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그 발거름을 어지러이 하지 마라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거름은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는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애송한 시로, 해방 직후 많은 이들이 入北을 반대할 때 인용한 시구로도 널리 알려저 있다. 이 시는 백범 선생이 쓰신 글에도 서산대사의 글로 명시되어 있으나, 일부 학자들은 순조 때 활동한 시인 李亮淵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그 근거로 그의 작품집 大東詩選에 '천설(穿雪)'이라는 시가 있는데, 踏 자가 穿 자로 日 자가 朝 자로 바뀌었을 뿐 의미는 똑같기 때문이다. 한번 비교해 보면,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뚤어갈 때에는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그 발거름은 어지러이 하지 마라 今朝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아침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반드시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정말 비슷하군요. 그러나 나는 심정적으로 서산대사 편입니다.)
西山大師(1520~1604) 조선 중기의 고승, 승장(僧將)이다. 속세의 이름은 최여신(崔汝信)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 별호는 백화도인(白幻人) 또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풍악산인(楓岳山人)·두류산인(頭流山人)·묘향산인(妙香山人)·조계퇴은(曹溪退隱)·병로(病老)이고, 휴정(休靜)은 법명이다.
중종 29년에 進士試에 낙방하자 지리산에 입산, 숭인(崇仁) 문하에서 승려가 되어 화엄경(華嚴經), 법화경(法華經) 등을 배웠다. 그 후(명종 7년) 僧科에 급제, 대선(大選)·중덕(中德)을 거쳐 교종판사(敎宗判事)·선종판사(禪宗判事)를 겸임했으며, 보우(普雨)를 이어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진왜란이 일어나자 73세의 노구로 왕명에 따라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이 되어 승병(僧兵) 1,500명을 모집, 명나라 군대와 합세, 한양 수복에 공을 세웠다. 이 공로로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 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가 되었으나 1594년 사명당 유정(惟政)에게 승병을 맡기고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여생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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