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⑥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⑥ | |
| 1 | 子曰 直哉라 史魚여 邦有道에 如矢하며 邦無道에 如矢로다 君子哉라 蘧伯玉이여 邦有道則仕하고 邦無道則可卷而懷之로다. |
| 2 | 자왈 직재라 사어여 방유도에 여시하며 방무도에 여시로다 군자재라 거백옥이여 방유도즉사하고 방무도즉가권이회지로다.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직하구나,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구나. 군자답구나,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자신의 포부를 거두어 감추는구나.”라고 하셨다. |
| 4 | The Master said, “Truly straightforward was the historiographer Yü. When good government prevailed in his state, he was like an arrow. When bad government prevailed, he was like an arrow. A superior man indeed is Chü Po-yü! When good government prevails in his state, he is to be found in office. When bad government prevails, he can roll his principles up, and keep them in his breast.”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⑥ |
| 子曰 直哉史魚 邦有道 如矢 邦無道 如矢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정직하구나,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으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도 화살처럼 곧구나. 史 官名 魚 衛大夫 名鰌 如矢 言直也 史魚自以不能進賢退不肖 旣死猶以尸諫 故夫子稱其直 事見家語 史는 관직 명칭이다. 어는 위나라 대부인데, 이름은 추다. 화살 같다는 것은 곧다는 말이다. 사어는 스스로 어진 이를 들이고 불초한 이를 물러나게 할 수 없자, 이미 죽어서도 오히려 시체로써 간언을 하였으니, 그렇기 때문에 공부자께서 그를 곧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이 일은 공자가어에 보인다. 新安陳氏曰 擧此一事 可見其餘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 일 하나만 거론해도, 그 나머지를 알 수 있다.”라고 하였다. 家語困誓篇 衛蘧伯玉賢而靈公不用 彌子瑕不肖反任之 史魚驟諫而不從 病將卒 命其子曰 吾在衛朝不能進蘧伯玉退彌子瑕 是吾生不能正君 死無以成禮 我死 汝置屍牖下 於我畢矣 其子從之 靈公弔焉 怪而問焉 其子以父言告公 公愕然失容曰 是寡人之過也 於是命之殯於客位 進蘧伯玉而用之 退彌子瑕而遠之 孔子聞之曰 古之諫者 死則已矣 未有若史魚死而尸諫忠感其君者也 可不謂直乎 공자가어 곤서 편에 이르길, 위나라 거백옥이 현명하였지만 위령공은 쓰지 않았고, 미자하는 불초했지만 도리어 기용했다고 한다. 사어는 여러 번 간언하였지만 듣지 않았다. 병이 나서 장차 죽게 되자, 그 아들에게 명하여 말하길, “나는 위나라 조정에 있으면서, 거백옥을 들이지 못하였고 미자하를 물러나게 하지도 못하였으니, 이는 내가 살아서는 임금을 바르게 하지 못하였고, 죽어서는 예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내가 죽으면 너는 내 시신을 창문 아래에 두어라. 그러면 나에게 다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아들이 그대로 따랐다. 위령공이 조문을 왔다가 괴이하게 여기면서 그러한 연유를 물었다. 그 아들이 아버지의 말로써 위령공에게 고하였다. 공은 놀라면서 얼굴빛이 변하여 말하길, “이는 과인의 잘못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아들에게 명하여 시신을 객의 자리에 염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거백옥을 들여서 기용하였고 미자하를 물러나게 하고는 멀리하였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서 말하길, “옛날에 간하던 사람은 죽으면 그만두었다. 사어처럼 죽어서도 시간을 하여 자기 임금을 충성으로 감동시킨 사람은 일찍이 있지 않았다. 곧다고 일컫지 않아서야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君子哉 蘧伯玉 邦有道 則仕 邦無道 則可卷而懷之 군자답구나,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자신의 포부를 거두어 감추는구나.”라고 하셨다. 伯玉出處 合於聖人之道 故曰君子 卷 收也 懷 藏也 如於孫林父甯殖放弑之謀 不對而出 亦其事也 거백옥은 나아가고 물러남이 성인의 도에 부합하였기에 군자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卷은 거둔다는 말이고, 懷는 숨긴다는 말이다. 마치 손림보와 영식이 임금을 추방하고 시해하는 것을 모의한 것에 호응하지 않고서 다른 나라로 나가버린 것과 같은데, 이 역시 그러한 일이다. 