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⑰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⑰ | |
| 1 | 子曰 君子義以爲質이오 禮以行之하며 孫以出之하며 信以成之하나니 君子哉라. |
| 2 | 자왈 군자의이위질이오 예이행지하며 손이출지하며 신이성지하나니 군자재라.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의(義)로써 바탕을 삼고, 예(禮)로써 행하며, 겸손함으로써 나타내며, 신(信)으로써 이루나니, 군자는 이러하다.”라고 하셨다. |
| 4 | 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in everything considers righteousness to be essential. He performs it according to the rules of propriety. He brings it forth in humility. He completes it with sincerity. This is indeed a superior man.”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⑰ |
|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는 의(義)로써 바탕을 삼고, 예(禮)로써 행하며, 겸손함으로써 나타내며, 신(信)으로써 이루나니, 군자는 이러하다.”라고 하셨다. ○ 義者制事之本 故以爲質幹 而行之必有節文 出之必以退遜 成之必在誠實 乃君子之道也 義라는 것은 일을 제어하는 근본이기에 바탕과 근간으로 삼는 것이다. 또한 그것을 행함에 있어서 반드시 節文이 있어야 하고, 내보냄에 있어서 반드시 물러남과 겸손으로 해야 하며, 그것을 이룸에 있어서는 반드시 성실함에 달려 있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의 도다. ○ 程子曰 義以爲質 如質幹然 禮行此 孫出此 信成此 此四句只是一事 以義爲本 정자가 말하길,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는 것은 마치 質幹처럼 한다는 것이다. 예로써 이것을 행하고, 겸손으로 이것을 내놓으며, 信으로 이것을 완성한다. 이 4구절은 그저 하나의 일이니, 의로움으로써 근본을 삼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義以爲質 是制事先決其當否了 其間節文次第 須要皆具 此是禮以行之 然徒知盡其節文而不能孫以出之 則亦不可 且如人知尊卑之分 須當讓他 然讓之之時 辭氣或不能婉順 便是不能遜以出之 信以成之者 是終始誠實以成此一事 却非是遜以出之後方信以成之也 주자가 말하길, “義로 바탕을 삼는다는 것은 일을 제어함에 있어 그 당부를 먼저 결단하는 것이다. 그 사이의 節文과 차례는 반드시 모두 갖추어야 하니, 이것이 바로 예로써 그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헛되이 그 節文을 다할 줄 알뿐 겸손함으로 그것을 내놓을 줄 모른다면, 이 역시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예컨대 사람이 존비의 구분을 알아서 모름지기 남에게 양보해야 마땅한데, 그러나 양보할 때 말하는 기세가 혹시 완곡하고 온순하지 못하다면, 이것이 바로 겸손함으로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信으로 그것을 완성한다는 것은 시종일관 성실함으로써 이 하나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지, 도리어 겸손함으로 그것을 내놓은 뒤에 비로소 信으로 그것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義則是合宜 義有剛決意思 然不直撞去 禮有節文度數 故用禮以行之 遜以出之 是用和爲貴 義不和 用禮以行之 已自和 然禮又嚴 故遜以出之 使從容不迫 信是朴實頭做 無信 則義禮遜皆是僞 義는 곧 합당함에 부합하는 것이니, 義에는 굳세고 결연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곧이곧대로 부딪혀가지는 않는다. 禮에는 節文과 度數가 있기 때문에, 禮를 써서 그것을 행하는 것이다. 겸손함으로 그것을 내놓는 것은 온화함을 귀한 으로 삼는 것이다. 義가 온화하지는 않지만, 禮를 써서 그것을 행한다면, 이미 저절로 온화해진다. 그러나 禮는 또한 엄한 것이기 때문에 겸손함으로써 그것을 내놓아서 조용하고 급박하지 않게 한다. 信은 소박하고 착실하게 하는 것이니, 信이 없다면, 義와 禮와 遜 모두 거짓인 것이다. 問禮行遜出 何別 曰 行是安排恁地行 出是從此發出 禮而不遜 則不免矯世以威嚴加人 누군가 묻기를, “예로써 행하고 겸손함으로써 내놓는다는 것을 어떻게 구별합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행한다는 것은 이렇게 행하도록 안배하는 것이고, 내놓는다는 것은 이를 따라서 발현시켜 내놓는 것이다. 禮를 따르지만 겸손하지 못하면, 세상을 바로잡는 것으로써 남에게 위엄을 가함을 면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事到面前 便斷可否 此在先是義以爲質 可否旣定 或從或違 所以區處須中節文 無過不及 是禮以行之 於其區處 或出辭氣 須遜順而無峻厲 方不忤人 是遜以出之 其總歸須誠實 則此事之成 無欠缺可悔處 是信以成之 四者皆一套事 只於日用間驗之 自見 진씨가 말하길, “일이 면전에 닥치면 곧바로 가부를 결단하는데, 이것이 그 전에 있어서는 義로써 바탕을 삼는다는 것이다. 가부가 이미 결정되어 있어, 혹은 따르고 혹은 거스르니, 이 때문에 구분하여 대처함에 있어서 반드시 節文에 들어맞고 지나침과 못 미침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로써 행한다는 것이다. 그 구분하여 대처함에 있어서, 혹시라도 말을 내는 기세는 반드시 겸손하고 온순해야 하되, 준엄하고 사나움이 없어야만, 비로소 남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겸손함으로 내놓는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반드시 성실히 한다면, 이 일을 이룸에 있어 후회할만한 부족한 곳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信으로써 그것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일련의 한 가지 일이니, 그저 일상생활에서 징험해보면, 저절로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當然處是義 質是箇坯朴了 君子以義作箇坯朴 却以禮來文 這義擺布敎恁地有條理 然義有圭角 又須遜順而出之 使之無圭角 然旣如此又恐失了義之本眞 故又須信以成之 不易其當然之則 又曰 義以爲質而非禮行遜出 則質而不文 禮行遜出而不成之以信 則文勝而滅質 皆非君子之道 쌍봉요씨가 말하길, “마땅하게 대처하는 것이 義이고, 質이란 질박함인 것이다. 