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6 - 계씨(季氏) - ⑩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6 - 계씨(季氏) - ⑩ | |
| 1 | 孔子曰 君子有九思하니 視思明하며 聽思聰하며 色思溫하며 貌思恭하며 言思忠하며 事思敬하며 疑思問하며 忿思難하며 見得思義니라. |
| 2 | 공자왈 군자유구사하니 시사명하며 청사총하며 색사온하며 모사공하며 언사충하며 사사경하며 의사문하며 분사난하며 견득사의니라.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에게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九思] 있으니, 볼 때는 밝기를 생각하고[視思明], 들을 때는 귀 밝기를 생각하며[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色思溫], 모습은 공손하기를 생각하며[貌思恭], 말은 진실되기를 생각하고[言思忠], 일에는 조심하기를 생각하며[事思敬], 의심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고[疑思問], 성이 나면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며[忿思難], 이득을 보면 정의를 생각한다[見得思義].”라고 하셨다. |
| 4 | Confucius said, “The superior man has nine things which are subjects with him of thoughtful consideration. In regard to the use of his eyes, he is anxious to see clearly. In regard to the use of his ears, he is anxious to hear distinctly. In regard to his countenance, he is anxious that it should be benign. In regard to his demeanor, he is anxious that it should be respectful. In regard to his speech, he is anxious that it should be sincere. In regard to his doing of business, he is anxious that it should be reverently careful. In regard to what he doubts about, he is anxious to question others. When he is angry, he thinks of the difficulties (his anger may involve him in). When he sees gain to be got, he thinks of righteousness.”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6 - 계씨(季氏) - ⑩ |
| 孔子曰 君子有九思 視思明 聽思聰 色思溫 貌思恭 言思忠 事思敬 疑思問 忿思難 見得思義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에게 아홉 가지 생각하는 것이 있으니, 볼 때는 밝기를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 밝기를 생각하며, 얼굴빛은 온화하기를 생각하고, 모습은 공손하기를 생각하며, 말은 진실되기를 생각하고, 일에는 조심하기를 생각하며, 의심이 나면 물을 것을 생각하고, 성이 나면 어려워질 것을 생각하며, 이득을 보면 정의를 생각한다.”라고 하셨다. 視無所蔽 則明無不見 聽無所壅 則聰無不聞 色 見於面者 貌 擧身而言 思問 則疑不蓄 思難 則忿必懲 思義 則得不苟 볼 적에 가려진 바가 없으면, 곧 밝아서 보지 못하는 것이 없고, 들을 적에 막힌 바가 없으면, 곧 명확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다. 색이란 얼굴에 보이는 것이고, 貌란 몸을 들어 말한 것이다. 질문을 생각하면 곧 의심을 쌓아두지 않는다. 곤란함을 생각하면 곧 분함은 반드시 징치하게 된다. 의로움을 생각하면 곧 얻기를 구차하게 하지 않는다. 朱子曰 視不爲惡色所蔽爲明 聽不爲姦人所欺爲聰 若視聽糊塗是非不辨 則下面諸事於當思處 皆不知所以思矣 有爲氣質所壅蔽 有爲私欲所壅蔽 有爲讒邪所壅蔽 若思明思聰 便須去其壅蔽 주자가 말하길, “볼 적에 나쁜 색에 의해 가려지지 않는 것이 明이고, 들을 적에 간사한 사람에 의해 속임을 당하지 않는 것이 聰이다. 만약 보고 듣는 것이 흐리멍덩하여 시비를 분별하지 못하면, 아래 여러 가지 일들은 마땅히 생각해야 할 부분에 대하여 모두 생각할 방법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기질에 의하여 막히고 가려지는 것이 있고, 사욕에 의해 막히고 가려지는 바도 있으며, 참언과 간사한 말에 막히고 가려지는 것도 있으니, 만약 눈밝음을 생각하고 귀밝음을 생각한다면, 곧 모름지기 그 막히고 가려짐을 제거해야만 한다.”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視外明而聽內明 蔽是蔽於外 壅是壅於內 故集註於視之明以無所蔽言 於聽之聰以無所壅言也 신안예씨가 말하길, “보는 것은 밖으로 밝은 것이고, 듣는 것은 안으로 밝은 것이다. 가려지는 것은 밖에서 가려지는 것이고, 막히는 것은 안에서 막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주에서는 보는 것이 밝다는 것에 대해서는 가려진 바가 없다는 것으로 말하였고, 듣는 것이 귀밝은 것에 대해서는 막힌 바가 없다는 것으로 말했던 것이다.”고 하였다. ○ 程子曰 九思各專其一 정자왈 “아홉 가지 생각함은 각자 그 하나씩 전담한다.”고 하였다. 朱子曰 九思不是雜然而思 當這一件上 思這一件 問各專其一 是主一之意 曰然 주자가 말하길, “九思란 잡다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 한건 위에 당하면, 이 한건을 생각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누군가 묻기를, “각자 그 하나를 오로지 한다는 것은 ‘하나에 주안점을 둔다’는 의미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事思敬 九思之一 九思各專其一 則皆主乎敬者也 운봉호씨가 말하길, “일을 할 적에 공경함을 생각한다는 것은 九思 중의 하나인데, 九思는 각자 그 하나를 오로지한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모두 공경에 주안점을 두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謝氏曰 未至於從容中道 無時而不自省察也 雖有不存焉者 寡矣 此之謂思誠 사씨왈 “조용하게 도에 들어맞는 지경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기에, 때마다 스스로 성찰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비록 여기에 보존되지 못한 것이 있더라도 적을 것이니, 이를 일컬어 사성이라 말한다.”