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⑲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7 - 양화(陽貨) - ⑲ | |
| 1 | 子曰 予欲無言하노라 子貢이 曰 子如不言이시면 則小子何述焉이리잇고 子曰 天何言哉시리오 四時行焉하며 百物生焉하나니 天何言哉시리오. |
| 2 | 자왈 여욕무언하노라 자공이 왈 자여불언이시면 즉소자하술언이리잇고 자왈 천하언재시리오 사시행언하며 백물생언하나니 천하언재시리오. |
| 3 |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는 말을 아니 하고자 하노라.”라고 하셨다.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을 무엇으로 도를 진술하리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 사시가 운행되고 온갖 사물이 생성되니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라고 하셨다. |
| 4 | The Master said, “I would prefer not speaking.” Tsze-kung said, “If you, Master, do not speak, what shall we, your disciples, have to record?” The Master said, “Does Heaven speak? The four seasons pursue their courses, and all things are continually being produced, but does Heaven say anything?”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7 - 양화(陽貨) - ⑲ |
| 子曰 予欲無言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는 말을 아니 하고자 하노라.”라고 하셨다. 學者多以言語觀聖人 而不察其天理流行之實 有不待言而著者 是以徒得其言 而不得其所以言 故夫子發此以警之 배우는 사람들은 말로써 성인을 관찰하면서도 그 天理가 흘러 운행하는 실질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명확히 드러나는 것도 있다. 이런 까닭으로 성인의 말씀을 그저 얻어들었을 뿐 성인께서 말씀하신 까닭을 터득하지 못하였기에, 부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어 그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慶源輔氏曰 此亦有兩意 一是天理流行之實 凡動靜語默 皆是初不待言而著 學者惟不察乎此而但以言語觀聖人 是以徒得其言而不得其所以言 故夫子發此以警之 一是以言而敎人 固聖人之本心 因言以進道 亦學者之當務 但學者心麤氣暴 其於聖人之言 領略之意常多 體察之意常少 是以徒得其言而不得其所以言 故夫子發此以警之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 역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이렇다. 천리가 유행하는 실질은 무릇 움직임과 고요함, 말함과 침묵에서 모두 처음부터 말을 기다리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자가 오직 이것을 잘 살피지 않고서 다만 말로써 성인을 관찰하니, 이런 까닭으로 헛되이 그 말만 얻어들을 뿐 그렇게 말한 까닭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이를 발언하시어 그것을 경계하신 것이다. 또 하나는 이것이다. 말로써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본래 성인의 본심으로서, 말로 인하여 도에 나아가는 것은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힘써야 할 바다. 다만 배우는 자가 마음이 거칠고 기질이 사나우면, 성인의 말씀에 대하여 대략 이해한다는 뜻이 항상 많고, 그것을 체득하여 잘 살핀다는 뜻은 항상 적은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헛되이 그 말만 얻어들을 뿐 그렇게 말한 까닭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이렇게 발언하여 그것을 경계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자공이 말하기를, “선생께서 만일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을 무엇으로 도를 진술하리까.”라고 하니 子貢正以言語觀聖人者 故疑而問之 자공이 바로 언어로서 성인을 관찰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한 것이다. 慶源輔氏曰 此語必在未聞性與天道之前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 말은 틀림없이 性과 天道를 듣기 전에 있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 사시가 운행되고 온갖 사물이 생성되니 하늘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라고 하셨다. 