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의 4대 재녀(才女) "탁문군(卓文君)"의 야반도주 사랑 이야기
탁문군(卓文君)
고대 중국의 역사에서는 빼어난 미모뿐만 아니라,
시문학, 서화, 음률(音律) 등을 통하여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재녀(才女: 재주가 있는 여성)들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후대에 높은 평가를 받는 네 사람을
"고대 중국의 4대 재녀(才女)"라고 부릅니다.
바로 시문(詩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정통한
전한(前漢)의 "탁문군(卓文君)",
후한(後漢)의 여성 문학가 "채염(蔡琰: 채문희)",
당(唐)나라의 여류 시인이자 정치가인 "상관완아(上官婉兒)",
북송(北宋)의 여성 문인 "이청조(李淸照)"입니다.
그런데 탁문군(卓文君)은 재녀(才女)로도 유명하지만,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러브스토리로 더 유명한 여성입니다.
탁문군(卓文君)은 전한(前漢) 시대
쓰촨성(四川省) 임공(臨邛)의 거부(巨富)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 탁왕손(卓王孫)은 제철 사업으로 큰돈을 번
엄청난 부자였는데, 호화로운 저택과 드넓은 영지에
집안의 하인만 천여 명이 넘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집안에서 어릴 적부터 다양한 교육을 받은 탁문군은,
미모도 뛰어나면서 시문(詩文)에 능하고 북과 거문고를
잘 연주해 음률(音律)에도 정통한 소녀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16살이 되면서, 부친의 동업자 집안에 시집을 갔는데,
몇 개월도 안 돼 남편이 죽으면서, 탁문군은
17살의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서 열린 연회(宴會)에서,
한대(漢代)의 시문학(詩文學)에서 일인자로 꼽히는
대문장가(大文章家) "사마상여(司馬相如)"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사마상여
BC 179년(?) 쓰촨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태어난
사마상여는, 어릴 적부터 글 읽기를 좋아했으며,
격검(擊劍: 칼 쓰기)도 배우고 익혔습니다.
원래 이름은 "장경(長卿)"이었는데,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재상이자 책략가인 인상여(藺相如)를 존경하여,
자신도 그런 인물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이름을 "상여(相如)"로 고쳤다고 합니다.
한경제(漢景帝) 유계(劉啓)
그리고 공부를 마친 사마상여는 재물을 관(官)에 기부하고
"랑(郞)"에 임명되어 관직에 진출합니다.
재물을 기부하고 관직에 진출한 것은,
뇌물을 주고 벼슬을 사는 것과는 좀 다른 개념으로,
당시에는 공식적으로 재물을 기부하고,
그 기부금의 규모에 따라 벼슬을 내려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관직에 진출한 사마상여는 6대 황제 경제(景帝)를 모시는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으나, 황제를 모시고 마차를 몰고 맹수를 잡는 사냥을 다니는 무기상시 보직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문경지치(文景之治)의 성세를 이룬 경제(景帝)였지만,
시문학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앞으로의 비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후왕으로 경제(景帝)의 동생인 양왕(梁王) 유무(劉武)의 일행을 조정에서 만나게 됩니다.
문경지치(文景之治)로 이루어진 성세(盛世)
그리고 양왕(梁王)과 함께 온 문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의 관직 생활에 불만이 가득했던 사마상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마상여는 병을 핑계로 관직을 내려놓고
곧바로 양왕(梁王)을 찾아갔습니다.
양왕(梁王)은 사마상여를 크게 환영하였으며,
이후 몇 년 간 양왕(梁王)의 우대 속에
사마상여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갈고 닦는데 전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때 한대(漢代) 산문부(散文賦)의 전형으로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 "자허부(子虛賦)"가 탄생합니다.
그러나 BC 144년 양왕(梁王)이 열병에 걸려 급사하면서,
사마상여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고,
빈손으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임공(臨邛)의 갑부 정정(程鄭)과 탁왕손(卓王孫)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관직을 얻느라 집안의 재산은 거덜이 났고,
그동안 모아 놓은 돈도 없었던 사마상여는,
끼니 걱정을 하는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임공(臨邛) 현령(縣令) 왕길(王吉)이 찾아와 챙겨주면서,
사마상여는 임공(臨邛) 성 안의 객관(客館)에 머물게 되는데,
왕길은 매일같이 사마상여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는 등
사마상여의 위상을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가 알려지면서,
임공(臨邛)의 거부인 탁왕손(卓王孫)과
또 한 사람의 부자인 정정(程鄭)이 현령 왕길에게
"귀빈(貴賓)이 오셨다고 하니, 주연을 열어
그분을 초대합시다"라고 제안을 합니다.
