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山詩
夏日田園雜興效范楊二家體二十四首
여름날 전원의 여러 가지 흥취를 가지고
범양 이가의 시체를 모방하여 이십사 수를 짓다
春事微茫不可追 靑梅結子柳垂垂
춘사미망불가추 청매결자유수수
綠陰窓戶深生暈 正是先生點易時
록음창호심생휘 정시선생점역시
봄의 일은 아득하여 따라잡을 수 없어라 / 春事微茫不可追
푸른 매화 열매 맺고 버들가지 늘어졌는데 / 靑梅結子柳垂垂
푸른 그늘 창문 깊숙이 등불 그림자 생기니 / 綠陰窓戶深生暈
정히 선생께서 시문을 고치는 때이로세 / 正是先生點易時
十旬淹病度芳菲 初倩人扶强出屝
십순엄병도방비 초천인부강출비
怪有密香來觸鼻 百花如雪野薔薇
괴유밀향래촉비 백화여설야장미
십순 동안 병상에서 꽃다운 계절 보내고 / 十旬淹病度芳菲
이제야 남의 부축받아 애써 사립을 나오니 / 初倩人扶强出屝
괴이하게도 은밀한 향기가 코를 찔러라 / 怪有密香來觸鼻
들장미꽃이 눈처럼 하얗게 피었네그려 / 百花如雪野薔薇
石榴紅綻近端陽 事事幽閑事事忙
석류홍탄근단양 사사유한사사망
天賜暫晴容曬繭 地留春水賴移秧
천사잠청용쇄0 지유춘수뢰이앙
단오절 가까운 때에 석류꽃 붉게 피니 / 石榴紅綻近端陽
일마다 한적하고도 일마다 바쁘구려 / 事事幽閑事事忙
하늘은 잠시 맑아 주어 누에고치를 말리겠고 / 天賜暫晴容曬繭
땅에는 봄물이 고여 모내기를 할 만하네 / 地留春水賴移秧
絶憐紅藥舊時容 破碎殘顋落螘封
절련홍약구시용 파쇄잔시악의봉
豈有栗花香可採 梢頭無數著飢蜂
기유율화향가채 초두무수저기봉
몹시도 어여쁘던 작약꽃 옛모습은 / 絶憐紅藥舊時容
붉은 뺨 산산이 부서져 개미둑에 떨어졌네 / 破碎殘顋落螘封
어찌 밤나무 꽃에 향기를 딸 게 있으랴만 / 豈有栗花香可採
나무 끝에 주린 벌들이 수없이 엉겼네그려 / 梢頭無數著飢蜂
蠶後桑枝竝蕩然 摘餘新葉始柔姸
잠후상지병탕연 적여신엽시유연
如今竭力輸身分 再作家私度一年
여금갈력수신분 재작가사도일년
누에 친 뒤 뽕나무 가지 모두 텅 비었는데 / 蠶後桑枝竝蕩然
따낸 자리에 새 잎이 부드럽게 돋아나누나 / 摘餘新葉始柔姸
이제야말로 나에게 있는 힘을 다하여 / 如今竭力輸身分
다시 집안일 돌보아 일 년을 지내리라 / 再作家私度一年
延緣野屋麥平垣 隱約茅茨見一痕
연연야옥맥평원 은약모자견일흔
坐數夕陽煙起處 始知原是幾家村
좌수석양연기처 시지원시기가촌
농부의 집 보리밭 언덕을 따라 내려가나니 / 延緣野屋麥平垣
초가집 마을 하나가 희미하게 보이어라 / 隱約茅茨見一痕
가만히 앉아 석양에 연기 나는 곳 헤어 보니 / 坐數夕陽煙起處
원래 몇 집의 마을인가를 비로소 알겠네 / 始知原是幾家村
蒜菢生鬚玉瓣成 瓜藤疊葉隱黃英
산포생수옥판성 과등첩엽은황영
筍鷄剩有桑鵝糝 詩會無憂骨董羹
순계잉유상아삼 시회무우골동갱
마늘에선 수염 나와 하얀 꽃잎을 이루었고 / 蒜菢生鬚玉瓣成
오이넝쿨 겹친 잎새엔 노란 꽃이 숨어 있네 / 瓜藤疊葉隱黃英
새끼닭에다 뽕버섯까지 섞어서 끓인다면 / 筍鷄剩有桑鵝糝
시 모임에 골동갱을 걱정할 것 없구려 / 詩會無憂骨董羹
杉頂新抽最上臺 嫩梢柔弱欲微頹
삼정신추최상대 눈소유약욕미퇴
貞標畢竟如金矢 去作江邊百尺桅
정표필경여금실 거작강변백척외
삼나무 꼭대기 새로 싹튼 가장 윗부분은 / 杉頂新抽最上臺
어린 끝이 유약하여 약간 쓸리려 하는데 / 嫩梢柔弱欲微頹
곧은 표치가 필경은 쇠화살같이 자라서 / 貞標畢竟如金矢
저 강가의 백 척의 돛대가 되어 가리라 / 去作江邊百尺桅
黃犢新生母愛殊 橫跳豎躍入山廚
황독신생모애수 횡도수약입산주
不知似許便娟質 何故他年作笨夫
불지사허편연질 하고타년작분부
누런 송아지 막 나오니 어미 사랑 유달라라 / 黃犢新生母愛殊
이리저리 뛰고 걸으며 산주로 들어가누나 / 橫跳豎躍入山廚
모를레라 저렇게도 우아한 본바탕이 / 不知似許便娟質
어찌하여 후일엔 그 우둔한 것이 되는고 / 何故他年作笨夫
雛雞學唱太憨生 恰到天明始一鳴
추계학창태감생 흡도천명시일명
縱道喉嚨無曲折 秋來自足繼家聲
종도후룡무곡절 추래자족계가성
햇병아리 울음 배워라 어리석은 그 소리 / 雛鷄學唱大憨生
하늘이 다 밝아서야 비로소 한 번 우는데 / 恰到天明始一鳴
리듬 있게 잘 울지 못한다고 말들 하지만 / 縱道喉嚨無曲折
가을에는 절로 넉넉히 가성을 이을 거로세 / 秋來自足繼家聲
新雀捎飛趁蝶輕 蠟咮初黑羽毛成
신작소비진접경 랍주초흑우모성
顫顫巧作哀憐態 隨母猶陳望哺情
전전교작0 련태 수모유진망포정
새 새끼 나비를 쫓아 가벼이 살짝 날아라 / 新雀捎飛趁蝶輕
노란 주둥이 막 검어지고 깃털은 보송보송 / 蠟咮初黑羽毛成
벌벌 떨어 가련한 태도를 교묘히 지으면서 / 顫顫巧作哀憐態
어미를 따라 먹여 주기 바라는 정을 펴누나 / 隨母猶陳望哺情
주(咮) 자는 고시(古詩)에서 평성(平聲)으로 많이 쓰였다.
