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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①

by 권석낙 2026. 6. 15.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①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5 - 위령공(衛靈公) - ①
1衛靈公이 問陳於孔子한대 孔子對曰 俎豆之事는 則嘗聞之矣어니와 軍旅之事는 未之學也라하시고 明日에 遂行하시다 在陳絶糧하니 從者病하야 莫能興이러니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잇가 子曰 君子는 固窮이니 小人은 窮斯濫矣니라.
2위령공이 문진어공자한대 공자대왈 조두지사는 즉상문지의어니와 군려지사는 미지학야라하시고 명일에 수행하시다 재진절량하니 종자병하야 막능흥이러니 자로온현왈 군자역유궁호잇가 자왈 군자는 고궁이니 소인은 궁사람의니라.
3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을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조두(제례)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습니다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시고 다음날 마침내 위나라를 떠났다.

진나라에 계실 때 양식이 떨어지니 따르는 사람들이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했다. 

자로가 성낸 얼굴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군자도 또한 곤궁한 때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해도 자기 본분을 지키지만, 소인은 궁하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라고 하셨다. 
4 The duke Ling of Wei asked Confucius about tactics. Confucius replied, “I have heard all about sacrificial vessels, but I have not learned military matters.” On this, he took his departure the next day. 


When he was in Chan, their provisions were exhausted, and his followers became so ill that they were unable to rise. 


[James Legge] Tsze-lû, with evident dissatisfaction, said, “Has the superior man likewise to endure in this way?” The Master said, “The superior man may indeed have to endure want, but the mean man, when he is in want, gives way to unbridled license.” 

 

논어집주(論語集注) - 15 - 위령공(衛靈公) - ①
衛靈公問陳於孔子 孔子對曰 俎豆之事 則嘗聞之矣 軍旅之事 未之學也 明日遂行
위나라 영공이 공자에게 진법(陣法)을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조두(제례)에 대한 일은 일찍이 들었습니다만, 군대에 관한 일은 배우지 못했습니다.”라고 하시고 다음날 마침내 위나라를 떠났다.

○ 陳 謂軍師行伍之列 俎豆 禮器 尹氏曰 衛靈公 無道之君也 復有志於戰伐之事 故答以未學而去之
진이란 군사의 행오의 열을 말한다. 조두란 제례의 기물을 말한다. 윤씨가 말하길, “위령공은 무도한 임금이었다. 다시 전쟁과 정벌의 일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배우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대답하고서 그곳을 떠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史記世家 孔子適衛 主蘧伯玉家 他日靈公問兵陳于孔子 明日與孔子語 見蜚鴈仰視之 色不在孔子 遂行復如陳 是歲魯哀公三年 孔子年六十矣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께서 위나라 갔을 적에, 거백옥의 집에 머물렀다. 다른 날에 위령공이 공자에게 병법과 진법을 물었고, 다음날에 공자와 더불어 말하면서 날아오는 기러기를 보자, 그것을 올려다 보았는데, 안색이 공자에게 있지 않았다. 마침내 위나라를 떠나서 다시 진나라로 갔다. 이 해는 노나라 애공 3년으로서, 공자 나이 60이었다.

