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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⑤

by 권석낙 2026. 6. 18.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⑤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7 - 양화(陽貨) - ⑤
1公山弗擾 以費畔하야 召어늘 子欲往이러시니 子路不說曰 末之也已니 何必公山氏之之也시리잇고 子曰 夫召我者는 而豈徒哉리오 如有用我者인댄 吾其爲東周乎인저.
2공산불요이비반하여 소어늘 자욕왕이러시니 자로불설왈말지야이니 하필공산씨지지야시리잇고 자왈부소아자는 이개도재리오 여유용아자이면 오기위동주호인저.
3공산불요가 비읍을 점거하여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께서 가려고 하셨다.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 두어야지 하필 공산씨에게 가시려 하십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대체 나를 부르는 자는 어찌 하릴없이 그러겠느냐? 나를 써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를 동쪽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셨다.
4Kung-shan Fû-zâo, when he was holding Pi, and in an attitude of rebellion, invited the Master to visit him, who was rather inclined to go.

Tsze-lû was displeased. and said, “Indeed, you cannot go! Why must you think of going to see Kung-shan?”

The Master said, “Can it be without some reason that he has invited ME? If any one employ me, may I not make an eastern Châu?”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⑤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공산불요가 비읍을 점거하여 (계씨를) 배반하고 공자를 부르니 공자께서 가려고 하셨다.

弗擾 季氏宰 與陽貨共執桓子 據邑以叛
불요는 계씨의 읍재였다. 양화와 더불어 같이 계환자를 붙잡아 가두고, 읍을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厚齋馮氏曰 公山氏不擾名 一云不狃 字子洩 費邑宰也 與陽虎共執桓子 虎敗出奔 不擾據邑以叛
후재풍씨가 말하길, “공산은 氏이고, 불요는 이름인데, 달리 불뉴라고도 부른다. 자는 자설로서 비읍의 읍재였다. 양호와 더불어 함께 계환자를 붙잡아 가두었다. 양호가 패배하여 나라 밖으로 도망가자, 불요는 비읍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켰다.”라고 하였다.

左傳定公五年事 見季氏篇首章集註家臣屢叛下
춘추 좌씨전에 따르면 노나라 정공 5년의 일이니, 계씨편 첫 장의 집주 ‘家臣屢叛’의 아래에 보인다.

十二年仲由爲季氏宰 將墮三都 叔孫氏墮郈 季氏將墮費 公山不狃叔孫輒帥費人襲魯 公與三子入季氏之宮 登武子之臺 費人攻之不克 入及公側 仲尼命申句須樂頎下伐之 費人北 國人追之 敗諸姑蔑
노나라 정공 12년에 중유가 계씨의 家宰가 되어 장차 3도의 성을 허물고자 하였다. 숙손씨는 후성을 허물었고, 계씨는 장차 비읍의 성을 허물고자 하였다. 공산불뉴와 숙손첩이 비읍 사람을 인솔하고 노나라를 습격하였다. 노정공은 세 대부와 더불어 계손씨의 궁으로 들어가서 계무자의 대에 올라갔다. 비읍 사람들이 공격하였으나 이를 이겨내지 못하였고, 비읍 사람들이 궁에 들어와 노정공의 곁에까지 이르자, 중니가 신구수와 악기에게 명하여 내려가 이를 치도록 하였다. 비읍 사람들이 달아나자, 나라 사람들이 이를 추격하여 고멸에서 패배시켰다.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 두어야지 하필 공산씨에게 가시려 하십니까?” 하니,

○ 末 無也 言道旣不行 無所往矣 何必公山氏之往乎
末은 없다는 말이다. “도가 기왕에 행해지지 않고 갈 곳도 없는데, 하필이면 공산씨에게로 가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대체 나를 부르는 자는 어찌 하릴없이 그러겠느냐? 나를 써주는 자가 있으면 나는 그를 동쪽 주나라로 만들 것이다.”라고 하셨다. 

○ 豈徒哉 言必用我也 爲東周 言興周道於東方
어찌 그냥 불렀겠느냐는 것은 반드시 나를 기용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동주로 만들겠다는 말은 동방에 주나라의 도를 부흥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邢氏曰 如有用我者 我則興周道於東方 其使魯爲東周乎
형씨가 말하길, “만약 나를 기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곧 동방에서 주나라의 도를 흥기시킬 것이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노나라를 동주로 만들겠다는 것이겠지?”라고 하였다.

○ 程子曰 聖人以天下無不可有爲之人 亦無不可改過之人 故欲往 然而終不往者 知其必不能改故也
정자가 말하길, “성인께서는 천하에 도모하지 못할 일이 없는 사람이고, 또한 고치지 못할 잘못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가지 않은 것은 반드시 그를 고치지 못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程子曰 公山不擾以費叛 不以召叛人逆黨而召孔子 則其志欲遷善悔過 而未知其術耳 使孔子而不欲往 是沮人爲善也 何足以爲孔子
정자가 말하길, “공산불요가 비읍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킬 적에, 반역자와 역당을 부르지 않고 공자를 불렀다는 것은, 곧 그 뜻이 개과천선을 하고자 함이었으나, 단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하였을 따름이다. 만약 공자이면서 가고자 하지 않았다면, 이는 남이 선을 행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이니, 어찌 공자가 되기에 족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公山召我而其徒哉 是孔子意他雖叛而召我 其心不徒 然往而敎之遷善使不叛則已 此則於義直有可往之理 而孔子亦有實知其不能改而不往者 佛肹召亦然
공산이 나를 불렀다면 어찌 그냥 불렀겠는가? 이는 공자가 생각하기에, 그가 비록 반란을 일으켜서 나를 불렀지만 그 마음은 그냥 한갓되이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가서 그를 가르쳐서 개과천선하여 반란하지 않도록 한다면 그만이다. 이러하다면 의로움에 있어서 그저 갈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나, 공자는 또한 그를 바꿀 수 없음을 실제로 알았기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필힐이 불렀을 적에도 또한 그러하였다.

