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漢學♡書堂

秋史 金正喜 先生 七言詩

by 권석낙 2020. 11. 29.

♣秋史 金正喜 先生 七言詩

●수선화(水仙花)-김정희(金正喜) 수선화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 한 점 찬 마음처럼 늘어진 둥근 꽃이여

(한 점의 겨울 마음 송이송이 둥글고 )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 그윽하고 맑은 품성, 냉철하고 준수한 경지로다

(그윽하고 담담하고 냉철하고 빼난 기품이라)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리정체) : 매화꽃 고상해도 뜰을 떠나지 못해

(매화가 높다지만 뜨락을 못 면했는데)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 맑은 물에서 진실로 해탈한 신선을 본다.

( 맑은 물에 해탈한 신선을 정말로 보는구나)

 

●수선화-金正喜(김정희)

 

一點冬心朶朶圓(일점동심타타원) : 한 점의 겨울 마음이 송이송이 둥글어

品於幽澹冷雋邊(품어유담냉준변) :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고 빼어구나.

梅高猶未離庭砌(매고유미이정체) : 매화가 고상하다지만 뜰을 못 벗어나는데

淸水眞看解脫仙(청수진간해탈선) : 해탈한 신선을 맑은 물에서 정말로 보는구나

 

●사국(謝菊)-김정희(金正喜) 고마운 국화

( 시드는 국화-김정희(金正喜)

暴富一朝大歡喜(폭부일조대환희) :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너무나 기쁜데

(하루아침에 부자 된 대단한 기쁨)

發花箇箇黃金毬(발화개개황금구) : 핀 꽃들 하나하나가 황금 구슬이구나.

(피어난 꽃마다 황금빛 꽃송이로다.)

最孤澹處穠華相(최고담처농화상) : 가장 외롭고 담백한 곳에 화려한 억굴

(너무나 고독하고 맑은 화려한 네 모습)

不改春心抗素秋(불개춘심항소추) : 봄 마음 고치지 않고 가을 추위를 버틴다.

( 봄날 마음 변치 않고 가을추위 이긴다.)

 

●추모란(秋牧丹)-김정희(金正喜) 가을 모란

 

紅紫年年迭變更(홍자년년질변경) : 홍색 자색 꽃으로 해마다 바꿔 피니

牧丹之葉菊之英(모란지엽국지영) : 모란의 꽃잎, 국화의 꽃봉오리로구나.

秋來富貴無如汝(추래부귀무여여) : 가을날 부귀로는 너 같은 이 없으니

橫冒東籬處士名(횡모동리처사명) : 동쪽 울타리 처사라고 함부로 부른다.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중양절 국화

 

黃金蓓藿初地禪(황금배곽초지선) : 누런 황금 꽃봉오리는 선의 첫 경지

風雨籬邊託靜綠(풍우리변탁정록) : 비바람 울타리 곁에서 청정한 인연 맺는다.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 시인을 공양함은 맨 마지막 일이나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 온갖 잡된 꽃에서도 가장 우두머리로다.

 

●제촌사벽(題村舍壁)-김정희(金正喜) 시골집 벽에 제하다

 

禿柳一株屋數椽(독류일주옥수연) : 몇 칸 초가집, 잎 떨어진 버드나무

翁婆白髮兩蕭然(옹파백발양소연) : 백발의 할머니와 아버지, 모두가 숙연하다

未過三尺溪邊路(미과삼척계변로) : 개울가 길가에 세 척이 채 안되어도

玉薥西風七十年(옥촉서풍칠십년) : 옥수수인양 서풍에 칠십 년을 살아있다

 

●송자하입연1(送紫霞入燕1)-김정희(金正喜) 연경에 가는 자하를 전송하며

 

墨雲一縷東溟外(묵운일루동명외) : 먹구름 한 오라기 동쪽 바닷가

秋月輪連臘雪明(추월륜련납설명) : 둥근 가을달 설 눈과 함께 밝았습니다

聞證蘇齋詩夢偈(문증소재시몽게) : 소재의 시, 꿈,게송을 증거삼아 들어보니

苔岑風味本同情(태잠풍미본동정) : 태잠의 풍기는 멋인양 본래 같은 마음이지요

 

●송자하입연2(送紫霞入燕2)-김정희(金正喜)

 

漢學商量兼宋學(한학상양겸송학) : 한학을 헤아리고 송학도 헤아려

崇深元不露峯尖(숭심원불로봉첨) : 높고 깊어 봉우리 끝도 드러나지 않았지요

已分儀禮徵今古(이분의예징금고) : 의례를 나누어서 금ㆍ고문을 증빙하시니

更證春秋杜歷添(경증춘추두력첨) : 또 춘추를 증거하고 두력도 첨가하셨지요

 

●송자하입연3(送紫霞入燕3)-김정희(金正喜)

 

混侖元氣唐沿晉(혼륜원기당연진) : 혼륜한 원기 당이 진을 답습하고

篆勢蒼茫到筆尖(전세창망도필첨) : 전자(篆字) 기운 아득히 붓 끝에 옮겨 왔었지요

邕塔嵩陽拈一義(옹탑숭양념일의) : 옹탑이랑 숭양이 일의(一義)란 걸 찾아내어

都從稧帖瓣香添(도종계첩판향첨) : 모두 난정서 계첩을 숭양첩의 판향에 더한 것

이라 했지요

 

●송자하입연4(送紫霞入燕4)-김정희(金正喜)

 

詩境軒中風雨驚(시경헌중풍우경) : 옹방강의 시경헌에서 바람비 놀라게 하니

南窓埽破鳳凰翎(남창소파봉황령) : 남창보죽도에서는 봉황 꼬리 쓸어 깨뜨렸지요

江秋史去留完璧(강추사거유완벽) : 강추사는 떠났는데 완벽첩은 남아 있으니

黃小松來搨石經(황소송래탑석경) : 소송 황이가 찾아 와서 석경을 탑본했었지요

 

●송자하입연5(送紫霞入燕5)-김정희(金正喜)

 

樓前山日澹餘紅(루전산일담여홍) : 누대 앞 산의 해는 남은 붉빛 묽게 하고

快雪粉箋說異同(쾌설분전설이동) : 분전지(粉箋紙)와 쾌설이 같고 다름을 말했지요

萬里許君靑眼在(만리허군청안재) : 만리 먼 곳 그대에게 청안 있음을 인정하니

曾於扇底覓春風(증어선저멱춘풍) : 일찍이 부채 그림 아래서 봄바람을 찾았었지요

 

●송자하입연6(送紫霞入燕6)-김정희(金正喜)

 

百摹雨雪摠塵塵(백모우설총진진) : 백 번 모한 우설시본 모두 재가 되고

又一九霞洞裏春(우일구하동리춘) : 구하동 동파상은 막대를 짚은 봄 그림

顴右誌傳松下供(권우지전송하공) : 권우지본은 송하가 제공한 것이니

何如子固硏圖人(하여자고연도인) : 조자고의 벼루에 그린 사람과 어떠한가

 

●송자하입연7(送紫霞入燕7)-김정희(金正喜)

 

東坡石銚今猶在(동파석요금유재) : 동파 선생 석조, 지금도 남아 있어

圖壓蘇齋書畫船(도압소재서화선) : 그 그림이 소재의 서화선을 눌렀다

淮泗道中明月影(회사도중명월영) : 회사 땅의 길, 밝은 달 그림자

松風夢罷尙涓涓(송풍몽파상연연) : 솔바람에 꿈을 깨니 여전히 아른아른

 

●송자하입연8(送紫霞入燕8)-김정희(金正喜)

 

三百年來無此翁(삼백년래무차옹) : 삼백 년이 가는 동안 이 늙은이 다시 없어

石帆亭上聞宗風(석범정상문종풍) : 석범정 정자 위에서 왕어양의 높은 풍모 들었다

團成八月生辰日(단성팔월생진일) : 팔월 생신 날에 여러 사람들 모여 앉아

祝嘏碧雲紅樹中(축하벽운홍수중) : 푸른 구름 붉은 나무숲 속에서 복을 빌었다

 

●송자하입연9(送紫霞入燕9)-김정희(金正喜)

 

自從實際覰精魂(자종실제처정혼) : 실제를 밟아 보고 정수을 엿보시어

底事滄浪禪理論(저사창랑선리론) : 무슨 숨은 일로 창랑은 선리를 따지는가

一世異才收勿騁(일세이재수물빙) : 한 세상의 이재(異才)를 받아 달리지 말고

十年浮氣掃無痕(십년부기소무흔) : 십 년의 뜬 기운은 쓸어내어 흔적마저 없도다

 

●송자하입연10(送紫霞入燕10)-김정희(金正喜)

 

唐碑宋槧萃英華(당비송참췌영화) : 우세남 모당비 송참은 모두가 영화로워

漢畫尤堪對客誇(한화우감대객과) : 한화는 손님들에게 더욱 자랑할 만하도다

拱璧河圖曾過眼(공벽하도증과안) : 공벽 같은 하도는 진작 눈을 거쳤는데

雪鴻怊悵篆留沙(설홍초창전유사) : 봄 눈 기럭 발톱처럼 모래 남긴 글자 서글퍼다

 

●제초의불국사시후(題草衣佛國寺詩後)-김정희(金正喜)

초의의 불국사 시 뒤에 적다

 

蓮地寶塔法興年(련지보탑법흥년) : 절의 다보탑 법흥의 연대인데

禪榻花風一惘然(선탑화풍일망연) : 절의 탑상에 꽃바람이 아득하다

可是羚羊掛角處(가시영양괘각처) : 이곳은 영양이 뿔 걸어 둔 은밀한 장소

誰將怪石注淸泉(수장괴석주청천) : 그 누가 바윗돌에 맑은 샘을 쏟았는가

 

●제담국헌시후(題澹菊軒詩後)-김정희(金正喜) 담국헌 시 뒤에 쓰다

 

卄四品中澹菊如(입사품중담국여) : 이십사시품 중에 담담하기 국화같아

人功神力兩相於(인공신력양상어) : 사람 공과 신의 힘 모두가 여기 있도다

墨緣海外全收取(묵연해외전수취) : 바다 건너 붓으로 쓴 것 모두 가져다가

讀遍君家姊妹書(독편군가자매서) : 그대 집안 자매의 글들 두루 다 읽었다오

 

●기상연천장(寄上淵泉丈)-김정희(金正喜) 연천 홍석주 어른께 부쳐 올립니다

 

萬壑千峯悵獨遊(만학천봉창독유) : 온 골짝 온 봉우리를 혼자서 노니는데

白雲一抹夢中秋(백운일말몽중추) : 흰구름은 꿈속의 한 가을을 발라버리누눈요

若於此境甘枯寂(약어차경감고적) : 만약 이 경지에서 고적을 즐긴다면

還敎人人羨八州(환교인인선팔주) : 도리어 사람마다 팔주를 부러워할 것입니다

 

●중흥사차황산1(重興寺次黃山1)-김정희(金正喜)

중흥사에서 황산의 시를 차운하다

 

上方明月下方燈(상방명월하방등) : 상방에는 달, 하방에는 등불

法界應須不已登(법계응수불이등) : 법계란 모름지기 쉼 없이 오르는 것

鍾鼎雲林非二事(종정운림비이사) : 벼슬과 처사 두 가지 다른 일 아닐텐

名山空自與殘僧(명산공자여잔승) : 명산은 부질없이 남은 중만 허여하네

 

