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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⑩

by 권석낙 2026. 6. 18.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⑩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7 - 양화(陽貨) - ⑩
1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아 人而不爲周南召南이면 其猶正牆面而立也與인저.
2자위백어왈 여위주남소남의호아 인이불위주남소남이면 기유정장면이립야여인저.
3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편을 배웠느냐? 사람으로서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셨다.
4The Master said to Po-yü, “Do you give yourself to the Châu-nan and the Shâo-nan.

The man who has not studied the Châu-nan and the Shâo-nan is like one who stands with his face right against a wall. Is he not so?”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⑩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공자께서 백어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시경의 주남(周南)과 소남(召南) 편을 배웠느냐?

○ 爲 猶學也 周南召南 詩首篇名 所言皆修身齊家之事
했다는 것은 배웠다는 것과 같다. 주남과 소남은 시경의 편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모두 수신제가의 일이다.

厚齋馮氏曰 爲如高叟爲詩之爲
후재풍씨가 말하길, “爲는 고수가 시를 배운다는 爲와 같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二南見文王齊家之化 於修身 疑未之及 蓋身者 家之本 聖人之化 未有不本於身者 文王之化 自內及外 則修身之事 固在其中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주남과 소남에서 문왕의 ‘齊家의 교화’는 보이지만, 修身에 대하여는 아직 미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 대개 身이라는 것은 家의 근본이니, 성인의 교화 중에 身에 근본을 두지 않은 것은 일찍이 없었다. 문왕의 교화는 안에서부터 밖으로까지 미치는 것이니, 수신의 일은 본래 그 안에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사람으로서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으니라.”라고 하셨다.
○ 正牆面而立 言卽其至近之地 而一物無所見 一步不可行.
정면으로 담장을 마주보고 선다는 것은 지극히 가까운 곳에 이르렀으되 사물 하나도 보이는 것이 없고,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程子曰 二南 人倫之本 王化之基 苟不爲之 則無所自入 古之學者 必興於詩 不學詩 無以言 故猶正牆面而立
정자가 말하길, “주남과 소남은 인륜의 근본이자 천자가 교화하는 터전이니, 만약 이를 배우지 않으면, 말미암아 들어갈 곳이 없는 것이다. 옛날에 배우는 사람은 반드시 시에서 흥기하였는데,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정면으로 벽을 마주하고 서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不知所以修身齊家 則不待出門 便已動不得了 所以謂之正牆面者 謂其至近之地 亦行不得故也
주자가 말하길, “수신제가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정면으로 벽을 마주 본다고 말한 것은 그것이 지극히 가까운 곳이지만 또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問不知修身齊家 則自然推不去 是一步不可行 如何是一物無所見 曰 自一身一家已自都理會不得 況其遠者乎 此可見知與行相須之義 周南之詩 言文王后妃閨門之化 召南之詩 言諸侯之國 夫人大夫妻被文王后妃之化而成德之事 蓋文王治岐 而化行於江漢之域 自北而南 故其樂章以南名之 用之鄕人 用之邦國 以敎天下 後世誠意正心修身齊家之道 蓋詩之正風也
누군가 묻기를, “수신제가를 모르면 자연히 미루어 나갈 수 없으니, 이는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지만, 어찌하여 이것이 사물 하나라도 보이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一身과 一家부터 이미 스스로 모두 이해할 수 없다면, 그 먼 것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여기서 知와 行이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뜻을 알 수 있다. 주남의 시는 문왕 后妃의 ‘규문의 교화’를 말한 것이고, 소남의 시는 제후국 군주의 부인과 대부의 처가 문왕 后妃의 교화를 입어서 덕을 이루는 일을 말한 것이다. 대체로 문왕이 岐땅을 다스렸는데, 그 교화가 江漢의 지역에서 행해졌으니 북으로부터 남하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악장에 南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 시를 시골 사람들에게 쓰고 邦國에 씀으로써 천하 사람들을 가르쳤으니, 후세의 성의, 정심, 수신, 제가의 도가 대체로 시의 正風이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此疑在伯魚過庭之後 已告之學詩 恐其未必踐言而復告之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이는 백어에게 過庭之敎를 한 후에 있었던 것으로 의심된다. 이미 시를 배우라고 알려주었으나, 그가 아직 반드시 말을 실천하지는 않을 것을 걱정하여 다시 말해주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詩有二南猶易有乾坤 學詩自此入而修齊治平之道 皆自此出 誠學詩先務也 孔子過庭之傳 旣以學詩居學禮之先 此又以二南爲學詩之先 所以丁寧其子者 豈有他說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詩에 二南이 있는 것은 주역에 乾坤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시를 배우는 것은 여기로부터 들어가지만 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도는 모두 여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진실로 시를 배움에 있어 먼저 힘써야 할 것이다. 공자가 過庭의 전함에 있어서, 이미 시를 배우는 것을 예를 배우는 것보다 앞에 두었고, 여기에서 다시 二南을 시를 배우는 것의 우선으로 삼았으니, 자기 자식에게 간곡하게 당부하는 것에 어찌 다른 말이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書周官曰 不學牆面 孔子取譬本此
신안예씨가 말하길, “서경 周官 편에 이르길, 배우지 않으면 벽을 향해 마주보는 것과 같다고 하였는데, 공자가 비유를 취한 것도 이것을 본받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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