四時行 百物生 莫非天理發見流行之實 不待言而可見 聖人一動一靜 莫非妙道精義之發 亦天而已 豈待言而顯哉 此亦開示子貢之切 惜乎其終不喩也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天理가 발현되고 운행하는 실질이 아닌 것이 없으니, 말을 기다리지 않고서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성인께서 하시는 동정 하나하나가 신묘한 도와 정밀한 의를 발현함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 역시 天理일 따름으로서, 어찌 말을 기다려야 드러나는 것이겠는가? 이 역시 자공에게 열어서 보여준 간절함인데, 애석하구나! 자공이 끝내 알지 못하였다. 慶源輔氏曰 百物生 是天理之發見也 四時行 是天理之流行也 發見則自其初而言之 流行則倂擧其終也 妙道言其體 精義言其用 夫子但言天之理 更不及己之事 則天人一貫而天卽己 己卽天矣 此所以爲聖人之言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온갖 사물이 생겨나는 것은 天理의 발현이고, 사계절이 운행하는 것은 天理의 유행이다. 발현은 곧 그 처음에서부터 말한 것이고, 유행은 그 마지막을 함께 거론한 것이다. 오묘한 도는 그 體를 말한 것이고, 정밀한 義는 그 用을 말한 것이다. 공자께서 다만 하늘의 이치를 말하고서 다시 자신의 일에 미치지 않은 것은 곧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꿰어져 있어서 하늘이 곧 나고 내가 곧 하늘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말씀이 된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輔氏卽集註天理發見流行之實而强分之 以發見爲百物生 流行爲四時行 下句雖是 上句實非 發見流行不必分言也 一陰一陽之謂道 陰陽非道 所以一陰一陽者爲道 道形而上者也 無形之可見也 陰陽形而下者也 卽道之發見於有形者也 四時之氣流行而爲春暖夏熱秋凉冬寒 非發見而何 若以四時行百物生之序言之 必四時之氣流行而後 百物之品發生 雲行雨施 方品物流形 乾道變化 方各正性命 豈有先言百物生而後言四時行之理哉 輔氏過於密察反成病敗 愚不可以不辨 신안진씨가 말하길, “경원보씨는 집주의 ‘천리가 발현되고 유행하는 실질’에 대하여 이를 억지로 구분하여, 발현을 백물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하고, 유행을 사시가 운행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아랫 구절은 비록 옳지만 윗 구절은 사실 틀린 것이다. 발현과 유행은 구분하여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의 음과 하나의 양을 道라고 말한다. 음양은 도가 아니다. 一陰一陽이 도가 되는 까닭은 道는 형이상학적인 것이고, 볼 수 있는 형체가 없기 때문이다. 음양은 형이하학적인 것으로서, 즉 도가 형체가 있는 것에 발현된 것이다. 사계절의 기가 유행하여 봄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더우며 가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추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발현이 아니면 무엇인가? 만약 사계절의 운행과 온갖 사물이 생겨나는 순서를 가지고 말한다면, 반드시 사계절의 기운이 유행한 후에 온갖 사물의 등급이 발생하는 것이고, 구름이 가서 비가 내려야 비로소 온갖 등급의 사물이 흘러 형체를 갖추는 것이며, 乾道가 변화해야 바야흐로 각자 제 천성과 천명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어찌 먼저 百物生을 말한 연후에 四時行을 말해야 하는 이치가 있겠는가? 경원보씨는 정밀하게 살피는 것에 지나쳐서 거꾸로 병폐를 이루었으니, 나는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無曾子之唯 亦無領會之言 見其未喩 신안진씨가 말하길, “증자의 ‘唯’라는 대답이 없었고, 또한 깨달아 이해했다는 말도 없었으니, 자공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 程子曰 孔子之道 譬如日星之明 猶患門人未能盡曉 故曰 予欲無言 若顔子則便黙識 其他則未免疑問 故曰 小子何述 又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則可謂至明白矣 愚按 此與前篇無隱之意相發 學者詳之 정자가 말하길, “공자의 도는 비유하건대 마치 해와 별의 밝음과 같지만, 오히려 문인들이 전부 다 깨우쳐 알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고자 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만약 안자였다면 곧 묵묵히 깨달았겠지만, 기타 제자들은 의문을 면하지 못하였기에, ‘우리 제자들은 무엇을 전술하겠습니까?’라고 말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말했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느냐?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셨는데, 이는 지극히 명백한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는 전편의 ‘숨기는 것이 없다’는 말의 뜻과 서로 드러내어 주는 것이니, 배우는 사람은 이를 상세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朱子曰 此語子貢聞之而未喩 故有疑問 到後來自云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方是契此旨處 顔曾 則不待疑問 若子貢以下又不知所疑矣 주자가 말하길, “이 말은 자공이 그것을 들었으면서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의문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와서야 자공 스스로 말하길, 공자님의 문장은 들을 수 있었으나, 공자님께서 성과 천도를 말하는 것은 들을 수 없었다고 하였는데, 바야흐로 이것이 이 취지와 부합하는 부분이다. 