●중흥사차황산2(重興寺次黃山2)-김정희(金正喜)

 

十年筇屐每同君(십년공극매동군) : 나막신을 그대와 같이 한 십년

衣上留殘幾朶雲(의상류잔기타운) : 옷 위에는 몇 떨기 흰구름이 배었구나

吾輩果無諸漏未(오배과무제누미) : 우리들 번뇌가 과연 모두다 없어졌나

空山風雨只聲聞(공산풍우지성문) : 공산에는 비바람에 소리만 들리는구나

 

●송종성사군1(送鍾城使君1)-김정희(金正喜) 종성 사군을 전송하다

 

秋風送客出邊頭(추풍송객출변두) : 가을 바람에 객을 변방으로 보내니

蓋馬山光着遠愁(개마산광착원수) : 개마산 빛에 먼 아득한 시름 어리는구나

天上玉堂回首處(천상옥당회수처) : 천상의 옥당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곳

雙旌應過幘溝婁(쌍정응과책구루) : 두 깃발은 응당 함경도 적구루를 지나리라

 

●송종성사군2(送鍾城使君2)-김정희(金正喜)

 

苔篆剝殘漫古墟(태전박잔만고허) : 이끼 글자 부서진 아득한 옛 터

高麗之境問何如(고려지경문하여) : 고려 나라 지경이 어떠한가 물어본다

尋常石砮行人得(심상석노행인득) : 예사롭게 행인이 돌 화살촉 줍는데

此是周庭舊貢餘(차시주정구공여) : 이것이 바로 주 나라 조정 옛 공물이라

 

●제라양봉매화정(題羅兩峯梅花幀)-김정희(金正喜)

나양봉 화백의 매화정에 쓰다

 

朱草林中綠玉枝(주초림중녹옥지) : 숲 속 붉은 풀에 푸른 옥가지

三生舊夢證花之(삼생구몽증화지) : 삼생 옛 꿈을 꽃피워 증명하네

應知霧夕相思甚(응지무석상사심) : 응당 알리라, 안개 낀 저녁 짙은 그리움에

惆悵蘇齋畫扇時(추창소재화선시) : 소재에 부채 그린 그 때가 서글퍼짐을

 

●남굴(南窟)-김정희(金正喜)

 

千秋幽怪歎燃犀(천추유괴탄연서) : 남굴에 천년 숨은 괴물, 연서가 두려워 탄식하고

肅肅靈風吹暗溪(숙숙영풍취암계):신령한 바람 을씨연럽게 어두운 개울로 불어온다

彈指龍蛇皆化石(탄지용사개화석) : 어느새 용과 뱀들 모두 돌로 바뀌었고

燈光猶作紫虹霓(등광유작자홍예) :등잔 불빛은 오히려 자색 무지개를 만드는구나

 

●설야우음(雪夜偶吟)-김정희(金正喜) 눈오는 밤 우연히 읊다

 

酒綠燈靑老屋中(주록등청노옥중) : 녹황색 술, 푸른 등불, 낡은 집 안

水仙花發玉玲瓏(수선화발옥영롱) : 옥영롱처럼 수선화 피었구나

尋常雪意多關涉(심상설의다관섭) : 심상한 저 눈의 뜻과도 관련 많아

詩境空濛畫境同(시경공몽화경동) : 시의 경계 공몽한데 화경도 마찬가지

 

●옥미인(玉美人)-김정희(金正喜) 옥미인초

 

裁玉方能敎性眞(재옥방능교성진) : 옥으로 다듬은 성정 진실게 하고

美人强得艶情勻(미인강득염정균) : 미인을 끌어다가 고운 정념을 고루었구나

恰如五色羅浮蝶(흡여오색나부접) : 흡사 저 다섯 빛깔의 나부산 나비 떼 같아

放繭今朝滿院春(방견금조만원춘) : 고치 뚫고 나온 오늘 아침, 집안에 가득한 봄빛

 

●중양황국(重陽黃菊)-김정희(金正喜) 중양절 황국화

 

黃菊蓓蕾初地禪(황국배뢰초지선) : 망울 맺은 노란 국화는 초지의 선인 같아

風雨籬邊託靜緣(풍우리변탁정연) : 비바람 울타리 가 고요한 석가래 의탁했구나.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 백억의 온갖 꽃 속에 널 먼저 꼽는구나

 

●봉령사제시요선(奉寧寺題示堯仙)-김정희(金正喜)

봉선사에서 요선에게 써 보임

 

野寺平圓別一區(야사평원별일구) : 들판에 있는 절, 평평하고 둥글어 특별한 이구역

遙山都是佛頭無(요산도시불두무) : 먼 봉우린 도무지 불두라고는 전연 없도다.

虎兒筆力飛來遠(호아필력비래원) : 송나라 호아의 필력이 멀리도 날아 와서

淸曉圖成失舊樵(청효도성실구초) : 청효도가 이뤄지니 옛 무본 무색하도다

 

●戲題示優曇 담방과종(戲題示優曇 曇方踝腫)-김정희(金正喜)

장난으로 적어서 우담에게 보이니 우담에 막 종기가 났다

 

抹却毗邪示疾圖(말각비사시질도) : 비야의 병을 없애고 병 그림을 보여주니

佛瘡祖病一都盧(불창조병일도로) : 불의 창조의 병이 하나의 돌림병이 되었도다

法華藥草還鈍劣(법화약초환둔열) : 법화의 약초에조차 도리어 우둔열등하니

不是藥者採來無(불시약자채래무) : 약 캐는 자가 약을 캐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용원효고사담병재천우희속시담(用元曉故事曇病在腨又戲續示曇)

담 병이 장딴지에 있기에 원효 고사를 쓰고 또 장난으로 적어서 담에게 보이다

 

四百四病無是病(사백사병무시병) : 사백 네 가지 병에 이 병은 없거니와

八十毒草無渠藥(팔십독초무거약) : 팔십 가지 독초에도 저놈의 약은 없도다.

可是今日拭瘡紙(가시금일식창지) : 도리어 오늘날에 부럼 닦은 종이에는

金剛三昧經的的(금강삼매경적적) : 금강의 삼매경이 뚜렷이 적혀있도다

 

●희증만허(戲贈晩虛)-김정희(金正喜) 만허에게 재미삼아 주다

 

涅槃魔說送驢年(열반마설송려년) : 열반이라는 요상한 말로 영원히 산다고 하니

只貴於師眼正禪(지귀어사안정선) : 다만 스님에겐 눈 바른 선이 귀하도다.

茶事更兼叅學事(차사경겸참학사) : 차 일과 배우는 일을 함께하여

勸人人喫塔光圓(권인인끽탑광원) : 사람에게 권하노니, 마시려거든 둥근 저 탑광

도 마셔주었으면

 

●희차아배희우(戲次兒輩喜雨)-김정희(金正喜)

희롱삼아 아배의 “희우”에 차운하다

 

村橋呑漲汎村流(촌교탄창범촌류) : 물은 마을 다리를 삼키고 마을로 흘러넘쳐

上下濃靑處處柔(상하농청처처유) : 위아래로 짙고 푸르러 곳곳마다 부드럽도다.

太守力能廻野色(태수력능회야색) : 원님의 공력이 능히 들 빛을 돌려놓아

婆娑數樹効神休(파사수수효신휴) : 파사 세계 나무들이 신의 아름다움 비추는구나.

 

●즉사(卽事)-김정희(金正喜) 즉흥적으로 짓다

 

日見過橋幾百人(일견과교기백인) :날마다 몇 백 명이 다리 지나는 것이 보지만

何曾橋力減橋身(하증교력감교신):어찌 일찍이 다리 힘이 다리의 키가 줄였던가

丁之畚土添橋者(정지분토첨교자) : 장정이라 흙 담아 다리에 붓는 자는

荒落山川報政新(황락산천보정신) : 황락한 산과 내에 정치가 새로움을 알려 주는구나

 

●혜백장귀병회심무료취기수중구백호서증(蕙百將歸病懷甚無憀取其袖中舊白毫書贈)

-김정희(金正喜) 혜백이 돌아가려 하므로 병이 난 마음 무료하여 그 소매 속에서 예전의 백호필을 취하여 써서 주다

 

山川時雨兩笻晴(산천시우양공청) : 때때로 산천에 비 지나가니, 두 지팡이 깨끗하고

五色毫光漫去程(오색호광만거정) : 오색 붓털 광채 일어, 가는 길에 가득 차는구나.

料得世間無熱處(요득세간무열처) : 헤아려보니 세상에는 더운 곳이 없을 것 같아

一千里洽萬蟬聲(일천리흡만선성) : 일천리 기나 긴 길에 수만 마리 매미소리 가득 하다

 

●과우촌사(果寓村舍)-김정희(金正喜) 과천에 있는 초가집

 

寒女縣西擁病居(한여현서옹병거) : 한녀라 고을 서쪽 병을 끼고 사노라니

溪聲徹夜甚淸虛(계성철야심청허) : 밤을 새는 시내 소리 몹시도 청허하네

羸牛劣馬橋前路(리우렬마교전로) : 다리 앞 한길가의 여윈 소랑 조랑말은

畫科蒼茫也屬渠(화과창망야속거) : 창망한 그림 재료 저 들의 차지로군

兩山靑綠夾晴開(양산청녹협청개) : 양쪽 산 파릇파릇 갠 날 끼고 트였는데

村氣泥醺盡野獃(촌기니훈진야애) : 마을 기운 무더워라 모두가 흐리멍텅

不覺平生牛後耻(불각평생우후치) : 소몰이 되는 부끄러움을 평생에 모르는 듯

城中日日販柴廻(성중일일판시회) : 성안에 가 날마다 땔감 팔고 돌아오네

 

●도망(悼亡)-김정희(金正喜) 죽음을 슬퍼하다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 어쩌면 달 노파 거느리고, 저상에 애원하여

來世夫妻易地爲(래세부처역지위) : 내세에는 남편과 아내, 처지 바꿔 태어나리라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 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 이 마음 이 마음 슬픔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

 

●희증오대산창렬(戲贈吳大山昌烈)-김정희(金正喜)

대산 오창렬에게 재미로 주다

 

未窺一字岐軒書(미규일자기헌서) : 기제의 의학책을 한 글자도 못 보고서

白喫人間酒麵猪(백끽인간주면저) : 남의 술, 돼지, 국수를 그냥 먹어대는구나

慾速他年地獄罰(욕속타년지옥벌) : 다른 해에 지옥에 빨리 가고 싶은지

陽陽跨馬又騎驢(양양과마우기려) : 버젓이 말을 타고 또 나귀를 타는구나

 

●설제창명서철규선(雪霽窓明書鐵虯扇)-김정희(金正喜)

눈이 개어 창이 밝아 철규의 부채에 글을 쓰다

 

雪後烘晴暖似還(설후홍청난사환) : 눈 갠 뒤, 하늘은 밝고 맑아 따스한 기운 돌고

夕陽漫漫小窓間(석양만만소창간) :일천리 기나 긴 길에 수만 마리 매미소리 가득 하다

稻堆庭畔高於塔(도퇴정반고어탑) : 뜨락의 벼가래는 탑보다 더 높아보이고

直對西南佛鬘山(직대서남불만산) : 바로 저 서남쪽으로 불만산을 마주 보는구나

 