고 하였다. 朱子曰 視聽如何 要得他聰明 如有物必有則 只一箇物自家各有箇道理 況耳目之聰明 得之於天 本來自合如此 只爲私欲蔽 惑而失其理 聖人敎人做工夫 內外夾持積累成熟 便會無些子滲漏 주자가 말하길, “보고 들음에 있어 어찌해야 저 총명함을 얻을 수 있는가? 마치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듯이, 단지 하나의 사물은 스스로 각자 자기의 이치를 갖고 있다. 하물며 귀와 눈의 총명함은 하늘에서 얻었기에, 본래 스스로 부합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단지 사욕에 가려져서 미혹되어 그 이치를 잃는 것일 뿐이니, 성인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부를 해서 안과 밖을 함께 붙잡고 쌓아서 성숙하게 하셨으니, 곧 조금이라도 새거나 빠져나감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又云 忿思難 如一朝之忿忘其身及其親 此不思難之故也 또 말하길, “분할 적에 곤란함을 생각하는 것은 마치 하루아침의 분함에 제 자신을 잊고서 그 화가 자기 부모에게 미치게 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는 곤란함을 생각하지 않은 까닭이다. 問人當隨事而思 若無事而思 則是妄想 曰 若閑時不思量義理 則臨事而思 已無及 若只塊然守自家箇軀殼 直到有事方思 閑時 却莫思量 這却甚易 只守此一句足矣 何用事事須先理會 何故 中庸却不先說篤行之 却先說博學之審問之近思之明辨之 大學何故不先便說正心誠意 却先說致知 是如何 누군가 묻기를, “사람은 일에 따라서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만약 일이 없는데도 생각한다면 이것은 망상이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만약 한가한 시간에 義理를 생각하고 헤아려놓지 않는다면, 일에 임해서 생각해서는 이미 미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단지 자신의 몸만 지키다가, 일이 있으면 비로소 생각하고, 한가한 때에는 생각하거나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오히려 아주 쉬운 일이다. 그저 이 한 구절만 지키면 족할 것임에도, 어찌 일마다 모두 반드시 미리 이해해야 하는가? 그런데 무슨 이유로 중용에서는 오히려 篤行之를 먼저 말하지 않고, 도리어 博學之, 審問之, 近思之, 明辨之를 먼저 말하였는가? 대학에서는 어떤 이유로 먼저 正心과 誠意를 말하지 않고 오히려 致知를 먼저 말하였는가?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九思當乎此 則思乎此 天理所由擴而人欲所由遏也 然是九者 要當養之於未發之前而持之於方發之際 不然但欲察之於流而收之於暫 則但見其紛擾而無力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九思는 여기에 당하면 곧 여기에서 생각하는 것이니, 天理가 이로 말미암아 확대되고 人欲이 이로 말미암아 억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아홉 가지는 아직 드러나기 전에 길러주다가 바야흐로 드러날 즈음에 붙잡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지 흘러갈 적에 살펴서 잠깐 동안에 그것을 거두고자 한다면, 그저 그에 분란만 당할 뿐 아무런 힘도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況氏曰 九思固各專其一 然隨其所當思而思焉 則亦泛然而無統矣 苟能以敬義爲主戒懼謹獨而無頃刻之失然後 爲能隨其所當思而思矣 면재황씨가 말하길, “九思는 본래 각자 그 하나를 專一하지만, 그러나 그 생각할 바에 따라서 생각한다면, 이 역시 泛然하여 계통이 없게 될 것이다. 만약 능히 敬과 義로써 주안점을 삼아 戒懼謹篤을 하여 잠시라도 잃음이 없게 할 수 있은 연후에야, 비로소 그 마땅히 생각할 바를 따라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九者之目有次第 視聽色貌言 是就自身說 事疑忿得 是就事上說 一身之間 視聽向前 其次則有色貌 又其次言出於口 又其次見之行事 視與聽對 色與貌對 言與事對 疑與忿對 得又是就事上說 三者之中 疑思問屬知 忿思難見得思義屬行 쌍봉요씨가 말하길, “아홉 가지의 항목에는 순서가 있는데, 視聽色貌言은 자신에게 나아가서 말한 것이고, 事疑忿得은 일 위로 나아가 말한 것이다. 한 몸의 사이에 視와 聽은 앞을 향한 것이고, 그 다음은 色과 貌가 있으며, 또 그 다음은 言이 입에서 나오는 것이며, 다시 그 다음은 일이 행해짐에 드러나는 것이다. 視와 聽이 짝을 이루고, 色과 貌가 상대를 이루며, 言과 事가 상대를 이루고, 疑와 忿이 상대를 이룬다. 得은 다시 일 위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다. 세 가지 중에서 疑思問은 知에 속하고, 忿思難과 見得思義는 行에 속한다.”고 하였다. 齊氏曰 孔子曰吾嘗終日不食終夜不寢而思無益而今乃有九思 彼爲思而不學者言 此爲不思者而言也 제씨가 말하길, “공자가 말씀하시길 ‘나는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자지 않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무익하였다.’고 하였으면서도, 지금은 도리어 九思가 있다고 하였는데, 저것은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생각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君子苟未至於不思而得 當隨時隨處而各致其思 則處己待人應事接物無不各中其則矣 豈但九者而已哉 馮氏謂九者日用常行之要是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군자가 만약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는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하였음에도, 마땅히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각자 그 생각을 지극히 한다면, 스스로 처신하고 남을 대하며 일에 대응하고 사물을 접함에 있어 각자 그 법칙에 들어맞지 않음이 없게 될 것이니, 어찌 단지 9가지일 뿐이겠는가? 풍씨는 9가지가 일상생활에서 늘상 행하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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