左傳襄公十四年 衛獻公戒孫文子甯惠子食 皆服而朝 日旰不召而射鴻於囿 二子從之 不釋皮冠而與之言(皮冠 田獵之冠也) 二子怒 孫文子如戚 孫蒯入使 公飮之酒 使太師歌巧言之卒章 蒯懼告文子 文子曰 君忌我矣 弗先必死 並孥於戚而入見蘧伯玉曰 君之暴虐 子所知也 大懼社稷之傾覆 將若之何 對曰 君制其國 臣敢奸之 雖奸之 庸知愈乎 遂行從近關出 公使子蟜子伯子皮與孫子盟于丘宮 孫子皆殺之 四月公出奔齊 衛人立公孫剽 孫林父甯殖相之 二十年甯惠子卒 二十六年衛獻公求復謂甯喜曰 苟反政由甯氏祭則寡人 甯喜告蘧伯玉 伯玉曰 瑗不得聞君之出 敢聞其入 遂行 五月甯喜攻孫氏克之殺子叔(衛侯剽也 言子叔 剽無諡 故書曰 甯喜殺其君剽 言罪之在甯氏也 孫林父以戚如晉 書曰 入于戚以叛 罪孫氏也) 甲午衛侯衎復歸于衛 춘추좌전에 이르길, 노나라 양공 14년에 위헌공이 손문자와 영혜자와 함께 밥을 먹기 위해 불렀다고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조복을 입고 조회하였으나, 위헌공은 해가 저물도록 부르지 않고서 사냥터에서 기러기를 사냥하였다. 두 사람이 위헌공을 따라 갔더니 사냥용 모자를 벗지 않은 채 그들과 더불어 말을 하였다(피관이란 사냥용 모자다). 두 사람은 노하였고, 손문자는 척 땅으로 갔다. 아들 손괴를 위헌공에게 들여보냈더니, 위헌공이 그에게 술을 주어 마시게 하였다. 그리고는 태사를 시켜 교언의 마지막 장을 노래하게 하였다. 손괴는 두려워하며 이를 손문자에게 고하였다. 손문자는 말하길, “임금이 나를 꺼리는구나!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죽겠구나!”라고 하고선, 척 땅에 처자식을 옮겨두고 도성에 들어가 거백옥은 만나 말하였다. “임금이 흉포하고 백성을 학대하는 것은 당신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사직이 넘어져 엎어질까 매우 두렵습니다. 그러나 장차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거백옥이 대답하여 말하길, “임금이 자기 나라를 통제하는데, 신하가 감히 임금을 범할 수 없습니다. 비록 범하여 바꾼다 한들 더 낫다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가까운 관문을 통해 출국하였다. 위헌공은 자교, 자백, 자피로 하여금 손문자와 더불어 구궁에서 회맹하도록 하였지만, 손문자는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4월에 위헌공은 출국하여 제나라로 도망쳤다. 위나라 사람들은 공손표를 위나라 임금, 즉 위상공으로 세웠고, 손림보와 영식은 재상이 되어 도왔다. 노양공 20년에 영혜자가 죽었다. 26년에 위헌공은 복위를 구하면서 영희에게 말하길, “만약 돌아간다면, 정사는 영씨가 맡아서 하고, 제사만 과인이 하겠다.”고 하였다. 영희는 이 말을 거백옥에게 고하자, 거백옥이 말하길, “저 瑗은 임금께서 나가신 일도 듣지 못했는데, 어찌 감히 들어오는 일을 듣겠습니까?”라고 하고선, 마침내 위나라를 떠났다. 오월에 영희는 손씨를 공격하여 이겼고, 자숙을 죽였다(자숙은 위나라 제후 공손표다. 자숙이라고 말한 것은 공손표에게 시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희가 그 임금 剽를 죽였다고 적어서, 죄가 영씨에게 있음을 말한 것이다. 손림보는 척 땅에서 진나라로 갔는데, 척땅에 들어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기록함으로써, 손씨의 죄를 물었던 것이다). 오월 갑오일에 위나라 제후 간, 즉 위헌공이 위나라에 다시 돌아왔다. ○ 楊氏曰 史魚之直 未盡君子之道 若蘧伯玉 然後可免於亂世 若史魚之如矢 則雖欲卷而懷之 有不可得也 양씨가 말하였다. “사어의 올곧음은 군자의 도라고 하기에는 미진하다. 거백옥처럼 그렇게 한 후에서야 비로소 난세에 죽음을 면할 수 있다. 만약 사어의 화살 같이 올곧음이라면, 곧 비록 그것을 거두어 감추고자 한들 하지 못하는 게 있다.” 朱子曰 直固好 然一向直便是偏 豈得如伯玉之君子 주자가 말하길, “곧은 것은 본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줄곧 곧기만 하다면 그것은 바로 치우친 것이다. 어찌 거백옥의 군자다움과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史魚只可謂之直 能伸而不能屈 未盡君子之道 若伯玉 則能因時屈伸 故謂之君子 남헌장씨가 말하길, “사어는 단지 곧다고만 말할 수 있다. 능히 펼 수는 있지만 굽힐 수가 없으니, 군자의 도에 미진한 것이다. 만약 거백옥이라면 때에 따라서 능히 굽히고 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를 일컬어 군자답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直者德之一端 君子者成德之名 호씨가 말하길, “곧은 것은 덕의 한 단서요, 군자라는 것은 덕을 이룬 사람의 명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史魚之直不以有道無道而變 治世雖可行 亂世欲卷而不可得矣 伯玉有道則仕無道券懷 近於夫子之用則行舍則藏 集註以爲出處合於聖人之道 蓋謂此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사어의 올곧음은 도가 있느냐 없느냐로 변하지 않았으니, 치세에는 비록 행할 수 있었지만, 난세에는 거두어들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거백옥은 도가 있으면 벼슬을 하고, 도가 없으면 거두어들여 감추었는데, 이는 공자의 ‘기용하면 도를 행하고 버려지면 감추는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집주는 거백옥이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성인의 도에 부합하였다고 생각하였는데, 대체로 이것을 말한 것 같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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