●戲贈浿妓竹香2(희증패기죽향2)-金正喜(김정희) 패성 기생 죽향에게

 

鴛鴦七十二紛紛(원앙칠십이분분) : 원앙새 일흔인데 두 마리가 어지러워

畢竟何人是紫雲(필경하인시자운) : 필경에 어느 사람이 바로 곧 이원의 자운인가

試看西京新太守(시간서경신태수) : 서경의 새 태수님 한번 보게나

風流狼藉舊司勳(풍류낭자구사훈) : 풍류 소문 낭자한 옛날의 두목이란다

 

●戲贈浿妓竹香1(희증패기죽향1)-金正喜(김정희) 패성 기생 죽향에게

 

日竹亭亭一捻香(일죽정정일념향) : 햇빛 아래 정정한 저 대나무 일념향이라

歌聲抽出綠心長(가성추출녹심장) :노랫소리가 푸른 마음에서 길게도 뽑혀 나왔구나

衙蜂欲覓偸花約(아봉욕멱투화약) : 장 보는 벌들이 꽃 훔칠 기약을 찾고자하나

高節那能有別腸(고절나능유별장) : 높은 절개라한들 어찌 다른 특별한 마음 있을까

 

●咏棋(영기)-金正喜(김정희) 바둑판을 읊다

 

局面南風冷暖情(국면남풍냉난정) : 바둑 판 위의 남풍은 차고도 따뜻한데

古松流水任縱橫(고송유수임종횡) : 고송에 흐르는 물은 종횡으로 마음대로구나

蓬萊淸淺非高着(봉래청천비고착) : 봉래 바다 맑고도 옅으니 높은 곳이 아니니

橘裏丁丁鶴夢輕(귤리정정학몽경) : 유자 속의 바둑돌 부딪는 소리 학의 꿈이 가볍구나

 

●憶吳秀才1(억오수재1)-金正喜(김정희) 오수제를 생각하다

 

顯節祠前記舊遊(현절사전기구유) : 현절사 사당 앞의 옛 놀이를 기억하니

百年世事不勝愁(백년세사불승수) : 백 년 세상 일에 시름을 못 이긴다.

淡雲微雨依然處(담운미우의연처) : 옅은 구름 보슬비 아득한 그곳은

佳菊衰蘭又一秋(가국쇠란우일추) : 아름다운 국화 시들은 난초 또 가을이겠지

 

●憶吳秀才2(억오수재2)-金正喜(김정희)

 

木正西風菊正霜(목정서풍국정상) : 나무에는 가을 바람 국화에는 하얀 서리

一簾秋影澹詩坊(일렴추영담시방) : 발에는 가을 그늘 차고 시방(詩坊)은 담담하리

翻憐佳境還愁絶(번련가경환수절) : 가련하다, 좋은 곳이 도리어 시름이 깊으니

却向天涯欲斷腸(각향천애욕단장) : 먼하늘끝를 바라보면애간장이 끊어진네

飴山風雅幷蓮洋(이산풍아병련양) : 이산의 풍류에 연양마저 함께하여

明月寒江聽佛香(명월한강청불향) : 밝은 달 차가운 강에 부처의 향기 들었다네

那識觀音閣裏夜(나식관음각리야) : 어찌 알았으리, 관음각 안 한밤에

一燈秋夢久回皇(일등추몽구회황) : 한 외로운 등불에 가을 꿈 오래도록 서성일 줄을

 

●憶吳秀才3(억오수재3)-金正喜(김정희)

 

五日難於十載離(오일난어십재리) : 닷새 동안 이별이 십 년 이별보다 어려워

酒風詩雨亂愁思(주풍시우란수사) : 술의 바람과 시의 비에 내 근심 어지럽히네

奚囊定與雲囊滿(해낭정여운낭만) : 해낭은 반드시 운랑과 가득 찼으리니

持贈猶堪自悅怡(지증유감자열이) : 갖져다 주면 혼자서 즐기고 기뻐하리네

 

●金仙臺1(금선대1)-金正喜(김정희)

 

訣十六條自正陽(결십육조자정양) : 십육 조의 비결은 정월부터인데

熙川之郭復堂堂(희천지곽복당당) : 희천의 곽이 있어 다시금 당당하다

西山法印元同偈(서산법인원동게) : 서산의 법인은 원래 같은 게이니

去證臺前一炷香(거증대전일주향) : 가거들랑 누대 앞에 일주향을 피우게나

 

●金仙臺2(금선대2)-金正喜(김정희)

 

萬木森沉古逕苔(만목삼침고경태) : 온갖 나무 우거진 이끼 낀 묵은 길

韓無畏後幾人來(한무외후기인래) : 한무외 지나간 뒤 몇 사람이 찾아왔노

山中知有餘丹在(산중지유여단재) : 이 산 속에 남은 금단이 있음을 알아

直攝神光鶴背廻(직섭신광학배회) : 신령한 빛을 곧장 끼고 학 타고 돌아온다

 

●金仙臺3(금선대3)-金正喜(김정희)

 

一筇一屐禮金仙(일공일극예금선) : 나막신에 막대 하나 금선에 예배하니

的的誰傳弘正禪(적적수전홍정선) : 홍정 선사 도력을 분명히 누가 전할까

試放毗盧峯頂眼(시방비로봉정안) : 비로봉 꼭대기서 눈 한번 내려보아라

空山雨雪摠眞詮(공산우설총진전) : 빈 산의 비와 눈이 무두가 진리의 참된 설명인 것을

 

●題泛槎圖(제범사도)-金正喜(김정희) 범사도의 화제를 붙이다

 

秋靜天門兩扇開(추정천문양선개) : 가을 하늘 고요하고 두 짝 문아 열렸는데

千年又見一槎來(천년우견일사래) : 천년만에 또 뗏목 하나 떠오는 것 보겠구나

女牛莫敎無端犯(여우막교무단범) : 견우와 직녀를 무단히 범하게 하지 말고

此老新從五嶽回(차로신종오악회) : 이 늙은이 새로이 오악에서부너 돌아왔노라

 

●玉筍峯(옥순봉)-金正喜(김정희)

 

照映空江月一丸(조영공강월일환) : 빈 강에 비치는 둥근 저 달

如聞萬籟起蒼寒(여문만뢰기창한) : 천지는 차가운데 온갖 소리 들리는 듯

人間艸木元閒漫(인간초목원한만) : 인간들과 초목은 본래가 한가하여

不學芙蓉與牧丹(불학부용여목단) : 부용과 모란은 배우지 않았다네

 

●隱仙臺(은선대)-金正喜(김정희)

 

黃葉空山打角巾(황엽공산타각건) : 빈 산의 누른 나뭇잎 각건을 두들기며 떨어지고

長歌何處采芝人(장가하처채지인) : 긴 노래 들리는데 어느 곳에 지초 캐는 사람이 있는가

鞭鸞駕鶴還多事(편란가학환다사) : 난새 몰고 학을 타는 것도 도리어 귀찮은 일

旣是神仙又隱淪(기시신선우은윤) : 이미 신선이 되었는데 또 숨어살기조차 하는구나

 

●詠雨1(영우1)-金正喜(김정희) 비를 노래함

 

入雨山光翠合圍(입우산광취합위) : 빗속에 들어온 산빛은 푸르게 에웠는데

桃花風送帆風歸(도화풍송범풍귀) : 복사꽃에 부는 바람 돗대에 불어 배 돌아가네

春鴻程路無遮礙(춘홍정로무차애) : 봄 기러기 가는 길은 막힐 일 전혀 없어

纔見南來又北飛(재견남래우북비) : 남으로 날아오자 다시 또 북으로 날아가네

 

●詠雨2(영우2)-金正喜(김정희)

 

時雨山川破久慳(시우산천파구간) : 때 맞은 비에 산천이 오랜 가뭄 깨뜨리니

東風力斡曉雲還(동풍력알효운환) : 봄바람 새벽구름 힘껏 몰고 돌아오네

一絲一點皆膏澤(일사일점개고택) : 한 올, 한 방울도 모두가 기름과 은택이라

草木心情恰解顔(초목심정흡해안) : 풀과 나무 심정도 일제히 얼굴을 펴네

 

●詠雨3(영우3)-金正喜(김정희)

 

春雨冥濛夕掩關(춘우명몽석엄관) : 사립 닫힌 저녘에 봄비는 보슬보슬 내리고

一犁田水想潺湲(일리전수상잔원) : 한 쟁기 논물은 아마도 좔좔 흐르겠지

任他笑吠黎家路(임타소폐여가로) : 여가의 마을길에 웃거나 짖거나 내맡기고

坡老當年戴笠還(파노당년대립환) : 당년의 동파노인은 삿갓 쓰고 돌아왔겠지

 

●喚風亭(환풍정)-金正喜(김정희)

 

喚風亭接望洋臺(환풍정접망양대) : 환풍정 올라보니 망양대와 맞닿고

俯見紅毛帆影來(부견홍모범영래) : 굽어 보니 붉은 돛단배 그림자 떠오네

眼界商量容一吸(안계상량용일흡) : 눈 앞의 물을 보니 단번에 마실 것 같은데

兩丸出入掌中杯(양환출입장중배) : 손 가운데 술잔에 해와 달이 떠고 진다네

 

●秋日晩興1(추일만흥1)-金正喜(김정희) 가을철 늦은 흥취

 

稻黃蟹紫過京裏(도황해자과경리) :누런 벼와 자색 개 나는 좋은 철을 서울에서 지내자니

秋興無端鴈□邊(추흥무단안□변) : 기러기 날아가는 물가에 가을 흥이 끝이 없도다.

最是漁亭垂釣處(최시어정수조처) : 고기잡는 누이라, 저기 저 낚싯줄 늘인 곳

任放沙禽自在眠(임방사금자재면) :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모랫가 새는 저절로 졸고

 

●秋日晩興2(추일만흥2)-金正喜(김정희)

 

銀河當屋柳旗斜(은하당옥유기사) : 은하수 지붕에 이르니 버들 깃대 빗겨서고

喜事明朝占燭華(희사명조점촉화) : 좋은 일 아침에 있다고 촛불이 아려주는구나.

佳客來時多酒食(가객래시다주식) : 좋은 손님 오실 때는 술과 밥이 많아야지

夜光生白吉祥家(야광생백길상가):상서롭고 길한 집엔 밤 빛도 희게 비치는구나

 

●秋日晩興3(추일만흥3)-金正喜(김정희)

 

碧花無數出堦頭(벽화무수출계두) : 이끼 꽃 무수히 섬돌가에 돋아나니

占斷山家第一秋(점단산가제일추) : 산 속을 차지한 저 집이 제일 가을이로다.

