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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集注

논어집주(論語集注) - 18 - 미자(微子) - ③

by 권석낙 2026. 6. 18.
논어집주(論語集注) - 18 - 미자(微子) - ③ | 논어집주 (論語集注)

논어(論語) - 18 - 미자(微子) - ③
1齊景公이 待孔子曰 若季氏則吾不能이어니와 以季孟之間으로 待之호리라하고 曰吾老矣라 不能用也한대 孔子行하시다.
2제경공이 대공자왈 약계씨즉오불능이어니와 이계맹지간으로 대지호리라하고 왈오노의라 불능용야한대 공자행하시다. 
3제 나라 경공이 공자를 대우하면서 말하였다. "계씨 같이는 못하겠지만, 계시와 맹씨 중간 정도로 대우하리라."하였다. 

그리고 다시 "내가 늙어서 등용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공자께서 떠나가셨다.  
4The duke Ching of Ch'î, with reference to the manner in which he should treat Confucius, said, “I cannot treat him as I would the chief of the Chî family. I will treat him in a manner between that accorded to the chief of the Chî, and that given to the chief of the Mang family.” He also said, “I am old; I cannot use his doctrines.” Confucius took his departure. 

 

논어집주(論語集注) - 18 - 미자(微子) - ③
齊景公待孔子 曰 若季氏則吾不能 以季孟之閒待之 曰 吾老矣 不能用也 孔子行
제 나라 경공이 공자를 대우하면서 말하였다. "계씨 같이는 못하겠지만, 계시와 맹씨 중간 정도로 대우하리라."하였다. 그리고 다시 "내가 늙어서 등용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공자께서 떠나가셨다. 

魯三卿 季氏最貴 孟氏爲下卿 孔子去之事 見世家
노나라 삼경 중에 계씨가 제일 귀하였고, 맹씨가 제일 아래의 卿이었다. 공자께서 그를 떠난 일은 공자세가에 보인다.

史記孔子世家 齊景公復問政於孔子 曰 政在節財 景公說將欲以尼谿田封孔子 晏嬰進曰 夫儒者滑稽而不可軌法(索隱曰 滑謂亂也 稽 同也 以言辯捷之人 言非若是 言是若非 能亂同異也 言儒者滑稽而不爲法度也) 倨傲自順 不可以爲下 崇喪遂哀破産厚葬 不可以爲俗 游說乞貸 不可以爲國 自大賢之息周室旣衰 禮樂缺有間(索隱曰 息者生也 言上古大賢生 則有禮樂 至周室微而始缺有間也) 今孔子盛容飾 繁登降之禮 趨詳之節 累世不能殫其學 當年不能究其禮 君欲用之以移齊俗 非所以先細民也 後景公敬見孔子不問其禮 異日景公止孔子曰 封子以季氏 吾不能 以季孟之間待之 齊大夫欲害孔子 孔子聞之 景公曰 吾老矣 弗能用也 孔子遂行反乎魯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제경공이 공자에게 다시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는 “정치란 재물을 절약하는 데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제경공이 기뻐하며 장차 니계의 밭을 공자에게 봉해주고자 하였다. 안영이 나아가 말하길, “무릇 유생이란 자들은 같은 것을 어지럽히므로(색은에 이르길, 滑은 어지럽힌다고 말하는 것이고, 稽는 같다는 것이라 하였다. 언변이 빠른 사람은 틀린 것을 옳은 것처럼 말하고, 옳은 것을 틀린 것처럼 말하므로, 능히 같음과 다름을 어지럽힐 수 있다. 유생이란 자들은 같음을 어지럽히므로 법도로 삼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軌法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오만하고 거만하지만 스스로를 순종한다고 여기니, 아랫사람으로 삼을 수 없고, 상례를 숭상하여 슬퍼함을 이루고 가산을 깨뜨려 후하게 장례하니, 풍속으로 삼을 수 없으며, 제후들에게 유세하며 구걸하여 지위를 빌리니,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대 현자가 생겨날 때로부터 주왕실은 이미 쇠퇴하였고, 예악이 이지러져서 틈이 생겼습니다(색은에 이르길, 息이라는 것은 생겨남이라고 하였다. 상고에 대현이 나타났기에 예악이 있었으나, 주실이 쇠미해짐에 이르러 비로소 이지러져 틈이 생긴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지금 공자가 용모와 장식을 성대히 하고, 오르고 내리는 禮와 상세함에 나아간 節을 번잡하게 하니, 세대를 거듭하여도 그것 배우기를 다할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이라도 그 예를 다할 수 없습니다. 임금께서 그를 기용하여 제나라의 풍속을 바꾸고자 하는 것은 백성들을 우선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나중에 제경공은 공경하며 공자를 만났는데, 그 예를 묻지 않았다. 다른 날에 제경공이 공자가 떠나는 것을 멈추게 하고 말하길, “선생을 계씨의 대우로 봉한다면 나는 할 수 없소. 계씨와 맹씨의 사이로써 대우하겠소.”라고 하였다. 제나라 대부가 공자를 해치고자 하였는데, 공자가 이를 들었다. 제경공이 말하길, “나는 이미 늙어서 선생을 기용할 수 없소.”라고 하였다. 공자는 마침내 제나라를 떠나서 노나라로 돌아갔다.

