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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⑧

by 권석낙 2026. 6. 16.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⑧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⑧
1子曰 志士仁人은 無求生以害仁이오 有殺身以成仁이니라.
2자왈 지사인인은 무구생이해인이오 유살신이성인이니라. 
3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조를 지킨 선비와 덕행을 완성한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기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루는 일은 있다.”라고 하셨다.
4The Master said, “The determined scholar and the man of virtue will not seek to live at the expense of injuring their virtue. They will even sacrifice their lives to preserve their virtue complete.”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⑧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조를 지킨 선비와 덕행을 완성한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仁)을 해치는 일은 없고, 자기 몸을 죽여서 인(仁)을 이루는 일은 있다.”라고 하셨다.

志士 有志之士 仁人 則成德之人也 理當死而求生 則於其心有不安矣 是害其心之德也 當死而死 則心安而德全矣
지사란 뜻을 갖고 있는 선비다. 어진 사람은 곧 덕을 이룬 사람이다. 이치상 죽어야 마땅함에도 삶을 구하면 곧 그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이것이 그 마음의 덕을 해치는 것이다.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죽으면, 곧 마음이 편안해지고 덕은 온전해지는 것이다.

朱子曰 志士仁人所以不求生以害仁 乃其心中自有打不過處 不忍就彼以害此 所以成仁者 但以遂其良心之所安而已
주자가 말하길, “志士와 仁人이 삶을 구함으로써 仁을 해치지 않는 까닭은 바로 그 마음속에 저절로 통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차마 저것에 나아감으로써 이것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仁을 이루는 사람은 그저 그 양심이 편안해하는 바를 이루는 것으로써 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仁只是吾心之正理 求生害仁 雖以無道得生 却是抉破吾心中之全理 殺身成仁時 吾身雖死 却得此理完全也
仁은 그저 내 마음의 올바른 이치일 뿐이다.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친다면, 비록 無道함으로 삶을 얻었을지라도, 도리어 이는 내 마음속의 온전한 이치를 결딴내는 짓이다. 살신성인을 할 때, 내 몸은 비록 죽을지라도, 도리어 이 이치의 완전함을 얻는 것이다.

求生如何便害仁 殺身如何便成仁 只是爭箇安與不安而已
삶을 구하면 어떻게 곧 仁을 해치고, 제 몸을 죽이면 어째서 바로 仁을 이루는 것인지는 그저 편안해하고 편안해하지 않음을 다툴 뿐인 것이다.

問死生是大關節 要之工夫却不全在那一節上 學者須是於日用之間 不問事之大小 皆欲卽於義理之安 然後臨死生之際 庶幾不差 若平常應事義理合如此處 都放過 到臨大節 未有不可奪也 曰然
누군가 묻기를, “죽고 사는 것은 큰 관건이 되는 마디이지만, 요컨대 공부는 도리어 저 한 마디 위에 완전히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는 자는 반드시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에, 일의 크고 작음을 불문하고, 모두 의리에 비추어 편안한 곳에 나아가고자 한 연후에서야 죽고 사는 것에 임할 즈음에도 거의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 만약 평소에 일을 응대함에 있어 의리에 합당함이 이와 같은 곳을 전부 버려두고 지나간다면, 큰 마디에 임하는 지경에 이르러서, 절개를 빼앗을 수 없는 경우란 일찍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當死而死 於理爲是 於心始安 故謂之成仁 然必曰志士仁人者 有志之士 慷慨就死 成德之人 從容就死也
호씨가 말하길, “죽어야 마땅해서 죽으면, 이치에 있어서 옳은 것이고, 마음에도 비로소 편안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仁을 완성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志士와 仁人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뜻을 가진 선비는 강개하여 죽음에 나아가고, 덕을 이룬 사람은 조용히 죽음에 나아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鄭氏舜擧曰 志士不以死生爲懼 仁人則明死生之理 唯曰不懼 或未免於徒死 故以志士仁人兼言之
정순거가 말하길, “志士는 죽고 사는 것을 두려움으로 삼지 않고, 仁人은 죽고 사는 이치에 밝은 것이다. 오직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혹시라도 헛되이 죽는 것을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志士와 仁人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仁人與仁爲一 仁爲我有矣 志士與仁猶二 但有志於爲仁 仁人者 自然無求生害仁 有殺身成仁 志士亦能勉而爲之 比干是仁人 豫讓張巡是志士
쌍봉요씨가 말하길, “어진 사람은 仁과 더불어 하나이니, 仁은 내가 갖고 있는 것이다. 뜻 있는 선비는 仁과 더불어 여전히 둘이지만, 仁을 행하는 데에 뜻을 두고 있는 것이다. 어진 사람이란 자연스럽게 삶을 구하여 仁을 해침이 없고 제 몸을 죽여 仁을 이룸이 있는 것이다. 뜻 있는 선비 또한 능히 힘써서 그것을 행할 수 있다. 비간은 어진 사람이고, 예양이나 장순은 뜻 있는 선비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志士志於仁而勉行 不及仁人之安行 然不以生死動心而虧此仁則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지사는 仁에 뜻을 두고서 행하기를 힘쓰지만, 仁人이 행하기를 편안해함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죽고 사는 것으로 마음이 동요되어 이 仁을 해치지 않음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實理得之於心自別 實理者 實見得是 實見得非也 古人有捐軀隕命者 若不實見得 惡能如此 須是實見得生不重於義 生不安於死也 故有殺身以成仁者 只是成就一箇是而已
정자가 말하길, “實理는 마음에서 그것을 터득하여 스스로를 분별하는 것이다. 實理는 실제로 옳은 것을 알아보고 실제로 그른 것을 알아보는 것이다. 옛사람 중에 제 몸을 내놓고 목숨을 버린 사람이 있는데, 만약 실제로 알아볼 수 없었다면, 어떻게 이와 같이 할 수 있겠는가? 반드시 삶이 의로움보다 중하지 않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편안하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제 몸을 죽여 仁을 이룬 사람이 있었으니, 이는 그저 하나의 옳은 것만 성취하는 것일 따름이었다.”라고 하였다.