榴後菊前容續玩(류후국전용속완) : 석류꽃 뒤, 국화 앞에는 구경거리 잇따르니

壯元紅是竝風流(장원홍시병풍류) : 장원홍 저 붉은 것이 바로 풍류를 겸했구나

 

●鵲巢(작소)-金正喜 (김정희) 까치집

 

喜鵲喳喳繞屋茆(희작사사요옥묘) : 기분 좋은 까치 까악까악 띠 집을 맴돌다가

窓南直對一丸巢(창남직대일환소) : 창 남쪽에서 한 둥근 둥지를 마주보네

新來不唾靑城地(신래불타청성지) : 새로온 신참은 창성 땅에 침도 못 밷는다지만

透頂恩光敢自抛(투정은광감자포) : 정상 뚫는 은혜로은 빛을 감히 스스로 포기할까

 

●上仙巖(상선암)-金正喜(김정희) 상선암

 

行行路轉峯廻處(행행로전봉회처) : 걷고 또 걸으니 길은 굽고 산봉우리 돌아드는 곳

一道淸泉天上來(일도청천천상래) : 한 가닥 맑은 샘물 천상에서 흘러오네

縱使有方能出世(종사유방능출세) : 아무리 방법이 있어 세상에 나간다 하더라도

異時歸海亦蓬萊(이시귀해역봉래) : 훗날 바다로 나간다면 또한 봉래이리라

 

●北壁(북벽)-金正喜 (김정희)

 

兩山斧劈一孤亭(양산부벽일고정) : 두 산을 도끼로 쪼갠 사이에 외로운 정자 하나

步屧何曾到石屛(보섭하증도석병) : 내 발걸음 어떻게 돌병풍에 이르렀는가

十載縱令趨紫陌(십재종령추자맥) : 십 년을 아무리 번화한 거리에 달려가더라도

 

●庭草(정초)-金正喜(김정희) 뜰에 난 풀

 

一一屐痕昨見經(일일극흔작견경) : 하나 하나 신 자국 어제 지난 자국인데

蒙茸旋復被階庭(몽용선복피계정) : 무성한 풀들이 다시 자라나 섬돌 위 뜰을 덮었구나

機鋒最有春風巧(기봉최유춘풍교) : 기봉에는 가장 봄바람 교묘하게 불어

纔抹紅過又點靑(재말홍과우점청) : 붉은 색 발라 놓고 지나가자 또 푸른 점을 찍는구나

 

●村舍(촌사)-金正喜(김정희) 시골집

 

數朶鷄冠醬瓿東(수타계관장부동) : 장독대 저 동쪽에 맨드라미 몇 송이 보이고

南瓜蔓碧上牛宮(남과만벽상우궁) : 새파란 호박 넝쿨 소 외양간 위를 타고오른다.

三家村裏徵花事(삼가촌리징화사) : 마을 속 서너 집에서 꽃 일을 찾아보니

開到戎葵一丈紅(개도융규일장홍) : 해바라기가 한 장이나 높게 활짝 피어 있구나

 

●鷄鳴(계명)-金正喜(김정희) 닭이 울다

 

年少鷄鳴方就枕(년소계명방취침) : 젊어서는 닭 울어야 잠자리에 들었는데

老年枕上待鷄鳴(로년침상대계명) : 늙어지니 베개 위서 닭울음을 기다리게 되네

轉頭三十餘年事(전두삼십여년사) : 삼십여 년 지난 일을 고개 돌려 생각해보니

不道銷磨只數聲(불도소마지수성) : 없어졌다 말하지 않는 것은 오직 저 소리 뿐이네

 

●二樂樓(이락루)-金正喜(김정희)

 

紅樓斜日拜三字(홍루사일배삼자) : 붉은 누각에 지는 해가 세 글자에 절 하니

二百年中無此君(이백년중무차군) : 이백 년 동안에 이 분 밖에 아무도 없으리라.

想見當時洗硯處(상견당시세연처) : 당시에 벼루 씻던 그곳을 생각해보니

古香浮動一溪雲(고향부동일계운) : 옛 향기 온 개울에 물안개 속에 떠 흐른다

 

●涵碧樓(함벽루)-金正喜(김정희)

 

綠蕪鶴脚白雲橫(녹무학각백운횡) : 우거진 푸른 풀 위를 날아가는 학다리 사이 흰 구름 빗겨있고

取次江光照眼明(취차강광조안명) : 몇 줄기 강 빛을 보니 눈에 비춰 눈부시네.

自愛此行如讀畫(자애차행여독화) : 그림을 읽는 듯한 이 걸음 대견하니

孤亭風雨卷頭生(고정풍우권두생) : 외로운 정자에 몰아치는 비바람 책머리에 생동하네

 

●南窟(남굴)-金正喜(김정희)

 

千秋幽怪歎燃犀(천추유괴탄연서) : 천 년 동안 숨은 괴물도 무소뿔 태워 찾아내고

肅肅靈風吹暗溪(숙숙영풍취암계) : 쓸쓸한 영묘한 바람 어둔 개울로 불어온다..

彈指龍蛇皆化石(탄지용사개화석) : 용과 뱀을 퉁기어 가리키니 모두 돌로 바뀌어

燈光猶作紫虹霓(등광유작자홍예) : 등 불빛 오히려 자색 무지개를 만드는구나

 

●寄野雲居士(기야운거사)-金正喜(김정희) 야운거사에게

 

古木寒鴉客到時(고목한아객도시) : 고목나무에 갈가마귀가 나그네 당도하니

詩情借與畫情移(시정차여화정이) : 시정을 빌려주어 정을 그림에 옮기었네.

煙雲供養知無盡(연운공양지무진) : 자연의 공양이 무궁함을 알았으니

笏外秋光滿硯池(홀외추광만연지) : 홀 밖의 가을 빛깔 벼루못에 가득하네.

 

●果寓即事(과우즉사)-金正喜(김정희)

 

庭畔桃花泣(정반도화읍) : 뜨락에서 복사꽃이 눈물 흘린다.

胡爲細雨中(호위세우중) : 어찌 가랑비 속에서 울고 있는가.

主人沈病久(주인침병구) : 주인이 병든 지 오래라

不敢笑春風(불감소춘풍) : 봄바람에도 감히 웃지를 못한다네.

 

●夏夜初集(하야초집)-金正喜(김정희) 여름 첫 모임

 

閉戶常存萬里心문 닫고 있어도 마음은 만 리 먼 곳

雲飛水逝有誰禁구름 날고 물은 흘러나 누가 말리랴

尙憐夏日孤花在여름은 홀로 남은 꽃 있어 예쁘고

閱罷春山百鳥吟봄은 산의 온갖 새들의 노랫소리 다 듣는다.

已看靑眸回白眼푸른 눈이 백안으로 돌아가는 것 보았으니

曾將一字易千金한 글인들 천금으로 바꾸리오.

詩家衣鉢傳來久시가의 도통 전해진 지 오래인데

自是宗何與祖陰대개는 하손과 음갱을 스승으로 삼았다네

 

●棲碧亭秋日(서벽정추일)-金正喜(김정희) 서벽정의 가을

 

孤亭同菌小(고정동균소) : 외로운 정자는 버섯처럼 닥은데

佳境似蔗甘(가경사자감) :좋은 경치 갈수록 더 아름다워라.

將身欲入石(장신욕입석) : 몸 일으켜 돌 속으로 들려하니

人語出碧嵐(인어출벽람) : 사람소리 안개 속에서 들려온다.

 

●楊州途中(양주도중)-金正喜(김정희) 양주가는 길

 

霜晨搖落歎征衣(상신요락탄정의) : 서리 내린 새벽길에 나뭇잎은 날리고 옷차림은 처량한데

極目平原秋草稀(극목평원추초희) : 눈 앞의 넓은 들판에는 가을 풀이 드물구나.

天地蕭蕭虛籟合(천지소소허뢰합) : 천지는 쓸쓸한데 빈 소리 들려오고

山川歷歷數鴻歸(산천역역수홍귀) : 산과 내는 선명한데 기러기 떼 날아간다.

淡煙喬木圍孤墅(담연교목위고서) : 연기 낀 큰 나무들 외딴집을 둘러쌓고

流水平沙易夕暉(유수평사이석휘) : 물 흐르는 백사장에 저녁 햇발 비춰든다.

淮北江南何處是(회북강남하처시) : 회북 과 강남땅이 그 어디에 있는가.

二分明月夢依微(이분명월몽의미) : 세상의 반을 밝히는 밝은 달이 꿈속에 어른거리네.

 

●山寺(산사)-金正喜(김정희)

 

側峯橫嶺箇中眞(측봉횡령개중진) : 곁 봉우리 비낀 고개 여기가 진경인데

枉却從前十丈塵(왕각종전십장진) : 길 잘못 들어 헤매던 열 길 홍진 속이었네.

龕佛見人如欲語(감불견인여욕어) : 감실의 불상은 사람보고 얘기 하려는 듯 하고

山禽挾子自來親(산금협자자래친) : 산새는 새끼 데리고 날아와 반기는 듯 하는구나.

點烹筧竹冷冷水(점팽견죽냉냉수) : 통 대나무 맑은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

供養盆花澹澹春(공양분화담담춘) : 화분이 꽃을 공양하니 담담한 봄이구나.

拭涕工夫誰得了(식체공부수득료) : 눈물 닦는 그 공부를 그 누가 터득했나.

松風萬壑一嚬申(송풍만학일빈신) : 온 골짜기 솔바람에 길게 한번 숨을 쉬네.

 

●甁花(병화)-金正喜(김정희) 병 속의 꽃

 

安排畫意盡名花(안배화의진명화) : 잘 꽂아 놓자구나, 모두 이름 난 꽃인데

五百年瓷秘色誇(오백년자비색과) : 오백 년 묵은 도자기도 신비한 빛깔을 자랑하네

香澤不敎容易改(향택불교용이개) : 향기와 윤택함이 쉽사리 바뀌지 않으니

世間風雨詎相加(세간풍우거상가) : 세간의 비바람이 어찌 서로 해치리오

 

●松京道中(송경도중)-金正喜(김정희) 송도 가는 길

 

山山紫翠幾書堂(산산자취기서당) : 산마다 푸른데 서당이 몇이나 있나

籬落勾連碧澗長(리락구련벽간장) : 울타리는 닿아있고 푸른 시내 길게 흘러단다.

野笠卷風林雨散(야립권풍림우산) : 갓이 바람에 날리고 숲에는 비가 흩날리니

人蔘花發一村香(인삼화발일촌향) : 인삼꽃 피어나니 온 마을이 향기롭다.

 

●水雲亭(수운정)-金正喜(김정희)

 

秋雨濛濛鶴氣橫(추우몽몽학기횡) : 부슬부슬 가을비에 학의 기운 비껴날고

松針石脈滿山明(송침석맥만산명) : 솔잎과 돌 더미가 산에 가득 선명하다.

試從一笠亭中看(시종일립정중간) : 일립정 가운데서 그저 한번 바라보니

環珮泠泠樹頂生(환패령령수정생) : 패물소리 찰랑찰랑 나무 끝에서 울려온다.

 

●舍人巖(사인암)-金正喜(김정희)

 

怪底靑天降畫圖(괴저청천강화도) : 괴이하게 낮은 푸른 하늘이 그림에 내려왔거니

俗情凡韻一毫無(속정범운일호무) : 속된 정과 범속한 운은 털끝만큼도 없구나.

人間五色元閒漫(인간오색원한만) : 인간의 오감의 욕구란 본래 편하고 한가한 것

格外淋漓施碧朱(격외림리시벽주) : 격 밖에 질펀하여 붉고 푸른 것이 여기저기 퍼져 있구나.

 

●龜潭(구담)-金正喜(김정희)

 

石怪如龜下碧漣(석괴여구하벽련) : 돌 모양은 거북 같고 푸른 물결 흘러

噴波成雨白連天(분파성우백련천) : 물결 뿜어 비가 되어 흰 기운 하늘까지 뻗쳤다.