戶外黃黧說向吾,百聲流利百聲殊。
分明各有中含意,惜不重逢介葛盧。
문 밖의 꾀꼬리는 나를 향해 말을 하는데 / 戶外黃黧說向吾
온갖 소리 유창하고 각각 다르기도 하여라 / 百聲流利百聲殊
분명히 소리마다 각각 품은 뜻이 있으련만 / 分明各有中含意
개갈로를 거듭 만나지 못한 게 애석하구려 / 惜不重逢介葛盧
鷰子開基惜屢移 謾將泥點汚梁楣
연자개기석루이 만장니점오량미
邇來風水渾成俗 疑亦禽中有地師
이래풍수혼성속 의역금중유지사
집터 자주 옮기는 저 제비 애석하기도 해라 / 鷰子開基惜屢移
공연히 진흙 가져다 들보와 문미만 더럽히네 / 謾將泥點汚梁楣
근래엔 풍수설이 온통 풍속을 이루는지라 / 邇來風水渾成俗
의심컨대 새들도 지사가 있는 모양이로군 / 疑亦禽中有地師
綠色通身絶小蛙,一生端正坐梅叉。
非渠敢有居高願,剛怕雞腸活見埋。
온 몸뚱이가 새파란 아주 작은 개구리는 / 綠色通身絶小蛙
갈래진 매화가지에 일생을 단정히 앉았나니 / 一生端正坐梅叉
제가 감히 높은 데 있길 바라서가 아니라 / 非渠敢有居高願
닭 창자 속에 산 채로 매장됨을 저해서라네 / 剛怕鷄腸活見埋
江上空雷隱有聲,雲頭數點落來輕。
蝦蟆錯認眞消息,徑作林坳閣閣鳴
강가에 빈 천둥 소리 은은히 울리더니 / 江上空雷隱有聲
구름 위에서 두어 점 빗방울이 떨어진지라 / 雲頭數點落來輕
개구리들은 참소식인 줄 잘못 알고서 / 蝦蟆錯認眞消息
우묵한 숲 속에 지레 개골개골 울어대네 / 徑作林坳閣閣鳴
麥秋山氣晚凄然,閑爇金絲耿不眠。
夜久虛檐栖雀穩,碧天如水一蛛懸。
보리 가을 저문 날에 산기운 설렁한데 / 麥秋山氣晩凄然
하릴없이 담배만 피며 밤새 잠 못 이루노니 / 閑爇金絲耿不眠
이슥한 밤 빈 처마엔 참새가 편히 깃들였고 / 夜久虛檐棲雀穩
물같이 푸른 하늘엔 거미 하나가 매달렸다 / 碧天如水一蛛懸
九節菖簪絳苧裳,各家兒女靘新粧。
席前齊作端陽拜,賞賜櫻桃瀉一筐。
구절창포 비녀에 진홍빛 모시 치마를 입고 / 九節菖簪絳苧裳
집집마다 여아들 새로 단장 말끔히 하고서 / 各家兒女靘新粧
자리 앞에서 일제히 단오의 절을 올리니 / 席前齊作端陽拜
앵두 한 바구니를 상으로 내려 주누나 / 賞賜櫻桃瀉一筐
雨中忙殺小鬟丫,吩咐披葱又別茄。
生少不聞僮約指,上臺先揷鳳仙花。
비 내리니 작은 계집종 바쁘기도 하여라 / 雨中忙殺小鬟丫
파 모종과 가지 모종 옮기라고 분부했는데 / 吩咐披蔥又別茄
아직 어려 동약의 뜻을 듣지 못했는지라 / 生少不聞僮約指
축대에 올라 먼저 봉선화부터 심고 있네 / 上臺先揷鳳仙花
滿屋蠶沙滌舊痕,一年能事了閨門。
怪來嘈囋繅車響,又作山家十日喧。
집에 가득한 누에똥 옛 흔적을 다 씻어라 / 滿屋蠶沙滌舊痕
부녀자들 일 년간의 능사를 마쳤네그려 / 一年能事了閨門
이상해라 고치실 켜는 물레 소리 요란하여 / 怪來嘈囋繅車響
또 열흘 동안은 산집이 떠들썩하겠네 / 又作山家十日喧
醉步之玄賭射歸,夕陽人影遠參差。
鄕村釋算稱多畫,畫紙高擎勝戰旗。
내기 활 쏘고 취하여 비틀거리며 걸어오니 / 醉步之玄賭射歸
석양에 사람 그림자 멀리 들쭉날쭉하여라 / 夕陽人影遠參差
향촌에선 따져 보아 획수 많은 걸 치기에 / 鄕村釋算稱多畫
종이에 그려 승전기를 높다랗게 쳐드누나 / 畫紙高擎勝戰旗
鮮鮆鮮鰣隔漢城,村莊時有賣鰕聲。
不要錢賣還要麥,怊悵漁家事不成。
싱싱한 갈치며 준치는 한성에만 갈 뿐이고 / 鮮鮆鮮鰣隔漢城
촌가에는 가끔 새우젓 파는 소리만 들리는데 / 村莊時有賣鰕聲
돈으로 받길 원치 않고 보리로 받길 바라니 / 不要錢賣還要麥
어부들의 살림살이 어려울 게 걱정이로세 / 怊悵漁家事不成
漁村自古麥黃天,密罟連環截大川。
總道今年饒峽水,好魚無數隱深淵。
예로부터 어촌에 보리 익을 무렵이 되면 / 漁村自古麥黃天
큰 냇물 가로질러 촉고를 연하여 쳤는데 / 密罟連環截大川
모두 이르길 금년에는 산골 물이 많아서 / 總道今年饒峽水
좋은 고기가 수없이 깊은 못에 숨었다 하네 / 好魚無數隱深淵
山翁釆葛苦攀登 擰取新筋作細繩
산옹변갈고반등 녕취신근작세승
不耐消閒度長夏 且同隣叟結漁罾
불내소한도장하 차동린수결어증
산늙은이 어렵스레 산에 올라 칡넝쿨 뜯어 / 山翁釆葛苦攀登