사마상여를 맞이하는 탁왕손
이렇게 하여 사마상여를 주빈(主賓)으로 모시는
대규모 연회가 열리는데,
백여 명의 빈객(賓客)과 현령 왕길도 기다리고 있었지만,
사마상여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오지를 않습니다.
그러자 왕길이 직접 사마상여를 모시러 갔으며,
사마상여도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습니다.
이렇게 하여 연회가 시작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현령 왕길이 문장가이자 연주가로 이름이 높은 사마상여에게
거문고 연주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몇 번 사양을 하던 사마상여가
한 쌍의 봉황(鳳凰)이
서로 마음껏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내용을 담은
"봉구황(鳳求凰)"을 지어 부르며
거문고를 연주했습니다.
《봉구황(鳳求凰)》
봉아, 봉아, 고향에 돌아왔구나(鳳兮鳳兮歸故鄕).
너를 찾아 사해에서 헤매었지만(翱遊四海求其凰),
때를 못 만나 뜻을 이루지 못했는데(時未遇兮無所將),
오늘 밤에 이 집에 올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何悟今夕升斯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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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나눠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交情通體心和諧),
밤늦도록 서로 함께 해도 누가 알겠는가(中夜相從知者誰).
두 날개 활짝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雙翼俱起翻高飛),
더는 나를 슬프게 하지 마시오 (無感我思使於悲).
사실 사마상여는 탁왕손에게
재색을 겸비한 딸 탁문군(卓文君)이 있으며,
그녀가 청상과부가 되어 집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봉구황"을 지어 부른 것이었는데,
여기서 봉(鳳)은 사마상여 자신을,
황(凰)은 탁문군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탁문군도 사마상여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으며, 몰래 숨어서 연회장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마상여가 거문고를 치면서
"봉구황"을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재능과 매력에 흠뻑 빠지고 말았으며,
가사(歌詞)를 듣고 바로 숨은 뜻을 알게 되면서,
탁문군도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연회가 끝나면서,
사마상여는 사람을 보내 탁문군의 시종(侍從)에게
후한 선물을 주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게 합니다.
그리고 사마상여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연정(戀情)을 참을 수가 없었던 탁문군은,
곧바로 집을 나와 사마상여에게로 달려갔으며,
그날 밤 두 사람은 사마상여의 고향인 성도(成都)로
야반도주를 합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인 것입니다.
두 사람은 밤새 말을 달려 사마상여 고향집에 도착했는데,
집안에는 아무것도 없이 네 벽만 세워져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매우 빈궁(貧窮) 한 집안"을 비유하는 성어
"가도사벽(家徒四壁)/ 가도벽립(家徒壁立)"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하여 부잣집 딸로 살아왔던 탁문군이
입에 풀칠하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딸의 야반도주 사실을 알고 대노한 탁왕손은
"내 딸이라 죽이지는 않겠지만, 못난 딸에게
돈은 한 푼도 주지 않겠다"라며 도와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탁문군은 사마상여를 떠나지 않았는데,
객지에서 살아갈 방법이 막연했던 탁문군은,
익숙한 곳인 고향 임공(臨邛)으로 돌아가자고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임공(臨邛)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거마(車馬)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작은 술집을 열고,
탁문군은 직접 손님을 접대하며 술을 팔았으며,
사마상여도 설거지까지 하며 술장사를 도우면서,
서로의 사랑을 지켜 나갔습니다.
집 나간 딸이 고향으로 돌아와 술 장사를 한다는 것을
탁왕손도 당연히 알게 되었는데,
창피한 마음에 문밖으로 나오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분한 마음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졌고,
돈을 좀 주어 걱정 없이 살도록 해주라는
주변 사람들의 충고도 계속됩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탁왕손은 많은 돈과 패물,
하인 100명까지 주어 술집을 그만두도록 하였으며,
사마상여와 탁문군은 성도(成都)로 돌아가
전답을 사들여 여유로운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탁왕손이 완전히 마음을 열고
탁문군 부부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고,
딸과 사위의 왕래를 허락하지는 않았습니다.
