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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⑥

by 권석낙 2026. 6. 14.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⑥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4 - 헌문(憲問) - ⑥
1南宮适이 問於孔子曰 羿는 善射하고 奡는 盪舟호대 俱不得其死어늘 然禹稷은 躬稼而有天下하시니이다 夫子 不答이러시니 南宮适이 出커늘 子曰 君子哉라 若人이여 尙德哉라 若人이여.
2남궁괄이 문어공자왈 예는 선사하고 오는 탕주호대 구불득기사어늘 연우직은 궁가이유천하하시니이다 부자 불답이러시니 남궁괄이 출커늘 자왈 군자재라 약인이여 상덕재라 약인이여.
3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어 가로되,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땅에서 끌 정도로 힘이 세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였습니다. 우임금과 후직은 몸소 농사일을 하였지만 천하를 차지하였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께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답구나, 이 사람이여!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라고 하셨다. 
4南宮适、孔子に問いて曰く、羿は射を善くし、奡は舟を盪かす。倶に其の死の然るを得ず。禹・稷は躬ら稼して天下を有つと。夫子答えず。南宮适出づ。子曰く、君子なるかな若き人、徳を尚ぶかな若き人。
5Nan-kung Kwo, submitting an inquiry to Confucius, said, “Î was skillful at archery, and Âo could move a boat along upon the land, but neither of them died a natural death. Yü and Chî personally wrought at the toils of husbandry, and they became possessors of the kingdom.” The Master made no reply; but when Nan-kung Kwo went out, he said, “A superior man indeed is this! An esteemer of virtue indeed is this!”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⑥
南宮适問於孔子曰 羿善射 奡盪舟 俱不得其死 然 禹稷躬稼 而有天下 夫子不答 南宮适出 子曰 君子哉若人 尙德哉若人
남궁괄이 공자에게 물어 가로되, “예(羿)는 활을 잘 쏘았고, 오(奡)는 배를 땅에서 끌 정도로 힘이 세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제 명에 죽지 못하였습니다. 우임금과 후직은 몸소 농사일을 하였지만 천하를 차지하였습니다.”라고 하자, 

공자께서는 대답하지 아니하셨다. 남궁괄이 나가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답구나, 이 사람이여! 덕을 숭상하는구나, 이 사람이여!”라고 하셨다.



适, 古活反. 羿, 音詣. 奡, 五報反. 盪, 土浪反.

○ 南宮适 卽南容也 羿 有窮之君 善射 滅夏后相而簒其位 其臣寒浞又殺羿而代之 奡 春秋傳作澆 浞之子也 力能陸地行舟 後爲夏后少康所誅 禹平水土曁稷播種 身親稼穡之事 禹受舜禪而有天下 稷之後至周武王亦有天下 适之意 蓋以羿奡比當世之有權力者 而以禹稷比孔子也 故孔子不答 然适之言如此 可謂君子之人而有尙德之心矣 不可以不與 故俟其出而贊美之
남궁괄은 곧 남용이다. 예는 유궁국의 임금인데, 활을 잘 쏘았다. 하나라 임금 상을 멸하고 그 자리를 찬탈하였다. 그이 신하인 한착이 다시 예를 죽이고 그를 대신하였다. 오는 춘추전에 요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한착의 아들이다. 힘이 세어 능히 육지에서 배를 끌 수 있었고, 나중에 하나라 임금 소강에게 주살 당하였다. 우임금은 물과 땅을 잘 다스렸고, 직과 함께 씨앗을 뿌리는 등 친히 몸으로 뿌리고 거두는 농사일을 하였다. 우임금은 순임금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천하를 차지하게 되었고, 직의 후손은 주 무왕에 이르러 역시 천하를 가지게 되었다. 남궁괄의 뜻은 아마도 예와 오를 당시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에 비견하고, 우와 직을 공자님께 비견한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공자님이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나 남궁괄의 말이 이와 같아서, 군자다운 사람이면서도 또한 덕을 숭상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일컬을 만하였으므로, 그를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칭찬하셨던 것이다.

左傳襄公四年 魏絳曰 昔有夏之方衰也 后羿自鉏遷于窮石 因夏民以代夏政 恃其射也 不修民事而淫宇原獸 用寒浞以爲相 浞行媚于內(宮人) 而施賂于外 愚弄其民而虞羿于田(虞樂也) 樹之詐慝以取其國家 羿歸自田 家衆殺而烹之 靡奔有鬲氏(靡夏之臣) 浞因羿室生澆及豷(音戲) 恃其讒慝詐僞 而不德于民 使澆用師滅斟灌及斟尋氏(二國夏同姓諸侯) 靡自有鬲氏 收二國之燼(遺民) 以滅浞而立少康 少康滅澆 后杼滅豷(后杼少康子) 有窮遂亡
좌전에 따르면, 노나라 양공 4년에, 위강이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 하나라가 바야흐로 쇠약해졌을 때가 있었는데, 后羿가 서 땅에서 궁석 땅으로 옮겨왔고, 하나라 백성을 바탕으로 하나라 정권을 대신하였다. 그는 자기 활쏨씨만 믿고서 백성의 일을 닦지 않았고, 들판에 나가 짐승사냥에만 열중하였으며, 한착을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았다. 한착은 안(宮人)으로 아첨을 떨고 밖으로는 뇌물을 썼으며, 그 백성들을 우롱하면서 羿를 사냥터에서 기쁘게 하였다(虞는 기쁘게 한다는 말이다). 거짓과 사특한 계획을 세워서 그 나라와 집안을 취해버렸다. 羿가 사냥에서 돌아오자, 집안의 무리들이 그를 죽여서 삶아버렸다. 靡(靡는 하나라의 신하다)는 유격씨에게로 달아났고, 한착은 羿의 소실을 바탕으로 요와 희를 낳았다. 한착은 참소하는 사특하고 거짓된 말을 믿고서 백성에게 덕을 베풀지 않았고, 요로 하여금 군대를 부려 짐관과 짐심씨(두 나라는 하나라의 동성 제후다)를 멸하도록 시켰다. 靡가 유격씨로부터 돌아와 두 나라의 유민을 거두어 이로써 한착을 멸망시켰고, 소강을 임금으로 세웠다. 소강은 澆를 멸하였고, 后杼(후저는 소강의 아들이다)는 豷를 멸하였는데, 이에 유궁국은 마침내 멸망하였다.