朱子曰 夫子云 吾其爲東周乎 興東周之治也 孔子之志在乎東周 然苟有用我者 亦視天命如何耳 聖人胸中自有處置 非可執定本以議之也
주자가 말하길, “공자께서 내가 그것을 동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동주의 치세를 부흥시킨다는 것이다. 공자님의 뜻은 동주에 있었지만, 그러나 만약 나를 기용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이 역시 천명이 어떠한지 살펴볼 따름이다. 성인의 가슴 속에는 저절로 대처함을 갖고 있는 것이지, 정해진 근본을 붙잡고서 의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諸家皆言不爲東周 集註却言興周道於東方 何也 曰 這是古註如此說 其字乎字 只是閑字 只是有用我 便也要做些小事 何處是有不爲東周底意 這處與二十年之後吳其爲沼乎 辭語一般 亦何必要如此翻轉 文字須寬看仔細玩味 方見得聖人語言
諸家들은 모두 말하길, 동주를 만들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집주에서는 오히려 주나라의 도를 동방에서 부흥시킨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옛날 주석이 이와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吾其爲東周乎’에서 ‘其’자와 ‘乎’자는 단지 한가한 글자에 불과하다. 그저 나를 기용함이 있다면, 곧 몇몇 작은 일을 하고자 한다는 것이니, 어느 곳에 동주를 만들지 않겠다는 뜻이 있단 말인가? 이 부분은 ‘20년 후의 오나라는 물웅덩이가 될 것이다’라는 말과 표현이 똑같은데, 또한 어찌 반드시 이렇게 번역해야만 하는가? 문자는 모름지기 널리 보고 자세히 음미해야만 바야흐로 성인의 말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問不擾果能用夫子 夫子果往從之 亦不過勸得他改過自新 舍逆從順而已 亦如何便興得周道 曰 聖人自不可測 改過不過臣順季氏而已 此只是常法 聖人須別有措置
누구가 묻기를, “공산불요가 과연 공자를 기용할 수 있었고, 공자도 과감히 가서 그를 따랐다고 할지라도, 이 역시 그에게 개과천선하여 자신을 새롭게 하고, 거스르는 것을 버리고 순조로운 것을 따르도록 권하는 것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또한 어떻게 하여 곧바로 주나라의 도를 부흥시킬 수 있단 말인가요?”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은 스스로 헤아릴 수가 없는 분이다. 공산불요가 개과천선하는 것은 그저 신하로서 계씨에게 순종하는 것에 불과하고, 이것은 그저 일상적인 법이니, 성인이라면 모름지기 달리 조치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蘇氏曰 孔子之不助畔人 天下之所知也 畔而召孔子 其志必不在於惡矣 故孔子因其有善心而收之 使不自絶而已 弗擾之不能爲東周 亦明矣 然而用孔子 則有可以爲東周之道 故子欲往者 以其有是道也 卒不往者 知其必不能也
소씨가 말하길, “공자가 반역자를 돕지 않는다는 것은 천하가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런데 반란을 일으키고도 공자를 불렀다는 것은 그 뜻이 반드시 惡에 있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에게 선한 마음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거두어서 스스로 끊어버리지 않도록 하였을 따름이다. 공산불요가 동주를 만들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를 기용한다면, 동주로 만들 수 있는 道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가고자 한 것은 그에게 이러한 도가 있었기 때문이고, 끝내는 가지 않은 것은 그가 틀림없이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魯在周之東 故云爾 蓋聖人無小成苟就之事 如獲用焉不興周道以繼文武不已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노나라는 주나라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체로 성인에게는 작게 이루거나 구차하게 나아가는 일이 없다. 만약 기용된다면, 어찌 주나라의 도를 부흥시켜서 문왕과 무왕을 계승하기를 그치지 않도록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當時子路更欠一問如何可爲東周 夫子必告以爲之之道 如問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夫子便告以正名 今聖人不曾說出 難爲臆度
쌍봉요씨가 말하길, “당시 자로는 또 어찌하면 동주를 만들 수 있는지 질문 하나를 빠뜨렸다. 공자께서는 반드시 동주를 만드는 道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마치 ‘위령공이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하고자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곧바로 명분을 바르게 하겠다고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지금은 성인께서 일찍이 말씀을 하시지 않았으니, 그 생각을 헤아리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門人豈有不說於夫子者 而子路不說者二 豈知夫子之於南子 其辭不見者 義也 不得已而見 亦有可見之禮也 夫子之於公山弗擾其欲往者 仁也 而卒不往者 蓋有知人之知也 聖人一動一靜 莫非適乎時中 而子路未之知也 然非子路之疑 則聖人之心又孰得而知之乎
운봉호씨가 말하길, “문인들이 어찌 공자께 기뻐하지 않는 것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자로는 기뻐하지 않았던 것이 두 번 있었다. 공자께서 남자에 대하여 사양하고 만나 뵙지 않은 것은 의로움이고, 부득이하여 만나본 것 역시 만나 볼만한 예가 있었음을 어찌 알았겠으며, 공자께서 공산불요에 대하여 가고자 했던 것은 仁이요, 그러나 끝내 가지 않았던 것은 대체로 사람을 아는 지혜가 있었던 것임을 어찌 알았겠는가? 성인의 거동 하나하나가 시중에 적합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자로는 그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로의 의문이 아니었다면, 성인의 마음을 또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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