한대(漢代) 산문부 최고의 작품 "자허부(子虛賦)"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때문인지,
이때부터 사마상여의 관운(官運)도 열립니다.
어느 날 7대 황제 무제(武帝)가 우연히 사마상여가 지은
"자허부(子虛賦)"를 읽고서는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리고 언제, 누가 지은 글인지도 몰랐던 무제(武帝)는
"글 솜씨가 가히 선인의 경지로구나. 짐이 이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지 못하다니 참으로 통탄스럽구나"라고
한탄을 했습니다. 그러자 때마침 곁에 있던,
사마상여를 아는 양득의(楊得意)라는 시종이
사마상여에 대하여 알려주었으며,
무제(武帝)는 사마상여를 장안(長安)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높이 산 무제(武帝)에 의하여
사마상여는 다시 관직에 진출합니다.
이후 사마상여는 무제(武帝)가 좋아하는
화려한 사부(辭賦)와 상소문을 지어 바치면서,
무제(武帝)의 인정을 받고 벼슬도 점점 높아졌으며,
운 좋게도 파촉(巴蜀: 오늘날 쓰촨) 지역의 이민족 문제까지
잘 해결하면서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이후 먹고사는 걱정을 할 일이 없었던 사마상여는
글 쓰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었는데,
사마상여는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하여
문장가로써 그 이름을 크게 떨치며
일세의 대문장가(大文章家)로 우뚝 섰고,
장인 탁왕손도 더 이상 그를 무시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마상여가 관직에 진출하여
윈난(云南), 구이저우(貴州), 후난(湖南) 등으로 옮겨 다니며
탁문군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돈도 권세도 누리게 된 사마상여가
탁문군과 떨어져 살면서 사랑이 식고,
기생집을 드나들며 놀다 보니 첩(妾)을 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되면서 낙담한 탁문군이
"백두음(白頭吟)"이라는 시를 한 편 지어 보냅니다.
"원득일심인(願得一心人: 나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백두불상리(白頭不相離: 백발이 되도록 헤어지지 않고
살고 싶었지만)"이라는 시구(詩句)를 담고 있는 "백두음"은
변심한 남자와 헤어지려고 마음을 정했으나,
쉽게 단념하지 못하고 고뇌하는 마음을 담은
탁문군의 유명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사마상여는 탁문군에게
일곱 자로 한 구를 이루는 칠언시(七言詩)를 보내옵니다.
"일이삼사오육칠 팔구십백천만
(一二三四五六七 八九十百千万)"으로 쓰인 시로,
칠언시이니 14 글자가 되어야 하는데, 13 글자였습니다.
글자의 순서대로 보았을 때 억(億)이 빠져 있었는데,
억(億)이 없다는 것은 무억(無億)으로,
이는 "마음이 없다. 생각이 없다"는
무억(無憶)을 뜻하는 것이라는 것을 탁문군이 알게 됩니다.
그리고 탁문군은 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도 숫자를 넣어 사마상여를 꾸짖고 원망하는
"원랑시(怨郎詩: 또는 숫자시)"를 지어 보내는데,
남편을 원망하는 마음 등을 절절하게 표현하면서,
"다음 생에는, 당신이 여자로 내가 남자로 태어나기를
(巴不得下一世, 你爲女來我做男)"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원랑시(怨郎詩)
탁문군의 편지를 읽은 사마상여는,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자신과 함께해 준 그녀의 지극한 사랑을 잊어버리고
헛된 욕심에 빠진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깊이 반성했으며, 이렇게 글로써 자신을 일깨워준 탁문군의 문재(文才)에도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마상여는 반성의 의미로
"보탁문군서(報卓文君書)"라는 글을 써서 탁문군에게 보내고,
두 번 다시 다른 여자를 맞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두 사람은 사랑을 되찾아 화목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후 BC 117년 사마상여는
62살(추정)의 나이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탁문군은 뇌문(誄文: 생전의 공덕을 칭송한 글)을 써서
그를 추모했으며,
이후 홀로 살다가 생을 마감합니다.