問靈公問陳而夫子遽行 何也 朱子曰 爲國以禮 戰陳之事 非人君所宜問也 況靈公無道 夫子固知之矣 特以其禮際之善 庶幾可與言者 是以往來於衛 爲日最久 而所以啓告者 亦已詳矣 乃於夫子之言一無所入 至是而猶問陳焉 則其志可知矣 故對以未學而去之 然不徒曰未學而已 猶以俎豆之事告之 則夫子之去 蓋亦未有必然之意也 使靈公有以發悟於心而改事焉 則夫子之行 孰謂其不可留哉
누군가 묻기를, “위령공이 진법을 묻자, 공자께서 갑자기 떠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써 하는 것이니, 전쟁과 진법의 일은 임금이 마땅히 물어야 할 바가 아니다. 하물며 위령공은 無道하였고, 공자도 본디 그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야! 단지 위령공이 예로써 대우하는 것이 좋다는 이유로 거의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사람이었다. 이 때문에 위나라에 왕래한 날짜가 제일 오래되었고, 또한 열어서 알려준 것 또한 매우 상세했던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공자에 말에 대하여 하나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없었다. 이런 지경에 이르고도 여전히 진법을 물었으니, 그 뜻을 가히 알 만하다. 그래서 배우지 못했다는 것으로 대답하고서 위나라를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단지 배우지 못하였다고만 말하지 않고, 그래도 제사의 일로써 고하였으니, 공자가 떠나는 일은 역시 아마도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뜻이 아직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위령공이 분발하여 마음으로 깨달아 일을 고칠 수 있었다면, 공자가 떠나는 일을 놓고 그 누가 더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는가?”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夫子之在衛 靈公雖無道 然亦當側聞夫子之所趣矣 顧乃以問陳爲言 與夫子之意 可謂背馳 夫子所以答之者 則以己之所學者 在此而不在彼 以其不合也 故明日而行焉 夫自春秋之時言之 諸國以强弱爲勝負 軍旅之事 宜在所先 而俎豆之事 疑若不急者矣 曾不知國之所以爲國者 以夫天敍天秩者 實維持之也 爲國者 志在乎典禮 則孝順和睦之風興 叶力一心尊君親上 其强孰禦焉 不然三綱淪廢 人有離心 國誰與立 軍旅雖精 果何所用哉 俎豆之於禮敎 猶陳之於軍旅 實理之所寓 而敎之所由興也 使靈公而有志乎俎豆之間 則推而達之 必有不可已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공자가 위나라에 계실 적에 위령공이 비록 무도하였지만, 그러나 또한 곁에서 공자가 가고자 한 방향을 마땅히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도리어 진법을 묻는 것으로 말을 하였으니, 공자의 뜻과는 배치된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가 대답을 했던 것에 있어서, 자신이 배운 것이 여기에 있지 저기에 있지 않아서 그것과 합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날에 떠났던 것이다. 무릇 춘추시대로부터 말하자면, 모든 나라들이 강약으로 승부를 삼았으니, 군사의 일을 급선무로 해야 마땅하였지만, 제사의 일은 급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하였던 것이다. 이는 일찍이 나라가 나라가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한 것이니, 하늘이 부여한 질서와 하늘이 내린 작위를 가지고, 실제로 나라를 유지하는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典禮에 뜻을 둔다면, 효도하고 순종하며 화목한 기풍이 흥하게 되고, 힘을 합쳐 한마음으로 임금을 높이고 윗사람을 친애하게 되니, 그 강력함을 그 누가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삼강이 몰락하여 사라지고 사람들은 이반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인데, 나라는 누구와 더불어 세울 것이며, 군사가 비록 정예롭다 한들, 과연 어디에 쓸 것인가? 禮敎에 있어서 제사는 군사에 있어서 진법과 같은 것이니, 실제의 이치가 깃든 곳이자 가르침이 이로 말미암아 발흥하는 곳이다. 만약 위령공이 제사의 일에 뜻을 두었다면, 그것을 미루어서 두루 이르게 되니, 그만둘 수 없는 것이 반드시 생겼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夫子對靈公以軍旅之事未之學 答孔文子以甲兵之事未之聞 及觀夾谷之會 則以兵加萊人而齊侯懼 費人之亂 則命將士以伐之而費又北 又嘗曰 我戰則克 夫子豈有未學未聞者哉 特以軍旅之事 非所以爲訓耳 然欲以俎豆之事啓之 則夫子之拳拳於衛 亦可知矣
면재황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군사의 일은 배운 적이 없다는 말로 위령공에게 대답하였고, 갑병의 일은 들은 적이 없다는 말로 공문자에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협곡의 회맹을 살펴보면, 군사로써 제나라 속국을 압박하니 제나라 임금이 두려워하였고, 비읍 사람들이 난을 일으키자, 명을 받아 전사들을 데리고 가 정벌함으로써 비읍 사람들이 다시 패배하였다. 또한 일찍이 말하길, 나는 전쟁을 하면 이긴다고 하였다. 공자께서 어찌 아직 배우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이 있었겠는가? 단지 군사의 일은 가르침으로 삼을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제사의 일로써 계발시켜 주고자 하셨으니, 공자께서 위나라에 연연하신 것도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在陳絶糧 從者病 莫能興
진나라에 계실 때 양식이 떨어지니 따르는 사람들이 병이 나서 일어나지 못했다. 

○ 孔子去衛適陳 興 起也
공자님께서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갔다. 흥이란 일어선다는 말이다.

問明日遂行在陳絶糧 想見孔子都不計較所以絶糧 朱子曰 若計較則不成行矣
누군가 묻기를, “다음날 마침내 떠나서 진나라에서 양식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생각하건대, 공자께서는 양식이 떨어지는 것도 따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만약 그것을 따졌다면, 떠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齊氏曰 孟子曰 孔子厄於陳蔡之間 考春秋則其時陳服楚 蔡服吳 吳楚交戰 無虛歲 孔子蓋爲楚昭王徘徊陳蔡而絶糧於兵間也
제씨가 말하길, “맹자가 말하길, 공자는 진채지간에서 액운을 당하였다고 하였는데, 춘추를 상고해보니, 그 시기에는 진나라가 초나라에 정복당했고, 채나라는 오나라에 정복을 당했으며, 오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전쟁을 벌여서 전쟁 없이 그냥 지나가는 해가 없었다. 공자는 아마도 초나라 소왕 때문에 진나라와 채나라를 배회하다가, 병란의 와중에 양식이 떨어진 것 같다.”고 하였다.

