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㉑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3 - 자로(子路) - ㉑ | |
| 1 | 子曰 不得中行而與之인댄 必也狂狷乎인저 狂者는 進取오 狷者는 有所不爲也니라. |
| 2 | 자왈 부득중행이여지인댄 필야광견호인저 광자는 진취오 견자는 유소불위야니라. |
| 3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서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뜻이 높은) 미친 사람이나 (절개가 굳은) 고집 센 사람을 택할 것이다. (뜻이 높은) 미친 사람은 진취성이 있는 사람이고, (절개가 굳은) 고집 센 사람은 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
| 4 | 子曰く、中行を得て之に与せずんば、必ずや狂狷か。狂者は進みて取り、狷者は為さざる所有るなり。 |
| 5 | The Master said, “Since I cannot get men pursuing the due medium, to whom I might communicate my instructions, I must find the ardent and the cautiously-decided. The ardent will advance and lay hold of truth ; the cautiously-decided will keep themselves from what is wrong.”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㉑ |
| 子曰 不得中行而與之 必也狂狷乎 狂者進取 狷者有所不爲也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중도(中道)를 행하는 사람을 얻어서 함께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뜻이 높은) 미친 사람이나 (절개가 굳은) 고집 센 사람을 택할 것이다. (뜻이 높은) 미친 사람은 진취성이 있는 사람이고, (절개가 굳은) 고집 센 사람은 하지 않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行 道也 狂者 志極高而行不掩 狷者 知未及而守有餘 蓋聖人 本欲得中道之人而敎之 然旣不可得 而徒得謹厚之人 則未必能自振拔而有爲也 故不若得此狂狷之人 猶可因其志節而激厲裁抑之 以進於道 非與其終於此而已也 中行의 行은 道라는 뜻이다. 狂者는 뜻이 지극히 높으나 행동이 가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狷者는 지식은 미치지 못하나 지키는 것은 남음이 있는 사람이다. 아마도 성인께서는 본래 中道의 선비를 얻어서 가르치고자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기왕에 그러한 사람을 얻을 수 없어서 단지 삼가기를 두텁게 하는 사람을 얻는다면, 그들이 스스로 떨쳐 일어나 훌륭한 일을 해낸다고 기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광자나 견자 같은 사람들을 얻는 것만 못한 것이니, 오히려 그 뜻과 절개에 따라 격려하고 재단하고 억제함으로써 도에 나아가도록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들과 더불어 여기에서 끝내고자 할 따름은 아니다. 南軒張氏曰 中行謂中道上行者 남헌장씨가 말하길, “中行은 중도 위에서 행하는 사람을 말한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道猶路也 故行亦道也 호씨가 말하길, “道는 길과 같기 때문에, 行 역시 道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狂者知之過 狷者行之過 주자가 말하길, “광자는 앎이 지나친 것이고, 견자는 실행이 지나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行不掩非全然行不顧 言如說得十分 只行得五七分 這五七分蓋那十分不過耳 쌍봉요씨가 말하길, “실행이 그 말을 덮어 가리지 못한다는 것은 완전히 그 실행함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100%를 말했다면 겨우 50 내지 70%만 실행한다는 것이니, 이 50 내지 70%로는 저 100%를 덮어 가릴 수 없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志節: 狂者之志 狷者之節 광자의 뜻(志)와 견자의 절개라는 것이다. 朱子曰 謹厚者 雖是好 又無益於事 故有取於狂狷者 又各墮於一偏 中道之人 有狂者之志 而所爲又精密 有狷者之節 又不至過激 此極難得之人 주자가 말하길, “근후한 자는 비록 좋기는 하지만 또한 일에는 유익함이 없다. 그래서 광자와 견자를 취하는 것이지만, 또한 각자 어느 한 편의 치우침에 떨어진 것이다. 中道의 사람은 광자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하는 바가 또한 정밀하고, 견자의 절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또한 과격함에 이르지 않으니, 이는 지극히 얻기 어려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狷者雖非中道 然有筋骨 其志孤介 知善之可爲而爲之 知不善之不可爲而不爲 直是有節操 狂者志氣激仰 聖人本欲得中道而與之 晩年磨來磨去 難得這般恰好底人 如狂狷 尙可因其有爲之資裁而歸之中道 견자는 비록 中道의 선비는 아니지만, 그러나 筋骨이 있고 그 뜻은 외롭고 기개가 있으며, 善이 행할 만함을 알고서 그것을 행하고, 不善이 행해서는 아니 됨을 알고서 행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節操가 있는 것이다. 