새 힘줄을 취하여 가느다란 노끈 만들고 / 擰取新筋作細繩
하릴없이 기나긴 여름 보내기 무료하여 / 不耐消閒度長夏
또 이웃 늙은이와 함께 고기 그물 짜는구나 / 且同隣叟結漁罾
驟熱懸知急雨屯,曉來雷火照飜盆。
年年一沛移秧水,還把殊恩作例恩。
갑자기 더우니 응당 소나기 올 걸 알겠어라 / 驟熱懸知急雨屯
새벽에는 천둥과 함께 동이로 쏟아붓겠지 / 曉來雷火照飜盆
해마다 한 번 내리는 모내기 철의 큰비를 / 年年一沛移秧水
특별한 은총임에도 늘 예사로 생각한다오 / 還把殊恩作例恩
春事微茫不可追,靑梅結子柳垂垂。綠陰牕戶深生暈,正是先生點易時。
十旬淹病度芳菲,初倩人扶強出扉。怪有密香來觸鼻,白花如雪野薔薇。
石榴紅綻近端陽,事事幽閑事事忙。天賜暫晴容曬繭,地留春水賴移秧。
絶憐紅藥舊時容,破碎殘腮落螘封。豈有栗花香可採. 梢頭無數著飢蜂。
蠶後桑枝竝蕩然,摘餘新葉始柔妍。如今竭力輸身分,再作家私度一年。
延緣野屋麥平垣,隱約茅茨見一痕。坐數夕陽煙起處,始知原是幾家邨。
蒜菢生鬚玉瓣成,瓜藤疊葉隱黃英。笋雞剩有桑鵝糝,詩會無憂骨董羹。
杉頂新抽最上臺,嫩梢柔弱欲微頹。貞標畢竟如金矢,去作江邊百尺桅。
黃犢新生母愛殊,橫跳豎躍入山廚。不知似許便娟質,何故他年作笨夫。
雛雞學唱太憨生,恰到天明始一鳴。縱道喉嚨無曲折,秋來自足繼家聲。
新雀捎飛趁蝶輕,蠟咮初黑羽毛成。顫顫巧作哀憐態,隨母猶陳望哺情。
戶外黃黧說向吾,百聲流利百聲殊。分明各有中含意,惜不重逢介葛盧。
鷰子開基惜屢移,謾將泥點汚梁楣。邇來風水渾成俗,疑亦禽中有地師。
綠色通身絶小蛙,一生端正坐梅叉。非渠敢有居高願,剛怕雞腸活見埋。
江上空雷隱有聲,雲頭數點落來輕。蝦蟆錯認眞消息,徑作林坳閣閣鳴。
麥秋山氣晚凄然,閑爇金絲耿不眠。夜久虛檐栖雀穩,碧天如水一蛛懸。
九節菖簪絳苧裳,各家兒女靘新粧。席前齊作端陽拜,賞賜櫻桃瀉一筐。
雨中忙殺小鬟丫,吩咐披葱又別茄。生少不聞僮約指 上臺先揷鳳仙花。
滿屋蠶沙滌舊痕,一年能事了閨門。怪來嘈囋繅車響,又作山家十日喧。
醉步之玄賭射歸,夕陽人影遠參差。鄕村釋算稱多畫,畫紙高擎勝戰旗。
鮮鮆鮮鰣隔漢城,村莊時有賣鰕聲。不要錢賣還要麥,怊悵漁家事不成。
漁村自古麥黃天,密罟連環截大川。總道今年饒峽水,好魚無數隱深淵。
山翁采葛苦攀登,擰取新筋作細繩。不耐消閒度長夏,且同鄰叟結漁罾。
驟熱懸知急雨屯,曉來雷火照飜盆。年年一沛移秧水,還把殊恩作例恩。
茶山 丁若鏞詩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홍 판서 주만 의 죽음을 애도함 [洪判書 舟萬 輓詞]
耆宿凋零盡 於今竟賴誰
기숙조령진 어금의뢰수
淳風收緬邈 衰俗失維持
순풍수면막 사속실유지
壽閣星光隱 山庭月影悲
수각성광은 산정월영비
蒼崖暮春雪 是葬碩人時
창애모춘설 시장석인시
원로 대신 다 떠나고 없으니 / 耆宿凋零盡
이제 누굴 믿고 산다는 말가 / 於今竟賴誰
순후한 풍속 멀리 다 가버리고 / 淳風收緬邈
다된 세상 이끌 사람 없네 / 衰俗失維持
수각에 별빛도 보이지 않고 / 壽閣星光隱
산정의 달그림자도 슬퍼라 / 山庭月影悲
푸른 산에 늦은 봄눈 뿌리는 날 / 蒼崖暮春雪
석인 장례를 그때 치렀다네 / 是葬碩人時
茶山 丁若鏞詩 楡林漫步
저뭉녁에 느릅나무 숲을 지나
曳杖溪扉外 徐過的歷沙
예장계비외 서과적역사
筋骸沈瘴弱 衣帶受風斜
근해심장약 의대수풍사
日照娟娟草 春棲寂寂花
일조연연초 춘서적적화
未妨時物變 身在卽吾家
미방시물변 신재즉오가
黃楡齊吐葉 環坐綠陰濃
황유제토엽 환좌록음농
花瘦蜂爭蕊 林暄鹿養茸
화수봉쟁예 림훤록양용
主恩餘性命 村老惜形容
주은여성명 촌老석형용
欲識治安策 端宜問野農
욕식치안책 단의문야농
시내쪽 사립문 밖에서 지팡이를 끌고 / 曳杖溪扉外
선명한 모래사장 천천히 지나가니 / 徐過的歷沙
육신은 장기에 젖어 약해지고 / 筋骸沈瘴弱
옷은 바람을 받아 펄럭이네 / 衣帶受風斜
햇빛은 야들야들한 풀에 비치고 / 日照娟娟草
봄은 적적한 꽃에 남아 있구나 / 春棲寂寂花
물건이야 절기 따라 변하지만 / 未妨時物變
이 몸 있는 곳이 우리집이야 / 身在卽吾家
누런 느릅나무 새잎이 돋아 / 黃楡齊吐葉
둘러앉으니 녹음이 짙네 / 環坐綠陰濃
꽃 지려 하자 벌들은 꽃술을 다투고 / 花瘦蜂爭蕊
숲이 따스하여 사슴은 뿔을 가꾼다 / 林暄鹿養茸