안회나 증자였다면 의문을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나, 자공 이하의 제자들이었다면 또한 의심할 바를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予欲無言一章 恐是言有所不能盡 故欲無言否 曰 不是如此 只是不消得說 蓋以都撒出來了 如四時行焉 百物生焉 天又更說箇甚底 若是言不能盡 便是有未盡處 聖人言處也盡 做處也盡 動容周旋 無不盡 惟其無不盡 所以不消得說 누군가 묻기를, “‘나는 말하지 않으련다’라는 한 장은 말을 함에 있어 전부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어서 말을 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와 같은 것이 아니다. 단지 말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니, 대체로 모두 다 뿌려져 나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계절이 운행되고 온갖 사물이 생겨나는데, 하늘이 또 다시 무슨 말을 하는가?’와 같은 것이다. 만약 말을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면, 곧 미진한 곳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인께서는 말할 곳에서는 다 하였고, 행할 곳에서도 다 하였으며, 행동거지와 용모 갖춤이 전부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오직 성인께서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그래서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四時行百物生 皆天命之流行 其理甚著 不待言而後明 聖人之道 亦猶是也 行止語黙 無非道者 不爲言之有無而損益也 有言乃不得已 爲學者發爾 曰甚善 누군가 묻기를,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육하는 것은 모두 천명의 유행이니, 그 이치가 아주 잘 드러나 있어, 말을 기다린 연후에 밝아지는 것이 아니며, 성인의 道 또한 이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행동거지, 말함과 침묵 중에 도가 아닌 것이 없으니, 말의 유무에 따라 더해지고 덜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이 있었던 것은, 곧 부득한 것으로서 배우는 자를 위하여 발언했을 따름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아주 좋은 말이다.”라고 하였다. 問四時行百物生 兩句自爲體用 蓋陰陽之理運行不息 故萬物各遂其生 聖人之心 純亦不已 故動容周旋自然中禮 曰 是此意 누군가 묻기를,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육한다는 이 두 구절은 저절로 體와 用이 됩니다. 대체로 음양의 이치는 그 운행이 쉬지 않기 때문에, 만물은 각자 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인의 마음 역시 순수하기가 그치지 않기 때문에, 성인의 動容周旋이 자연히 예에 들어맞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바로 이 뜻이다.”라고 하였다. 問夫子以子貢專求之言語之間 故告之予欲無言以發之 子貢未能無疑 故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蓋欲其察之踐履事爲之實也 程子謂 猶患門人未能盡曉 故曰 予欲無言 夫恐其不能盡曉 當更告之 而曰欲無言 何也 或云 予欲無言一章 實兼無隱乎爾之意 蓋四時行百物生 所謂無隱也 程子蓋推明夫子所以啓發子貢之意 欲其求之於踐履事爲之實者 未知是否 曰 恐人不能盡曉而反欲無言 疑得甚好 更熟玩之 當自見得分明也 누군가 묻기를, “공자께서는 자공이 오로지 말 사이에서 구하였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함으로써 그를 계발시켰던 것이지만, 자공은 의문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육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대체로 자공이 事爲를 실천하는 실제에서 그것을 살피도록 한 것입니다. 그런데 정자가 말하길, ‘문인들이 다 깨닫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기 때문에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 무릇 그가 다 깨닫지 못하였을까 걱정하였다면, 마땅히 다시 알려주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혹자는 말하길,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장은 실제로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뜻을 겸하고 있으니, 대체로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육한다는 것은 이른바 숨기는 것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정자는 대체로 공자께서 자공을 계발하고자 한 뜻을 미루어 밝힘으로써 자공으로 하여금 일과 행위를 실천하는 실제에서 구하도록 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사람들이 다 깨우쳐 알지 못할까 두려워하였음에도, 도리어 말하지 않고자 한 것, 이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것은 대단히 좋다. 