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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學♡書堂

翰墨淸緣

by 권석낙 2024. 2. 22.

癸巳 秋分節 時習齋 南窓下 靑泉 鄭雲在 書 35 ×135cm

 

翰墨淸緣

한묵청연

 

글과 글씨로 청아淸雅한 인연을 맺는다.

문필로 맺은 맑고 깨끗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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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묵은 말 그대로 풀이하면 글과 먹을 가리킨다. 한묵연은 즉 글로 맺은 인연이란 뜻이다. 한묵연은 다른 말로 묵연이라고도 한다. 묵연에 관련되는 말로 옛날에는 한묵인연(翰墨因緣), 한묵청연(翰墨淸緣, 글로 맺은 맑은 인연), 한묵방연(翰墨芳緣, 글로 맺은 꽃다운 인연), 결한묵연(結翰墨緣, 한묵연을 맺다), 금석인연(金石因緣, 금석 문자로 맺은 인연), 문자인연(文字因緣, 문자로 맺은 인연), 금석연(金石緣) 같은 말도 썼다.

 

조희룡이 자신의 대나무 그림에 찍은 <한묵연>은 스승인 추사와 관련이 깊은 도장이다. 특히 이 도장은 추사 뿐만 아니라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은 물론 이 시기에 조선에서 추사를 중심으로 그와 교유한 벗들과 문하의 학예인 사이에 특별히 많이 사용된 인장이다. 이 인장은 이들 사이에 서로 그대로 본떠 새기는 모인(摹印)을 한 사례도 많다. 헌종 때 편찬된『보소당인존』을 보면 비슷한 종류의 인장이 많이 실려 있어 연원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즉 소치 허련이 사용한 <한묵연>, 추사의 <추사한묵(秋史翰墨)>, 이재 권돈인의 <이재한묵(彛齋翰墨)>인장은 같은 계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추사와 자하 신위, 그의 제자들인 우봉 조희룡이 나란히 사용했던 <한묵연> 인장은 『보소당인존』을 검토해 보면 역시 동일한 계통이라고 생각된다. 신위의 경우는 옹방강의 <한묵연> 인장을 본떠 새겨 사용하였다.

 

조희룡은 글씨와 그림에서 추사와 빼쐈을 정도로 흡사해 어느 것이 추사이고 어느 것이 우봉(조희룡의 호)인지를 판단하기 힘들게 한다. 실제로 두 사람의 작품은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한묵연> 인장은 그런 점에서 추사의 작품과 조희룡의 작품을 구별하게 해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그림이 바로 그렇다. <한묵연> 인장이 찍힌 우봉의《묵죽도》를 살펴보자. 왼쪽 아래에 담묵으로 대나무 줄기와 잎을 촘촘하게 그리고, 가운데 한 줄기를 높게 끌어내 오른쪽 공간을 비웠다. 그리고 그곳에 화제를 적으며 첫머리에 이 <한묵연> 인장을 찍고 화제가 끝나는 쪽에 <到虛極守靜篤(도허극수정독)> 도장을 찍었다. <도허극수정독>은 『노자』에 나오는 글귀로 ‘완전히 비우는데 이르고, 고요함을 굳건히 지킨다’는 뜻이다. 화제를 살펴보자.

 

 

《묵죽도》 28X33㎝, 개인소장

금년 봄에 다계와 더불어 금수오에서 술잔을 주고 받았는데

빽빽한 대숲 사이로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잎들이 나부꼈다.

문득 그 자리에서 대나무 몇 가지를 그렸더니 마치 신취가 얻은 듯하다.

정원의 온 대나무들이 다 나의 스승이다.

홍란음방에서 봄날 그리다

 

<翰墨緣>

今年春 與茶溪對酌於錦繡塢中

竹樹蒙密 微風時至 萬葉紛披

輒寫數枝於席上 如有神會

園中千竿 皆吾師也

紅蘭唫房 春日寫

<到虛極守靜篤>

<한묵연>

금년춘 여다계대작어금수오중

죽수몽밀 미풍시지 만엽분피

첩사수기어석상 여유신회

원중천간 개오사야

홍란금방 춘일사

<도허극수정독>

화제에 보이는 다계는 사람 이름인 듯한데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또 금수오는 비단에 수를 놓은 듯이 아름다운 마을이라 뜻인데 이것 역시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홍란음방이란 조희룡이 쓴 글에 보이는데 그가 꿈속에 붉은 난초가 뜰에 가득한 것을 보고 아들을 얻게 되어 자신의 거처를 「홍란음방」이라고 했다 한다.(조희룡『한와헌제화잡존(漢瓦軒題畵雜存)』) 이렇게 보면 화제의 내용은 다계란 사람과 함께 금수오에서 술잔을 나누다 대나무를 그린 기억을 떠올리고 자신의 거처인 홍란음방에서 이 대나무를 쳤다는 의미가 된다.

 

이 그림을 염두에 두고 지금까지 추사의 작품으로 알려져온 《미가산수도》를 다시 보자. 이 그림은 송나라때 미불, 미우인 부자가 창안한 물기짙은 미가 화법(米家畵法)으로 그린 것으로 언덕 위에 서있는 나무와 물가 띠집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먼 산으로 이어지는 한적한 풍경이 담담하게 그려진 작품이다. 화제를 살펴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미가산수도》 23X34㎝, 개인소장

미가 화법은 새로운 뜻을 전하여,

짙푸른 나무 검은 구름에 마을과 산이 두드러지네.

끝내 붓 끝에 서권기가 있으니,

문인은 으레 형호(荊浩)와 관동(關同)을 꼽지 않는다.

<翰墨緣>

米家畵法傳新意

濃樹黑雲辣闒山

畢竟毫端有書卷

文人例不數荊關

<吟詩入畵中> <한묵연>

미가화법전신의

농수흑운랄탑산

필경호단유서권

문인예불수형관

<음시입화중>

 

이 그림의 화제 머리부분에 <한묵연>이란 인장이 찍혀 있다. 그리고 ‘향설관의 겨울날 한 번 그려보다(香雪館冬日試腕)’이라고 쓴 뒤에 <음시입화중> 인장이 찍혀 있다. <음시입화중>은 ‘시를 통해 그림으로 들어가는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한묵연> 인장은 앞의 대나무 그림에 찍혀 있는 그것과 동일하다. 또 <음시입화중> 도장 역시 조희룡의 다른 그림인《산수죽석도(山水竹石圖)》에도 등장한다. 또한 '향설관(향설관)은 조희룡이 《홍매도(紅梅圖)》 등에서 자주 사용한 당호(堂號)이다. 그렇다고 보면 추사의《미가산수도》로 알려져온 이 그림은 조희룡의 또 다른 작품으로 보아야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작품을 감상하거나 진위를 판별할 때 그림과 글씨의 필치, 내용 뿐 아니라 인장도 매우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이 <한묵연> 인장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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