님의 은혜로 목숨은 붙었는데 / 主恩餘性命
시골 늙은이들 표정을 잘 안 내 / 村老惜形容
치안 정책을 알고 싶다면 / 欲識治安策
당연히 농부에게 물어야겠지 / 端宜問野農
丁若鏞 博學
博學星湖老 吾從百世師
박학성호노 오종백세사
鄧林繁結子 喬木鬱生枝
등림번결자 교목울생지
講席風儀峻 投壺禮法熙
강석풍의준 투호예법희
孤標驚俗眼 歷落竟何爲
고표경속안 역락경하위
학식이 넓고 깊은 성호 선생을 백대의 스승으로 나는 모시네
등림에 과일 열매 많이 달렸고 교목에 뻗은 가지 울창도 하다
강석에선 풍도가 준엄하시고 투호할 땐 예법이 밝기도 했지
특출하심 속안을 놀래었으나 쓸쓸히 묻히신 건 어인 일인가
茶山詩
沾暇還家作
첨가환가작
말미를 얻어 집에 돌아와 짓다
落照宮林側 歸鞍聽暮蟬
락조궁림측 귀안청모선
錦袍除却快 氷簟臥來便
금포제각쾌 빙심와래편
靜水明花沼 微凉度菜田
정수명화소 미량도채전
暫閑猶可樂 何以送流年
잠한유가락 하이송류년
석양빛이 대궐 숲을 비추일 적에
돌아가는 안장에 매미의 소리
비단 도포 벗으니 기분이 상쾌
대자리에 누우니 편키도 하다
잔잔한 기운 채마밭 스쳐 지나네
삼시 잠깐 한적함 즐길 만한데
무엇으로 흐르는 세월 보낼지
雨過草木動 湖亭春已融
우과초목동 호정춘이융
牛羊數村靜 舟楫半江通
우양수촌정 주즙반강통
種藥添新課 移花續舊功
종약첨신과 이화속구공
幽棲免蓬轉 不復歎淸窮
유서면봉전 불복탄청궁
교야(郊野) 시에,
비 뒤에 초목이 생동하니 / 雨過草木動
호정에 봄이 벌써 무르녹아라 / 湖亭春已融
소 양은 두어 마을에 조용히 노닐고 / 牛羊數村靜
돛대는 강의 전반을 통과하였네 / 舟楫半江通
약초 심으니 새 일이 생겨나고 / 種藥添新課
꽃 포기 옮기니 옛일이 계속되네 / 移花續舊功
조용히 살아 떠돌이를 면했으니 / 幽棲免蓬轉
다시는 청빈(淸貧)을 탄식할 것 없어 / 不復歎淸窮
하였고, 그의 ‘서간에서 숙장을 생각하다
[西澗懷叔章 숙장은 조문명(趙文命)의 자]’ 라는 시에,
西巖花滿枝 幽竹與參差
서암화만지 유죽여삼차
微月已度澗 暗泉頻入池
미월이도간 암천빈입지
美人杳何許 淸夜已難期
미인묘하허 청야이난기
林下發孤嘯 芳樽空在玆
임하발고소 방준공재자
서암의 가득한 꽃가지들 / 西巖花滿枝
그윽한 대와 서로 층이 졌네 / 幽竹與參差
희미한 달빛 벌써 시내 건넜고 / 微月已度澗
컴컴한 샘물 자주 못에 드누나 / 暗泉頻入池
미인이여 아득한 그 어디길레 / 美人杳何許
이 좋은 밤 못 만나다니 / 淸夜已難期
수풀 아래 외로이 휘파람 부노니 / 林下發孤嘯
쓸데없이 좋은 술만 곁에 있구려 / 芳樽空在玆
그가 ‘밤에 누석의 어떤 집에 묵으면서[夜宿纍石人家]’ 라는 시에,
暮宿孤峰寄炭翁 茅茨一徑入林楓
寒星馬齕疎籬內 暝飯燈留黃葉中
夢寐時聞鳴澗落 潺湲還與故山同
羈愁悄悄那能免 霜峽三更月出東
해 저물어 외론 봉 숯장수 집에 기숙하니 / 暮宿孤峯寄炭翁
띠 지붕 한 쪽에 단풍숲 잇대었네 / 茅茨一徑入林楓
별빛 차가운데 성근 울 안엔 말이 여물 씹고 / 寒星馬齕疏籬內
저녁밥 먹으려니 누런 잎 속엔 등불 반짝이네 / 瞑飯燈留黃葉中
꿈속에 가끔 시냇물 떨어지는 소리 들리니 / 夢寐時聞鳴澗落
흐르는 소리 도리어 고향 그 소리 같구려 / 潺湲還與故山同
초조한 나그네 시름 어이 면할꼬 / 羇愁悄悄那能免
서리 골짜기 삼경에 달 떠오르누나 / 霜峽三更月出東
그가 ‘이씨 집에서 가무를 구경하면서[李氏席上觀歌舞]’ 라는 시에는,
나이 어린 한단의 요조숙녀가 / 年少邯鄲窈宨娘
화려한 자리 이 밤에 맑은 용모 자랑하네 / 華筵日暮矜淸光
간드러지는 노래 소린 은하수를 떨어뜨리려 하고 / 嬌歌欲使明河落
절묘한 춤은 긴 비취 소매에서 흘러나오누나 / 妙舞旋從翠袖長
화려한 수레 모여드니 모두 현준이라 / 繡轂相留盡賢俊
돌아보니 나만이 베옷에 허술한 나그네일세 / 布衣自顧獨疏狂
온 천하에 군도가 횡행하는 이때 / 如今四海橫群盜
술이며 안주 놓고 좋은 음악에 창화하누나 / 酒肉三歎錦瑟旁
하였는데, 평론가들은 이 편(篇)을 보고
‘시인(詩人)의 지취(旨趣)를 깊이 체득했다.’ 하였다.
