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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⑬

by 권석낙 2026. 6. 18.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⑬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7 - 양화(陽貨) - ⑬
1子曰 鄕原은 德之賊也니라.
2자왈 향원은 덕지적야니라.
3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이다.”라고 하셨다.

[참조] 향원은 시골에서 근후(謹厚)한 체하지만, 실제로는 더러운 세상에 영합하는 위선자(僞善者)를 가리킨다.
4The Master said, “Your good, careful people of the villages are the thieves of virtue.”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⑬
子曰 鄕原 德之賊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향원(鄕原)은 덕(德)의 적이다.”라고 하셨다.

鄕者 鄙俗之意 原 與愿同 荀子原慤 注讀作愿 是也 鄕原 鄕人之愿者也 蓋其同流合汙以媚於世 故在鄕人之中 獨以愿稱 夫子以其似德非德 而反亂乎德 故以爲德之賊而深惡之 詳見孟子末篇
鄕이란 것은 비속하다는 뜻이다. 原은 愿자와 같다. 순자의 原慤(원각, 공손하고 성실함)을 주석하면서 愿자로 읽었는데, 바로 이것이다. 향원은 비속한 자 중에서 愿者(성실하고 근후한 자)를 말한다. 대체로 그는 세상의 흐름에 함께 하여 그 더러움에 영합함으로써 세상에 아양을 떨기 때문에, 그가 향인들 중에서도 유독 성실하고 근후한 자로 칭송을 받는 것 같다. 공자께서는 그가 덕이 있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거꾸로 덕을 어지럽힌다고 여겼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도적으로 여겨 그를 매우 미워하신 것이다. 맹자의 끝편에 상세하게 보인다.

荀子正論篇 上端誠 則下原慤矣 謂在上者能端莊誠實 則下知謹愿而純慤也
순자 정론편에, 윗사람이 단정하고 성실하면 아랫사람이 공손하고 순박하다는 문구가 있다. 이는 위에 있는 사람이 능히 단정하고 장엄하며 성실하면, 아랫사람이 삼가고 공손하면서도 순수하고 순박할 줄 안다고 말한 것이다.

勉齋黃氏曰 旣以鄕爲一鄕 又以爲鄙俗者 鄕之得名 本以鄙俗爲言也 故曰 我猶未免爲鄕人也 亦猶都鄙之稱 都之爲言 美也 鄙之爲言 俗也 然則 鄕者亦鄙俗之類歟 其稱原人而必加之以鄕者 以見其鄙俗非公論之所在 故是非錯謬而稱之以爲原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이미 鄕을 하나의 고을로 여기고서 또 다시 비속한 것이라고 한 것은 鄕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이 본래 鄕이 비속한 것을 말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비속한 사람임을 면하지 못하였다’고 말하면, 이 역시 아름답고 비속한 것을 지칭함과 같은 것이다. 都라는 말은 아름답다는 뜻이고, 鄙라는 말은 저속하다는 말이다. 그러한즉, 鄕이라는 것은 역시 비속한 부류가 아니겠는가? 그를 성실하고 謹厚한 사람이라고 칭하면서도 반드시 鄕이라는 글자를 덧붙인 것은 이로써 그 비속함에 공론이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옳고 그름이 뒤엉켜 잘못되었지만 그를 칭하여 原이라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鄕原者爲他做得好 便人皆稱之而不知其有無窮之禍 如五代馮道者 此眞鄕原也
주자가 말하길, “향원이라는 자는 남 위하는 것을 잘하기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칭찬하면서도 그에게 무궁한 禍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예컨대 五代시대의 풍도와 같은 자가 여기서의 진짜 향원이다.”라고 하였다.

鄕原最是孟子說得數句好 曰生斯世也 爲斯世也 善斯可矣 此是鄕原本情
향원에 대한 설명 중에서 맹자가 말한 몇 구절이 제일 좋다.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이 세상을 위해서 행하되 남들이 선하다고 말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한다고 하니, 이것이 바로 향원 본래의 사정이다.