或問有殺身以成仁 無求生以害仁 竊謂苟所利者大 一身何足惜也 程子曰 但看生與仁孰重 夫子曰 朝聞道夕死可矣 人莫重於生 至於捨得死 道須大段 好如生也 曰 旣死矣 敢問好處如何 曰 聖人只睹一箇是
혹자가 묻기를, “제 몸을 죽여 仁을 이룸이 있고, 삶을 구하여 仁을 해침이 없다고 하였는데, 저는 ‘만약 이롭게 생각하는 것이 크다면, 나의 一身이야 어찌 족히 아까워하겠습니까?’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였다. 정자가 말하길, “그저 삶과 仁 중에서 어떤 것이 중한지만 보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하셨다. 사람에게 목숨보다 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를 버려서 죽을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 道는 모름지기 대단하여 마치 목숨과도 같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미 죽어버렸는데, 좋은 부분이 과연 무엇인지 감히 묻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성인께서는 그저 하나의 옳은 것만 보셨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曾見人解殺身成仁 言殺身者所以全性命之理 人當殺身時 何暇更思量我是全性命之理 只爲死便是 生便不是 不過就一箇是 故伊川說 生不安於死 至於全其性命之理 乃是傍人看他說的話 非是其人殺身時 有此意也 或謂殺身者只是要成這仁 曰 若說要成這仁 却不是 只是行所當行而已
주자가 말하길, “일찍이 사람들이 살신성인을 풀이하면서, 제 몸을 죽이는 것은 性命(천성과 천명)의 이치를 온전히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제 몸을 죽일 때에 당하여, 어느 겨를에 내가 성명의 이치를 온전히 하는지 또 다시 생각하고 헤아리겠는가? 그저 죽는 것이 곧 옳고 사는 것이 곧 옳지 않기 때문이니, 하나의 옳은 것에 나아감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이천이 말하길,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편안하지 못하다고 했던 것이다. 자기 性命의 이치를 온전히 함에 이른다는 것은 도리어 곁에 있는 사람이 그를 보고서 한 말이지, 그 사람이 제 몸을 죽일 때 이러한 뜻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혹자가 말하길, “제 몸을 죽이는 것이 그저 이 仁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만약 이 仁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옳지 않다. 단지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를 행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或問此章 曰 仁者心之德而萬理具焉 一有不合於理 則心不能安而害於德矣 順此理而不違 則身雖可殺 而此心之全此理之正 浩然充塞天地之間 夫孰得而亡之哉 曰 其謂殺身成仁 而不曰義 何也 曰 仁義體一而用殊 故君子之於事有以仁決者 有以義決者 以仁決者 此章之言 是也 以義決者 孟子謂欲有甚於生惡有甚於死 是也 蓋仁人不以所惡傷所好之體 義士不以所賤易所貴之宜
누군가 이 장에 대하여 물었다. 말하길, “仁이라는 것은 마음의 덕으로서 온갖 이치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에, 일단 하나라도 이치에 부합하지 않음이 있게 되면, 마음은 편안하지 못하고 덕을 해치게 되는 것이다. 이 이치에 순응하여 어긋남이 없다면, 몸은 비록 죽일 수 있지만, 이 마음의 온전함과 이 이치의 올바름은 곧 호호탕탕하게 천지간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니, 무릇 누가 그것을 없앨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것을 일컬어 제 몸을 죽여 仁을 이룬다고 말할 뿐, 義를 이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仁과 義는 그 體가 하나지만 그 작용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군자가 일에 있어서 仁으로써 결단하는 것이 있고, 義로써 결단하는 것이 있다. 仁으로써 결단하는 것은 이 장에서 말한 것이 바로 그것이고, 義로써 결단하는 것은 맹자가 말한 ‘하고 싶은 것 중에 사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 중에 죽는 것보다 더한 것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대체로 어진 사람은 미워하는 바로써 좋아하는 바의 본체를 상하게 하지 않고, 의로운 선비는 천하게 여기는 바로써 귀하게 여기는 바의 합당함을 바꾸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人莫不重於其生也 君子亦何以異於人哉 然以害仁則不敢以求生 以成仁則殺身而不避 蓋其死有重於生故也 夫仁者人之所以生者也 苟虧其所以生者 則其生也亦何爲哉 曾子所以得正而斃者 正此義也 志士志於仁者 與仁人淺深 雖有間 然是則同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사람 중에 그 목숨을 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군자도 역시 남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仁을 해쳐서라면 감히 삶을 구하지 못하는 것이고, 仁을 이루는 것이라면 제 몸을 죽인다 해도 피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그 죽음에는 삶보다 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무릇 仁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유다. 