또 그의 시 중에 여기저기서 뽑아 모은 것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얇은 서리는 한 강을 가로지르고 / 微霜橫一水
밝은 달빛은 외론 배에 가득하구나 / 明月滿孤舟
처량한 기러기는 저녁 놀 풍경 마주하고 / 哀鴻對殘景
떨어진 잎새는 남은 해를 들려주누나 / 落葉聽餘年
잡목들은 찬 물 곁에 있고 / 柴荊旁寒水
참새들은 농가에 모이는구료 / 鳥雀集農家
골짜기 구름은 저문 빛을 드리우고 / 峽雲垂晩色
출렁이는 강물은 새벽 흔적 드러내네 / 汀水動最痕
비탈 꽃은 외론 나무를 의지하고 / 岸花倚獨樹
봄물은 펀펀한 밭을 적시누나 / 春水浸平田
어룡 안에서 웃고 말하고 / 笑語魚龍內
하늘 가에서 퉁소 소리 들리네 / 簫歌雲漢邊
손은 와서 흐르는 물 구경하고 / 客來見流水
중 늙으니 외론 봉우릴 사랑하네 / 僧老愛孤峯
얇은 서리에 먼 내가 하얗고 / 微霜遠流白
석양 볕에 수많은 봉우리 푸르구나 / 返照亂峯靑
시냇물은 숲 사이로 흐르고 / 澗水柴荊內
연기는 호표 사이에 섞여 있네 / 人烟虎豹間
남은 안개는 모래톱에 어른거리고 / 餘霞閃沙水
초승달은 사람 옷에 비추누나 / 纖月在人衣
강촌 가을 하늘에 기러기 슬피 울고 / 哀鴻江日短
눈 내린 외론 성에 나무가 아득하구려 / 遠樹雪城孤
문을 여니 얇은 눈 쌓였기에 / 開門有微雪
두건 제쳐쓰고 높은 소나무 쳐다보네 / 岸幘看高松
인가는 위태로운 잔도 밖에 있고 / 人煙危棧外
나그네는 산 허리를 지나누나 / 行色翠微間
일천 바위에 초목은 무성한데 / 千巖草木秀
어초의 한 길은 깊기도 해라 / 一徑漁樵深
종소리 그쳤으나 아직 메아리 들리고 / 磬罷猶聞響
봉우리 외로우니 새로운 자태 드러내네 / 峯孤更有姿
무르녹은 꽃 고찰에 가득하고 / 濃花滿古寺
그윽한 종소리 숲 속에 울리누나 / 幽磬發空林
골짜기 고요하니 샘물 소리 은은하고 / 谷靜泉聲小
솔잎 짙으니 빗방울 더디어라 / 松陰雨色遲
산 기운은 온 몸을 감싸고 / 山氣歸巾舃
샘물은 흘러 뜨락에 드누나 / 泉流入戶庭
흐르는 물이야 어찌 다하랴만 / 流水復何極
흰 구름은 부질없이 많기만 해 / 白雲空自多
차가운 종소리는 옛날 소리 그대로고 / 寒鐘如舊響
흐르는 물은 내 마음 슬프게 하네 / 流水悵餘情
먼 연기는 홍수 끝에 서리고 / 遠煙紅樹杪
기운 해는 자등 위에 비치누나 / 斜日紫藤西
하늘 맑아라 초목엔 첫서리 내리고 / 天淸草木新霜落
햇살 비쳤어라 강 가엔 기러기 날아가네 / 日下汀洲過雁微
텅 빈 뜰 늙은 나무엔 서릿바람 스치고 / 庭空老木霜風過
이지러진 창 찬 이불엔 산 달이 번뜩인다 / 窓缺寒衾峽月翻
늙은 중 씽긋 웃으니 창애의 고적이요 / 老僧一笑蒼崖古
나그넨 말 없어라 흐르는 물 끊임없네 / 遊子無言流水長
낙락한 차가운 별은 여러 벗이요 / 寒星落落如諸友
창창한 산목은 이내몸일레 / 亂木蒼蒼獨此身
잡목에 깃든 새들 오랜 날 머물러 있고 / 柴荊鳥雀留長日
부로들의 상마는 한 마을을 이루었네 / 父老桑麻有一村
구원의 골육은 새로 눈물 머금고 / 丘原骨肉新含涕
강호의 기러기는 저물녘에 슬피 우네 / 鴻雁江湖晩有哀
그의 숙부(叔父) 삼연 선생(三淵先生 삼연은 김창흡(金昌翕)의 호)이 서(序)하기를,
“그는 시격(詩格)을 법받는 것이 높게는
소릉(少陵 당(唐) 나라 시인(詩人) 두보(杜甫)를 가리킴)을 넘지 못하나,
송(宋) 나라 황정견(黃庭堅)ㆍ진사도(陳師道)로써 보익(補翼)하고
우리나라의 취헌(翠軒 조선 초기 김유(金紐)의 호)ㆍ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의 호)와 서로 힐항(頡頏)하여
어떤 법의 테두리에도 구속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하나의 법을 이룩하였으며,
마음 내키는 대로 읊조려도 속대(屬對)와 평칙(平仄)이 저절로 척척 맞아들어가니,
대체로 시를 쉽게 얻지만 시격은 매우 노련미가 흐른다.”
하였고,
농암 선생은,
“기이하고 준걸한데다 고색이 창연하여 요즘 세대의 관습어를 초월했다.”
고 평론하였으니, 두 어른의 말이 지론이라 할 수 있겠으나,
재기(才氣)로 말한다면 취헌(翠軒)보다 월등하다.
觀復菴金崇謙字君山。淸陰先生之玄孫。
而農巖先258_025b生之子也。自初卓犖不羣。
言論英發。貨利聲色。廓肰不留情。間。
遊金剛天磨。登華山絶頂。有揮斥八極之意。
雅慕古人大節。意欲經事綜物。
爲有用學而年僅十九而卒。有集行世。
詩凡三百餘首。其郊野。雨過艸木動。
湖亭春已融。牛羊數邨靜。舟楫半江通。
種藥添新課。移花續舊功。幽棲免蓬轉。
不復歎淸窮。其西澗懷叔章。西岩花滿枝。
幽竹與參差。微月已渡澗。暗泉頻入池。
美人杳何許。淸夜已難期。林下發孤嘯。
芳樽空在玆。其夜宿纍石人家。暮宿孤峯寄炭翁。
茅茨一徑入林楓。寒星馬齕䟱籬內。暝飯燈留黃葉中。
夢寐258_025c時聞鳴澗路。潺湲還與故山同。
羇愁悄悄那能免。霜葉三更月出東。
其李氏席上觀欹편001舞。年少邯鄲窈窕娘。
華筵日暮矜淸光。嬌欹편002欲使明河落。
妙舞旋從翠袖長。繡轂相留盡賢俊。布衣自顧獨䟱狂。
