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②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4 - 헌문(憲問) - ② | |
| 1 | 克伐怨欲을 不行焉이면 可以爲仁矣잇가 子曰 可以爲難矣어니와 仁則吾不知也케라. |
| 2 | 극벌원욕을 불행언이면 가이위인의잇가 자왈 가이위난의어니와 인즉오부지야케라. |
| 3 | (헌이 묻기를)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을 행하지 않으면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仁)이 될지는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
| 4 | 克・伐・怨・欲行われざる、以て仁と為す可きか。子曰く、以て難しと為す可し。仁は則ち吾知らざるなり。 |
| 5 | The Master said, “This may be regarded as the achievement of what is difficult. But I do not know that it is to be deemed perfect virtue.”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② |
| 克伐怨欲不行焉 可以爲仁矣 (헌이 묻기를) “이기려 하고 자랑하고 원망하고 탐욕을 행하지 않으면 인(仁)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니, 此亦原憲以其所能而問也 克 好勝 伐 自矜 怨 忿恨 欲 貪欲 이 또한 원헌이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바로써 물은 것이다. 克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고, 伐은 스스로를 자랑하는 것이며, 怨은 화를 내고 한스러워 하는 것이다. 欲은 탐욕을 말한다. 慶源輔氏曰 克只訓勝 如克敵克己之爲勝敵勝己 是也 然單言之 則爲好勝 如忮克克伐 是也 伐者 傷殘之意 自矜乃所以自殘也 忿見於外 恨藏於中 內恨外忿 則怨 欲有公私 貪欲則欲之私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克은 그저 이긴다고 뜻풀이 하면, 예컨대 克敵이나 克己가 적을 이긴다거나 자신을 이긴다는 것이 되는 것처럼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나 글자 하나로 뜻을 갖게 말한다면,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되는데, 예컨대 거스르고 이기기를 좋아함이나 이기기를 좋아하고 자랑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伐이란 것은 상하게 하고 해친다는 뜻이니, 스스로를 뽐내면 도리어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 분노는 밖으로 드러나고, 미워함은 안에 감추는데, 안에 미움을 품고서 밖으로 분노를 표출하면, 곧 원망하는 것이다. 欲에는 公과 私가 있는데, 탐욕은 곧 欲 중의 私에 해당한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分言則四事 對擧互言則克伐者 因己所有而生 氣盈也 怨欲者 因己所無而生 氣歉也 推本言之 又皆由有己而生也 호씨가 말하길, “나누어 말하자면, 4가지 일이지만, 대조하여 거론하고 서로 말하자면, 克伐이란 것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바로 인하여 생기는 것으로서, 氣가 넘치는 것이다. 怨欲이란 것은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바로 인하여 생기는 것으로서, 氣가 부족한 것이다. 근본을 미루어 말하자면, 또한 모두 자기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克伐二者只是一病 怨欲二者 亦只是一病 四件是兩件 兩件又只是一件 病根在一欲字 有所欲則貪多而求勝 遂其所欲則誇伐 不遂其所欲則怨恨 쌍봉요씨가 말하길, “克伐이란 두 가지는 그저 하나의 병폐일 뿐이고, 怨欲이란 두 가지도 역시 그저 하나의 병폐일 따름이다. 4개는 두 개이고, 두 개는 또 그저 한 건일 따름이니, 병폐의 근원이 바로 하나의 欲자에 있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탐욕이 많아지고 남 이기기를 구하는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면 곧 과시하고 자랑하는 것이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면 곧 원망하고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可以爲難矣 仁則吾不知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하기에도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인(仁)이 될지는 모르겠다.”라고 하셨다. 有是四者而能制之 使不得行 可謂難矣 仁則天理渾然 自無四者之累 不行不足以言之也. 이 네 가지를 가지고 있되 능히 그것을 통제할 수 있어 그것이 행해지지 못하게 할 수 있다면, 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일컬을 만하다. 