衆峯皆作芙蓉色(중봉개작부용색) : 봉우리들 모두 부용색이 되었으니

一笑看來似小錢(일소간래사소전) : 한번 웃고 바라보니 돈 닢과 같아 보인다.

 

●石門(석문)-金正喜(김정희)

 

百尺石霓開曲灣(백척석예개곡만) : 백 척의 돌 무지개가 물굽이를 열었네

神工千缺杳難攀(신공천결묘난반) : 아득한 신의 공력 따라잡기 어렵구나

不敎車馬通來跡(부교거마통래적) : 말과 수레가 오간 자국 남기지 않게 하니

只有煙霞自往還(지유연하자왕환) : 안개와 노을만 스스로 오락가락하누나.

 

●島潭(도담)-金正喜(김정희)

 

徒聞海外有三山(도문해외유삼산) : 바다 밖에 삼신산 있다는 말 들었는데

何處飛來學佛 (하처비래학불환) : 어느 곳에서 날아와 부처머리 배웠는가

格韻比人仙骨在(격운비인선골재) : 운치와 격조 사람에게 견준다면 선골이니

恰如中散住塵 (흡여중산주진환) : 이야말로 중산처럼 속세에 사는 것이네.

 

●重陽黃菊(중양황국)-金正喜(김정희) 중양절 노란 국화

 

黃菊蓓蕾初地禪(황국배뢰초지선) : 꽃망울 맺은 노란 국화 조용한 초지의 선승인 듯

風雨籬邊託靜緣(풍우리변탁정연) : 울타리에 내리는 비바람과 고요한 인연을 의탁했구나.

供養詩人須末後(공양시인수말후) : 시인을 공양하여 최후까지 기다리니

襍花百億任渠先(잡화백억임거선) : 백억의 많은 꽃 중에 너를 먼저 꼽는구나.

 

●紫霞洞(자하동)-金正喜(김정희)

 

小谿幽洞自層層(소계유동자층층) : 작은 개울 깊은 고을 저대로 층층인데

一道名泉雨後勝(일도명천우후승) : 길가의 이름난 샘 비 온 뒤가 더 아름답다.

夕照近人松籟起(석조근인송뢰기) : 석양이 다가오자 솔 바람소리 일어나니

老身石上聽泠泠(노신석상청령령) : 바위 위의 늙은 몸에는 차갑게만 들리는구나.

 

●午睡1(오수1)-金正喜(김정희) 낮잠

 

一枕輕安趁晩涼(일침경안진만량) : 베개자리 편안하고 저녁에 서늘한 바람 불어오니

眼中靈境妙圓光(안중령경묘원광) : 눈 안의 신령한 지경에 둥근 빛이 신비하구나.

誰知夢覺元無二(수지몽각원무이) : 누가 아는가, 꿈꾸는 일과 깨어 있는 일이 둘이 아닌 것을

蝴蝶來時日正長(호접래시일정장) : 나비 날아 올 때는 해도 길어지는구나.

 

●午睡2(오수2)-金正喜(김정희)

 

苽花離落粟風涼(고화리락속풍량) : 울타리 속 오이꽃에 서속 바람 서늘하고

住在玲瓏怳惚光(주재영롱황홀광) : 영롱하고 황홀한 빛에 집이 있구나.

富貴神仙饒一轉(부귀신선요일전) : 부귀라 신선이라 한 마당 꿈에 취하여서

炊煙漫敎枕頭長(취연만교침두장) : 밥 짓다 부질없이 베개머리 늘여본다

 

●午睡3(오수3)-金正喜(김정희)

 

松風分外占恩涼(송풍분외점은량) : 분수 밖의 솔바람 은혜롭게 서늘하여

攝轉葡萄現在光(섭전포도현재광) : 포도는 지금 빛깔 띠고 있네.

特地家鄕成尺咫(특지가향성척지) : 이 특별한 땅, 내 고향의 지척이니

靑山一髮未曾長(청산일발미증장) : 청산의 한 구역이 먼 곳이 아니었네.

 

●初涼(초량)-金正喜(김정희) 초가을

 

楞楞山出瘦靑意(릉릉산출수청의) : 능각 진 산봉우리는 엷은 푸른 기분인데

瑟瑟波明經縠流(슬슬파명경곡류) : 슬슬 소리 내는 물살은 깁 무늬처럼 흐르는구나.

的的遙天孤夢直(적적요천고몽직) : 또렷또렷 먼 하늘은 외로운 꿈으로 곧게 뻗고

頭頭露地百蟲秋(두두로지백충추) : 여기저기 이슬 내린 땅에는 온갖 가을 풀벌레 운다.

 

●立秋(입추)-金正喜(김정희)

 

野情老去最宜秋(야정노거최의추) : 시골 사는 맛은 늙으니 가을이 가장 좋아

冷逕蓬蒿少熱流(냉경봉호소열유) : 찬 오솔길의 다북쑥에는 열기가 적어졌네.

卽看曳履歌商處(즉간예이가상처) : 신 끌고 상성을 노래하는 곳으로 나가보면

已放唫蟬出一頭(이방금선출일두) : 한 마리 매미가 이미 목을 뽑아 노래하네.

 

●義林池(의림지)-金正喜(김정희)

 

濃抹秋山似畫眉(농말추산사화미) : 짙게 가을을 바른 산들은 흡사 그린 눈썹을 그린 듯

圓潭平布碧琉璃(원담평포벽유리) : 둥근 못에는 푸른 유리 골고루 깔렸구나.

如將小大論齊物(여장소대론제물) : 작고 큰 것 가자고서 제물론의 입장에서 논한다면

直道硯山環墨池(직도연산환묵지) : 꼭 벼루 산이 먹물 연못을 둘러쌓다 말 하리라.

 

●下仙巖(하선암)-金正喜(김정희)

 

陰陰脩壑似長廊(음음수학사장랑) : 그늘진 깊숙한 골짜기 긴 행랑 같아

流水浮廻日月光(유수부회일월광) : 흐르는 물에 해와 달이 떠돈다.

一點緇塵渾不着(일점치진혼불착) : 검은 먼지 한 점 전혀 붙지 않아

白雲深處欲焚香(백운심처욕분향) : 흰 구름 깊은 곳에 향불이나 피우고 싶어라.

 

●仙遊洞(선유동)-金正喜(김정희)

 

碧雲零落作秋陰(벽운령락작추음) : 푸른 구름 흩어져 가을 그늘 이루어

唯有飛泉灑石林(유유비천쇄석림) : 날아내리는 샘물만이 돌 숲에 뿌려진다.

一自吹簫人去後(일자취소인거후) : 옥퉁소 불던 그 사람 떠난 뒤로

桂花香冷到如今(계화향냉도여금) : 계화향기 차가운 것 오늘까지 왔구나.

 

●看山(간산)-金正喜(김정희) 산을 보며

 

山與大癡寫意同(산여대치사의동) : 산은 대치와 묘사된 속뜻은 같으나

匡廬詩偈杳難窮(광려시게묘난궁) :광산의 시의 게송처럼 묘하여 다 찾기는 어려워라

都無冬夏靑蒼氣(도무동하청창기) : 여름과 겨울 푸른 기운은 전혀 없고

陡壑脩林一樣紅(두학수림일양홍) :험한 골짜기 늘어진 숲은 같은 모양으로 붉은 빛이 돈다

 

●庭草(정초)-金正喜(김정희) 뜰의 풀

 

一一屐痕昨見經(일일극흔작견경) : 하나씩 신발 자국 어제 보고 지난 것

蒙茸旋復被階庭(몽용선복피계정) : 덥수룩 자라나 다시 섬돌 뜰을 덮었구나.

機鋒最有春風巧(기봉최유춘풍교) : 몇 풀 끝은 봄바람의 재주 있어

纔抹紅過又點靑(재말홍과우점청) : 붉은 색 발라 놓자 또 푸른 점을 찍었구나.

 

●驟雨(취우)-金正喜(김정희) 소나기

 

樹樹薰風葉欲齊(수수훈풍엽욕제) :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잎들은 가지런하고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 나뭇잎 일제히 물결치듯)

正濃黑雨數峯西(정농흑우수봉서) : 산봉우리들 서쪽은 비 짙어 어두워진다.

(서쪽 봉우리들에 검은 구름 몰려와 비 쏟아진다)

小蛙一種靑於艾(소와일종청어애) : 작은 청개구리 한 종류가 쑥보다 더 푸른데

(작은 개구리 쑥보다도 더 푸른데)

跳上蕉梢效鵲啼(도상초초효작제) : 파초 잎 끝에 뛰어 올라 까치 울음 흉내 낸다.

(물억새 풀 끝으로 뛰어올라 까치울 듯 울어댄다)

 

●秋牡丹(추모란)-金正喜(김정희) 가을 모란

 

紅紫年年迭變更(홍자년년질변경) : 해마다 홍색 자색 바꿔가며 꽃 피어

牡丹之葉菊之英(모단지엽국지영) : 모란의 잎은 국화의 꽃봉오리와 같도다.

秋來富貴無如汝(추래부귀무여여) : 가을이 되면 부귀가 너 같은 것이 없으니

橫冒東籬處士名(횡모동리처사명) : 동쪽 울타리 처사란 명칭은 걸맞지 않구나.

 

●配所輓妻喪(배소만처상)-金正喜(김정희) 유배지에서 아내의 죽음을 애도함

 

那將月老訟冥司(나장월로송명사) : 어찌하면 매파가 저승 관리에게 송사하여

來世夫妻易地爲(내세부처역지위) : 내세에는 우리부부 바꾸어 태어나게 할 수 있을 까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 내가 죽고 당신이 천리 밖에 태어나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 나의 이 마음의 슬픔을 알게 하고 싶소

 

아내의 영전에 바치는 詩 - 悼亡(도망)

 

悼亡(도망) - 김정희(金正喜)

 

那將月姥訟冥司(나장월모송명사) : 어찌하여야 달 노파와 저승에 송사하여

來世夫妻易地爲(래세부처역지위) : 내세에는 남편과 아내, 처지 바꿔 태어나리

我死君生千里外(아사군생천리외) : 나 죽고 그대 살아 천리 밖에 남는다면

使君知我此心悲(사군지아차심비) : 나의 이 슬픈 마음을 그대가 알게 하리라.

====================================================================

(((필설(筆舌)로는 나의 이 기막힌 슬픔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으니

저승에서 남녀간의 인연(因緣)을 주재(主宰)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 月下氷人)에게 송사(訟事)라도 하여

다음 세상에서도 우리가 부부간으로 환생(還生)하되

그때는 부부가 서로 바뀌어서 당신이 지금의 나의 처지에 있어 보아야

그때에야 비로소 나의 이 비통한 심정을 그대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

이다.)))

 

적거지(謫居地) 제주에서 사랑하는 부인의 부음(訃音)을 접한

추사선생(秋史先生)의 도망시(悼亡詩)

 

도망시(悼亡詩)란 부인을 사별(死別)한 남편이 그 기막히고

애처로운 심정과 가슴에 맺히는 갖가지 회한을 시로서 표현하는 것으로

만시(輓詩, 弔詩)의 한 종류이다.

추사선생은 55세 되시던 해(1840 憲宗 6년)부터 63세(1848 憲宗 14년)까지

햇수로 9년간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서 귀양살이를 하셨다.

