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6 - 계씨(季氏) - ⑨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6 - 계씨(季氏) - ⑨ | |
| 1 | 孔子曰 生而知之者는 上也오 學而知之者는 次也오 困而學之 又其次也니 困而不學이면 民斯爲下矣니라. |
| 2 | 공자왈 생이지지자는 상야오 학이지지자는 차야오 곤이학지 우기차야니 곤이불학이면 민사위하의니라.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태어나면서 아는 자는 상(上)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 어려움을 당하고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당하고도 배우지 못하면 백성으로서 하(下)가 된다.”라고 하셨다. |
| 4 | Confucius said, “Those who are born with the possession of knowledge are the highest class of men. Those who learn, and so, readily, get possession of knowledge, are the next. Those who are dull and stupid, and yet compass the learning, are another class next to these. As to those who are dull and stupid and yet do not learn ;-- they are the lowest of the people.”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6 - 계씨(季氏) - ⑨ |
| 孔子曰 生而知之者 上也 學而知之者 次也 困而學之 又其次也 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태어나면서 아는 자는 상(上)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 어려움을 당하고 배우는 자는 또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당하고도 배우지 못하면 백성으로서 하(下)가 된다.”라고 하셨다. 困 謂有所不通 言人之氣質不同 大約有此四等 ○ 楊氏曰 生知學知以至困學 雖其質不同 然及其知之 一也 故君子惟學之爲貴 困而不學 然後爲下 困이란 통하지 않는 바가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기질이 다른데, 대략 이 네 등급이 있다는 말이다. 양씨가 말하길, “나면서부터 아는 생지, 배워서 아는 학지 그리고 곤궁해서 배우는 곤학까지 모두 그 바탕이 같지 않지만, 그러나 그 아는 것에 이르러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오직 배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곤궁해서도 배우지 않은 연후에 下가 된다.”고 하였다. 朱子曰 生知者 堯舜孔子也 學知者 禹稷顔回也 困者 行有不得之謂 知其困而學焉 以增益其不能 此困而學之之事也 亦以卑矣 然能從事於斯 則其成猶不在善人君子之後 不能從事於斯 則靡然流於下愚而不知返 均之困耳 而二者相去之間 如是之遠 學與不學之異耳 주자가 말하길,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요임금과 순임금, 그리고 공자다. 배워서 아는 사람은 우임금과 후직, 그리고 안회다. 곤궁함이라는 것은 행하려 하나 하지 못함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 곤궁함을 알고서 배운다면, 이로써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보태어 준다. 이것이 바로 곤궁해서 배우는 일이니, 또한 이로써 낮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종사(따라서 일삼음)할 수 있다면, 그 이룸은 그래도 선인과 군자의 뒤에 있지 않을 것이고, 이것에 종사할 수 없다면, 쓰러져서 가장 어리석은 자에 흘러들어 돌아올 줄을 모를 것이다. 다 똑같이 곤궁할 따름이지만, 두 가지의 서로 떨어진 거리가 이와 같이 먼 것은 배우고 배우지 않고의 차이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或問氣質四等之說 曰 人之生也 氣質之稟淸明純粹絶無査滓 則於天地之性無所間隔而凡義理之當然有不待學而了然於胸中者 所謂生而知之 聖人也 其不及此者 則以昏明淸濁正偏純駁之多少 勝負爲差 其或得於淸明純粹而不能無少査滓者 則雖未免乎少有間隔而其間易達其礙易通 故於其所未通者 必知學以通之 而其學也 則亦無不通矣 所謂學而知之 大賢也 或得於昏濁偏駁之多而不能無少淸明純粹者 則必其窒塞不通然後知學 其學又未必無不通也 所謂困而學之 衆人也 至於昏濁偏駁之甚而無復少有淸明純粹之氣 則雖有不通而懵然莫覺以爲當然 終不知學以求其通也 此則下民而已矣 혹자가 기질의 4등급설을 물었다. 말하길, “사람이 태어남에 있어, 기질을 품부받음이 맑고 밝으며 순수하여 찌꺼기가 절대로 없다면, 천지의 본성에 대하여 차이가 나고 벌어진 틈이 없어서, 모든 의리의 당연함이 배움을 기다리지 않고도 흉중에 일목요연한 사람이니, 이른바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으로서 성인이다.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어둡고 밝음, 맑고 탁함, 바르고 치우침, 순수하고 뒤섞임의 많고 적음이 승부에 차등을 만드는 것이다. 