仁은 곧 천리가 하나로 혼연하여 스스로 네 가지로 인한 폐단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만 가지고 그렇게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朱子曰 克伐怨欲 只是自就道理這邊看得透 則那許多不待除而自去 若實是看得大底道理 要求勝做甚麽 要去矜誇他人 做甚麽 求仁而得仁 又何怨 怨箇甚麽 耳目口鼻 四肢之欲 惟分是安 欲箇甚麽 見得大處分明 這許多小小病痛 都如氷消凍釋 無有痕迹矣 若只是遏在胸中不行 畢竟是有這物在裏 才說無 便是合下掃去 不容他在裏 譬如一株草剗去而留其根 與連其根剗去 此箇意思如何 而今人於身上有不好處 須是合下便剗去 若只是在人面前不行 而此箇根苗常留在裏 便不得 주자가 말하길, “克伐怨欲은 그저 스스로 道理 이쪽으로 나아가 투철하게 살펴본다면, 저 수많은 것들이 제거함을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제거될 것이다. 만약 실제로 큰 도리를 살펴볼 수 있었다면, 남 이기기를 구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가서 남에게 뽐내고 자랑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仁을 구하다가 仁을 얻었다면, 또 어찌 원망할 것이며, 무엇을 원망할 것인가? 이목구비와 사지의 욕망이 오직 분수에 걸맞기만 하면 이를 편안해 한다면, 또 무엇을 바랄 것인가? 큰 부분을 분명하게 알아보았다면, 이러한 수많은 소소한 병통들은 모두 마치 얼음이 녹고 언 것이 풀어지듯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만약 그저 마음속에 억눌러서 행하지 않을 뿐이라면, 필경은 이 사물이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없다고 조금이라도 말하려면, 곧 원래부터 쓸어 제거하여 그것을 내 안에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비유하자면, 풀 한 그루를 베어 없애면서 그 뿌리를 남겨놓는 것과 그 뿌리까지 잘라 제거하는 것은 이런 의미가 각자 어떠한가?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제 몸에 좋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본래부터 곧바로 잘라냈을 것이다. 만약 그저 다른 사람 면전에서만 행하지 않을 뿐 이러한 뿌리와 싹을 항상 내 안에 남겨둔다면, 곧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克伐怨欲不行 所以未得爲仁者 如面前有一事相觸 雖能遏其怒 畢竟胸中有怒在 所以未得爲仁 克伐怨欲이 행해지지 않는 것만으로 아직 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예컨대 면전에 일이 하나 있어 서로 부딪힐 적에, 비록 그 노여움을 억누를 수는 있을지라도, 필경은 흉중에 노여움이 남아있는 것이니, 이 때문에 아직 仁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南軒張氏曰 克伐怨欲不行 亦可謂能制其私欲者矣 然克伐怨欲之根猶在也 若夫仁者之心 則克伐怨欲 無自而萌焉 故制之於流未若澄之於源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克伐怨欲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역시 그 사욕을 능히 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克伐怨欲의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만약 저 어진 사람의 마음이라면, 克伐怨欲이 말미암아 싹틀 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물흐름에서 통제하는 것은 그 근원에서 맑게 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憲兩問夫子答之 皆是因其所已能 而進之以其所未能 경원보씨가 말하길, “원헌이 두 번 묻고 공자께서 대답하셨는데, 모두가 그가 이미 능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그가 아직 능하지 못한 것을 가지고 그를 나아가게 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 程子曰 人而無克伐怨欲 惟仁者能之 有之而能制其情使不行 斯亦難能也 謂之仁則未也 此聖人開示之深 惜乎 憲之不能再問也 정자왈, “사람이면서 호승심, 과시욕, 원망, 사욕이 없는 것은 오직 어진 사람만이 그것을 할 수 있다. 그것들을 가지고 있되 능히 그 감정들을 통제하여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이것 역시 해내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을 일컬어 어진 일이라고 한다면 아직 안 된다. 이것은 성인께서 깊이 열어서 보여준 것인데, 애석하구나! 원헌이 다시 묻지 못한 일이!” 라고 하였다. 程子曰 人無克伐怨欲四者 便是仁也 只爲原憲著一箇不行 不免有此心 但不行也 故孔子謂可以爲難 此孔子著意告原憲處 欲他有所啓發 他承當不得 不能再發問也 孔門如子貢者 便能曉得聖人意且如 曰女以予爲多學而識之歟 對曰然 便問曰 非歟 孔子告之曰 非也 予一以貫之 原憲則不能也 정자가 말하길, “사람에게 克伐怨欲 이 네 가지가 없다면 곧 仁이다. 