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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講座

심희수 & 일타홍의 사랑

by 권석낙 2020. 4. 15.

      
      조선 선조(宣祖) 때 좌의정을 지낸 심희수(沈喜壽 1548년(명종3)∼1622년(광해14))와 일타홍(一朶紅)의 시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한 분은 사대부 선비이고, 또 한 분은 기생입니다. 
      조선시대에 선비와 기생의 사랑이야기는 수없이 많지만, 두 분이 처음 만남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사랑을 한 경우는 참 드뭅니다. 
      심희수와 일타홍은 일타홍이 죽을 때까지 함께했습니다.
      심희수와 일타홍의 만남은 극적이었습니다. 
      심희수는 조선 제13대 임금 명종(明宗)의 왕비 인순왕후(仁順王后) 심(沈)씨의 육촌 동생입니다. 
      명문 중의 명문이죠. 하지만 3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엄한 어른이 없이 자라서 벗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심희수는 평소대로 벗들과 함께 재상집 연회에 가서 술 마시고 노니면서 기생을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대부분의 기생들은 인상을 찌푸리고 이들을 피하는데, 
      이날 모인 기생 중 단연 뛰어난 미모와 가무를 겸비한 일타홍은 오히려 심희수의 희롱을 받아주었답니다. 
      심희수는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후일 만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일타홍은 연회가 끝나고 약속한 대로 심희수를 찾아갑니다. 이때 심희수의 나이 15세이고, 
      일타홍의 나이는 분명치 않지만 17세 전후였던가 봅니다. 심희수는 아직 결혼 전이었습니다. 
      일타홍은 인삼으로 유명한 금산의 기생이었습니다. 
      17세에 서울 대갓집 연회에 초청되었다면 미모와 재주를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금은보화로 유혹하는 수많은 벼슬아치들을 뿌리치고 망나니(?) 심희수를 선택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심희수가 ‘용모가 아름다웠고 우스개를 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때문이었을까요.
      長霖(장림, 장마)/일타홍
      十日長霖若未晴 십일장림약미청
      鄕愁蠟蠟夢魂驚 향수납납몽혼경
      中山在眼如千里 중산재안여천리
      堞然危欄默數程 첩연위난묵수정
      열흘이라 긴 장마 개일 기색 없는데
      고향 그리워 꿈결에 날아갔다 놀라서 깨네
      옛 동네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길은 먼 천리
      난간에 기대어 가만히 고향길 헤아려보네
      일타홍은 심희수에게 공부를 하도록 권하고, 정식 결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심희수가 정실부인과 혼인을 한 뒤에도 심희수는 일타홍만 사랑했다고 합니다. 
      일타홍은 심희수에게 5일을 주기로 4일은 정실부인에게 가서 자고 자신과는 하루만 지내기로 약속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타홍을 너무나 사랑한 심희수는 이런 약속을 번번이 깨고 밤이면 밤마다 일타홍을 찾았다고 합니다.
      일타홍은 심희수가 자신에게 너무나 빠져 있어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과거에 급제한 뒤에 나를 찾으라’는 편지를 두고 집을 나왔습니다. 
      이후 심희수는 공부에 더욱 정진해서 21세에 진사시에 급제하고,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일타홍과 다시 만납니다.
      다시 10년이 흘러 심희수는 35세 되던 해에 죄를 얻은 허균의 형 허봉(許篈)을 두둔하다가 임금에게 밉보여 금산(錦山) 군수로 좌천됩니다. 
      금산은 일타홍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일타홍이 갑자기 병이 났습니다. 
      일타홍은 죽음에 임박해서 심희수에게 유언을 합니다. 
      당신과 한평생을 함께 해서 행복했다며 선산에 묻어달라고요. 
      이때 심희수의 나이가 36세이니 일타홍의 나이는 아마도 38세 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시를 한 수 남기고 운명합니다.
      遺詩(유시)/일타홍
      靜靜新月最分明 정정신월최분명
      一片金光萬古淸 일편금광만고청
      無限世間今夜望 무한세간금야망
      百年憂樂幾人情 백년우락기인정
      맑은 밤하늘 초승달 또렷하기도 하구나
      한 줄기 달빛은 천년만년 맑았겠지
      무한한 세상에서 오늘 밤 함께 바라보니
      인생 즐거움과 슬픔 몇 사람의 정일까
      ‘무한(無限)’은 지금도 쓰이는 용어지요. 
      물리적으로 넓다는 뜻도 되지만 시간으로도 멀디 먼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끝 모를 미래까지를 뜻하기도 하지요. 
      그런 무한한 세상에서 오늘 함께 달을 바라보니 보통 인연이 아니겠지요. 
      그런 인연인 당신만을 사랑했다고 일타홍은 죽으면서도 고백을 합니다.
      심희수는 일타홍의 시신을 손수 염하고 일타홍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관을 상여수레(輀車)에 싣고 선영(先塋)이 있는 경기도 고양(高陽)으로 출발합니다. 
      금강나루에 다다랐을 때 마침 가을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려 일타홍의 관을 덮은 붉은 명정이 젖는 모습을 보면서 심희수는 시 한 수를 읊습니다. 
      그 시가 유명한 「만장시(輓章詩)」입니다.
      輓章詩(만장시)/심희수
      一朶芙蓉載輀車 일타부용재이거
      香魂何處去躊躇 향혼하처거주저
      錦江秋雨丹旌濕 금강추우단정습
      疑是佳人別淚餘 의시가인별루여
      한 떨기 연꽃 상여수레에 실려 있는데
      향기로운 영혼은 어딜 가려 머뭇거리나
      비단강 가을비 붉은 명정 적시우니
      아마도 고운 님 이별 눈물인가 보다
      붉은 연꽃. ‘일타홍(一朶紅)’은 한 떨기 붉은 연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심희수의 이 시를 볼 때마다 심희수의 따뜻한 심성이 느껴져 행복합니다. 
      얼마나 사랑하면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요. 그리고 따뜻한 이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은 일타홍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참고로 ‘일타홍(一朶紅)’은 ‘한 떨기 붉은 꽃’이라는 뜻입니다. 일타홍의 정식 기명(妓名)은 ‘취연(翠蓮)’입니다. 
      ‘푸른 연’이라는 뜻인데, 만개해서 ‘붉은 연꽃’이 되었나 봅니다. 
      심희수의 시에 나오는 ‘부용(芙蓉)’은 연꽃의 다른 표현이니 ‘일타 부용’은 ‘한 떨기 연꽃’ 쯤 되겠지요.

일타홍 제단 뒷면. 일타홍과 심희수의 시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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