만약 그 살아가는 이유를 해친다면, 그렇게 살아서 또 무엇을 하겠는가? 증자가 올바름을 얻고 죽었다는 것도 바로 이 뜻이다. 志士는 仁에 뜻을 둔 사람으로서 仁人과 더불어 깊고 얕음이 비록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옳은 것은 똑같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志士於此二者勉之者也 仁人於此二者安之者也 心與理一 理當死而以生 則咈於天理忍於吾心 而傷害於吾仁矣 心之德卽所謂仁也 理當死而死 則吾之心順適而無傷 吾之仁亦全而無闕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志士는 이 두 가지 것(仁義)에 대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고, 仁人은 이 두 가지 것에 대하여 편안해하는 사람이다. 마음과 이치는 하나여서, 이치상 당연히 죽어야 하는데도 살고자 한다면 곧 天理에 거스르고 내 마음에 차마 행하여 내 仁을 해치는 것이다. 마음의 덕은 곧 이른바 仁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치상 당연히 죽어야 해서 죽는다면, 내 마음은 이치에 순응하고 적절하여 손상되는 바가 없고, 나의 仁도 역시 온전하여 모자람(闕)이 없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潛室陳氏曰 謂之成仁則必如是而後 天理人倫無虧欠處 生順死安無可悔慽 當此境界 但見義理而不見己身 更管甚名譽耶
잠실진씨가 말하길, “그것을 일컬어 仁을 이룬다고 말한다면, 반드시 이렇게 한 연후에 天理와 人倫은 이지러지고 부족한 곳이 없게 될 것이고, 살아서는 이치에 순응하고 죽어서는 마음이 편안하니, 후회하고 근심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경계에 당하면, 그저 합당한 이치만 볼 뿐 자기 몸은 돌아보지 않는 것인데, 다시 무슨 명예를 상관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汪氏曰 程子是因夫子之言更推出實見二字 謂必先能眞實見得 死便定是不死便定不是 方肯甘心就死以成就這箇是 若不曾眞實見得定合如此 則必不肯甘心就死矣 此又推聖人所以言此之意以曉人也
왕씨가 말하길, “정자는 공자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實見이라는 두 글자를 미루어 내놓았는데, 반드시 먼저 죽어야만 반드시 옳은 것이고 죽지 않으면 반드시 옳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진실로 알아볼 수 있어야만, 비로소 달가운 마음으로 죽음에 나아감으로써 이 옳음을 성취하고자 한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일찍이 반드시 이와 같이 부합한다는 것을 진실로 알아보지 못한다면, 반드시 달가운 마음으로 죽음에 나아가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또한 성인이 이렇게 말한 뜻을 미루어 사람들을 깨우쳐 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志士仁人能得實理於心 方能實見 實見得是與非 方能殺身成仁以成就箇是而不求生害仁以成就箇非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志士와 어진 사람은 마음에서 실질적 이치를 터득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실제로 알아볼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실제로 알아보아야만 비로소 살신성인함으로써 옳음을 이루어낼 수 있으며, 삶을 구하여 仁을 해침으로써 그름을 이뤄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殺身成仁與舍生取義 何別 曰 仁義一理耳 仁以心之全德言 義以身之大節言 成仁包得取義 取義卽所以成仁 孔子就本心安適處言 故曰成仁 孟子就切身斷制處言 故曰取義 其爲成就一箇是 則一而已 所以程子於此謂實見得生不重於義 可見仁與義一理也
누군가 殺身成仁과 舍生取義를 어떻게 구별하는지 물었다. 말하길, “仁과 義는 하나의 이치일 따름이다. 仁은 마음의 온전한 덕으로 말한 것이고, 義는 몸의 큰 절개로 말한 것이다. 仁을 이루는 것은 義를 취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이니, 義를 취하는 것이 바로 仁을 이루는 방법이다. 공자께서는 본심이 편안하고 적합한 곳으로 나아가 말씀하신 것이기 때문에, 仁을 이룬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맹자는 내 몸에 절실한 것을 결단하고 통제하는 곳으로 나아가 말하였기 때문에 義를 취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옳음을 성취하는 것이 됨에 있어서는 똑같을 따름이다. 그래서 정자는 여기에서 삶이 義보다 중하지 않다는 것을 실제로 알아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니, 이로써 仁과 義가 하나의 이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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