군자는 義로써 질박함을 삼지만, 도리어 禮로써 文飾하는데, 이런 義가 펼쳐져서 이렇게 조리가 있도록 만든다. 그러나 義에는 규각이 있으니, 또한 반드시 겸손하고 온순하게 내놓아서, 그것에 규각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기왕에 이와 같이 했다면, 또한 義의 본래 참된 모습을 잃을까 걱정되기 때문에, 다시 반드시 信으로써 그것을 완성하여 그 당연한 원칙을 바꾸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義로 바탕을 삼으면서도 禮로 행하고 겸손함으로 내놓는 것이 아니라면, 질박할 뿐 문채가 나지 않는 것이고, 禮로 행하고 겸손함으로 내놓으면서도 信으로써 그것을 완성하지 않는다면, 문채만 우세할 뿐 바탕은 소멸되는 것이니, 모두 다 군자의 도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義不可以直遂 行之出之在禮遜 義不可以僞爲 成之在信實 然非禮遜之後 又加以信也 曰義曰禮遜 始終一實而已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義란 곧이곧대로 수행할 수 없으니, 그것을 행하고 내놓는 것은 예와 겸손함에 달려있는 것이다. 義는 거짓으로 행할 수 없으니, 그것을 완성하는 것은 신실함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로 행하고 겸손함으로 내놓은 뒤에 다시 信實함을 더하는 것은 아니다. 義를 말하고 禮와 겸손을 말한다 할지라도, 시종일관 하나의 착실함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又曰 敬以直內 則義以方外 義以爲質 則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다시 말하길, “공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면, 곧 의로움으로써 밖을 방정하게 하는 법이다. 義를 바탕으로 삼으면 禮로 그것을 행하고 겸손으로 그것을 내놓으며, 신의로써 그것을 완성한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義以爲質便是自義以方外處說起 若無敬以直內也 不知義之所在 주자가 말하길, “義를 바탕으로 삼는다는 것은 곧바로 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한다는 부분으로부터 말한 것인데, 만약 공경으로 안을 곧게 함이 없다면, 의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義以方外是義爲用也 而此章則以義爲體 蓋物則森然具於秉彛之內 此義之所以爲體也 必有是體而後品節生焉 故禮之所以行此者也 其行之也以遜順則和而不失 故遜所以出此者也 而信者又所以成此者也 蓋義爲體而禮與遜所以爲用而信者 又所以成終者也 信則義行乎事事物物之中 而體無不具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義로써 밖을 방정하게 하는 것은 義가 用이 되는 것이나, 이 장에서는 義로써 體를 삼았다. 대체로 사물은 타고난 성품 안에 삼엄하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義가 體가 되는 까닭이다. 반드시 이 體가 있은 연후에 등급에 맞게 조절함이 생기기 때문에, 禮가 이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행함에 있어 겸손과 온순함으로 한다면, 온화하면서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겸손은 이것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信이라는 것도 또한 이것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대체로 이것이 義는 體가 되고 禮와 겸손은 用이 되면서도, 다시 信이라는 것이 또한 끝맺음을 이루어주는 까닭이다. 信實하면, 곧 義가 모든 사물 안에서 행해지면서도 體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敬以直內 義以方外 是從內說出外 義以爲質 禮以行之 遜以出之 信以成之 是由外說入內 경원보씨가 말하길, “敬으로 안을 곧게 하고, 義로 밖을 방정하게 하는 것은 안에서부터 말하여 밖으로 나가는 것이고, 義를 바탕으로 삼아서, 禮로 행하고 겸손으로 내보내며 信實함으로 완성한다는 것은 밖을 말미암아 말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必敬存而後義立 義者事之質而敬又義之本 推而上之也 호씨가 말하길, “반드시 敬이 보존된 연후에 義가 서는 것이다. 義라는 것은 일의 바탕이지만 敬 또한 義의 근본이니, 이는 미루어서 올라간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敬而直內 則義乃方外 是敬爲體而義爲用 若以義爲質 則禮行此義者也 遜出此義者也 信成此義者也 是義爲體而三者爲用矣 잠실진씨가 말하길, “공경하여 안을 곧게 하면, 의로움이 곧 밖을 방정하게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敬이 體가 되고 義가 用이 되는 것이다. 만약 義를 바탕으로 삼는다면, 禮로 이 義를 행하는 것이고, 遜으로 이 義를 내놓는 것이며, 信으로 이 義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義가 體가 되고 세 가지는 用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此章本無敬以直內意 程子又推本言之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장에서는 본래 敬으로 안을 곧게 한다는 뜻이 없었지만, 정자가 다시 근본을 미루어서 그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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