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란 본시 紛披(분피)에서 野意(야의)를 불러 오고 文辭(문사)란 古怪(고괴)함에서 天眞(천진)을 본다
※ 紛披 : 꽃이 피어 얼크러진 모양. ※ 野意 : 전원의 정취. ※ 來 : 부르다. ※ 文辭 : 文詞. 글. 문장. ※ 古怪 :기이함.
[ 畵 ] 소위 그림 그린다는 사람들에게서 "공부"하는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저 옳은 것이든 그른 것이든 스승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익힌 붓의 기교나 부리면 전부인 것으로 안다. 그림의 이론적인 근거는 내팽개친 지 오래이다. 또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른다. 붓을 들고 날마다 익히는 데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시작에서부터 神妙(신묘)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解脫(해탈)"해야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佛家(불가)에 들어가 잔일이나 하는 행자승으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道(도)를 깨달아 종국에는 高僧(고승)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작가 또한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힘들다 하여 중도에 관두게 되면 "환쟁이"를 면할 수 없고, 열심히 공부[수행]하여 得道(득도)하지 못하면, 그저 신당이나 차려 놓고 점이나 보는 "무당" 노릇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양에 있어 그림[繪畵]의 이론적인 이념은 유교와 老莊(노장) 사상인 도교적인 이념이 대부분이다. 그림에 무슨 이론적인 철학이 있느냐고 다른 학자들이 비아냥거릴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런 학자들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제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이비임에 분명할 것이다. 비록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은 예전의 그림 그리던 사람들이 당시 사회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것과 거의 대부분 "환쟁이"들이었기 때문에 공부 안 한 탓이 크다. 이 말은 그림에 관한 이론과 이념, 철학을 모르면 바로 "환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솜씨 좋은 극장 간판 그림 그리는 사람을 두고 "화가, 화백"이라 하지 않고 "그림쟁이, 환쟁이"라 하며 멸시하는 것처럼, 한낱 쓰잘데기 없는 기교 나부랑이만 배워 종이에 먹물 쳐바르고 비싼 물감 없앤 그림에서 무슨 감동을 받겠는가! 환쟁이 그림에서는 감동은커녕 아무 볼 것도 없다. 요즘이야 극장 간판 그림도 사진을 인화하여 내걸기 때문에 그렇다 쳐도 사찰 담벼락이나 벽 따위에 그림 그리는 환쟁이들의 어정쩡한 솜씨를 보면 이해가 되겠다.
[ 文 ] 蘇轍(소철)이 말하기를, "문장이란, 기백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였다. 맹자는 호연한 기운을 잘 길렀으며, 사마천은 먼 곳을 여행하면서 문장의 기백을 키웠다. 그렇기 때문에 사마천의 문장은 해박하고 소탈하며 호탕하기까지 하다. 소철 또한 여러 고장의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고 함으로써 장쾌한 기운을 기르려 하여 종남산의 숭고한 모습과 황하수의 분방한 흐름을 구경한 뒤에 북경에 이르러 장엄, 화려한 건물들과 구양수나 한유와 같은 걸출한 문인들의 문장을 보았다. 그는, "천하의 문장은 바로 여기에 있다." 고 감탄하였다. 馬子才(마자재) 역시 "사마천의 문장은 책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여행 중에서 배운 것이다. 여행과 현실에서 배우지 않은 문장은 곧 낡고 썩기 쉽다." 하였다.
요즘 소위 "신춘 문예"라 하여 각 일간지에 등단했다는 글들을 볼 수 있다. 더 긴 말이 필요한가? 당시의 글을 가장 잘 나타내 준 것이 바로 "詩經(시경)"이다. 그런데 어째 갈수록 수천 년 전의 그 "시경"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겠다면 요즘 유행하는 유행가의 노랫말을 보라! 넋두리인지 푸념인지 아무 뜻도 모를 소음일 뿐인 그것을! 그런 것에 연유한 것인가? 나는 신춘 문예라는 글들에서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내가 "불감증"인가? 아하하하하~!
江山(강산) 좋은 곳에서 새로운 詩句(시구)를 얻고 風月(풍월) 좋은 때에 옛 벗님을 만났구나
|
一筆♡揮之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