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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⑲

by 권석낙 2026. 6. 14.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⑲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3 - 자로(子路) - ⑲
1樊遲問仁한대 子曰 居處恭하며 執事敬하며 與人忠을 雖之夷狄이라도 不可棄也니라.
2번지문인한대 자왈 거처공하며 집사경하며 여인충을 수지이적이라도 불가기야니라.
3번지가 인(仁)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히 하고, 남과 더불어 있을 때에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비록 오랑캐의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4樊はん遅ち仁じんを問とう。子し曰いわく、居おる処ところ恭きょう、事ことを執とりて敬けい、人ひとに与まじわりて忠ちゅうなるは、夷い狄てきに之ゆくと雖いえども、棄すつ可べからざるなり。
5Fan Ch'ih asked about perfect virtue. The Master said, “It is, in retirement, to be sedately grave; in the management of business, to be reverently attentive; in intercourse with others, to be strictly sincere. Though a man go among rude, uncultivated tribes, these qualities may not be neglected.”  

 

논어집주(論語集注) - 13 - 자로(子路) - ⑲
樊遲問仁 子曰 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
번지가 인(仁)에 대하여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거처함에 공손히 하고, 일을 집행할 때는 경건히 하고, 남과 더불어 있을 때에는 정성을 다하는 것을 비록 오랑캐의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라고 하셨다.

恭主容 敬主事 恭見於外 敬主乎中 之夷狄不可棄 勉其固守而勿失也
공손함은 용모에 주안점을 두고, 경건함은 일에 주안점을 두어서, 공손함은 밖으로 드러나고, 경건함은 가운데를 주장한다. 오랑캐의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굳게 지키기에 힘써서 잃지 말라는 것이다.

朱子曰 發於外者 比主於中者較大 蓋必充積盛滿而後發於外 然主於中者 却是本
주자가 말하길, “밖으로 발현되는 것은 가운데를 주장하는 것에 비하여 비교적 크다. 대체로 반드시 채워서 쌓이고 담아서 가득찬 이후에 밖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운데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도리어 근본이다.”라고 하였다.

敬專言 如修己以敬 只偏言 是主事
敬은 오로지 말하자면 경으로 자신을 수양함과 같고, 그저 치우쳐서 말하자면 일을 주관하는 것이다.

自誠身而言 則恭較緊 自行事而言 則敬爲切
제 몸을 정성스럽게 하는 것으로부터 말하자면, 恭이 비교적 더 긴요하고, 일을 행하는 것으로부터 말하자면, 敬이 더 절실한 것이다.

問如何雖之夷狄不可棄 曰 道不可須臾離 可離非道 須是無間斷 方得 若有間斷 此心便死了 在中國是這箇道理 在夷狄也只是這箇道理
누군가 묻기를, “어째서 비록 이적의 땅에 가더라도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道는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 있다면 道가 아니다. 반드시 중간에 끊어짐이 없어야만 비로소 되는 것이다. 만약 중간에 끊어짐이 있다면, 이 마음은 곧바로 죽어버리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도 이 하나의 도리이고, 이적의 땅에 있어서도 그저 이 도리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居處指幽獨而言 未有事者也 執事指應事而言 未涉乎人也 與人指接物而言 則涉乎人矣 能恭敬而忠 則天理常行而人欲不萌矣 又能無適而不然 則流行而無間斷 仁之爲道 孰外乎此
면재황씨가 말하길, “居處는 그윽하게 홀로 있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니, 아직 일이 있지 않은 것이다. 執事는 일에 대응하는 것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니, 아직 사람과 접한 것은 아니다. 與人이란 남과 접하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남과 접촉한 것이다. 능히 恭敬하면서도 忠할 수 있다면, 천리가 항상 행해지고 인욕은 싹트지 않을 것이다. 또한 어디를 가더라도 그렇지 않음이 없다면, 천리가 유행하면서도 중간에 끊어짐이 없을 것이니, 仁의 방도 중에 어떤 것이 이것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陳氏曰 敬工夫細密 恭氣象濶大 敬意思卑屈 恭意思尊嚴 但恭只是敬之見於外者 敬只是恭之存於中者 敬與恭不是二物 如形影然 未有內無敬而外能恭者 亦未有外能恭而內無敬者
진씨가 말하길, “敬의 공부는 세밀하고, 恭의 기상은 광활하고 원대하다. 敬의 뜻은 자신을 낮추고 구부린다는 것이고, 恭의 의미는 남을 높이고 엄하게 한다는 것이다. 다만 恭은 그저 敬이 밖으로 발현된 것이고, 敬은 그저 恭이 마음속에 보존된 것이다. 敬과 恭은 두 가지 사물이 아니라 마치 형체와 그림자처럼 그러한 것이다. 안에 敬이 없으면서 밖으로 능히 恭할 수 있는 자는 일찍이 없었고, 또한 밖으로 능히 恭할 수 있지만 안에 敬이 없는 자도 일찍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無事時 此心無所作爲 只可於容貌上著箇恭 及至事來 則此心便要應事 心若不在事上 爲事便鹵莽 所以著箇敬 至於接人 則此心須視人猶己 不可容些欺僞 所以著箇忠
쌍봉요씨가 말하길, “일이 없을 때, 이 마음은 행하는 바가 없으니, 그저 용모 위에 하나의 恭을 드러낼 수 있을 뿐이다. 일이 다가옴에 이르면, 곧 이 마음은 바로 일에 응해야 하는데, 마음이 만약 일 위에 없다면, 일을 하는 것이 황폐해진다. 그래서 하나의 敬을 세워서 드러내는 것이다. 남과 접촉함에 이르면, 이 마음은 반드시 남을 자기처럼 볼 것이니, 조그만 속임이나 거짓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忠을 확립하여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天體物而不遺 仁體事而無不在 於居處時 容貌恭肅 則仁便在居處上 於執事時 此心戰兢 惟恐失之 則仁便在應事上 於與人時 能盡此而無所欺僞 則仁便在與人上 若能常常如此 雖之夷狄而不棄此 仁便無間斷
하늘은 만물의 본체를 이루되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고, 仁은 일의 본체를 이루되 어디라도 존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居處할 때에 있어 용모가 공손하고 엄숙하면, 仁이 곧 居處함 위에 있는 것이고, 일을 붙잡을 때에 있어서는 이 마음이 전전긍긍하여 오직 그것을 잃을까 걱정하면, 仁은 곧 일에 응하는 위에 있는 것이다. 남과 함께 할 때에 있어서는 능히 이것을 다할 수 있으면서 속이거나 거짓되게 하는 바가 없다면, 仁은 곧 남과 함께 하는 것 위에 있는 것이다. 만약 항상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비록 오랑캐의 땅에 간다 할지라도 이것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仁은 곧 중간에 끊어짐이 없을 것이다.