혹시라도 맑고 밝으며 순수함을 얻었을지라도, 찌꺼기가 조금도 없을 수는 없는 사람이라면, 비록 조금의 차이가 나고 틈새가 있는 것을 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 차이는 쉽게 도달하고 그 장애는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아직 통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반드시 배워서 통하게 할 줄 알 것이니, 그가 배운다면, 곧 또한 통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이른바 배워서 아는 사람으로서 大賢이다. 혹시라도 혼탁하고 치우치고 잡다함이 많지만, 약간의 맑고 밝으며 순수함이 없을 수 없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질식하고 막혀서 통하지 않게 된 연후에 배울 줄 알게 될 것이고, 그 배움도 또한 반드시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람은 이른바 곤궁해서 배우는 사람으로서 뭇사람들이다. 혼탁하고 치우치며 뒤섞임이 심하지만, 더이상 맑고 밝으며 순수한 기운이 조금도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비록 통하지 않음이 있더라도 멍청하게 깨닫지 못한 채 당연한 것으로 여겨서, 끝내 배움으로써 그 통함을 추구할 줄 모를 것이니, 이는 곧 下民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困學雖在二者下 然而知則一者 以其性之本善故爾 困而不學 是自暴自棄 則爲下愚矣 又曰 中庸言及其知之則一者 言其終所至之同也 此有三等之分者 言其始所進之異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곤궁해서 배우는 것은 비록 두 가지(生知, 學知)의 아래에 있지만, 그러나 알면 똑같다는 것은 그 본성이 본래 선할 뿐이기 때문이다. 곤궁해도 배우지 않는 것은 자포자기이니, 곧 下愚者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말하길, “중용에서 말하는 ‘그 앎에 이르러서는 동일하다’라는 것은 그것이 끝내 이르는 곳이 같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에 세 등급의 구분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처음에 나아간 곳이 다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人之氣質不同然及其知之則一者 蓋以人性之本善故耳 是以君子唯學之爲貴 學則昏濁者可使淸明 偏駁者可使純粹 惟其昏濁之甚自暴自棄而不自知有學焉 此則所謂下愚之民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사람의 기질은 다르지만 그 앎에 이르러서는 동일하다는 것은 대체로 사람의 본성이 본래 선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오직 배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배우면 혼탁한 자를 맑고 밝게 만들 수 있고, 치우치고 잡다한 자를 순수하게 만들 수 있다. 오직 혼탁함이 심하여 자포자기하고서 스스로 배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만이 곧 이른바 下愚之民이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凡心思智慮行止動作有所窒塞而不得通 則困之謂也 무릇 心思와 智慮, 행동거지와 동작에 막히는 바가 생겨서 통하지 못하게 되면, 곤궁하다고 일컫는 것이다. 雙峯饒氏曰 生知學知困知屬天質 學不學屬人事 蓋以氣質言之 只有三等 若民斯爲下 則全是人事不盡 蓋困是窮而不通之意 四面都窒塞行不去了 却憤悱奮發轉來爲學如此 尙可以勉進於中上 若又困而不學 則打入下等去 更無可出時矣 此聖人勉人務學處 쌍봉요씨가 말하길, “生知와 學知와 困知는 하늘이 준 바탕(天質)에 속하고, 배우고 안 배우고는 사람의 일에 속한다. 대체로 기질로 말하자면, 겨우 제 등급이 있을 뿐이다. 예컨대 백성 중에서 하층에 된다는 것은 온전히 人事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대체로 困은 곤궁하여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면이 모두 막혀서 나다닐 수 없음에도, 도리어 이를 원통하고 답답하게 여겨서 분발함으로써 전환하여 학문을 함을 이와 같이 한다면, 아직도 이로써 中上 등급으로 힘써 나아갈 수 있다. 만약 또 곤궁함에도 배우지 않는다면, 하등으로 들어갈 것이니, 다시는 벗어날 수 있는 때가 없을 것이다. 이는 성인께서 사람들에게 배움에 힘쓰라고 권면하신 부분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以生知爲上 則學知者爲中 困知者爲下矣 而聖人不以品之下者遽絶之 但曰困而不學民斯爲下 蓋困而學猶可以進於上 困而不學 遂爲下而無復上之望矣 운봉호씨가 말하길, “生知를 上級으로 삼으면, 學知者는 中級이 되고, 困知者는 下級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품급이 낮은 사람이라고 해서 갑자기 끊어버리지 않고, 다만 곤궁함에도 배우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하등이 된다고 말씀하셨을 뿐이다. 이는 대체로 곤궁하여 배운다면 그래도 上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곤궁함에도 배우지 않는다면 마침내 하등이 되어서 다시는 上이 될 가망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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