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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⑧

by 권석낙 2026. 6. 14.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⑧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4 - 헌문(憲問) - ⑧
1子曰 愛之란 能勿勞乎아 忠焉이란 能勿誨乎아.
2자왈 애지란 능물로호아 충언이란 능물회호아.
3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4子曰く、之を愛しては、能く労すること勿からんや。焉に忠ならば、能く誨うること勿からんや。
5The Master said, “Can there be love which does not lead to strictness with its object? Can there be loyalty which does not lead to the instruction of its object?”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⑧
子曰 愛之 能勿勞乎 忠焉 能勿誨乎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랑한다면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충성한다면 깨우쳐 주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다.

蘇氏曰 愛而勿勞 禽犢之愛也 忠而勿誨 婦寺之忠也 愛而知勞之 則其爲愛也深矣 忠而知誨之 則其爲忠也大矣
소씨가 말하길, “사랑하면서도 그를 수고롭게 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금이나 소의 사랑이다. 충성을 하면서도 그를 일깨워주지 아니하면, 그것은 아녀자나 시종의 충성이다. 사랑하면서 그를 수고롭게 할 줄 알면, 그 사랑함이 깊은 것이고, 충성을 하면서도 그를 일깨워줄 줄 알면 곧 그 충성함이 큰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漢楊彪傳 彪子脩爲操所殺 操見彪問曰 公何瘦之甚 對曰 愧無日磾先見之明 猶懷老牛舐犢之愛 操爲之改容
동한의 양표전에 따르면, 양표의 아들 양수가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조조가 양표를 보고서 물어 말하길, “공은 어째서 수척하기가 이렇게 심하오?”라고 하였다. 양표가 대답하여 말하길, “김일제의 선견지명은 없고 도리어 늙은 소가 새끼를 핥아주는 사랑만 품고 있음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조조는 그를 위하여 얼굴빛을 바꾸었다.

詩大雅瞻仰篇 匪敎匪誨 時惟婦寺(刺幽王嬖褒姒任奄人以致亂之詩 寺 奄人也)
시경 대아 첨앙편에, “가르침이 아니고 깨우쳐줌이 아닌 것은 오직 아녀자와 내시(시종)일 따름이다(유왕이 포사를 총애하고 내시에게 국정을 맡겨 혼란을 초래한 것을 풍자한 시다. 寺는 내시란 말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愛焉而自不能不勞 以天理人情之至 莫之爲而爲者也 觀慈父之於子 忠臣之於君 則可見矣 蘇氏發兩知字 尤有意味 蓋人之私情 往往不知勞之爲愛 誨之爲忠 故又言以明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그를 사랑하면 저절로 수고롭지 않게 할 수 없는 것은 천리와 인정의 지극함 때문이니, 어떤 것도 위하는 것이 아니지만 행하는 것이다. 자애로운 아비가 자식을 대하는 것과 충신이 임금께 대하는 것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소씨가 ‘知’자 두 개를 드러낸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대개 사람들은 사사로운 정으로 인해 종종 수고롭게 하는 것이 사랑이 되고 깨우쳐주는 것이 충성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말함으로써 그것을 밝혀준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人之常情 勞之之事難從 而勞於前者逸放後 豈非愛之深者乎 誨之之語難受 而長其善以救其失 豈非忠之大者乎
후재풍씨가 말하길, “인지상정으로 보면, 그를 수고롭게 하는 일은 행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앞을 수고롭게 하는 것은 뒤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 어찌 사랑이 깊은 것이 아니겠는가? 깨우쳐주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 선함을 조장함으로써 그 잘못을 구제하는 것이니, 어찌 충성이 큰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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