漢樂府詩 白頭吟
이 樂府詩는 너무나도 유명한 漢代 辭賦作家, 司馬相如의
女人 卓文君의 ‘백발이 되도록 살고지고(白頭吟)’란 노래
로 그 구성이 탁월한 比興의 문학입니다.
사마상여는 漢賦에 있어서 독보적인 문학을 완성한 작가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의 작품 子虛賦,上林賦는 고금을 통하여 명작으로 알려져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위대한 역사평론가 司馬遷의 史記列傳 70권
중 司馬相如列傳에 司馬相如와 그의 妻 卓文君의 러브스토
리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古代 宗法 제도하의 남녀의 결혼은 집안과 남성 위주이며,
여성은 애정과도 관계없이 예교와 시부모의 뜻에 따라 좌
우되어 이별과 이혼을 당하는 것이 통상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지만, 그것은 아주 잘 못된 것이라 이
졸인 감히 단언하는 바입니다.
儒敎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여 뿌
리 내렸던 조선시대에 男尊女卑思想을 강조했던 것은 지배
계층의 傲慢과 獨善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
실입니다. 儒敎經典 어디에도 여자에게 복종을 강요하
는 문구는 없습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조선 儒林들
그 스스로가 경전을 왜곡 해석하여 허세를 부려 그들이 그
렇게 신봉했던 유교의 가르침을 스스로 거부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 오랜 옛날 지금으로부터 2100여년 전
漢武帝 시대에 지은 詩歌 이 한 구절만 보더라도 남녀의 차별
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여성 상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표현
되어 우리가 사는 현세에도 볼 수 있는것 아니 겠습니까.
여기에 언급한 바로 이 白頭吟 그 시대의 여성의 위치를 대변
하여 표현 하고있지 않습니가?
탁문군은 이 노래에서 말합니다.
하늘에 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달도 있고 별도 있다.
해만을 고집할 때 달만을 고집할 때 현재만을 선호할 때
괴로움은 비롯된다고 말입니다.
애如山上雪,
이 마음 희기는 산 위의 눈과 같았고
皎若雲間月.
밝기는 구름 사이 달빛과 같았건만
聞君有兩意,
님께서 두 마음 가졌다는 소문 듣고
故來相訣絶.
이에 찾아뵙고 인연을 끊고자 하나이다.
먼저 여자 자신의 마음과 남편에 대한 사랑이 산 위의 눈
(山上雪) 구름 사이의 달(雲間月)처럼 깨끗하고 순결함을
남편의 두 마음(兩意)과 비교하면서 시를 전개하고 있습
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의 卓文君 (캐리어 우먼도) 어
쩔 수 없이 운명의 비애는 스스로의 몫인 것을....
내비치며 타오르는 분노를 어찌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 탁문군은 움직일 수 없는 주관을
본다. 어설프게 넘기지 않는다.
남편 사마상여가 바람났단 소문을 접하자마자 바로 뛰어
남편을 족치는데, 그 논리 놀라울 정도다. 이를 칭찬해야
할지 말려야 할지 拙人으로서는 난감하다.
그럼 아래를 보시고 卓文君의 말재주를 감상해 보자.
今日斗酒會,
오늘 술상 앞에서 마주 보고 있지만
明旦溝水頭.
내일 아침이면 도랑가에서 헤어지리니
섭접御溝上,
타박타박 궁궐 밖 도랑을 거슬러 올라가지요
溝水東西流.
도랑의 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지만
섭접御溝上에서 御溝上을 흔히 도랑 위에서라고 말하나
아래 流와 대조해보면 上을 동사로 풀어야 할 것이다.
바로 위의 溝水頭 (도랑 위에서)와 중첩이 되기도 하지만,
우선 溝水東西流도 흔히 도랑물이 동쪽 서쪽으로 혹은
나뉘어 흐른다는 것은 너무 어색한 번역이다.
어떻게 도랑물에서 갑자기 동서로 나뉘어 흐를 수 있는가?
이는 마땅히 도랑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고 로 풀
어야 될 것이다.
따라서 위의 上도 위에서가 아니라 登이나 進의 뜻으로
풀어 도랑물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흘러가고 나는 도랑을
거슬러 올라가네 (친정으로 돌아가네라는 의미)로 해석해
야 마땅하다 생각 됩니다.