그저 원헌은 하나의 행하지 않음에만 착안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마음이 있음을 면할 수 없고, 다만 행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어려운 것으로 여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공자께서 의식적으로 원헌에게 알려준 부분으로서, 그가 계발하는 바가 있기를 바란 것이지만, 그는 이어서 감당할 수 없었고, 재차 발문하지 못했던 것이다. 공문에서 자공 같은 사람이었다면, 곧 성인의 뜻을 능히 알아차리고서 또한 이렇게 했을 것이다. 즉, 공자께서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기억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였고, 곧이어 ‘아닙니까?’라고 하자, 공자께서 그에게 일러 말하길, ‘아니다. 나는 일이관지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원헌은 이렇게 하지 못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若無克伐怨欲 固爲仁已 惟顔子而上乃能之 만약 호승심, 과시욕, 원망, 탐욕이 없다면, 본래부터 仁이 될 따름이다. 오직 안자 위로만 마침내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것이다. 朱子曰 明道說 原憲承當不得 所以不復問 他非獨是這句失問 如邦有道穀邦無道穀 恥也 也失問 주자가 말하길, “명도선생께서 말하길, 원헌은 이어서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 묻지 않았는데, 그는 단지 이 구절에 대해서만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예컨대 ‘나라에 도가 있는데 녹봉만 받아먹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녹봉을 받아먹으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구절에 대해서도 질문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問原憲也不是箇氣昏力弱底人 何故如此 曰 他直是有力 看他孤潔節介 卒未易及 只是見識自如此 若子路見識較高 他問時須問到底 然敎原憲去爲宰從政 未必如子路冉求之徒 若敎子路冉求做原憲許多孤介 也做不得 孟子曰 人有不爲也 而後可以有爲 原憲却似只要不爲 却不理會有爲一節 누군가 묻기를, “원헌도 기가 혼미하고 힘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슨 까닭으로 이와 같았던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는 그야말로 힘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고결한 절개를 살펴보면 끝내 쉽게 미칠 수 없었다. 다만 그의 식견이 저절로 이와 같았을 뿐이다. 자로의 경우라면 식견이 비교적 높았는데, 그는 질문할 때 반드시 끝까지 물었다. 그러나 원헌으로 하여금 가서 家宰가 되어 정사에 종사하도록 하였을 때, 반드시 자로나 염구의 무리처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약 자로나 염구로 하여금 원헌의 수많은 고결한 기개를 행하도록 하였다면 이 또한 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맹자가 말하길, 사람에게 하지 않음이 있은 연후에 훌륭한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원헌은 그저 하지 않음만 하려 하였을 뿐이고 도리어 훌륭한 일을 도모하는 一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인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憲之所以僅能其難 固以其狷介有守 而至於不能復有所問 則亦以狷介之守痼之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원헌이 단지 그 어려운 것에 능했던 까닭은 본래 그 견자의 기개를 지킴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다시 묻는 바가 있지 못했던 것에 이르러서도 역시 견자의 기개를 지킴이 그것을 가로막았기(痼=錮)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或曰 四者不行 固不得爲仁矣 然亦豈非所謂克己之事 求仁之方乎 曰 克去己私以復乎禮 則私欲不留而天理之本然者得矣 若但制而不行 則是未有拔去病根之意 而容其潛藏隱伏於胸中也 豈克己求仁之謂哉 學者察於二者之間 則其所以求仁之功 益親切而無滲漏矣 어떤 사람이 말하길, “네 가지가 행해지지 않는 것만으로는 본래 어진 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어찌 이른바 극기의 일이나 인을 구하는 방도가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대답하길, “자기의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고 