子路慍見曰 君子亦有窮乎 子曰 君子固窮 小人窮 斯濫矣
자로가 성낸 얼굴로 공자를 뵙고 말하기를, “군자도 또한 곤궁한 때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곤궁해도 자기 본분을 지키지만, 소인은 궁하면 하지 못하는 짓이 없다.”라고 하셨다.

何氏曰 濫 溢也 言君子固有窮時 不若小人窮則放溢爲非 程子曰 固窮者 固守其窮 亦通
하씨가 말하였다. “濫은 넘친다는 말이다. 군자는 본디 곤궁할 때가 있으나, 소인들처럼 곤궁하면 방자하고 넘쳐서 잘못된 일을 저지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정자가 말하길, “固窮이라는 것은 그 곤궁함을 固守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역시 뜻이 통한다.

或問固窮有二義 朱子曰 固守其窮 恐聖人一時答問之辭 未遽及此 蓋子路方問君子亦有窮乎 答曰 君子固是有窮時 不如小人窮則濫耳 以固字答上文亦有字 文勢乃相應
혹자가 固窮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지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그 곤궁함을 굳게 지킨다는 뜻은 아마도 성인이 동일한 때에 문답했던 말로서 갑자기 여기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로 자로가 바야흐로 ‘군자도 역시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군자는 본래 곤궁할 때가 있는 법이지만, 소인처럼 궁하면 넘치지 않을 따름이다.’라고 한 것이다. 固라는 글자를 가지고 윗글의 亦有자에 대답하였으니, 문장의 형세가 서로 호응한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子路之慍 以爲夫子之德之盛 疑其不當窮也 此不幾於不受命乎 夫子答之之意以爲命之不齊 君子小人皆有窮也 特君子能守 而小人失其守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자로가 성을 낸 것은 공자님의 덕이 성대하다고 여겼기에 마땅히 곤궁해서는 안 된다고 의심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천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가깝지 아니한가? 공자께서 대답한 뜻은, 천명이 고르지 못하니, 군자와 소인 모두 곤궁할 때가 있지만, 다만 군자는 능히 지킬 수 있으나, 소인배는 그 지킴을 잃는다는 것이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愚謂 聖人當行而行 無所顧慮 處困而亨 無所怨悔 於此可見 學者宜深味之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인은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행하되, 돌아보거나 염려하는 것이 없다. 곤궁함에 처해서도 오히려 형통으로 여기고,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바도 없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 수 있다.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易困卦云 困亨貞 又云困而不失其所亨
주역 곤괘에 이르길, 困은 형통하고 貞하다고 하였고, 또 이르길, 곤궁하지만 그 형통한 바를 잃지 않는다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當行而行 無所顧慮 義之勇也 處困而亨 無所怨悔 義之安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을 행하면서 돌아보거나 염려하는 바가 없는 것은 義의 용기이고, 곤궁함에 처해도 형통으로 여기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바가 없는 것은 義의 편안함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當行而行 惟理是視者 無所顧慮 不計其後也 處困而亨 身雖窮而道則通也 無所怨悔 觀固窮之語可見也 學者之進退能於是而取則焉 則不爲利害所奪 窮達所移矣
호씨가 말하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오직 이치상 옳은 것만 보는 것이고, 돌아보거나 염려하는 바가 없는 것은 그 뒷일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곤궁함에 처하여도 형통으로 여기는 것은 몸은 비록 곤궁하지만 도는 통달한 것이다.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바가 없는 것은 固窮이라는 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 능히 여기에서 그 원칙을 취할 수 있다면, 이해관계에 의해서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벼슬의 유무로 인해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當行而行 無所顧慮 是說明日遂行 處困而亨 無所怨悔 是說在陳絶糧以下 顧是顧後 慮是慮前 怨是怨人 悔是自悔
쌍봉요씨가 말하길,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돌아보거나 염려하는 바가 없는 것은 ‘다음날 곧바로 떠났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곤궁함에 처해도 형통으로 여기면서 원망하거나 후회하는 바가 없는 것은 ‘진나라에서 양식이 끊겼다는 것 이하’를 말한 것이다. 돌아본다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고, 염려한다는 것은 앞일을 염려하는 것이며, 원망한다는 것은 남을 원망하는 것이고, 후회한다는 것은 자신을 후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禮有大於俎豆者 夫子且自謙讓說其小者也 蓋靈公以軍陳爲問 故夫子以禮器爲對 君子 成德之人 安於貧賤 若固守其窮 似下君子一等矣
禮에는 俎豆보다 큰 것이 있지만, 공자께서는 또한 스스로 겸양하여 그 작은 것을 말한 것이다. 대체로 위령공이 군진으로 질문을 삼았기에 공자께서는 예기로 대답을 삼은 것이다. 군자는 덕을 이룬 사람으로서 가난과 천함에도 편안해하니, 만약 그 곤궁함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라면, 군자보다는 한 등급 아래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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