선생이 이토록 오랜 세월 유배(流配)생활을 하시게 된 이유는 그때로부터

이미 10년 전인 1830년(庚寅)에 당시 부사과(副司果)의 벼슬로

조정에 있던 윤상도(尹尙度)가 그의 아들 윤한모(尹翰模)와 함께

이미 3년전에 병사(病死)한 효명세자(孝明世子)가 덕망(德望)이 없었다는 것과

호조판서(戶曹判書) 박종훈(朴宗薰)이 나랏돈을 남용(濫用)한 탐오(貪汚)한 관리(官吏)라고

논척(論斥)한 상소(上疏)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에 크게 노한 임금 순조(純祖)는 윤상도 부자를 중신(重臣)을 무함(誣陷)하고

군신을 이간(離間)하는 난신적자(亂臣賊子)라고 하여

매를 치고 전라도 추자도(楸子島) 섬으로 귀양을 보내 위리안치(圍籬安置)를 시켰는데

그로부터 10년 후인 경자년(庚子年,1840)에

조신(朝臣)인 김홍근(金弘根)이 윤상도 부자의 죄를 다시 논할 것을 상소하여

추자도에 있는 죄인들을 의금부(義禁府)로 압송(押送),

국문(鞠問)하는 과정에서 윤상도 부자의 경인년(庚寅年) 상소문이

실은 추사선생이 초안(草案)한 것이라는 허위진술이 나왔다.

이러한 허위자백이 나오자 삼사(三司)에서는 선생을 국문하여

크게 벌을 주라는 상소가 빗발치고 임금 순조도 대노(大怒)하여

선생의 목숨이 위태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다행이 당시의 권신(權臣)이자

시임(時任) 우의정(右議政)인 조인영(趙寅永)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추사선생을 변호함으로 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제주로 유배(流配)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를 당하시게 된 것이다.

선생은 21세 되던 해에 초취부인(初娶夫人) 한산이씨(韓山李氏)를 여의고

3년 후에 예안이씨(禮安李氏)를 재취(再娶)로 맞이하셨는데

약관(弱冠)의 연세에 부인과 사별(死別)한 아픔에 크게 느끼신 바가 있으셨던지

예안이씨 부인과의 금슬이 참으로 자별하셨다고 한다.

先生이 제주도로 유배되신지 3년째인 선생 57세 되던 해의

섣달 14일에 적거지(謫居地)에서 30여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시던

부인 이씨가 그 전달인 동짓달 13일에 별세(別世)하셨다는 부음(訃音)을 접하셨다.

내외분의 금슬이 남달리 좋으셨던 선생은 제주로 오신 뒤

인편이 있을 때마다 예산(禮山)의 본댁(本宅)으로 서신을 보내셨는데

그때마다 빠짐없이 부인에게 별도로 언문(諺文)편지를 보내어

당신이 부인을 신애(信愛)하는 심중을 피력하시고 가사를 당부하셨다 한다.

선생이 제주로 가신 후 2년여 동안에 부인에게 보낸 언간이 상당수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그 간찰의 내용 중에는 남다른 두 분 간의 정분(情分)을 촌탁(忖度)할 수 있는 많은 사연들이 있다고 한다.

 

부인이 돌아가신 그날에 보낸 추사선생의 서신

 

부인이 별세하시고 한달이 넘은 시점에서 부인의 부음을 접하신 선생이

가만히 생각하니 선생이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보낸 편지는 부인 사후

7일째 보낸 것이고 그 앞에 보낸 것은 부인이 돌아가신 그날에 보낸 것이었다.

그러니 수륙 이천리 밖 적거지의 위리 가운데서 사랑하는 부인이

오래 동안 중병(重病)으로 신고(辛苦)를 하다가 숨을 거둔 것도 모르고

그날 편지를 보낸 일이나 이미 고인(故人)이 되어

이레가 지난 사람에게 당신의 간절한 신애의 정을 절절이 담아 편지를 써 보냈던

일을 생각하니 선생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았을 것이고

그 비통하고 애절한 심회는 필설로 표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부음을 접한 선생은 물론 당시의 예법(禮法)대로 비록 적거지일망정

마당에 짚자리를 깔고 소반에 정화수(井華水)를 올린 후

상투를 푸신 다음 본댁인 예산이 있는 북쪽하늘을 향하여

일장망곡(一場 望哭)을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죄인의 몸이라 처상(妻喪)을 당하시고도 달려가

치상(治喪) 장례(葬禮)를 치를 수 없는 당신의 처지를

애통해 하시다가 체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당신의

그 비통한 심회를 표현할 방법을 생각하셨을 것이다.

여기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추사선생이라고 하면

의례히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서예(書藝)의 대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행서(隸, 行書)의

독특한 필체(筆體)를 개발한 절세(絶世)의 명필(名筆)이라거나

남종화(南宗畵)의 대가로 유미,선미(儒味, 禪味)가 넘치는 산수(山水),

죽난화(竹蘭畵)를, 그리고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린 그림의 대가,

조금 더 아시는 분은 북한산(北漢山)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를

고증(考證)한 금석학(金石學)의 대가라는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러한 것들도 물론 사실로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선생의 그러한 지엽적(枝葉的)인 천재성(天才性)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선생의 본령(本領)은 유학(儒學)으로 대단한 학자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당대 최고의 유학자이다

 

선생이 24세 되던 해에 사행(使行)으로 가시는 부친을 배행(陪行)하여

북경(北京)을 가셨을 때 당대 중국 최고의 석학(碩學)인

옹방강(翁方綱)을 만나 그로부터 선생의 대단한 학문을 인정받음으로

서로의 교유(交遊)가 막역(莫逆)한 관계가 되었던 일이나

30대 초반에 대과(大科)에 급제한 후 청환(淸宦)을 두루 역임(歷任)하고

환로(宦路)가 일취월장(日就月將)한 것 등이 선생의 학문이 얼마나

고매한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증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생이시니 아마 선생은 부인의 부음을 접하시고

먼저 제문(祭文)을 지어 부인의 넋을 위로(慰勞)하고

당신의 비통(悲痛)한 심회(心懷)를 달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귀양을 오시면

서 부인과 마지막으로 헤어지시던 기억을 회상(回想)하며

그 장면을 그림으로도 그려 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제문(祭文)도 별리도(別離圖) 그림도 당신의 부인을 향한 지극(至極)하고

애틋한 심회를 모두 표현하기에는 미흡(未洽)함을 느끼시고 드디어 읊으신

시가 우리나라 도망시의 백미(白眉)로 온 나라 모든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많은 사람의 심금(心襟)을 울린

다음의 칠언절구(七言絶句) 한수이다.

 

필설(筆舌)로는 나의 이 기막힌 슬픔을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으니

-----------------------------------------------------------

저승에서 남녀간의 인연(因緣)을 주재(主宰)하는

--------------------------------------------

월하노인(月下老人, 月下氷人)에게 송사(訟事)라도 하여

--------------------------------------------------

다음 세상에서도 우리가 부부간으로 환생(還生)하되

-----------------------------------------------

그때는 부부가 서로 바뀌어서 당신이 지금의 나의 처지에 있어 보아야

---------------------------------------------------------------

그때에야 비로소 나의 이 비통한 심정을 그대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

-------------------------------------------------------

이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정교(精巧)하고 가장 깨끗하게 나타낼 수 있는 도구이고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묘기(妙氣)가 있으며

언외언(言外言)이 있고

언외지(言外志)가 있으며

욕언미토(欲言未吐)의 경지(境地)까지를

유추가능(類推可能)케 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 한수 스물여덟자 속에는

우리가 바로 이것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무한(無限)한 함의(含意)가 있는 것이라

그 시를 쓴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 다음 백번 천번 음송(吟誦)을 한 후라야 비로소

그 시의 진취(眞趣)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김정희(金正喜) 배소만처상(配所晩妻喪)

-유배지에서 뒤 늦게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일명 도망(悼亡)

 

聊得月老訴冥府 (요득월로소명부)

來世夫妻易地爲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아사군생천리외)

使君知有此心悲 (사군지유차심비)

 

월하노인 통해서 저승세계에 하소연해서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놓으리라.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 있어

그대에게 이 내 비통한 심정을 알게 하리라.

 

추사는 15세 되던 1800년에 이희민(李羲民)의 딸인 한산 이씨(韓山李氏)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1805년 부친이 과거에 급제하는 큰 경사가 생긴 바로 그 해, 추사의 부인 한산 이씨가 스무 살 나이에 갑자기 타계했다. 1808년 23세 때 추사는 이병현(李秉鉉)의 딸 예안 이씨(醴安李氏)를 둘째부인으로 맞아 들였다. 추사는 예안 이씨와 금슬이 어지간히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미술사학자(美術史學者) (崔完秀)선생은 추사의 재혼을 일러 “은반지를 잃고 오히려 금반지를 얻은 기쁨이 있었던 듯하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추사가 제주로 유배 온 지 2년이 조금 지났을 때인 1842년 11월 13일 남달리 금슬이 좋았고, 귀양살이에 필요한 옷가지와 음식을 챙겨주던 아내 예안 이씨가 지병으로 끝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추사와 34년 고락을 함께한 그녀의 나이는 55세였다. 추사가 그 부음을 들은 것은 한 달 뒤인 12월 15일이었다. 부음을 듣고 추사는 충청도 본가를 향해 엎드려 복받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오열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추사는 정신을 차리고 책상 앞에 단정히 앉아 눈물의 애서문(哀逝文)을 지었다. 추사는 애서문 앞에 머리글을 먼저 차분히 적은 뒤 통곡의 제문(祭文)을 지어 아내를 잃은 아픔과 인생의 허망함, 앞날에 대한 걱정을 담고 있다.

 

<부인 예안 이씨 애서문>

 

임인년 11월 을사삭(乙巳朔) 13일 정사(丁巳)에 부인이 예산의 집에서 일생을 마쳤으나 다음 달 을해삭(乙亥朔) 15일 기축(己丑)의 저녁에야 비로소 부고가 해상(海上)에서 전해 왔다. 그래서 지아비 김정희는 위패(位牌)를 설치하여 곡을 하고 생리(生離)와 사별(死別)을 비참히 여긴다. 영영 가서 돌이킬 수 없음을 느끼면서 두어 줄의 글을 엮어 본가에 부치어 이 글이 당도하는 날 제물을 차리고 영궤(靈几) 앞에 고하는 바이다.

 

어허! 어허! 나는 형틀 앞에 있고 큰 고개와 큰 바다가 뒤를 따를 적에도 일찍이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는데, 지금 부인의 상을 당해서는 놀라고 울렁거리고 얼이 빠지고 혼이 달아나서 아무리 마음을 붙들어 매자해도 길이 없으니 이는 어인 까닭인지요.

 

어허! 어허! 무릇 사람이 다 죽어갈망정 유독 부인만은 죽어서는 안 될 처지가 아니겠소. 죽어서는 안 될 처지인데도 죽었기 때문에 죽어서도 지극한 슬픔을 머금고 더없는 원한을 품어서 장차 뿜으면 무지개가 되고 맺히면 우박이 되어 족히 남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겠기에 형틀보다도, 큰 고개와 큰 바다보다도 더욱 심했던 게 아니겠소.......

