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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㉔

by 권석낙 2026. 6. 16.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㉔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㉔
1子曰 吾之於人也에 誰毁誰譽리오 如有所譽者면 其有所試矣니라 斯民也는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니라. 
2자왈 오지어인야에 수훼수예리오 여유소예자면 기유소시의니라 사민야는 삼대지소이직도이행야니라.
3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시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백성들은 삼대(夏殷周)에 정직한 도를 행해 왔다.”라고 하셨다.
4 The Master said, “In my dealings with men, whose evil do I blame, whose goodness do I praise, beyond what is proper? If I do sometimes exceed in praise, there must be ground for it in my examination of the individual. 

This people supplied the ground why the three dynasties pursued the path of straightforwardness.”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㉔
子曰 吾之於人也 誰毁誰譽 如有所譽者 其有所試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누구를 헐뜯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 만일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시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 毁者 稱人之惡而損其眞 譽者 揚人之善而過其實 夫子無是也 然或有所譽者 則必嘗有以試之 而知其將然矣 聖人善善之速 而無所苟如此 若其惡惡 則已緩矣 是以雖有以前知其惡 而終無所毁也
毁라는 것은 남의 악한 곳을 지칭하며 그 참된 것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譽라는 것은 남의 선한 곳을 드높여서 그 실질을 지나치는 것이다. 공부자께서는 이러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혹시 칭찬하는 바가 있는 사람이라면 곧 반드시 일찍이 그를 시험해본 것이 있어서 그가 장차 그러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인은 선을 좋다고 말하는 것이 빨라서 구차히 하는 바가 없음이 이와 같았다. 만약 성인께서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면 이미 늦추어서 하셨다. 이런 까닭으로 비록 이전에 그의 악을 알 수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끝내 비방하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朱子曰 毁者 人本未有十分惡 將做十分惡說他 便是毁 若只據他之惡說之 不謂之毁 如一物本完全 今打破了 便是毁 若那物元破了 不可謂之毁 譽亦是 稱獎得過當 有所試者 那人雖未有十分善 我試之知得將來如此 若毁人則 不如此也
주자가 말하길, “毁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본래 100퍼센트의 악을 갖고 있지 않음에도, 장차 100퍼센트의 악이라고 하여 그를 말한다면, 그것이 바로 비방하는 것이다. 만약 단지 그의 악함만을 근거로 하여 말한다면, 그것을 일컬어 비방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마치 한 사물이 본래 완전하였는데, 지금 깨뜨렸다면, 이것은 바로 훼손하는 것이지만, 만약 저 사물이 원래 깨져있었다면, 그것을 훼손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칭찬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칭찬하는 것이 마땅한 정도를 지나치는 것이다. 시험한 바가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비록 아직 100퍼센트의 선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가 시험하여 장차 이와 같을 것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람을 비방하는 것이라면 이와 같이 하지는 않았다.”라고 하였다.