제거함으로써 예에 돌아가면 곧 사욕은 남아있지 않게 되고, 천리의 본연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그저 통제하여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이것은 병의 근원을 뽑아 제거해버린다는 의미가 아직 있지 아니한 것이고, 또한 흉중에 그것이 잠복하여 숨어있음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어찌 자신을 이기고 인을 추구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배우는 사람이 이 두 가지 사이를 잘 살핀다면, 곧 인을 추구하는 공력이 더욱 친밀하고 절실하게 되고 빠뜨리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克己 如誓不與賊俱生 克伐怨欲不行 如薄伐玁狁至于太原 但逐出境而已 주자가 말하길, “克己란 도적과 더불어 같이 함께 살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과 같고, 克伐怨欲을 행하지 않는 것은 오랑캐를 살살 토벌하여 태원에 이르렀으나 단지 국경 밖으로 쫓아낼 뿐인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克己者是從根源上一刀兩斷 便斬切了 更不復萌 不行底 只是禁制他不要出來 那欲爲之心未嘗忘也 克己라는 것은 근원에서부터 일도양단하여 곧바로 잘라내어 버려서 더 이상 다시는 싹트지 않게 하는 것이다.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저 그것이 나오지 않도록 금지하고 통제하는 것으로서, 저 욕망은 그것 때문에 마음을 써서 일찍이 잊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雙峯饒氏曰 拔去病根有兩說 一是積漸消磨 一是勇猛決去 平居莊敬涵養 此積漸消磨法也 臨事省視克己 此勇猛決去法也 쌍봉요씨가 말하길, “병의 근원을 뽑아 제거하는 것에는 두 가지 말씀이 있는데, 하나는 점점 쌓아서 녹이고 갈아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용맹하게 결연히 제거하는 것이다. 평소 거저하면서 장중하고 공경하면서 함양하는 것, 이것은 積漸消磨法이고, 일에 임하여 살펴서 보고 극기하는 것, 이것은 勇猛決去法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制其情而不行 與顔子四勿 若相似而實不同 四勿者 分辨於天理人欲之間 而一循乎天理 不行者 禁制於人欲已發之後 而不循乎人欲 用力於初分之際者易 用力於已發之後者難 此所以雖不許其仁而亦許其難也 苟志不勝氣 則藏伏於內者 勃然而出 其難也有時而不可恃矣 호씨가 말하길, “그 情을 절제하여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자의 四勿과 더불어 서로 비슷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같지 않다. 四勿이라는 것은 천리와 인욕의 차이를 분별하여 한결같이 천리를 따르는 것이고, 不行이라는 것은 인욕이 이미 발현된 후에 금하고 절제하여 인욕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처음 분간하는 즈음에 힘을 쓰는 것은 쉽고, 이미 발현된 이후에 힘을 쓰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이것이 바로 비록 그것을 仁하다고 인정해주지는 않더라도 또한 그것을 어렵다고 인정해주는 까닭이다. 만약 뜻이 氣를 이기지 못한다면, 안에 숨어서 엎드리고 있던 것이 갑자기 뛰쳐나오는데, 그 어려움도 어떤 때에는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克伐怨 皆生於欲 仁者純乎天理而無欲者也 無欲則自然無克伐怨矣 顔子私欲淨盡 可以爲仁 憲之力制其欲者 可以爲難 운봉호씨가 말하길, “호승심, 과시욕, 원망은 모두 욕망에서 생기는데, 仁이라는 것은 천리에 순수하여 욕심이 없는 것이다. 욕심이 없으면 자연적으로 克伐怨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안자는 사욕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니 仁이라고 여길 수 있고, 원헌은 그 욕심을 힘써 억제하는 것이니 어렵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
'論語♡集注'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④ (0) | 2026.06.14 |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③ (0) | 2026.06.14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① (0) | 2026.06.14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㉚ (0) | 2026.06.14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㉙ (0) | 2026.06.1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