凄凄復凄凄,
처량하고 또 처량하겠지만
嫁娶不須啼.
다시 시집갈(再嫁) 때 울지 않으리
위의, 처량하고 처량하구나, 로 따로 끊어 버리는데 이는
다시 再嫁 한다는 것은 여자로서 운명의 처량함에 한없이
슬퍼지겠지만 기필코 행복하기 위해 시집가는 것이기에
눈물 따위는 보이지 말자는 의미로 작금의 드라마와도
전혀 시차가 없는 지극히 자유분방한 말입니다. 여기서
탁문군은 인간, 특히 여자의 마음속에 얽히고 설긴 그
복잡한 심사를 불과 두 줄로 압축파일을 만듭니다.
다시 말해 嫁娶不須啼 이 역시 흔히 처음 시집 올 때의
회상으로 풀고 있으나 嫁娶는 再嫁娶(다시 시집감)의 의
미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왜냐면 凄凄復凄凄부터 아래 白頭不相離까지는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을 말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왜 눈물은 필요하지 않다(不須啼)고 했는가? 바로 아래에
새로 시집가서 일편단심으로 자신만을 사랑해 줄 사람 만
나 늙어 죽을 때까지 헤어지지 않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
도록 행복하게 살 것이기 때문이다.
願得一心人,
이번에야말로 일편단심 좋은 사람 만나
白頭不相離.
흰머리 되도록 서로 헤어지지 않으리
願得一心人 願得은 단순하게 ‘바라건데’가 아니라 ‘이번에야
말로 실수하지 않고’라는 결연한 의지의 바램이다.
여기서 바람피우는 남편에게서 탁문군은 스스로 먼저 헤어
질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당찬 여자의 결연한 의지다.
그래서 이것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다시는 당신 같은 바람둥이 만나지 않고 이번에는 기필코
실수없이 一片丹心한 사람 골라 시집갈 것이다.
라는 결연한 의지을 보이는 것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바람
피는 남자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입니다.
竹竿何뇨뇨 낚싯대가 먼저 끄떡끄떡거렸거나
魚尾何사사 물고기 꼬리가 먼저 살랑살랑거렸거나
위는 雅吹가 전혀 다르다. 여기서 탁문군은 남편 사마상여
꿇어앉혀놓고 그 면전에다 대고 험한 욕설을 하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풀이하면. 바로 이 말이 된다.
당신 그 잘난 물건(竹竿, 남자의 거시기) 믿고 이 여자 저
여자 들쑤시고 다니는 것이나.....
화냥년들 바람나 이 남자 저 남자에게 꼬리치고(魚尾,여자
의 거시기) 다니는 꼬락서니나 ,다 저울로 달아 똑같은 것
아니야! 이 잘난 년놈들아..........
그렇게 兩非論을 펴 어쩌면 용서를 해줄 것만 같으나....
그것 또한 모르는 일 아닌가?
絶世佳人 탁문군은 끝으로 바람난 남편 司馬相如을 어떻게
윽박지를까?
여기서 우리는 살짝 엿보기로 합시다.
男兒重意氣,
사나이는 意氣를 무겁게 여기거늘
何用錢刀爲.
어이해서 돈에 끌려 다니나요
아직 사마상여와 바람난 여자에게는 분풀이 못하고, 아마
그녀의 성격상 다음 날 날 밝으면 바로 그 여자의 집을
찾아 가 박살을 낼 것이였으니????....
이에 앞서 남편 사마상여는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
바로 위 글의 행간에 사마상여의 궁색한 변명이 보이
질 않습니까. 독자 여러분......
그래서 그 변명에 대해 꾸짖는 언사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탁문군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내가 불알 찾으면 그 물건을 중하게 여겨야 하거늘
돈 좀 있는 계집이 꼬리친다고 해벌레 해가지고 그년에게
홀딱 빠지는 미친놈, 그것도 사내자식이라고......
에라이 똥물에 튀길 망할 자식아.........
