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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㊷

by 권석낙 2026. 6. 15.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㊷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4 - 헌문(憲問) - ㊷
1子 擊磬於衛러시니 有荷 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라 擊磬乎여 
旣而曰 鄙哉라 硜硜乎여 莫己知也어든 斯已而已矣니 深則厲오 淺則揭니라 子曰 果哉라 末之難矣니라. 
2자 격경어위러시니 유하괴이과공씨지문자 왈 유심재라 격경호여
기이왈 비재라 갱갱호여 막기지야어든 사이이이의니 심칙려오 천칙게니라 자왈 과재라 말지난의니라.
3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리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자의 문 앞을 지나가던 자가 듣고서 말하였다. “경쇠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천하(天下)에 있구나!”라고 하였다. 

잠시 후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땅땅거리는 경쇠 소리여!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만둘 뿐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감하구나, 만일 물을 건너는 것처럼 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라고 하셨다.    
4 The Master was playing, one day, on a musical stone in Wei, when a man, carrying a straw basket, passed door of the house where Confucius was, and said, “His heart is full who so beats the musical stone.” 

A little while after, he added, “How contemptible is the one-ideaed obstinacy those sounds display! When one is taken no notice of, he has simply at once to give over his wish for public employment. 'Deep water must be crossed with the clothes on; shallow water may be crossed with the clothes held up.’” 

The Master said, “How determined is he in his purpose! But this is not difficult!”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㊷
子擊磬於衛 有荷蕢而過孔氏之門者 曰 有心哉 擊磬乎
공자께서 위나라에서 경쇠를 두드리셨는데, 삼태기를 메고 공의 문 앞을 지나가던 자가 듣고서 말하였다. “경쇠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천하(天下)에 있구나!”라고 하였다. 

○ 磬 樂器 荷 擔也 蕢 草器也 此荷蕢者 亦隱士也 聖人之心未嘗忘天下 此人聞其磬聲而知之 則亦非常人矣
경이란 악기다. 荷는 둘러멘다는 것이다. 삼태기는 풀로 만든 그릇이다. 이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 역시 은자다. 성인의 마음은 아직 천하를 잊지 못하였고, 이 사람은 그 경 소리를 듣고서 그것을 알았으니, 역시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按韻書 負荷之荷 在上聲 下可反 又去聲
운서를 찾아보니, 負荷의 荷는 上聲이고 발음이 下可의 절반이며, 또한 去聲이기도 하다.

問聞磬聲如何便知夫子之心不忘天下 朱子曰 他那人煞高 如古人於琴聲中 知有殺心耳
누군가 묻기를, “경쇠 소리만 듣고서 어떻게 바로 공자의 마음이 천하를 잊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저 그 사람은 매우 높은 수준이었다. 예컨대 옛날 사람이 거문고 소리 안에서 殺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旣而曰 鄙哉 硜硜乎 莫己知也 斯已而已矣 深則厲 淺則揭
잠시 후 말하기를, “비루하도다. 땅땅거리는 경쇠 소리여!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만둘 뿐이니, 물이 깊으면 옷을 벗고 건너고 얕으면 옷을 걷고 건너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硜硜 石聲 亦專確之意 以衣涉水曰厲 攝衣涉水曰揭 此兩句 衛風 匏有苦葉之詩也 譏孔子人不知己而不止 不能適淺深之宜
갱갱은 돌 소리로서 역시 전일하고 확고하다는 뜻이다. 옷을 입고 물을 건너는 것을 厲라고 말하고, 옷을 붙잡고 물을 건너는 것을 揭라고 말한다. 이 두 구절은 위풍 ‘포유고엽’의 시다. 공자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에도 그치지 않고, 또 얕고 깊음에 따라 적절하게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비웃는 것이다.

硜 苦耕反 莫己之己 音紀 餘音以 揭 起例反
硜은 발음이 苦耕의 절반이고, 莫己의 己만 음이 紀이고, 나머지는 음이 以다. 揭는 발음이 起例의 절반이다.

子曰 果哉 末之難矣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감하구나, 만일 물을 건너는 것처럼 한다면 어려울 것이 없겠구나!”라고 하셨다.   

果哉 歎其果於忘世也 末 無也 聖人心同天地 視天下猶一家 中國猶一人 不能一日忘也 故聞荷蕢之言 而歎其果於忘世 且言人之出處 若但如此 則亦無所難矣
과감하다는 것은 그가 세상을 과감하게 잊은 것을 탄식한 것이다. 末은 없다는 것이다. 성인은 마음이 천지와 하나이며, 천하를 일가로 보고, 중국을 한 사람으로 보며, 하루라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의 말을 듣고서 그가 세상을 잊은 과감함을 탄식한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벼슬길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만약 그저 이와 같다면, 어려워할 바가 전혀 없다고 말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果於忘世決去不反者 能之 何難之有 若聖人之出處 因時卷舒與道消息 而憂世之心 終不能已 濟世之用 其出無窮 此豈荷簣所能與哉
경원보씨가 말하길, “세상을 잊음에 과감하여 결연히 떠나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능히 할 수 있다면, 무슨 어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만약 성인이 벼슬에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이라면, 때가 말리고 펴지는 것과 도가 사라지고 자라는 것에 따라서, 세상을 걱정하는 마음을 끝내 그만둘 수가 없게 되니, 세상을 구제하는 쓰임에 성인이 나아가는 것이 무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어찌 삼태기를 짊어진 사람이 능히 관여할 수 있는 바이겠는가?”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聖人之道有出有處 便如天地有陰有陽 荷簣之徒見得一邊遺了一邊 所以只知獨善而果於忘世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성인의 도에는 벼슬길에 나가고 물러남이 있는데, 곧 천지에 음양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삼태기를 짊어진 무리는 한쪽을 보면서 다른 한쪽은 빠뜨리니, 이 때문에 단지 홀로 자신을 선하게 할 줄만 알아서 세상을 잊는 것에 과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聖人之心不能一日忘天下 亦如天地之心不能一日忘萬物 天地生物之心不以閉塞成冬之時而息 聖人道濟天下之心不以天地閉賢人隱之時而息也 聖人不能忘世之心 荷簣初聞其磬聲而知之 然觀其旣而曰以下之言 則非深知聖人之心者 要之 果於忘世之人 豈能深知聖人所以不能忘世之心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성인의 마음은 하루라도 천하를 잊지 못하는데, 이 역시 천지의 마음이 하루라도 만물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은 만물이 닫혀 겨울이 되는 때로 인하여 그치지 않고, 성인이 도로써 천하를 구제하는 마음은 천지가 닫혀 현인이 숨는 때로 인하여 그치지 않는 법이다. 성인이 세상을 잊지 못하는 마음은 삼태기를 멘 사람이 경쇠 소리를 처음 듣고서 바로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旣而曰 이하의 그 말을 살펴보면, 성인의 마음을 깊이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요컨대 세상을 잊는 데에 과감한 사람이 어찌 능히 성인께서 세상을 잊지 못하는 마음을 깊이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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