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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㉓

by 권석낙 2026. 6. 16.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㉓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㉓
1子貢이 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잇가 子曰 其恕乎인저 己所不欲을 勿施於人이니라.
2자공이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잇가  자왈 기서호인저 기소불욕을 물시어인이니라.
3 자공이 묻기를, “한 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4Tsze-kung asked, saying, “Is there one word which may serve as a rule of practice for all one's life?” The Master said, “Is not RECIPROCITY such a word? What you do not want done to yourself, do not do to others.”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㉓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이 묻기를, “한 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推己及物 其施不窮 故可以終身行之 ○ 尹氏曰 學貴於知要 子貢之問 可謂知要矣 孔子告以求仁之方也 推而極之 雖聖人之無我 不出乎此 終身行之 不亦宜乎
나를 미루어 남에 미치도록 하면, 그 베푸는 것이 다함이 없게 되므로, 그래서 종신토록 그것을 행할 수 있다. 윤씨가 말하길, “배움은 요체를 아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자공의 질문은 요체를 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는 인을 구하는 방도로써 알려 주었던 것이다. 그것을 미루어 지극히 하면, 비록 성인의 무아의 경지라 할지라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종신토록 이것을 행하는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恕者求仁之方 語曰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孟子曰 强恕而行 求仁莫近焉
신안진씨가 말하길, “恕라는 것은 仁을 추구하는 방법이다. 논어에 이르길, 능히 가까운 곳에서 비슷한 사례를 취할 수 있음이, 仁을 추구하는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맹자가 말하길, 恕를 힘써서 행한다면 仁을 추구함에 있어 이보다 가까운 것은 없다.”고 하였다.

問言恕必兼言忠 如何此只言恕 朱子曰 不得忠時 不成恕 獨說恕時 忠在裏面了
누군가 묻기를, “恕를 말하면 반드시 忠도 함께 말하는데, 어찌하여 여기에서는 단지 恕만을 말했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忠을 얻지 못할 때에는 恕를 이룰 수가 없다. 단지 恕만을 말할 때에도 忠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終身行之其恕乎 絜矩之道是恕之端否 曰 絜矩正是恕
누군가 묻기를, “종신토록 행한다면 그것은 恕이겠지 라고 하였는데, 혈구지도는 恕의 단서가 아닐까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絜矩가 바로 恕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人之患莫大於自私 恕者所以克其私而擴公理也 己所不欲物施於人 恕之方也 是所當終身而行之者 極其至則仁也 忠恕體用也 獨言行恕者 蓋於其用力處言之 行恕則 忠可得而存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사람의 우환은 자신을 사사롭게 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다. 恕라는 것은 자신의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공정한 이치를 넓히는 존재다.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은 恕를 행하는 방법이다. 이는 마땅히 종신토록 행해야 할 것으로서, 그 지극함에 이르면 곧 仁이다. 忠과 恕는 體와 用이다. 단지 恕만 말한 것은 대체로 그 힘을 쓰는 곳에 대하여 말한 것이고, 恕를 행한다면, 忠도 얻어서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推己及物 則己所不欲勿施於人之恕也 非有資於人在我施之而已 烏有窮盡 故可以終身行之 此蓋指其用而言之 又曰 始則 推己及物 終則 爲聖人之無我 不出乎一恕字而已 終身行之 豈不爲宜 此又極其效而言之 知要之說尤爲有警於學者 蓋聖學以仁爲先而恕則求仁之方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나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은 곧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는 恕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을 베푸는 것일 따름이니,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체로 그 用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처음에는 나를 미루어 외물에 미치는 정도이나, 나중에는 성인의 무아의 경지가 되니, 恕라는 글자 하나를 벗어나지 않을 따름이다. 종신토록 행하는 것이니, 어찌 합당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또한 그 공효를 극단적으로 해서 말한 것이다. 요체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은 더욱 배우는 사람에게 경고하는 바가 있는데, 대체로 聖學은 仁을 우선으로 하는데 恕는 곧 仁을 추구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己所不欲勿施於人 只就一邊論 其實不止勿施所不欲者 凡己所欲者 須要施於人方可 如己欲孝欲弟 人亦欲孝欲弟 必推己所欲孝欲弟者以及人 使人亦得以遂其欲孝欲弟之心 便是恕 只是推己之心流行到那物而已 恕之義甚闊大 自漢以來 恕字之義不明 有謂善恕己量主 范忠宣亦謂以恕己之心恕人 不知恕字就己上著不得 據他說恕字只似饒人的意思 恰似今人說且恕之 不輕恕之意 如此 是己有過且自恕 人有過又倂恕人 乃相率爲不肖之歸 豈推己如心之義乎
진씨가 말하길, “己所不欲勿施於人은 그저 한쪽에만 나아가 논한 것으로서, 그 실상은 하고 싶지 않은 바를 베풀지 말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무릇 자신이 하고 싶은 바는 모름지기 남에게 베풀어야만 비로소 옳은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효도를 하고 싶고 공손하고자 한다면, 남도 역시 효도를 하고 싶고 공손하고 싶어 할 것이니, 반드시 자신이 효도하고 싶고 공손히 하고 싶어 하는 바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도록 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또한 자기도 효도하고 싶고 공손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恕이니, 단지 자신을 미루는 마음이 저 외물에 흘러 행해졌을 따름이다. 恕의 의미는 매우 넓다. 한나라 시대 이래로, 恕자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았는데, 자신을 미루어 군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에 능하다는 말이 있고, 범충선 역시 자신을 미루어하는 마음으로 남을 恕한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恕자를 나 자신 위로 나아가서는 붙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것이다. 다른 설에 따르면, 恕자는 단지 남을 너그럽게 대해준다는 뜻과 유사하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듯이 용서하되 가볍게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 이와 같다면, 이는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스스로를 용서하고 남에게 잘못이 있어도 또한 아울러 남을 용서하는 것이니, 마침내 서로 이끌어 불초가 되는 것으로 귀착되는데, 이 어찌 자기 마음처럼 자신을 미룬다는 의미가 되겠는가?

雙峯饒氏曰 此問在未聞一貫之先 子貢多學欲知博中之約 遂發此問 一言是一字 所以只以一恕字答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질문은 일이관지라는 대답을 듣기 이전에 있었다. 자공은 많이 배워서 넓은 것 중에서 핵심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마침내 이 질문을 하였던 것이다. 一言은 곧 한 글자이니, 그래서 단지 恕라는 한 글자로 대답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視人猶己 一視同仁 此聖人之無我也 惟其略無私已 故仁之用自然如此
신안진씨가 말하길, “남 보기를 나와 같이 하고, 하나처럼 보고 똑같이 인애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인의 無我의 경지이니, 오직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仁의 用이 자연스럽게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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