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㊱
논어집주 (論語集注)
| 논어(論語) - 14 - 헌문(憲問) - ㊱ | |
| 1 | 或이 曰 以德報怨이 何如하니잇고 子曰 何以報德고 以直報怨이오 以德報德이니라. |
| 2 | 혹이 왈 이덕보원이 하여하니잇고 자왈 하이보덕고 이직보원이오 이덕보덕이니라. |
| 3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은덕(恩德)으로써 원한(怨恨)을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은덕에 보답하겠는가? 정직(正直)함으로써 원한을 갚고, 덕(德)으로써 덕(德)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
| 4 | Some one said, “What do you say concerning the principle that injury should be recompensed with kindness?” The Master said, “With what then will you recompense kindness? Recompense injury with justice, and recompense kindness with kindness.”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4 - 헌문(憲問) - ㊱ |
| 或曰 以德報怨 何如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은덕(恩德)으로써 원한(怨恨)을 갚는 것이 어떻습니까?”라고 하니, 或人所稱 今見老子書 德 謂恩惠也 어떤 사람이 한 말은 지금 노자라는 책에서 보인다. 덕은 은혜를 말한다. 老子道德經恩始章曰 大小多少 報怨以德 圖難於其易 爲大於其細 노자 도덕경 은시장에 이르길, “크고 작고 많고 적고, 모두 덕으로써 원한을 갚고, 그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을 도모하고, 그 미세한 것에서 큰 것을 행한다.”라고 하였다. 子曰 何以報德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은덕에 보답하겠는가? 言於其所怨 旣以德報之矣 則人之有德於我者 又將何以報之乎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이미 덕으로써 갚아버렸으니, 그러한 즉 나에게 덕을 베푼 사람이 있다면 또 장차 어떤 것으로써 그에게 갚을 것이냐고 말한 것이다. 朱子曰 以德報怨 不是不好 但上面更無一件可以報德 譬如人以千金與我 我以千金酬之 便是當然 或有人盜我千金 而吾亦以千金與之 却是何理 視與千金者 更無輕重 斷然是行不得也 주자가 말하길, “덕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는 것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위에는 더이상 이로써 덕을 갚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비유하자면, 남이 천금을 나에게 주었는데, 내가 천금으로 갚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혹 어떤 사람이 내 천금을 훔쳐갔음에도, 내가 또한 천금을 그에게 주는 것과 같으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이치인가? 천금을 준 사람을 감안한다면, 더이상 무슨 경중이 없으니, 이는 단연코 행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以直報怨 以德報德 정직(正直)함으로써 원한을 갚고, 덕(德)으로써 덕(德)을 갚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於其所怨者 愛憎取舍 一以至公而無私 所謂直也 於其所德者 則必以德報之 不可忘也 자신이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애증과 취사를 오로지 지극히 공정하되 사욕이 없는 것으로써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른바 곧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덕을 베푼 사람에게는 곧 반드시 은덕으로써 보답해야 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 或人之言 可謂厚矣 然以聖人之言觀之 則見其出於有意之私 而怨德之報皆不得其平也 必如夫子之言 然後二者之報各得其所 然怨有不讐 而德無不報 則又未嘗不厚也 此章之言 明白簡約 而其指意曲折反復 如造化之簡易易知 而微妙無窮 學者所宜詳玩也 어떤 사람의 말은 두터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성인의 말씀으로써 살펴보면, 곧바로 그것이 의도적인 사사로움에서 나온 것이고, 원한과 은덕의 갚음이 모두 그 공평함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드시 공자 선생님의 말씀처럼 한 연후에 비로소 두 가지의 갚음이 각자 제자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원한이 있으나 복수하지 않고 은덕은 빠짐없이 갚는다면, 이 또한 확실히 두터운 것이다. 