鄕原無甚見識 其所謂原 亦未必眞愿 乃卑陋而隨俗之人耳 蘇氏謂 其近似中庸而非也 故曰德之賊 孟子曰 一鄕皆稱原人 無所往而不爲原人 與中庸相近 必與狂狷相遠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 鄕原者未嘗進取而無所不爲者也 狂狷與中庸相遠 而孔子取其志之彊 可以引而至於道也 鄕原與中庸相近而夫子惡之 惡其安於陋而不可與有爲也
향원은 무슨 대단한 식견이 없으니, 이른바 原이라고 하는 것도 또한 반드시 진짜로 근후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비루하면서도 세속에 따르는 사람일 따름이다. 소씨는 그것이 중용에 근사하지만 아니기 때문에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길, “하나의 鄕에서 모든 사람이 근후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칭찬하고, 가는 곳마다 原人이라 여기지 않는 곳이 없다.”고 하였으니, 중용과 더불어 서로 가깝지만, 반드시 狂狷과는 서로 멀다. 狂者는 진취적이고, 狷者는 하지 않는 바가 있다. 鄕原이라는 자는 일찍이 진취적인 적이 없었고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자다. 狂狷은 중용과 거리가 서로 멀었지만, 공자께서는 그 뜻의 굳셈을 취하여 그들을 이끌어 도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향원은 중용과 서로 가까웠지만 공자께서는 이를 미워하셨는데, 그가 누추함에 안주해서 그와 더불어 훌륭한 일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을 미워하신 것이다.

勉齋黃氏曰 德者務合乎理者也 鄕原求媚於世 則不必皆合乎理而委曲遷就 似乎理而實非理 使人之爲善者 莫知乎理之正 是天下之正德 反爲鄕原所害也 如廉潔理之正也 鄕原不以爲廉潔以異俗 故亦同乎流俗而外爲說以自蓋 使人視之似廉潔 然實非廉潔而反以害廉潔之正也 故貪夫不足以害夫廉 似廉非廉者 乃所以害夫廉也 此夫子所以深惡之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덕이라는 것은 이치에 부합하는 것에 힘쓰는 것이다. 향원은 세상에 예쁨 받기를 구하니, 반드시 모두 이치에 부합하지는 않을 것이고, 완곡하게 바꾸어서 이치와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이치가 아니다. 사람 중에서 선을 행하는 자로 하여금 이치의 올바름을 알지 못하게 하니, 이는 천하의 올바른 덕이 도리어 향원에 의하여 해를 입는 것이다. 예컨대 청렴은 이치의 올바름이지만, 향원은 청렴을 청렴이라 여기지 않음으로써 풍속을 이상하게 만든다. 고로 역시 함께 세속에 흘러 들어가면서도, 겉으로는 말을 함으로써 자신을 덮어버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을 청렴과 비슷한 것으로 보도록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청렴이 아니면서 거꾸로 청렴의 올바름을 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탐욕스런 자는 저 청렴을 해치기에 충분하지 않지만, 청렴한 것 같지만 청렴하지 않은 자가 바로 저 청렴을 해치는 것이다. 이는 공자께서 그것을 깊이 미워하신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一鄕有君子有小人 鄕原都要他說好 同流合汚 是要媚小人 似忠信似廉潔 是要媚君子 所以人人道他好 人見以此得名 都去學他 最敗風俗 故曰德之賊 上章言盜 盜猶畏人之知 此章言賊 則肆行無忌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한 고을에는 군자도 있고 소인도 있다. 향원은 모두 그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바라면서 함께 흘러들어 더러운 것에 영합하는데, 이것은 소인에게 예쁨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忠信인 듯하고 廉潔한 듯하는 것은 군자에게 예쁨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마다 모두 그가 좋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로써 이름을 얻는 것을 보고서, 모두 가서 그를 따라 배우면, 이것이 제일 풍속을 망치는 것이다. 그래서 덕을 해치는 도적이라고 말한 것이다. 윗장에서 도둑을 말했는데, 도둑은 그래도 남이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이 장에서는 도적을 말하였으니, 도적은 방자하게 행동하면서 거리끼는 바가 전혀 없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眞非不足以惑人 惟似是而非者 最易以惑人 故夫子以爲德之賊
신안진씨가 말하길, “진짜로 틀린 것은 사람을 미혹시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오직 옳은 것 같지만 틀린 것이야말로 사람을 제일 쉽게 미혹시킨다. 그래서 공자께서 德의 賊이라고 생각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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