新安陳氏曰 此與答仲弓問仁章 當參看 彼以敬恕言 此以恭敬忠言 蓋居處恭 靜時敬也 執事敬 動時敬也 忠卽恕之體 恕卽忠之用也 一而已矣 動靜恭敬 表裏忠恕 又能持守而無間斷 則私意何所容而仁豈外是哉
신안진씨가 말하길, “이것은 중궁이 仁을 물은 것에 대하여 대답한 장과 더불어서 마땅히 섞어서 보아야 한다. 저것은 敬과 恕로써 말한 것이고, 이것은 恭, 敬, 忠으로 말한 것이다. 대체로 거처할 적에 恭遜하다는 것은 고요할 때의 敬이고, 일을 붙잡을 때 恭敬한다는 것은 움직일 때의 敬이다. 忠은 곧 恕의 體이고, 恕는 곧 忠의 用이니, 하나일 따름이다. 動靜으로 恭과 敬을 구분하고, 겉과 속으로 忠과 恕를 나눈 것이다. 또한 능히 붙잡아 지켜서 중간에 끊어짐이 없게 할 수 있다면, 私意가 어디에서 용납될 것이며, 仁도 어찌 이것을 벗어나겠는가?”라고 하였다.

○ 程子曰 此是徹上徹下語 聖人初無二語也 充之 則睟面盎背 推而達之 則篤恭而天下平矣 胡氏曰 樊遲問仁者三 此最先 先難次之 愛人其最後乎
정자가 말하길, “이것은 위아래에 다 통하는 말이다. 성인은 처음부터 두 말하는 일이 없었다. 이것을 내 몸에 가득 채운다면, 얼굴이 빛나고 등에 흘러넘치는 것처럼 덕스런 모습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을 미루어 천하에 이르게 하면, 공손함이 독실하게 되어 천하가 평안해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씨가 말하길, “번지가 인에 관해 질문한 것이 3번이다. 이것이 제일 먼저고,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나중에 얻으라는 것이 그 다음이며,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이 아마도 제일 나중일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徹上徹下 謂凡聖皆是此理 小則樊遲可用 大則堯舜不過
진씨가 말하길,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한다는 것은 범인과 성인 모두 이러한 이치라고 말한 것이다. 작은 것은 번지라도 쓸 수 있지만, 큰 것은 요순이라도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聖人之言 貫徹上下 此數言自始學至成德 皆不過如此 近而睟盎於一身 遠而治平乎天下 亦不外乎此 皆是徹上徹下
경원보씨가 말하길, “성인의 말씀은 위아래를 관철하는데, 이 몇 마디 말씀은 처음 배우는 사람부터 덕을 이룬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음에 불과한 것이다. 가깝게는 덕이 내 한 몸에 충만하고 빛나며, 멀게는 천하를 평화롭게 다스리는 것도, 또한 이것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 모두 위아래로 통한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胡氏說三者先後 雖無明證 看來是如此 若未嘗告以恭敬忠 則所謂先難者 將何從下手乎 至於愛人 則又以其發於外者言之
주자가 말하길, “호씨는 3가지의 선후를 말하였는데, 비록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내가 보기에도 이와 같다. 만약 일찍이 恭, 敬, 忠으로 알려준 적이 없었다면, 이른바 먼저 어려운 것을 한다는 것은 장차 어디에서부터 착수할 것인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이르면, 또한 그것이 밖으로 발현된 것으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卽此三者 便是先難底事 至於愛人 又是從恭敬忠上發出去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세 가지 것에 나아가는 것이 바로 어려운 것을 먼저 하는 일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이르면, 또 다시 恭과 敬과 忠의 위로부터 발현되어 나간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諸子問仁 而所答各異者 因其所稟之資而發也 樊遲問仁而所答各異者 因其所學之至而發也 聖人敎人 猶化工之妙 物各付物 於此見之
각헌채씨가 말하길, “여러 제자들이 仁을 물었는데, 대답한 바가 각자 다른 것은 그들이 품부받은 자질에 따라 발언했기 때문이다. 번지가 仁을 물었는데, 대답한 바가 각자 달랐던 것은 그가 배운 바가 다다른 정도에 따라 발언했기 때문이다. 성인께서 사람을 가르치신 것은 마치 조물주의 오묘함과 같아서 만물에 각자 제 이치를 부여하니, 여기에서 그것을 알아볼 수 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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