 

예전에 나는 희롱조로 말하기를 “부인이 만약 죽는다면 내가먼저 죽는 것이 도리어 낫지 않겠소?”라고 했더니 부인은 이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크게 놀라 곧장 기를 가리고 멀리 달아나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요. 이는 진실로 세속의 부녀들이 크게 꺼리는 대목이지만, 그 실상을 따져보면 이와 같을지니 내 말이 다 희롱에서만 나온 것은 아니었소.

 

지금 끝내 부인이 먼저 죽고 말았으니 먼저 죽어가는 것이 무엇이 유쾌하고 만족스러워서 나로 하여금 두 눈만 빤히 뜨고 홀로 살게 한단 말이오. 푸른 바다와 같이, 긴 하늘과 같이 나의 한은 다함이 없을 따름이외다.(‘오성수’님의 ‘한시(漢詩) 99편’에서 옮김)

 

추사(秋史)의 시를 읽다가 울컥 슬픔이 솟아올라 그만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추사의 아내 사랑에 대한 감동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시를 읽는 가운데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추사의 절절한 마음이 이입(移入)되었는지, 혹은 아내 사랑에 대한 자격지심(自激之心)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 생애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태어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된 아내에게 아내 잃은 애통함이 얼마나 지극한가를 알려 주고 싶습니다.” 이 얼마나 절절한 애부가(愛婦歌)입니까? 부부유별(夫婦有別)의 경직된 유교사회에서 이 얼마나 애틋한 아내 사랑입니까? 사랑의 표현이 일상화 되고 자연스러운 요즘의 어느 남편이 부른 노래라면 이렇게까지 심금을 울리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추사의 ‘도망(悼亡)’에서는 천리 밖 유배지의 고통과 아픔, 아내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남편의 슬픔,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한 절망감, 그리고 각별한 사랑의 깊이 등이 행간(行間)마다 짙게 묻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서예와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한국서예

우리 나라는 중국 문화를 직접 빋아들인 나라이기에 종족과 언어만 다를 뿐이지 모든 문물 제도는 중국과 대략 같게 수천년을 살아온 게 사실이다.

나는 대만에 갔을 때 우선 고궁 박물관을 찾아보고 서화, 도자기 등을 위시하여 모든 것을 살펴보며 하나하나 우리 것을 연상하느라 바빴다.

또 중국 대륙을 돌아다니며 그 곳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건축. 도성(都城). 능원(陵園) 등 명소 고적을 살펴볼 때 역시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이 생각나 시종 비교하여 보느라 여념이 없을 지경이었다.

저 중국으로 말하면 국토의 넓이로는 우리의 몇 배인지 말할 수 없고 역사상 제반 자취도 대단하며 현재의 인구도 12억을 산(算)하고 그 곳에 사는 종족도 56종족이라니 모든 것이 우리와 어찌 견주어 말하랴.

그러나 넓고 크고 많은 것은 한 마디로 우리와 비교가 어려우나 문화유산으로 말하면 조그마한 우리 나라로서도 짜임새 있고 아름다운 점에서 볼 때 하나도 손색이 없게 느껴 자위할 만하였다.

중국 관광에서 본 수많고 한없는 것을 어찌 다 말할까마는 그 중 비림(碑林)을 본 것이 가장 인상적이어서 적어 보겠다. 비림(碑林)은 많은 비가 몰려 있어서 '비림(碑林)' 이라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산재한 것을 모아서 큰 집 속에 보관한 것이다. 안근례비(顔勤禮碑)를 비롯하여 수많은 천하 명보(名寶)를 한눈으로 단숨에 볼 때 그저 황홀할 뿐이다. 특히 서학도(書學徒)로서는 감탄할 따름이었다. 여기서 생각나는 것이 있으니 우리 나라도 산재한 국보급 금석(金石)을 큰 집을 짓고 한 곳에 모아 보관도 안전하게 하며 감상도 편리하게 하였으면 하였다. 관광에서 얻은 소득이 이만큼 지대하다는 것을 잊을 수 없다.

다음에 역사적으로 뚜렷한 서적(書蹟)과 서가(書家)에 대하여 소개하겠다.

 

삼국시대(三國時代)

광개토경호태왕릉비(廣開土境好太王陵碑) : 예서(隸書)9414) 고구려(高句麗) 방엄질후(方嚴質厚) 파책(波책)이 없는 고예(古隸)

신라(新羅) 북한산진흥왕순수비(北漢山眞興王巡狩碑) : 육조(六朝)

백제(百濟) 무녕왕릉(武寧王陵) 지석(誌石) : 육조(六朝)

 

통일신라시대(統一新羅時代)

성주사(聖住寺) 사적비편(事蹟碑片) : 근엄단아(謹嚴端雅) 안진경다보탑체(顔眞卿多寶塔體)

단속사신행선사비(斷俗寺神行禪師碑) : 석영업 서(釋靈業 書) 행초(行草) 왕희지체(王羲之體)

쌍계사비(雙溪寺碑) 최치원 서(崔致遠 書) 구양순(歐陽詢), 유공권체(柳公權體)

 

고려시대(高麗時代)

백월서운비(白月栖雲碑) : 김생(金生) 집자(集字) 행초(行草)

봉암사정진대사비(鳳巖寺靜眞大師碑) : 장단설. 서(張端說. 書) 우세남체(虞世南體)

현화사비(玄化寺碑) : 채충순 .서(蔡忠順 . 書) 구양순체(歐陽詢體)

거둔사승묘선사비(居둔寺勝妙禪師碑) : 김거웅. 서(金巨雄. 書) 구양순체(歐陽詢體)

현화사개창비(玄化寺開創碑) : 백현예. 서(白玄禮. 書) 구양순체(歐陽詢體)

법천사지광국사비(法泉寺智光國寺碑) : 안민후. 서(安民厚. 書) 구양순체(歐陽詢體)

영통사대각국사비(靈通寺大覺國師碑) ; 오언후. 서(吳彦侯. 書) 구양순체(歐陽詢體)

문수사장경비(文殊寺藏經碑) ; 이암. 서(李암. 書) 해행체(楷行體)

고려시대만 해도 육필로 남은 것은 근소하고 금석문만 남아 있다.그리고 고려는 불교를 숭봉(崇奉)한 까닭에 불찰에 궁비(穹碑)가 많이 있고 서체는 구양순체가 대종을 이루었다.

 

조선시대(朝鮮時代)

초엽에는 왕희지 조맹부 서체가 성행하여 그 여운이 중엽까지도 전수되다가 안진경체가 싹트기 시작하여 몇몇 작가의 출현을 보겠고 계속해서 안체에 관심이 커서 사육신 신도비(神道碑), 이충무공 신도비, 송우암묘비 등 유명한 금석문의 집자가 발현되었으니 이는 한국서예사상 일대 획기적인 변혁이라 할 수 있다. 말엽에 이르러서는 청조의 영향을 받아 다양해지며 전(篆), 예(隸), 해(楷), 행(行), 초(草) 전반에 걸쳐 새로운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고려 이전은 연대가 오래되어 육필이 거의 없어 금석문만 가지고 글씨의 성쇠를 알게 된다. 조선조에는 임란 전의 유적으로는 간찰(簡札)이 어느정도 남아 있고 그 이후는 간찰이 많아 그 연구에 있어서 간찰의 비중이 매우 크다.

조선조 서예는 작가 본위로 소개하겠다.

 

정도전(鄭道傳) 삼봉(三峯) 조체(趙體)

성석린(成石璘) 독곡(獨谷) 조체(趙體) 건원릉비(建元陵碑)

권근(權近) 양촌(陽村)

설경수(설慶壽) 용재(용齋) 왕법(王法) 용문사정지국사비(龍門寺正智國師碑)

공부(孔俯) 어촌(漁村) 예해초(隸楷草), 이색신도비(李穡神道碑). 무학선사탑비(無學禪師

塔碑)

석만우(釋卍雨) 천봉(千峰) 안평대군 소상팔경시권(瀟湘八景詩卷)

권홍(權弘) 송운헌(松雲軒) 전예(篆隸) 헌릉비음(獻陵碑陰) 성균관비(成均館碑)

신색(申穡) 암헌(巖軒) 조법(趙法) 숭례문(崇禮門)

김숙자(金叔滋) 강호산인(江湖散人)

강석덕(姜碩德) 전예(篆隸)

정척(鄭陟) 정암(整庵) 새보(璽寶) 관인(官印)

성개(成槪) 수헌(睡軒) 유법(柳法) 성령대군(誠寧大君) 이종신도비(李種神道碑)

안숭선(安崇善) 옹재(雍齋) 왕법(王法)

정인지(鄭麟趾) 학역재(學易齋) 조법(趙法)

이영서(李永瑞) 희현당(希賢堂) 팔경시권(八景詩卷)

문종(文宗) 조법입신(趙法入神)

이용(李瑢) 안평대군 자(字) 청지(淸之) 호(號) 비해당(匪懈堂) 낭간거사 매죽헌(梅竹軒)

왕법(王法) 조법(趙法) 화금(畵琴) 문종2년 동활자서사(銅活字書寫) 임신자(

壬申字) 몽유도원도발문(夢遊桃源圖跋文)

박팽년(朴彭年) 취금헌(醉琴軒) 조법(趙法) 몽유도원도서(夢遊桃源圖序)

성삼문成三問) 매죽헌(梅竹軒) 조법(趙法)

이개(李塏) 백옥헌(白玉軒) 조법(趙法)

이현로(李賢老) 조법(趙法) 몽유도원도부(夢遊桃源圖賦)

강희안(姜希顔) 인재(人齋 시서화(詩書畵) 왕(王) 조법(趙法) 을해자(乙亥字)

성임(成任) 안법(顔法), 홍화문(弘化門)

정난종(鄭蘭宗) 허백당(虛白堂) 왕법(王法) 을유자(乙酉字)

성종(成宗) 조법(趙法)

김구(金絿) 자암(自庵) 회소풍(懷素風) 광초(狂草) 인수체(人壽體) 안평대군. 김구(金絿)

양사언(楊士彦). 한호(韓濩 사대가(四大家)

성수침(成守琛) 청송당(聽松堂) 문징명법(文徵明法)

이황(李滉) 퇴계(退溪) 왕법(王法)

황기지(黃耆志) 노고산(老孤山) 왕법(王法) 회소풍(懷素風) 광초(狂草) 초성(草聖)

김인후(金麟厚) 하서(河西) 안법(顔法) 초(草)

사임당(師任堂) 신씨(申氏) 왕법(王法) 초(草)

양사언(楊士彦) 봉래(蓬萊) 해초(楷草) 안법(顔法)

석휴정(釋休靜) 청허당(淸虛堂) 서산대사 천의무봉필법(天衣無縫筆法)

송준길(宋浚吉) 동춘(同春) 조법(趙法)

송시열(宋時烈) 우암(尤庵) 안법(顔法)

성혼(成渾) 우계(牛溪) 안법(顔法)

윤근수(尹根壽) 월정(月汀) 왕법(王法) 영화체(永和體)

이산해(李山海) 아계(鵝溪) 왕법(王法) 정암(靜庵) 조광조비(趙光祖碑). 회재(晦齋) 이언적비(李

彦迪碑)

김현성(金玄成) 남창(南窓) 송설체(松雪體) 통제이공수군대첩비(統制李公水軍大捷碑) 숭인전비

(崇仁殿碑)