이 글은 樂府詩集에 白頭吟이란 제목으로 相和歌辭 楚調曲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司馬相如가 茂陵 사람의 딸을 첩으로 맞이하려 하자,
卓文君이 白頭吟을 지어 남편 사마상여와 이혼하려고 남편
을 윽박질렀다, 그러자 사마상여는 사귀는 여자와 절교할테
니 ‘나를 한번만 용서해주시구려’하고 탁문군에게 빌었다
하여 이 일은 없는 것으로 하였다
司馬相如將聘茂陵人女爲妾, 卓文君作白頭吟以自絶, 相如乃止
라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西京雜記,출전)
참으로 놀라운 고전을 감상해 본 것이다. 우리는 탁문군의
白頭吟이 무엇을 말해주는 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란 잘나고 못나고 돈 있고 없고 간에 한번 만났으면
서로 이해하고 易地思之하고 男負女戴하여 사랑하고 일편
단심민들레 되어 한 눈 팔지 말고 검은머리 파 뿌리 되도록
해로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 아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白頭吟(백두음)/卓文君(탁문군)
皚如山上雪(애여산상설), 皎若雲間月(교약운간월).
聞君有兩意(문군유양의), 故來相訣絕(고래상결절).
今日斗酒會(금일두주회), 明旦溝水頭(명단구수두).
躞蹀御溝上(섭접어구상), 溝水東西流(구수동서류).
凄凄復凄凄(처처복처처), 嫁娶不須啼(가취불수제).
願得一心人(원득일심인), 白頭不相離(백두불상리).
竹竿何嫋嫋(죽간하뇨뇨), 魚尾何蓰蓰(어미하사사).
男兒重意氣(남아중의기), 何用錢刀為(하용전도위).
<원문출처> 皚如山上雪/ 作者:卓文君
《玉臺新詠·卷一》 一作《白頭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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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희기가 산 위의 눈 같고
밝기는 구름 사이의 달과 같네요.
그대가 두 마음 품었음을 듣고
그 일로 서로 헤어지자고 왔지요.
오늘은 만나 말술을 마시고
내일 아침이면 도랑물에 떨어져
대궐 도랑물을 저벅저벅 걸어 나와
도랑물을 따라 동서로 갈라지겠지요.
서글프고 또 서글프답니다.
시집가고 장가들면 울 일도 없다 하더이다.
원컨대 한 마음만 지닌 사람을 만나
백발이 되도록 서로 헤어지지 않으렵니다.
대나무 줄기는 어이하여 하늘하늘 거리며
물고기 꼬리는 어찌 이다지도 흔들거리나요.
사내는 의기(意氣)를 중히 여긴다는데
어찌해서 돈을 소용없이 쓰려하나요.
탁문군의 백두음(白頭吟)은 《樂府詩集(악부시집)》의 《相和歌辞(상화가사)》에 실려 있다. 상화가사(漢代에 민가에서 부르던 노래)의 백두음은 이외에도 유희이(劉希夷)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 白頭吟/有所思), 이백(李白)의 백두음, 포조(鲍照)의 대백두음(代白頭吟)이 실려 있다.
탁문군의 백두음(白頭吟)은 한(漢)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결혼해 살던 탁문군(卓文君)이 사마상여가 무릉(武陵)의 여자를 첩으로 맞아들이려고 하자 원망하며 지은 곡이다. 사마상여는 이 노래를 듣고 무릉의 여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한다.
○ 皚如山上雪(애여산상설) : 머리는 희기가 산 위의 눈 같다. 사마상여의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는 것(늙었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皚(애) : 희다.
○ 皎(교) : 희다. 밝다.
○ 兩意(양의) : 두 마음.
○ 斗酒(두주) : 한 말 가량의 술. 말술.
○ 溝水(구수) : 도랑물.
○ 躞蹀(섭접) : 저벅저벅 걸음. 躞은 걸을 ‘섭’. 蹀은 밟을 ‘접’, 잔걸음하다.
○ 御溝(어구) : 궁궐 안의 도랑. 대궐(大闕)로부터 흘러나오는 개천
○ 凄凄(처처) : 슬퍼하며 원망하는 모습. 서글프고 서글프다.
○ 嫁娶(가취) :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 竹竿(죽간) : 대나무 장대.
○ 嫋嫋(뇨뇨.요요) : 바람에 산들산들 흔들리는 모양. 맵시가 날씬하고 아름다움.
○ 簁簁(사사) : 체질 하듯 흔듦. 簁는 ‘체 ’사‘.
○ 意氣(의기) : 장한 마음. 기상(氣象).