다시 그것을 푹 익도록 음미해서, 마땅히 스스로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韜仲之問 文公使更熟玩之 竊謂 聖道明如日星 門人猶未能盡曉者 以其徒求之言語之間 而不知動作語默無非聖道之形見 此所以聖道雖明而其見滯於言語間不能盡曉也 苟謂恐其不能盡曉 當更告之 聖人方病學者徒求之言語 而又益詳於言語 言語愈詳 知識愈滯 未能盡曉者 何由而曉也 使能不徒求之言語 而必察聖人之一動一靜莫非妙道精義之發 則能知聖人之動靜無非理 必悟聖人之語默無非敎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韜仲의 질문에 文公(주자)은 더욱 깊이 그것을 음미하도록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성인의 도는 밝기가 해나 별과 같은데도 문인들이 오히려 다 알지 못한 것은, 그것을 헛되이 언어 사이에서 구하면서도 동작이나 말함과 침묵 중에 성인의 도가 드러나지 않은 것이 없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성인의 도가 비록 밝지만, 그것이 언어 사이에 막혀서 다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만약 다 알지 못할까 걱정한다면 마땅히 다시 일러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인께서 바야흐로 배우는 자가 헛되이 언어에서 구하는 것을 병폐로 삼으면서도, 또한 언어에 대하여 더욱 상세하게 하는 것이다. 언어가 상세할수록 지식은 더욱 막힐 뿐이니, 다 깨우쳐 알지 못하는 자가 무엇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겠는가? 만약 능히 헛되이 언어에서만 구하지 않고, 반드시 성인의 동정 하나하나가 오묘한 道와 정밀한 義가 아님이 없다는 것을 살필 줄 안다면, 성인의 동정이 이치가 아님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반드시 성인의 말씀과 침묵 중에 가르침이 아님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南軒張氏曰 四時行百物生者 天道之流行無息也 天雖不言而何隱哉 聖人動靜語默之間 無非至理之所在 再曰 天何言哉 所以發之者 深矣 남헌장씨가 말하길, “四時行百物生이라는 것은 천도의 유행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은 비록 말하지 않더라도 무엇을 숨긴단 말인가? 성인이 움직이고 멈추고 말하고 침묵하는 사이에 지극한 이치가 들어있지 않은 것이 없다. 재차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라고 말한 것은 이를 드러내어 표현한 것이 아주 깊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覺軒蔡氏曰 集註以此章與前篇無隱之意相發 蓋四時行百物生 莫非天理發見流行之實 正所以發夫子之無隱也 學者玩此而有得焉 不惟見聖人一動一靜純乎天理之妙 不待言而顯 便當反之於踐履事爲之實 俛焉孶孶 庶幾有得乎希聖希天之事 更玩四時行百物生 尤見其體用一原 陰陽之理運行不息 而萬物各遂其生之妙 聖人亦天而已 각헌채씨가 말하길, “집주에서는 이 장과 전편의 ‘숨기는 게 없다’는 것의 뜻으로써 서로를 드러내어 주는데, 대체로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육한다’는 것은 천리가 발현되어 유행하는 실질이 아님이 없는 것이니, 바로 공자의 ‘숨기는 게 없다’는 것을 드러내어 준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이것을 음미하여 터득하는 바가 있게 되면, 단지 성인의 동정 하나하나가 天理에 순일한 오묘함이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드러나는 것을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마땅히 事爲를 실천하는 실제에 돌이켜서 부지런히 힘쓴다면, 거의 성인과 하늘을 바라는 일에 터득함이 있게 될 것이다. 다시 ‘四時行, 百物生’을 음미하면, 그 體와 用이 같은 근원이고, 음양의 이치가 쉼 없이 운행되면서도, 만물은 각자 자기 삶의 오묘함을 이루며, 성인 역시 하늘일 따름을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予欲無言 聖人是要人就他躬行處體認 莫只於他言語上求 蓋就躬行處體認 便件件把作實事看 若只就言語上求 只將作空言看了 無益於得也 此與吾無隱乎爾章 大同小異 那是說行處無非至理 別無深晦底道理 此是說行處都是實理 不必於吾言語上求 쌍봉요씨가 말하길,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는 이 말은 성인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성인이 躬行하는 부분으로 나아가 체득하여 인식하도록 한 것이지, 단지 성인의 언어 위에서 구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대체로 躬行하는 부분으로 나아가 체득하여 인식하게 되면, 사사건건 모두 실제적인 일로 삼아서 볼 것이고, 만약 그저 언어 위로 나아가 구하고자 한다면, 단지 장차 허황된 말로 삼아서 볼 뿐이니, 터득함에 아무런 유익함이 없을 것이다. 