新安陳氏曰 羿奡皆簒賊而殺誅異辭者 羿當誅 然非浞所得誅也 故云殺
신안진씨가 말하길, “예와 오는 모두 임금의 자리를 찬탈한 도적이었지만 殺과 誅로 서로 다른 말을 쓴 것은 예는 주벌함이 마땅하였지만, 한착이 주벌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殺이라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夫子不答南宮适 朱子曰 适雖非問 然其言可取 則亦不應全然不答 疑其實有貶當世而尊夫子之意 夫子不欲承當 故不答爾
누군가 공자께서 남궁괄에게 대답하지 않으신 이유를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남궁괄이 비록 물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말이 취할만하다면, 또한 전혀 대답하지 않아서는 안 되었다. 다만 실제로는 당시 세상을 폄하하고 공자를 높이려는 뜻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서, 공자께서는 이를 이어받아 감당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지 않았을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南軒張氏曰 方是時天下以力相高而不知貴德 南宮适之言謂强力不可恃而德之爲尊也 夫子不答者 以其有禹稷之言 答之則 是己當之也 而以其言之善 則從而美之 使學者知尙德之意也 言禹稷之德而獨稱其躬稼者 擧其見於行事之實也 南宮适亦知言哉
남헌장씨가 말하길, “바야흐로 당시는 천하가 힘으로 서로를 높이면서도 덕을 귀하게 여길 줄 몰랐다. 남궁괄의 말은 강한 힘을 믿을 수 없지만 덕은 높은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은 것은 남궁괄이 우임금과 후직의 말을 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답을 한다면, 이는 자신이 그것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의 말이 좋았기게 그에 따라 찬미하였는데, 이는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덕을 숭상하는 뜻을 알도록 하신 것이다. 우임금과 후직의 덕을 언급하면서, 유독 그들이 몸소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칭송한 것은 행실과 일에 보인 그 실질을 거론한 것이니, 남궁괄 역시 말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适素號能謹言而以此質於夫子 其所以閔世悼俗 尊尙聖人之意 備見於言外 夫子不答 於出而美之 可見聖人處事之密而取善之周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남궁괄은 평소 능히 말을 삼갈 줄 아는 사람으로 호칭되었음에도, 이로써 공자님께 질정을 받았는데, 그가 세상과 풍속을 연민하고 애도하며 성인을 높이고 숭상한 뜻이 말 밖으로 다 드러났다. 공자께서 대답하지 않고서 나간 다음 그를 찬미한 것에서, 성인께서 일을 정밀하게 처리하고 두루 善을 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葉氏少蘊曰 是時田恒之簒齊 六卿之分晉 三家之專魯 孰非欲爲羿與奡者
섭씨 소온이 말하길, “이 당시에 전항이 제나라를 찬탈하였고, 6卿이 진나라를 분할하였으며, 3家가 노나라를 전단하였으니, 누군들 예와 오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此章意味涵深 集註權力二字正指三家而言 三家權力盛而有無君之心 故以羿奡比之 夫子有德而無位 故以禹稷比之 三家無君必至於亡 夫子有德如此 異日造物必有以處之而使之得位 故微其辭以形容之 孔子以其禹稷比己 已難答 又以羿奡比三家 愈難答 所以不答 适是孟懿子之兄 亦是三家之子孫 乃有此等見識 尤所難得 故夫子俟其出而嘆美之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장은 의미가 매우 깊다. 집주에서 權力이란 두 글자는 바로 三家를 가리켜 말한 것인데, 三家는 그 권력이 성대하면서 임금을 무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와 오를 가지고 그에 비견한 것이다. 공자께서는 덕이 있었지만 지위는 없었기 때문에, 우임금과 후직을 가지고 비견한 것이다. 三家는 임금을 무시하였기에 반드시 멸망함에 이를 것이고, 공자께서는 덕이 있음이 이와 같았기에, 다른 날에 조물주가 반드시 그에게 조치하여 지위를 얻도록 함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은미하게 하여 이를 형용한 것이다. 공자께서는 우임금과 후직을 가지고 자기에게 비견한 것에 대해 이미 대답하기 어려웠는데, 다시 예와 오를 가지고 三家에 비견하였으니, 더욱 대답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다. 남궁괄은 맹의자의 형으로서, 역시 三家의 자손이었음에도, 도리어 이러한 식견을 갖고 있었으니, 더욱더 얻기 어려운 바였다. 그래서 공자께서 그가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그를 감탄하고 찬미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君子尙德 小人尙力 适戒羿奡尊禹稷 是尙德不尙力也 故許以君子
신안진씨가 말하길, “군자는 덕을 숭상하고, 소인은 힘을 숭상한다. 남궁괄은 예와 오를 경계하였고, 우임금과 후직을 높였는데, 이는 덕을 숭상하되 힘은 숭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군자로써 인정해주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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