然此言必非面語孔子 蓋自以告其臣 而孔子聞之爾 ○ 程子曰 季氏强臣 君待之之禮極隆 然非所以待孔子也 以季孟之閒待之 則禮亦至矣 然復曰 吾老矣 不能用也 故孔子去之 蓋不繫待之輕重 特以不用而去爾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공자의 면전에서 한 말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제경공이 그 신하에게 알려서 공자도 그것을 전해 들었을 뿐일 것이다. 정자가 말하길, “계씨는 세력이 강한 신하였므로, 임금이 그를 대하는 예가 지극히 융성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공자를 대우하는 예가 아니었다. 계씨와 맹씨의 중간 정도로 대우해도, 그 예가 역시 지극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시 ‘내가 늙어서 쓸 수 없소이다.’라고 말하였기에 공자께서 그를 떠나신 것이다. 대체로 대우의 경중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떠나셨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景公之言 雖實而失於率易 聖人德盛道尊 見者必加敬而盡禮 況景公素知聖人者 必不敢以是言而面瀆之 所謂自以告其臣而孔子聞之之說 當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제경공의 말은 비록 진실하였지만 경솔하게 바꾸는 데에서 잘못하였다. 성인께서는 덕이 성대하고 도가 높아서, 만나 뵙는 사람은 반드시 공경함을 더하고 예를 다하였다. 하물며 제경공처럼 평소에 성인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감히 이러한 말로써 면전에서 성인을 더럽히지 못하였을 것이다. 이른바 스스로 그 신하에게 말하여 공자께서 그 말을 들었다는 설이 합당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趙氏曰 苟以利心觀 則必以爲聖人之去有繫乎待之輕重也 故程子特釋之
조씨가 말하길, “만약 이끗을 따지는 마음으로 살핀다면, 반드시 성인께서 떠나시는 것은 대우의 경중에 얽매인 것이 있다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정자가 특별히 이를 풀이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此與其臣議所以處子之辭 子魯人也 故議以魯君所以待三卿者待之 是時諸侯之賢而國勢富强者宜莫如齊之景公 此子之所以願仕焉者也 晏平仲得政已三世矣 景公至魯與子語而說之 其後子不得志於魯 遂之齊 景公數問政而說 嬰之所深忌也 所以欲害子而進間言也 方責效於期日之間而嬰乃謂累世不能殫其學 此景公所以謂吾老而不可俟也
후재풍씨가 말하길, “이것은 제경공이 자기 신하들과 더불어 공자를 처우하는 것을 의논한 말이다. 공자는 노나라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서 노나라 임금이 삼경을 대우하는 바로써 공자를 대우하는 것을 의논한 것이다. 이 당시에 제후 중에서 현명하고 국세가 부강한 사람으로는 제나라 경공만한 사람이 없었다고 해야 마땅하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이곳에서 벼슬하기를 원했던 까닭이다. 안평중은 정사를 얻은 지 이미 3세대나 되었다. 제경공이 노나라에 이르러 공자와 더불어 말을 하고는 기뻐하였다. 그 후에 공자는 노나라에서 뜻을 얻지 못하였고, 마침내 제나라에 갔던 것이다. 제경공은 수차례 정치를 물었고 기뻐하였는데, 이는 안영이 깊이 꺼리는 바였다. 그래서 공자를 해치고자 하였고, 나아가서 이간질하는 말을 하였던 것이다. 바야흐로 1년 안에 효과를 보이도록 요구하였지만, 안영은 도리어 몇 세대를 거쳐도 그것을 다 배울 수가 없다고 말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제경공이 ‘나는 늙었으니 더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던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景公初欲用孔子 蓋本心之暫明 終不能用 乃蔽於私意之昏弱 終於亂亡 宜矣
신안진씨가 말하길, “제경공은 처음에 공자를 기용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대체로 본심이 잠시 밝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기용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곧 사사로운 뜻에 가려진 昏弱이니, 어지럽고 망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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