如今四海橫群盜。酒肉三歎錦瑟旁。談藝家以此篇。
爲深得詩人之旨云。其句如微霜橫一水。明月滿孤舟。
哀鴻對殘景。落葉聽餘年。柴荊旁寒水。鳥雀集農家。
峽雲垂晩色。汀水動晨痕。花倚獨樹。春水漫平田。
笑語魚龍內。簫欹편003雲漢邊。客來見流水。
僧老愛孤峯。微霜遠流白。返照亂峯靑。澗水柴荊內。
人烟虎豹間。餘霞閃258_025d沙水。纖月在人衣。
哀鴻江日短。遠樹雪城孤。開門有微雪。幘看高松。
人烟危棧外。行色翠微間。千岩艸木秀。
一徑漁樵深。磬罷猶聞響。峯孤更有姿。濃花滿古寺。
幽磬發空林。谷靜泉聲小。松陰雨色遅。山氣敀巾舃。
泉流入戶庭。流水復何極。白雲空自多。寒鍾如舊響。
流水悵餘情。遠烟紅樹杪。斜日紫藤西。天淸艸木新霜落。
日下汀洲過鴈微。庭空老木霜風過。烟缺寒衾峽月翻。
老僧一笑蒼厓古。遊子無言流水長。寒星落落如諸友。
亂木蒼蒼獨此身。柴荊鳥雀留長日。父老桑麻有一邨。
丘原骨肉新含涕。鴻鴈江湖晩有258_026a哀。
其叔父三淵先生序之曰。其師法。高不踰少陵。
而輔之以宋世黃,陳。曁我東之翠軒,蘇齋而相頡頏。
傑肰不受法縛而能自成法。肆意而往。
邂逅與對屬平仄湊著焉。大抵得之容易而工若老鍊。
農岩先生則評以爲奇峻蒼老。不作近時熟軟語。
兩父之言。可謂鐵論。而藻思則突過翠軒。
秋史 金正喜 作
가을날의 회포를 적다
吾家東指水雲鄕 細憶秋來樂事長
오가동지수운향 세억추래낙사장
風度栗園朱果落 月臨漁港紫螯香
풍도율원주과락 월임어항자오향
동쪽으로 향해서 가면 우리 집 수운향이라
생각하니 가을이면 즐거운 일 많았었지요
밤밭에 바람 불 제 붉은 열매가 떨어지고
어촌에 달이 뜰 제 자줏빛 게가 향그러워요
다산시문집 제3권
그 얼마나 유쾌할까라는 노래[不亦快哉行]
跨月蒸淋積穢氛 四肢無力度朝曛
과월즌림적예분 사지무력도조훈
新秋碧落澄寥廓 端軒都無一點雲
신추벽락징요곽 단헌도무일점운
달포 넘게 찌는 장마 오나 가나 곰팡냄새 / 跨月蒸淋積穢氛
사지에 맥이 없이 아침 저녁 보내다가 / 四肢無力度朝曛
가을 되어 푸른 하늘 맑고도 넓으면서 / 新秋碧落澄寥廓
하늘 땅 어디에도 구름 한 점 없으면 / 端軒都無一點雲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疊石橫堤碧澗隈 盈盈滀水鬱盤迴
첩석횡재벽간외 영영축수울반회
長鑱起作囊沙決 澎湃奔流勢若雷
장참기작낭사결 팽배분유세약뢰
산골 시내 굽이진 곳 돌무더기 가로막혀 / 疊石橫堤碧澗隈
가득히 고인 물이 빙빙 돌고 있는 곳을 / 盈盈滀水鬱盤迴
막고 있는 모래주머니 긴 삽으로 툭 터서 / 長鑱起作囊沙決
우레처럼 소리 내며 쏜살같이 흘러가면 / 澎湃奔流勢若雷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蒼鷹鎖翮困長饑 林末毰毸倦却歸
창은쇄핵곤장기 림말배시권각귀
好就朔風初解緤 碧天如水盡情飛
호취삭풍초해설 벽천여수진정비
날개를 묵히면서 굶고 있는 푸른 매가 / 蒼鷹鎖翮困長饑
숲 끝에서 날개쳐도 갈 곳 별로 없다가 / 林末毰毸倦却歸
매서운 북풍에 처음으로 줄을 풀고 / 好就朔風初解緤
바다 같은 푸른 하늘 마음껏 날아갈 때면 / 碧天如水盡情飛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客舟咿嘎汎晴江 閒看盤渦浴鳥雙
객주이알범청강 한간반와욕조쌍
正到急湍投下處 涼颸拂拂洒篷牕
정도급단투하처 량시불불쇄봉창
삐걱삐걱 노 저으며 청강에 배 띄우고 / 客舟咿嘎汎晴江
쌍쌍이 무자맥질하는 물새들을 보다가 / 閒看盤渦浴鳥雙
쏜살같이 내닫는 여울목에 배가 와서 / 正到急湍投下處
시원한 강바람이 뱃전을 스쳐 가면 / 涼颸拂拂洒篷牕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岧嶢絶頂倦游筇 雲霧重重下界封
초요절정권유공 운무중중하계봉
向晩西風吹白日 一時呈露萬千峯
향만서풍취백일 일시정로만천봉
깎아지른 절정을 힘겨웁게 올랐을 때 / 岧嶢絶頂倦游筇
구름 안개 겹겹으로 시야를 막았다가 / 雲霧重重下界封
이윽고 서풍 결에 태양이 눈부시고 / 向晩西風吹白日
천봉만학 있는 대로 일시에 다 보이면 / 一時呈露萬千峯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羸驂局促歷巉巖 石角林梢破客衫
리참국촉력참암 석각림초파객삼
下馬登舟前路穩 夕陽高揭順風帆
하마등주전로온 석양고게순풍범
야윈 말이 힘겨웁게 험한 길을 지나면서 / 驂局促歷巉巖
돌부리 나뭇가지에 옷자락이 찢겼다가 / 石角林梢破客衫
말에서 내려 배를 타고 평온한 앞 길 따라 / 下馬登舟前路穩
석양 하늘 순풍에 돛을 높이 달고 가면 / 夕陽高揭順風帆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騷騷木葉下江皐 黃黑天光蹴素濤
소소목엽하강고 황흑천광축소도
衣帶飄颻風裏立 怳疑仙鶴刷霜毛
의대표요풍리립 황의선학쇄상모
낙엽은 사각사각 강언덕에 떨어지고 / 騷騷木葉下江皐
우중충한 날씨에 흰 파도가 넘실댈 때 / 黃黑天光蹴素濤
옷자락 휘날리며 바람 속에 섰노라면 / 衣帶飄颻風裏立
하얀 깃을 쓰다듬는 선학과도 같으리니 / 怳疑仙鶴刷霜毛
그 얼마나 청쾌하랴 / 不亦快哉
隣人屋角障庭心 涼日無風晴日陰
린인옥각장정심 양일무풍청일음