광자는 뜻과 기개가 격앙되어 있다. 성인께서는 본래 중도인 선비를 얻어서 그와 함께 하고자 하였지만, 만년까지 이리저리 고르고 골랐어도 이렇게 아주 딱 좋은 사람을 얻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데 예컨대 광자나 견자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질을 바탕으로 하여 재단한다면 中道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雙峯饒氏曰 或解集註 激厲裁抑以爲激厲狷者裁抑狂者 是不然 狂者志極高 是過處 行不掩 是不及處 狷者知未及 是不及處 守有餘 是過處 二者各有過不及 於過處裁抑之使之俯而就中 於不及處激厲之使之 跂而及中 如此則蓋近道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혹자는 집주의 激厲裁抑을 견자를 격려하고 광자를 재단하여 억제하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이는 그런 것이 아니다. 광자는 뜻이 지극히 높은데, 이는 지나친 부분이고, 실행은 말을 덮어가리지 못하는데, 이는 미치지 못한 부분이다. 견자는 앎이 미치지 못하는데, 이는 미치지 못한 부분이고, 지킴에는 여유가 있는데, 이는 지나친 부분이다. 견자나 광자 모두 각자 지나침과 못 미침이 있으니, 지나친 부분에 대해서는 재단하고 억제하여 그로 하여금 굽혀서 중도에 나아가도록 하고, 미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격려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발돋움하여 중도에 미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다면, 대체로 도에 가깝게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狂狷自是病處 聖人所以取之者 以狂者有進取之志 狷者不爲非理之事 雖有病處 亦有好處 尙可敎以中道 若徒謹厚者 只是怕事底人 雖不爲惡亦不足與爲善 反不若狂狷之可取也 狂狷은 그 자체로 병통인 부분이지만, 성인께서 이것들을 취하신 까닭은 광자에게는 진취적인 뜻이 있고, 견자는 이치가 아닌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병통인 부분이 있다 할지라도 또한 좋은 부분도 있어서, 오히려 중도로써 가르칠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냥 근후하기만 한 사람은 그저 일을 무서워하는 사람일 뿐이니, 비록 악을 행하지는 않을지라도 또한 함께 더불어 선을 행하기에 부족하므로, 도리어 광자나 견자를 취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進取 進而有爲以取於善也 狂者知之過而行不及 狷者行之過而知不及 得聖人裁抑之激厲之 使狂者力行以踐之 而其見不荒 狷者致知以明之 而其守不狹 則中道庶乎可得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진취란 나아가서 훌륭한 일을 함으로써 善을 취하는 것이다. 광자는 앎이 지나치되 실행은 미치지 못하는 것이고, 견자는 실행이 지나치되 앎은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성인께서 그들을 재단하여 억제하고 격려함으로써 광자로 하여금 힘써 행하여 실천하되 그 식견이 거칠지 않게 하고, 견자로 하여금 앎을 지극히 하여 분명히 밝히되 그 지킴이 좁지 않게 한다면, 中道는 거의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孟子曰 孔子豈不欲中道哉 不可必得 故思其次也 如琴張曾晳牧皮者 孔子之所謂狂也 其志嘐嘐然曰 古之人古之人 夷考其行而不掩焉者也 狂者 又不可得 欲得不屑不潔之士而與之 是狷也 是又其次也 맹자가 말하길, “공자라고 어찌 중도의 선비를 바라지 않았겠는가? 그런 사람을 반드시 얻을 수는 없었기에 그 다음을 생각하셨던 것이다. 예컨대 금장, 증석, 목피와 같은 사람들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소위 狂이라는 사람은 그 뜻이 높고 커서 말만 하면 ‘옛사람이, 옛사람이’ 운운하지만, 그 행동을 평범하게 살펴보면, 말을 따라가 가려주지 못하는 사람이다. 광자를 또 얻을 수 없다면, 깨끗하지 못한 일을 기꺼이 하지 않는 사람을 얻어서 그와 함께하고자 하였으니, 이 사람이 바로 狷者이고, 이런 사람은 또한 그 다음이다.”라고 하였다. 以上皆說狂者 이상은 모두 광자를 말한 것이다. 又次謂狷者 又次이란 견자를 말한 것이다. 勉齋黃氏曰 孔子之門從遊之士 皆極天下之選 夫子猶歎中行之難得 思狂狷者而與之 蓋進道之難如此 狂狷雖不同 而其力量皆足以進於道者也 今持不逮之資而悠悠以進於學 是皆夫子之所棄也 면재황씨가 말하길, “공자의 문하에서 따르며 노닌 선비들은 모두 천하에 나아가 고른 사람들인데도, 공자께서는 도리어 中行之士를 얻기 어렵다고 탄식하면서 광자나 견자를 생각하여 그들과 함께하고자 하였으니, 대체로 도에 나아가기가 어려움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광자와 견자는 비록 같지 않지만, 그들의 역량은 모두 충분히 도에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다. 지금은 따라잡지 못하는 자질을 붙잡고서도 유유히 배움에 나아가고 있는데, 이는 바로 모두 공자께서 버리신 바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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