이는 ‘나는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는 장과 더불어 대동소이한 것이다. 저것은 궁행하는 것에 지극한 이치가 아닌 것이 없으니, 깊숙이 감추어진 도리가 달리 더는 없다고 말한 것이고, 이것은 궁행하는 것이 모두 실제적인 이치이니, 반드시 내 말 위에서 구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夫子示子貢以一貫之學 此又示以無言之天 卒於聞性與天道 子貢之學 可謂日進無疆者矣 후재풍씨가 말하길, “공자께서 자공에게 一貫의 학문을 보여주셨고, 여기서는 또 무언의 하늘을 보여주셨으며, 性과 天道를 듣는 것에서 끝났으니, 자공의 배움은 날로 나아가 그 끝이 없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雲峯胡氏曰 集註妙道精義之發 妙道其體也 天理之渾然者也 精義其用也 天理之粲然者也 朱子感興末篇 始曰 玄天幽且默 仲尼欲無言 萬物各生遂 德容自淸溫 末曰 曰予昧前訓 坐此枝葉繁 發憤永刊落 奇功收一原 三復是詩 朱子之學 晩年造詣深矣 學者宜致思焉 운봉호씨가 말하길, “집주에서 말한 妙道와 精義의 드러냄과 관련하여, 妙道는 그 體이고, 天理가 혼연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精義는 그 用인데, 天理가 찬연히 빛나는 것이다. 주자가 ‘감흥시’ 말편의 처음에 말하길, ‘현묘한 하늘이 그윽하고도 또 말이 없으니, 중니는 말을 하지 않고자 하였고, 만물이 각자 그 삶을 이루니, 德容이 저절로 맑고 온화해진다.’고 하였다. 그 끝에 말하길, ‘내가 선현의 가르침에 몽매하여, 여기 가지와 이파리가 무성한 곳에 앉았다고 말하니, 발분하여 영원히 깎아내어 버려서 기이한 공력으로 一原을 거두리라.’고 하였다. 이 시를 세 번이나 반복하였으니, 주자의 학문은 만년에 나아감이 매우 깊은 것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여기에 생각을 지극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新安倪氏曰 按以妙道精義分體用 蓋因輔氏之說而申明之 擧感興末篇 則因蔡氏之說而詳言之也 蔡氏說此章嘗謂 先師於感興卒章特發其義而收奇功於一原 其所以勉學者深矣 但此能述之 尤爲詳明 萬物各生遂接玄天幽且默而言 德容自淸溫接仲尼欲無言而言 卽動靜無非敎之意也 又按徽庵程氏 嘗提掇欲之一字而講之曰 先聖雖欲無言而未得以無言也 未以無言期諸子而獨以無言期子貢 何哉 高於子貢者 自能忘言以會道 與回言終日而無所不說 不必示之以無言也 下於子貢者 方將因言以求道 但敎之 以不知言無以知人 言及之而不言謂之隱 可與言而不與之言失人 未可示之以無言也 惟天資學力賢如子貢 而猶以言語觀聖人 不得不示之以無言耳 此說就子貢身上發明甚切 謹附于此 신안예씨가 말하길, “오묘한 道와 정밀한 義를 體와 用으로 나누는 것은 대체로 경원보씨의 말에 따라 거듭 밝힌 것이고, 감흥시 마지막 편을 거론한 것은 채씨의 말을 바탕으로 하여 상세하게 말한 것이다. 채씨가 이 장을 설명하여 일찍이 말하길, 선사께서 감흥시 마지막 장에서 그 뜻을 특별히 드러내어서 一原에서 기이한 공을 거두었다고 하였으니, 배우는 사람을 권면한 바가 매우 깊은 것이나, 다만 여기에서 그것을 전술할 수 있음이 더욱 상세하고 분명하였다. 만물이 각자 그 삶을 이룬다는 것을 현묘한 하늘이 그윽하고 또 말이 없다는 것에 이어서 말하였고, 德容이 저절로 맑고 온화해진다는 것을 중니께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에 이어서 말하였으니, 이는 곧 온갖 動靜에 가르침이 아닌 것은 없다는 뜻이다. 또 다시 휘암정씨가 일찍이 欲이라는 한 글자를 콕 집어서 강론하며 말하였듯이, 先聖께서 비록 말하지 않고자 하였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 다른 제자들에게 기약하지 않았음에도, 유독 말을 하지 않음으로 자공에게 기약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자공보다 높은 사람은 저절로 말을 잊고서 道를 이해할 수 있으니, ‘안회와 더불어 종일토록 말해도 기뻐하지 않는 바가 없었다’는 것처럼 반드시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공보다 아래인 사람의 경우는, 바야흐로 장차 말을 바탕으로 도를 구하고자 하니, 다만 ‘말을 모르면 사람을 알 수가 없다’거나, ‘말이 그에 미침에도 말하지 않으면 이를 일컬어 숨긴다고 한다’거나, ‘더불어 말할 수 있음에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는다’는 것으로써 가르치는 것이니,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에게 보여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직 천부적 자질과 배우는 힘이 자공처럼 어질었음에도, 여전히(도리어) 언어로써 성인을 관찰하였으니, 말하지 않음으로 그에게 보여주지 않을 수 없었을 따름이다. 이 말은 자공의 身上에 나아가 드러내어 밝힌 것이 대단히 절실하였기에, 삼가 여기에 붙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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