한호(韓濩) 석봉(石峯) 사자관(寫字官)

김상헌(金尙憲) 청음(淸陰) 동기창법(董其昌法)

신익성(申翊聖) 동회(東淮) 전예(篆隸)

허목(許穆) 미수(眉수) 전(篆)

김수증(金壽增) 곡운(谷雲) 예전(隸篆)

이우(李우) 관난정(觀난亭) 낭선군(朗善君) 선조손(宣祖孫)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

윤순(尹淳) 백하(白下) 행(行)

이간(李간) 최락당(最樂堂) 낭원군(朗原君) 선조손(宣祖孫) 전예(篆隸)

이광사(李匡師) 원교(圓嶠) 해행(楷行) 초(草) 백하문인(白下門人)

이인상(李麟祥) 능호관(凌壺觀) 삼절(三絶)

강세황(姜世晃) 표암(豹庵) 삼절(三絶) 왕.미.조법(王. 米.趙法)

정조(正祖) 홍재(弘齋) 만천명월주인(萬川明月主人) 홍재전서(弘齋全書)

유한지(兪漢芝) 기원(綺園) 전예(篆隸)

정약용(丁若鏞) 다산(茶山 행서(行書)

신위(申緯) 자하(紫霞) 동기창(董其昌) 삼절(三絶)

조광진(曺匡振) 눌인(訥人) 유석암(劉石庵) 예서(隸書)

권돈인(權敦仁) 이재(彛齋) 추사서풍(秋史書風)

김정희(金正喜) 추사(秋史) 완당(阮堂) 추사서체(秋史書體)

전기(田琦) 고람(古藍) 전예해행(篆隸楷行 화(畵)

오경석(吳慶錫) 역매(亦梅0 삼한금석(三韓金石)

윤용구(尹用求) 해관(海觀) 구법(軀法)

민형식(閔衡植) 우하(又荷) 안법(顔法)

김돈희(金敦熙) 성당(惺堂) 각체(各體)

김용진(金容鎭) 영운(潁雲) 안법(顔法) 예(隸)

오세창(吳世昌) 위창(葦蒼) 전(篆)

손재형(孫在馨) 소전(素筌) 전(篆)

유희강(柳熙綱) 검여(劍如) 육조(六朝)

 

학술이나 예술이나 배우고 연구하려면 그 원천을 찾아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지만 글씨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되지 못하였지만 현대는 이의 발달로 진서귀적이 얼마든지 나와 공부하기가 편리해졌다. 원천을 찾아 고법을 배우되 당대 이전으로 올라가야 창작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법첩을 공부함에 있어서는 많은 종류를 욕심내서 쓰는 것 보다 가지 수를 정선하여 일생을 두고 공부하는 것이 좋다. 우리 나라 금석문은 모두 중국 서법에 의거하고 우러나온 것이므로 참고에 그치는 것이 합당할 줄로 안다.

우리 나라의 서예는 중국 서예에 근거를 두어야 함은 물론이겠지만 우리의 특수사정으로 국문 글씨를 쓰는데 주력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러나 국문 글씨만 썼다고 서예가라고 하기는 힘들 것으로 안다.

 

완당선생(阮堂先生)

완당 김정희 선생의 본관은 경주요 자는 원춘(元春)이요 호는 완당(阮堂) 이외에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詩庵), 과파(果坡),와 별서(別署)를 모두 합치면 수백을 꼽을 것이다.

정조 10년(1876)에 판서 노경의 아들로 회임 24개월 만에 태어났다고 하며 백부 노영에게 출계(出系)하였다.

순조 9년에 생원이 되고 181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설서(說書) 검열 대교(待敎), 충청우도 암행어사, 의정부 검상, 성균관 대사성 등을 거쳐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24세 때에 생부를 따라 북경에 가서 그곳 거유 완원(阮元). 옹방강(翁方綱) 등과 교유하여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1840년 윤상도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위리안치(圍籬安置), 1848년에 석방되었으나 1851년 헌종의 묘천 문재 때 그 주창자로 북청에 유배. 그 다음에 풀려났다.

학문에 있어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요도(要道)임을 주장하고 그것을 훈고(訓誥)로써 실천하는데 있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역대의 명필을 연구, 그 장점을 모아서 독특한 일체를 이루어 대성하니 이를 추사체라 일컫게 되었다. 그중 예서 행서는 전무후무한 경지를 열었다. 이는 심오하고 해박한 학문의 배경과 원천 없이는 불가능한 결과라 하겠다.

문인화 또한 서법과 학문의 저력에서 우러나 탈속 비범하여 추종를 불허한다. 금석학에 주력하여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이 있으며, 북한산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를 고증하였다.

완당의 대가를 이룬 세 가지 연유를 들면 (1)명문가에 출생 (2)고증학의 성세 (3)장수하였던 것을 말하겠다. 그외에 천부적인 재질은 더 말할 나위 없다.

그의 서예를 서체별로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전서(篆書)

완당의 전서는 많지 않으나 주역상경과 장서목록 일부가 전서로 되어 있다. 그 유필은 철선전(鐵線篆)으로 고문과 소전을 혼합하여 원만한 장봉이다. 장엄한 태세를 잃지 않을 뿐 아니라 탈속하였다.

 

2. 예서(隸書)

완당의 글씨 중에 예서와 행서가 대종을 이뤘다. 그리고 가장 많이 전한다. 서경예(西京隸) 즉 전한예(前漢隸) 동경예(東京隸) 즉 후한예(後漢隸)로 구분하였으니 서경예는 파세(波勢)가 없고 동경예는 파책(波책)이 있다. 완당의 예는 서경예에 주력한 듯하다.

서시우아(書示佑兒) 중 일구(一句)를 보면

 

隸書 是書法祖家 若欲留心書道 不可不知隸矣.........(중략)

 

라 하였고 또

 

又非有胸中文字香書卷氣 不能現發於腕下指頭..........(중략)

 

라 하였으니, 예서(隸書)는 바로 서법의 조가(祖家)이다. 만약 서도에 마음을 두고자 하면 예서를 몰라서는 아니된다. 더구나 가슴속에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가 들어있지 않으면 능히 완하(腕下)와 지두(指頭)에 발현되지 않는다 라고 하여 문자향. 서권기의 중요성을 서시(書示)하였다. 이와 같이 예서의 진수를 피력하였고 서법의 조종(祖宗)으로 예서를 들었다. 무릇 서도에 뜻을 두었다면 반드시 예서에 뜻을 두지 아니하고는 안 된다고까지 강조하였으니 바로 완당 서법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예서의 방경 고졸(方勁古拙)함과 청고 고아(淸高古雅)한 필의와 흉중에 문자향. 서권기가 들어 있어야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이 완당 서법의 정체(正體)이기도 하다.

 

3. 해서(楷書)

해서에 있어서 서시우아(書示佑兒)에

 

書法 非醴泉銘 無以入手.........(중략)

 

라고 하였는데 이는 서법은 예천명이 아니면 손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한 것이니, 완당의 해서관(楷書觀)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초학(初學)에 있어서 예천(醴泉). 화도(化度) 등 비(碑)에 입수(入手)할 것을 역설하였다.

채상국(蔡相國)은 완당이 6, 7세 때 쓴 입춘첩을 보고는 훗날 이름을 날릴 것을 점쳤다고 하는데 그가 8세 때 쓴 서간문을 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의 이론가 서법을 보면 전. 예. 행. 초의 특징이 종합되어야 비로소 해서가 될 수 있다는데 주목해야 될 것이다. 완당의 해서는 이왕(二王). 구. 저(歐.楮). 안진경의 법을 배워 근원을 삼았고 소식. 황정견. 유용. 옹방강 등의 영향이 적지 않았으며, 육조해서의 필법과 관심 또한 적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4. 행서(行書)

완당의 행서는 서체 연변(演變)에 따라 해서에 바탕을 두었음을 더 말할 나위 없다. 구. 저와 안진경을 거쳐 소식. 황정견. 문징명. 심주. 동기창. 유용. 옹방강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미치지 아니한 것이 없다.

그는 행서의 원칙을 이왕(二王)에 두고 그후 제가(諸家)의 장점을 취하고 더욱 육조 비판(碑版)의 깊은 맛을 더하여 완당 서법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연경(燕京)에서 옹방강과 필담한 묵적(墨蹟)으로 볼 때 그가 24세 때의 행서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옹(翁)과 대비하여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청년의 서(書)와 노필(老筆)의 대비도 되려니와 여기서 완당의 행서가 비상함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5. 초서(草書)

완당의 논고인서(論古人書) 중 초서에 관하여

 

白陽山人草法 有孫虔禮揚少師規度 是草法正宗也 草法不由孫揚

皆作一鎭宅符 東人尤甚 無非惡札耳

 

라는 대문이 있으니, 즉 백양산인(白陽山人: 陳淳) 의 초서 쓰는 법에 손과정(孫過庭). 양무구(揚无咎)의 규법이 있으니, 이는 바로 초법(草法)의 정종(正宗)이다 초법이 손. 양을 말미암지 않는다면 모두 진택부(鎭宅符: 집 지키는 부적)를 만들 뿐인데, 동쪽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욱 심하여 악찰(惡札: 졸렬한 편지나 글씨)이 아닌 것이 없다고 단정하였다.

성친왕(成親王)의 글씨를 논함에

 

草法尤長於孫虔禮舊法 一洗惡札之鎭宅符俗習 可爲後民之式

 

이라 하여 성친왕(成親王)의 초법이 손과정의 법을 따랐기 때문에 진택부같은 속(俗)된 버릇을 씻어내니 뒷 사람의 법식이 될 만하다고 지적하였다.

 

6. 전각(篆刻)

완당의 전각은 노경에 들 수록 자각풍(自刻風)의 졸박 청수(拙樸淸瘦)한 특징을 드러내고 있다. 그 많은 별호와 문자인(文字印)등이 모두 자각으로 고문(古文). 기자(奇字). 무전(繆篆). 예서(隸書). 초상인(肖像印) 등에 이르기까지 구비하고 있어서 이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 전각의 선구를 이루었다.

전각이 문인이나 서화가들 손으로 직접 주도(奏刀)된 까닭은 비단 장인(匠人)에 의한 속기(俗氣)를 피하려는데 그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의 고상한 풍취를 그 전각에 발휘해 보려는 의욕이기도 하다.

특히 화가로서 전각을 겸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며 불연(不然)이라도 안목은 지녀야 하겠다. 낙관이 작품에 있어서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니 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따라서 작품이 죽고 사는 관건이니 만큼 매우 유념해야 할 일이다. 수장인(收藏人) 또한 낙관인만 못지 않아 그 진장품(珍藏品)의 품위도 결정짓는다 하겠다.

'歲寒圖'.

세한도는 김정희에게 한결같았던 역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린 역작이다.

까칠한 마른 붓질과 단백한 필선으로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마감을 연출해냈다.

學藝 일치의 극치를 보여주는 문인화의 대표작이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더디 시듦을 알 수 있다.'

세한도 옆에 김정희가 써놓은 발문(跋文)이다

'漢學♡書堂'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탄허 스님 글씨  (0) 2020.12.20
누구나 가진 보물  (0) 2020.12.08
念奴嬌 赤壁懷古-蘇軾  (0) 2020.11.28
李白 行路难  (0) 2020.11.28
退溪 李滉 詩 3首  (0) 2020.11.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