請買百金纔毁去 眼前無數得遙岑
청매백금재훼거 안전무수득요잠
이웃집 처마끝이 앞마당을 막고 있어 / 隣人屋角障庭心
가을날도 바람 없고 맑은 날도 그늘진 것을 / 涼日無風晴日陰
백금으로 사들여서 모두 다 헐어내고 / 請買百金纔毁去
먼 산 묏부리들이 눈앞에 훤하게 하면 / 眼前無數得遙岑
그 얼마나 시원할까 / 不亦快哉
支離長夏困朱炎 濈濈蕉衫背汗沾
지리장하곤주염 즙즙초삼배한첨
洒落風來山雨急 一時巖壑掛氷簾
쇄락풍래산우급 일시암학괘빙렴
지루한 여름날 불볕더위에 시달려서 / 支離長夏困朱炎
등골에 땀 흐르고 베적삼이 축축할 때 / 濈濈蕉衫背汗沾
시원한 바람 끝에 소나기가 쏟아져서 / 洒落風來山雨急
얼음발이 단번에 벼랑에 걸린다면 / 一時巖壑掛氷簾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淸宵巖壑寂無聲 山鬼安棲獸不驚
청소암학적무성 산귀안서수불경
挑取石頭如屋大 斷厓千尺碾砰訇
도취석두여옥대 단애천척년팽굉
깊은 골에 밤이 들어 죽은 듯이 고요하고 / 淸宵巖壑寂無聲
귀신도 잠이 들고 짐승들도 기척 없을 때 / 山鬼安棲獸不驚
집채 같은 큰 바위를 두 손 번쩍 들어다가 / 挑取石頭如屋大
천 척 낭떠러지를 매질하듯 울려보면 / 斷厓千尺碾砰訇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局促王城百雉中 常如病羽鎖雕籠
국촉왕성백치중 상여병우쇄조롱
鳴鞭忽過郊門外 極目川原野色通
명편홀과교문외 극목천원야색통
장안의 성 안에서 움츠리고 지내기를 / 局促王城百雉中
병든 새가 조롱 속에 갇혀있듯 하다가 / 常如病羽鎖雕籠
채찍을 울리면서 교문 밖을 썩 나서면 / 鳴鞭忽過郊門外
산천과 들빛들이 눈에 온통 다 보일 때 / 極目川原野色通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雲牋闊展醉吟遲 草樹陰濃雨滴時
운전활전취음지 초수음농우적시
起把如椽盈握筆 沛然揮洒墨淋漓
기파여연영악필 패연휘쇄묵림리
흰 종이를 활짝 펴 두고 시상에 지그시 잠겼다가 / 雲牋闊展醉吟遲
우거진 녹음 속에 비가 뚝뚝 떨어질 때 / 草樹陰濃雨滴時
서까래와 같은 붓을 손에 잔뜩 움켜쥐고 / 起把如椽盈握筆
먹물이 흥건하게 일필휘지 하고 나면 / 沛然揮洒墨淋漓
그 얼마나 유쾌하랴 / 不亦快哉
奕棋曾不解贏輸 局外旁觀坐似愚
혁기증불해영수 국외방관좌사우
好把一條如意鐵 砉然揮掃作虛無
호파일조여의철 획연휘소작허무
장기 바둑 승부수를 내 일찍이 모르기에 / 奕棋曾不解贏輸
곁에서 물끄러미 바보처럼 앉았다가 / 局外旁觀坐似愚
한 자루 여의철을 손으로 움켜잡고 / 好把一條如意鐵
단번에 판 위를 홱 쓸어 없애 버리면 / 砉然揮掃作虛無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篁林孤月夜無痕 獨坐幽軒對酒樽
황림고월야무흔 독좌유헌대주준
飮到百杯泥醉後 一聲豪唱洗憂煩
음도백배니취후 일성호창세우번
대숲 위에 외로운 달 소리 없이 밤 깊을 때 / 篁林孤月夜無痕
초당에 홀로 앉아 술독을 앞에 놓고 / 獨坐幽軒對酒樽
한 백 잔 마시다가 질탕하게 취한 후에 / 飮到百杯泥醉後
노래 한바탕 불러대어 근심 걱정 씻어 버리면 / 一聲豪唱洗憂煩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飛雪漫空朔吹寒 入林狐兎脚蹣跚
비설만공삭취한 입림호토각반산
長槍大箭紅絨帽 手挈生禽側挂鞍
장창대전홍융모 수설생금측괘안
눈보라 분분하고 삭풍이 차가워서 / 飛雪漫空朔吹寒
숲 찾아든 여우 토끼 다리 절고 있을 때에 / 入林狐兎脚蹣跚
긴 창에 큰 화살로 홍전립 눌러 쓰고 / 長槍大箭紅絨帽
산 채로 때려 잡아 안장 곁에 꿰어차면 / 手挈生禽側挂鞍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漁舟容與綠波間 風露三更醉不還
어주영여록파간 풍로삼경취불환
歸雁一聲驚破睡 蘆花被冷月如彎
귀안일성경파수 노화피랭월여만
푸르른 물결 따라 고깃배로 노닐면서 / 漁舟容與綠波間
야삼경 술에 취해 돌아갈 줄 모르다가 / 風露三更醉不還
가는 기러기 한 소리에 놀라 잠을 깼더니만 / 歸雁一聲驚破睡
갈꽃 이불 썰렁하고 초생달이 떠 있으면 / 蘆花被冷月如彎
그 얼마나 상쾌할까 / 不亦快哉
落盡家貲結客裝 雲游蹤跡轉他鄕
락잔가자결객장 운유종적전타향
路逢失志平生友 交與囊中十錠黃
로봉실지평생우 교여낭뭉십정황
세간살이 모두 팔아 괴나리봇짐 꾸려 지고 / 落盡家貲結客裝
뜬구름 신세로 타향을 떠돌다가 / 雲游蹤跡轉他鄕
뜻 못 펴고 유랑하는 지기지우 길에서 만나 / 路逢失志平生友
주머니 속 돈 열 냥을 그에게 꺼내 주면 / 交與囊中十錠黃
그 얼마나 유쾌할까 / 不亦快哉
噍噍磌鵲繞林梢 黑質脩鱗正入巢
초초진작요림초 흑질수린정입소
何處戛然長頸鳥 啄將珠腦勢如虓
하처알연장경조 탁장주뇌세여효
나무 끝을 맴돌면서 어미까치 짖어대고 / 噍噍磌鵲繞林梢
시커먼 구렁이가 둥지로 기어들 때 / 黑質脩鱗正入巢
어디선가 목 긴 새가 왝하고 날아와 / 何處戛然長頸鳥
성난 호랑이처럼 머리통을 쪼아대면 / 啄將珠腦勢如虓
