仁이 능히 그것을 지켜낼 수 있다면, 큰 근본이 이미 정립된 것이다. 비록 백성에게 임할 적에 장중함으로 하지 않고 백성을 동원할 적에 예로써 하지 않더라도, 이는 또한 지엽말단의 작은 실수일 뿐이다. 그러나 역시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함으로써 전부 다 선함을 추구하여 그 덕을 온전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知及之仁不能守之 則未能保之也 仁能守之 則在己者實矣 又須莊以涖之而動之則以禮 動之以禮者 以禮敎民則民作興也 此雖統言爲政之道至此而後善 然所以成己 亦一而已
남헌장씨가 말하길, “지혜가 거기에 미치나 仁이 그것을 지켜낼 수 없다면, 아직 그것을 보전할 수 없는 것이다. 仁이 능히 지켜낼 수 있다면, 자기 안에 있는 것이 착실할 것이다. 또다시 모름지기 장중함으로 백성들에게 임하면서 백성을 동원한다면 예로써 해야 한다. 백성을 동원함에 있어 예로써 한다는 것은 예로써 백성을 가르치면 백성들이 진작되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록 정사를 하는 道가 여기에 이른 연후에야 훌륭하게 됨을 통틀어 말한 것이지만, 그러나 자신을 완성하는 것에 있어서도 또한 동일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此章六箇之字要分別 及之守之得之失之 此四之字指理而言 涖之動之 此二之字指民而言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장에 나오는 6개의 之자는 분별해야 한다. 及之, 守之, 得之, 失之의 이 네 之자는 이치를 지칭하여 말한 것이고, 涖之, 動之의 이 두 之자는 백성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仁者心德之全 知及仁守而猶曰不莊以涖之則民不敬者 德之全而責之備也 知及仁守莊涖而猶曰動之不以禮爲未善者 德愈全而責愈備也 大本已立 固足以見其心德之全 小節未善亦足以爲全德之累
운봉호씨가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이 온전한 것이다. 지혜가 거기에 미치고 仁이 그것을 지켜냄에도 다시 장엄함으로써 백성에게 임하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공경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덕을 온전히 하고 책임을 다 갖춘다는 것이다. 지혜가 미치고 仁이 지켜내며 장엄함으로 임하였음에도 다시 백성을 동원함에 있어 예로써 하지 않으면 아직 善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덕을 더욱 온전히 하고 책임을 더욱 많이 갖춘다는 것이다. 큰 근본이 이미 정립되어 있으면, 진실로 그 마음의 덕이 온전함을 드러내 보이기에 충분지만, 작은 마디가 아직 훌륭하지 않은 것 역시 온전한 덕에 누가 되기에 족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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