○ 錢刀(전도) : 돈. 칼 모양의 돈
봉구황 (鳳求凰)
鳳兮鳳兮歸故鄕(봉혜봉혜귀고향) 봉이 고향에 돌아왔구나
翱遊四海求其凰(고유사해구기황) 황을 찾아 천하를 날아다녔구나
時未遇兮無所將(시미우혜무소장) 때를 만나지 못해서 여태 찾지 못했느냐
何悟今夕升斯堂(하오금석승사당) 오늘밤 여기에 올 지를 어이 알았겠느냐
有艶淑女在閨房(유염숙녀재규방) 아름다운 여인이 규방에 계시나니
室邇人遐毒我腸(실이인하독아장) 방은 가까운데 사람은 멀어 애간장을 태우는구나
何緣交頸爲鴛鴦(하연교경위원앙) 어떠한 인연이면 그녀와 한 쌍의 원앙이 되어
胡頡頏兮共翱翔(호힐항혜공고상) 함께 저 높은 하늘을 날 수 있을까
凰兮凰兮從我棲(황혜황혜종아서) 황이여 황이여, 나를 따라 둥지를 틀어다오
得托孳尾永爲妃(득탁자미영위비) 꼬리를 비비며 영원한 짝이 되리
交情通體心和諧(교정통체심화해) 정을 나누고 몸이 통하고 마음이 하나되니
中夜相從知者誰(중야상종지자수) 깊은 밤 서로 따르며 좋게 지낸들 그 누가 알리오
雙翼俱起翻高飛(쌍익구기번고비)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높이 날아올라서
無感我思使於悲(무감아사사어비) 더는 나를 슬프게 하지 마시오
원랑시 (怨郞詩)
一朝別後, 二地相懸.
只說是三四月, 又誰知五六年?
七弦琴無心彈, 八行書無可傳.
九連環從中折斷, 十裏長亭望眼欲穿.
百思想, 千系念, 萬般無奈把郎怨.
萬語千言說不完, 百無聊賴, 十依欄杆.
九重九登高看孤雁, 八月仲秋月圓人不圓.
七月半, 秉燭燒香問蒼天.
六月三伏天, 人人搖扇我心寒.
五月石榴紅似火, 偏遇陣陣冷雨澆花端.
四月枇杷未黃, 我欲對鏡心意亂.
忽匆匆, 三月桃花隨水轉.
飄零零, 二月風箏線兒斷.
噫, 郎呀郎, 巴不得下一世, 你爲女來我做男.
한 번 헤어지고 나서,
두 곳으로 서로 떨어지게 되었어요.
서너 달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여섯 해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칠현금도 뜯을 마음 없고,
여덟 줄 편지도 전할 길 없으니,
구련환은 가운데를 끊어 버리고,
십 리마다 설치된 정자에 올라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백 가지 생각,
천 가지 그리움,
만 가지로 그대를 원망하기 시작했소.
만 가지 천 가지 온갖 말로도 내 마음 다하지 못하고,
백 가지도 넘는 무료함으로
열 번도 넘게 난간에 기댔지요.
구월 구일 높은 곳에 올라 외로운 기러기 바라보았지만,
팔월 추석에도 우리 만나지 못하는군요.
칠월 중순엔 촛불 들고 향 사르며 하늘에 빌었고,
유월 삼복엔 부채질에도 내 마음 시렸답니다.
오월 석류는 불처럼 붉은데, 어쩌다 한바탕 찬비 꽃잎을 치는군요.
사월 비파는 아직 푸른데 거울 마주하고 싶어도 마음 어지럽습니다.
삼월 복사꽃은 바쁘게도 물 따라 흘러가는데,
이월 연은 줄 끊어져 하늘하늘 날아갑니다.
아, 그대여, 그대여, 다음 한 세상에서는 그대 여자 되고 나 남자 되어요.
*畵題詩
一片幽懷托素琴 相從遙夜此情深(일편유회탁소금 상종요야차정심)
白頭唫就君知否 卽是長門買賦心(백두음취군지부 즉시장문매부심)
한 조각 그윽한 회포 소박한 거문고에 기탁하며
긴 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정회 깊었었지
<백두음>을 그대는 제대로 알기나 하는지
이게 바로 賦를 부탁한 마음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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