或問毁譽之說 曰 毁者 惡未著而遽詆之 譽者 善未著而亟稱之也 試者 驗其將然之辭 聖人之心 光明正大 稱物平施 無毫髮之差 故人之善惡稱之 未有少有過其實者 然以欲人之善也 故但有試而知其賢 則善雖未顯 已進而譽之矣 不欲人之惡也 故惡之未著者 雖有以決知其不善而卒未嘗遽詆之也 此所以言譽而不言毁 蓋非若後世所謂恥言人過而全無黑白者 但有先褒之善而無豫詆之惡 則是聖人之心耳 曰 若有譽而無毁 則聖人之心 爲有所倚矣 曰 有譽無毁 是乃善善速惡惡緩之意 正書所謂與其殺不辜 寧失不經 罪疑惟輕 功疑惟重 春秋傳所謂善善長惡惡短 孔子樂道人之善 惡稱人之惡之意 而仁包五常元包四德之發見證驗也 聖人之心 雖至公至平 無私好惡 然此意未嘗不存 是乃天地生物之心也 若以是爲有倚 而以恝然無情者爲至 則恐其高者入於老佛荒唐之說 而下者流於申商慘酷之科矣
혹자가 비방하고 찬양하는 말씀에 관하여 물었다. 말하길, “비방한다는 것은 악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꾸짖는 것이고, 찬양한다는 것은 선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재빨리 칭찬하는 것이다. 시험한다는 것은 그것이 장차 그렇게 될 것인지 증험한다는 말이다. 성인의 마음은 광명정대하여 사물을 걸맞게 공평하게 베풀어서 터럭 하나만큼의 잘못도 없다. 그래서 사람의 선악을 지칭함에 있어 조금이라도 그 실질을 넘어서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이 선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단지 시험하여 그가 어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 선이 비록 아직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이미 나아가 칭찬하셨던 것이다. 사람이 악한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악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은 비록 그것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결단코 알 수 있었더라도, 끝내 대번에 꾸짖은 적이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칭찬하는 말을 하되 비방하는 말은 하지 않았던 까닭인데, 대체로 후세에서 말하는 이른바 ‘남의 허물을 말하면서 전혀 흑백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다만 먼저 기리는 善이 있을 뿐 미리 꾸짖는 惡이 없다면, 이것은 바로 성인의 마음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만약 칭찬하는 것만 있고 비방하는 것이 없다면, 성인의 마음에 치우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칭찬하는 것만 있고 비방하는 것이 없다면, 이는 곧 선을 좋다고 여김을 빨리하고 악을 미워함을 늦게 한다는 뜻이니, 바로 서경에서 말한 이른바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느니 차라리 경전에 따라 처리하지 않는 잘못을 저지르겠다.’거나,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직 경하게 처벌하고 공이 의심스러우면 오직 중하게 상을 준다.’는 것과 춘추전에서 말한 이른바 ‘선을 좋게 여기는 것은 길게 하고 악을 미워하는 것은 짧게 한다.’거나, 공자께서 ‘남의 선을 말하기를 즐겨하고, 남의 악을 지칭하는 것은 미워한다.’는 뜻이면서, 仁이 五常을 포괄하고 元이 四德을 포괄한다는 것이 발현되어 증험된 것이다. 성인의 마음은 비록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공평하여 사사로이 좋아하고 싫어함이 없지만, 그러나 이 뜻이 보전되지 않은 적이 일찍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천지가 만물을 내는 마음이다. 만약 이것을 치우침이 있다고 여겨서 무심하고 무정한 것을 지극한 것으로 삼는다면, 아마도 그 자질이 높은 자는 노자와 불가의 황당한 학설에 들어갈 것이고, 그 낮은 자는 신불해와 상앙의 참혹한 부류(科)에 흘러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毁云損其眞 若叔孫武叔之毁仲尼 是也 譽云過其實 孟子所謂聲聞過情 是也
호씨가 말하길, “비방함이라는 것은 그 진상을 덜어내는 것을 말하는데, 예컨대 숙손무숙이 중니를 비방한 일이 바로 이런 것이다. 찬양함이라는 것은 그 실질을 지나치는 것을 말하는데, 맹자가 말한 이른바 명성과 소문이 그 실정을 넘어선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斯民也 三代之所以直道而行也
이 백성들은 삼대(夏殷周)에 정직한 도를 행해 왔다.”라고 하셨다.

斯民者 今此之人也 三代 夏商周也 直道 無私曲也
이 백성들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다. 3대란 하, 은, 주다. 곧은 도란 사사로운 왜곡이 없는 것이다.

言吾之所以無所毁譽者 蓋以此民 卽三代之時所以善其善惡其惡 而無所私曲之民 故我今亦不得而枉其是非之實也
내가 비방하거나 칭찬하는 것이 없는 까닭은, 대체로 이 백성들이 곧 3대의 시기 동안 그 선함을 좋다고 칭찬하고 그 악을 미워하되 사사로이 왜곡한 바가 없는 백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나 역시 지금 그 시비의 실질을 굽힐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朱子曰 所以字本虛 然意味乃在此
주자가 말하길, “所以라는 글자는 본래 허사다. 그렇지만 의미가 도리어 이 두글자에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句繳上一截誰毁誰譽之意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구절은 위의 ‘누구를 비방하고 누구를 칭찬하겠는가?’라는 한 토막의 뜻과 얽매여 있다.”라고 하였다.