그 얼마나 통쾌할까 / 不亦快哉
琴歌來趁月初圓 無那頑雲黑萬天
금가래진월초원 무나완운흑만천
到了整衣將散際 忽看林末出嬋娟
도료정의장산제 황간임말출선연
달 둥글면 거문고 타고 노래하기로 하였는데 / 琴歌來趁月初圓
어찌할까 온 하늘을 먹구름이 다 덮다니 / 無那頑雲黑萬天
옷을 모두 챙겨 입고 헤어지려고 할 즈음에 / 到了整衣將散際
숲 끝에 얼굴 내민 예쁜 달을 보게 되면 / 忽看林末出嬋娟
그 얼마나 반가울까 / 不亦快哉
異方遷謪戀觚稜 旅館無眠獨剪燈
이방천적연고릉 여관무면독전등
忽聽金鷄傳喜報 家書手自啓緘縢
홍청금계전희보 가서수자계함등
먼 지방 귀양살이 대궐 못내 그리워서 / 異方遷謪戀觚稜
여관 한 등 잠 못 이루고 등불만 만지작거린다 / 旅館無眠獨剪燈
뜻밖에 금계의 기쁜 소식 전하는 말 듣고 / 忽聽金鷄傳喜報
집에서 보낸 편지를 손으로 직접 뜯었을 때 / 家書手自啓緘縢
그 얼마나 흔쾌할까 / 不亦快哉
茶山 丁 若 鏞
除國子直講赴館
국자 직강에 제수되어 성균관으로 들어가다
放棄從吾懶 甄收異所期
방기종오뢰 견수이소기
故多蛛布網 未免馬銜羈
고다주포강 미면마함기
錯落親交遠 迂回世道危
착락친교원 우회세도위
肖翹共順性 黽勉竟何爲
초교공순성 민민경하위
게으른 천성 따라 숨으렸더니 / 放棄從吾懶
기대와는 다르게 선발되었네 / 甄收異所期
갈수록 거미줄이 많이 깔리어 / 故多蛛布網
재갈 물린 말 신세 면치 못하리 / 未免馬銜羈
벗들은 여기저기 멀어져가고 / 錯落親交遠
세상길 구불구불 위험하다오 / 迂回世道危
날벌레와 어울려 천성 따를 뿐 / 肖翹共順性
억지로 애를 쓴들 그 무슨 소용 / 黽勉竟何爲
茶山다산선생 시
봄 구름 春雲
冷屋溪橋畔 春雲演漾新
냉옥계교반 춘운연양신
乳鷄時獨語 睡鴨故相馴
유계시독어 수압고상순
漸與興居懶 那堪薦謁頻
점여흥거뢰 나감천알빈
深慙違素志 書帙有棲塵
심참위소지 서질유서진
시내다리 언저리 궁벽한 집에 / 冷屋溪橋畔
피어나는 봄구름 신기하구나 / 春雲演漾新
병아리랑 이따금 말을 나누고 / 乳鷄時獨語
꾸벅이는 오리랑 함께 어울려 / 睡鴨故相馴
차츰차츰 행동이 게을러지니 / 漸與興居懶
고관을 어찌 능히 자주 뵈오리 / 那堪薦謁頻
너무도 부끄럽네 본심을 어겨 / 深慙違素志
서책 위에 먼지만 소복이 쌓여 / 書帙有棲塵
茶山정약용 선생시 -詠木氷-
江邊千萬樹 一夜盡成翁
강변천만수 일야진성옹
投合緣同氣 調鎪賴鉅工
투합연동기 조수뇌거공
輕謠風絮白 寒透日華紅
경요풍서백 한투일화홍
退老身何補 深居樂歲豊
퇴로신하보 심거락세풍
강가의 천만그루 나무가 밤사이에 모두 영감으로 변했네
기운이 같기에 저리 어울렸겠지 조각된 품 대단한 장인 솜씨이구나
솜같이 하얗게 바람에 흔들리고 햇빛 투시되어 붉어도 보이네
늙어 물러난 몸 보탬될 게 뭐라던가 깊이 들어앉아 풍년이나 즐겨야지.
茶山先生 詩
松嶺樵歌송령초가
嶺頭松翠帶輕陰 殘照含風度竹林
영두송취대경음 잔조함풍도죽림
莫道樵歌無節族 南腔端合和枯琴
막도초가무절족 남강단합화고금
잿마루에 솔 푸르러 그늘이 살짝 지고 / 嶺頭松翠帶輕陰
낙조는 바람 안고 대숲을 건너오네 / 殘照含風度竹林
초부 노래는 절주가 없다고 말을 말게 / 莫道樵歌無節族
남쪽 방언에 거문고는 구성지게 어울린다네 / 南腔端合和枯琴
茶山 丁若鏞 作 獨笑
有粟無人食 多男必患飢
유속무인식 다남필환기
達官必惷愚 才者無所施
달관필용우 재자무소시
家室少完福 至道常陵遲
가실소환복 지도상능지
翁嗇子每蕩 婦慧郎必癡
옹색자매탕 부혜낭필치
곡식이 있으면 먹을 사람이 없고
자식이 많으면 굶주릴 것을 근심하네
벼슬아치가 방자 하고 어리석으니
재주 있는 사람이 쓰일 곳이 없으며
집안엔 조그마한 상서로움 마재 끝이나고
참된 길은 항상 살을 엥;는 형벌 이로다
賦得堂前紅梅 부득당전홍매
당 앞의 붉은 매화를 두고 짓다
- 茶山 丁若鏞
窈窕竹裏館 窓前一樹梅
요조죽리창 창전일수매
亭亭耐霜雪 澹澹出塵埃
정정내상설 담담출진애
歲去如無意 春來好自開
세거여무의 춘래호자개
暗香眞絶俗 非獨愛紅腮
암향진절속 비독애홍시
대숲에 자리잡은 그윽한 공관
창앞에 피었어라 매화 한 그루
꼿꼿하게 눈 서리 견디어내고
해맑게 티끌 먼지 벗어났고녀
해 지나도 소식이 감감하더니
봄이 오자 스스로 활짝 피었네
그윽한 향기 진정 속기 없으니
꽃잎만 사랑스럴 뿐이 아닐세
茶山 丁若鏞선생 시
留題族父禮山公山居
족부 예산공이 사는 산집에다 써 붙이다
澗邊小墟落 桑柘菀交枝
간변소허락 상자울교지
野麥蘇春凍 村雞領晩兒
야맥소춘동 촌계령만아
罷官生事拙 留客雅言遲
파관생사졸 유객아언지
信宿驚舒重 低頭愧昔時
신숙경서중 저두괴석시
시냇가 작은 언덕 끝에는 / 澗邊小墟落
뽕나무들 무성하게 가지가 얽혔고 / 桑柘菀交枝
들에 보리는 얼었다 다시 돋아나며 / 野麥蘇春凍
마을 닭은 늦새끼 거느렸구나 / 村鷄領晩兒
벼슬 그만두어 살아가긴 옹색해도 / 罷官生事拙
손님 만류하여 좋은 얘기 계속하네 / 留客雅言遲
이틀밤 자면서 진중한 정에 놀라고 / 信宿驚舒重
옛날이 부끄러워 고개 숙였다 / 低頭愧昔時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