○ 尹氏曰 孔子之於人也 豈有意於毁譽之哉 其所以譽之者 蓋試而知其美故也 斯民也 三代所以直道而行 豈得容私於其閒哉
윤씨가 말하길, “공자님께서 사람에게 있어서 어찌 그를 비방하거나 추켜세우는 것에 뜻을 두셨겠는가? 공자님께서 그를 칭찬하는 까닭은 아마도 시험해보고 그 아름다움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백성은 삼대가 곧은 도로써 행했던 사람들인데, 어찌 그 사이에 사사로움을 용납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朱子曰 斯民是今此之民 卽三代之時所以爲善之民 聖人說一句話 便是恁地闊 便是從頭說下來 此民乃是三代時直道而行之民 我今若有所毁譽 亦不得迂曲而枉其是非之實
주자가 말하길, “이 백성이란 지금 이곳에 있는 백성이니, 즉 3대 시절에 선을 행하던 백성이다. 성인께서는 한 마디를 말씀하셨어도, 곧바로 이렇게 넓게 또한 처음부터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 백성은 바로 3대 시절에 곧은 도로써 행하던 백성들로서, 내가 지금 만약 비방하거나 추켜세우는 바가 있더라도, 이 또한 우회하고 왜곡하여 그 시비의 실질을 구부릴 수는 없다고 말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誰毁誰譽 謂吾於人初無毁譽之意也 而有所譽者必有所試也 因其有是實而稱之 春秋之時 風俗雖不美 然民無古今之異 三代所以直道而行者 亦斯民也 順理之謂直 可毁可譽 在彼循其理而已 先王命德討罪亦若是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누구를 비방하고 누구를 찬양할 것인가? 라는 말은 내가 사람들에 대하여 처음부터 비방하거나 찬양할 뜻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찬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반드시 시험한 바가 있었고, 그가 이러한 실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해 그를 칭찬한 것이다. 춘추시대에 풍속이 비록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백성들에게는 고금의 차이가 없었다. 삼대의 시절에 곧은 도로써 행하였던 것은 바로 이 백성들이다. 이치를 따르는 것을 일컬어 곧다고 말하니, 비방하거나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저것이 그 이치에 따르느냐에 달려있을 따름이다. 선왕께서 덕 있는 자를 임명하고 죄 지은 자를 토벌하신 것도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下面民字卽上面人字 但人對己而言 民對君而言 緣有三代字在上 故言今此之民與三代之民一般 但三代化行俗美 好惡得其眞 後世敎化不明 風俗不美 直變爲枉 所以有稱人惡而損其眞 揚人善而過其實者 吾之於人 則不然 蓋視今此之人爲三代直道之民而不視之爲後世枉道之民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아래 民자는 곧 위의 人자다. 다만 人이란 나의 상대로서 말한 것이고, 民이란 임금의 상대로서 말한 것이다. 삼대라는 글자가 위에 있기 때문에, 지금 이곳에 있는 백성이 삼대의 백성이 같다고 말한 것이다. 다만 삼대에서는 교화가 행해지고 풍속이 아름다워 좋아하고 싫어함이 그 참됨을 얻었으나, 후세에서는 교화가 밝지 못하고 풍속이 아름답지 못하여, 곧은 것이 굽은 것으로 변화되었고, 이 때문에 남의 악한 것을 지칭하여 그 참된 모습을 덜어내는 것과 남의 선함을 추켜세워 그 실질을 지나치는 것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 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체로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삼대에서 곧은 도로써 행하던 백성들로 볼 뿐, 그들을 후세에서 도를 굽혀 행하는 백성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朱子云所以二字有味 蓋善善惡惡無所私曲 今之民與三代之民 皆然 是必有所以然者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주자가 所以라는 두 글자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였는데, 대체로 선을 좋게 여기며 악을 미워하여 사사로이 왜곡함이 없는 것은 지금 백성과 삼대의 백성이 모두 그러하기 때문이니, 이것은 반드시 그렇게 된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尹氏之意略而未明 朱子就其說而發明得精切至到耳 善善惡惡無所私曲 乃人心天理所在 萬世如一日也 三代之人心如此 今日之人心亦如此 聖人不得容私於其間也 然有先褒之善而無豫詆之惡 善善急惡惡緩之心 未嘗不行乎其間焉 好善忠厚之心與善善惡惡無私曲之心 倂行而不相悖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윤씨의 뜻은 간략하여 명확하지 않다. 주자는 그 말에 나아가 드러내어 밝히기를 정밀하고 간절하며 지극하게 하였다. 선을 좋게 여기고 악을 미워하여 사사로이 왜곡하는 바가 없는 것은 바로 人心과 天理가 존재하는 곳이다. 만세가 하루와 같으니, 삼대의 인심이 이와 같고, 지금의 인심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성인은 그 사이에 사사로움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나 먼저 善을 기림이 있을 뿐 미리 악을 꾸짖음이 없으니, 善을 좋게 여기는 것은 급하게 하고 惡을 미워하는 것은 늦추는 마음이 그 사이에 행해지지 않은 적은 일찍이 없었다. 선을 좋아하는 충후한 마음과 선을 좋게 여기고 악을 미워하여 사사로이 왜곡함이 없는 마음은 아울러 행할지라도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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