이 장의 말씀은 명백하면서도 간략하지만, 그 뜻은 곡절이 많고 反覆無常하다. 마치 조화가 간결하여 쉽게 알 수 있지만, 그 미묘함이 무궁한 것과 같다. 배우는 사람이 마땅히 상세하게 음미해야 할 바다. 新安陳氏曰 讐 仇也 怨有不必報者 不以仇待之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讐는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다. 원한이 있어도 반드시 갚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원수로서 대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以德報怨 亦可謂忠且厚矣 而夫子不之許 何哉 朱子曰 是亦私意所爲 非天理之正也 夫有怨有德 人情所不能忘 而所以報之 各有所當 亦天理之不能已也 顧德有大小 皆所當報 而怨則有公私曲直之不同 故聖人敎人以直報怨 以德報德 以直云者 不以私害公 不以曲勝直 當報則報 不必報則止 一觀夫理之當然 而不以己之私意加焉 是則雖曰報怨 而豈害其爲公平忠厚哉 然而 聖人終不使人忘怨而沒其報復之名者 亦以見夫君父之仇有不得不報者 而伸夫忠臣孝子之心耳 若或人之言 則以報怨爲薄 而必矯焉 以避其名 故於其所怨而反報之以德 若忠厚者而於所德 又將何以報之 以德之上 無復可加 若但如所謂報怨者而已 則是所以報德者 僅適其平 而所以報怨者 反厚於德 且雖君父之仇 亦將有時而忘之也 是豈不反爲逆人情悖天理之甚哉 曰 君父之仇 亦有當報不當報之別乎 曰 周禮有之 殺人而義者 令無仇 仇之則死 此不當報者也 春秋傳曰 父不受誅 子復仇 可也 此當報者也 當報而報 不當報而止 是卽所謂直也 周公之法 孔子之言 若合符節於此 可以見聖人之心矣 曰 然則 楊氏所謂 小加委曲 如庾公之斯者 如何 曰 此意善矣 而亦有所未盡也 蓋天下之事 有公義有私恩 二者常相得焉 則盡其道而不爲私 可也 不幸而或至於相妨 則權輕重以處之 使公義行於上 而私恩伸於下 然後可耳 若小加委曲 而害天下之公 則亦君子所不爲也 委曲 누군가 묻기를,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것은 역시 정성스럽고 또한 두터운 것임에도 공자께서 이를 허용하지 않으신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이 역시 私意가 행하는 바이지, 천리의 올바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릇 원한도 있고 덕도 있는 법인데, 이는 人情으로 잊지 못하는 바이지만, 이를 갚는 것에는 각자 합당한 바가 있으니, 이 역시 天理가 그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덕에는 크고 작음이 있더라도, 모두 마땅히 갚아야 할 바이지만, 원한이라면 公私와 曲直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성인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길, ‘곧은 것으로 원한을 갚고, 덕으로 덕을 갚으라’고 하신 것이다. 곧은 것으로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사로움으로 公正함을 해치지 않고, 굽은 것으로 곧은 것을 이기지 않도록 하신 것이니, 마땅히 갚아야 하면 갚고, 반드시 갚을 필요가 없으면 그치는 것이다. 오로지 저 이치의 당연한 것만 살펴볼 뿐, 거기에 자기의 私意를 더하지 않는다면, 이는 곧 비록 원한을 갚는다고 말할지라도, 어찌 그것이 공평하고 충후함이 되는 것에 방해가 되겠는가? 그러나 성인께서 끝내 사람들로 하여금 원한을 잊어서 그 보복하는 명분이 사라지도록 하시지 않으신 것은, 또한 이로써 저 君父의 원수는 갚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음을 보여서, 저 충신과 효자의 마음을 펼쳐주신 것일 따름이다. 만약 혹자의 말처럼 한다면, 원한 갚는 것을 너무 야박하다고 여겨서 반드시 구부려서 그 명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가 원한을 가진 사람에게 대하여 거꾸로 덕으로써 갚아준다면, 마치 정성스럽고 두터운 것 같지만,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또 장차 무엇으로 갚는단 말인가? 덕으로써 갚아주는 것 위에는 더 이상 더할 바가 없으니, 만약 그저 이른바 원한을 갚는 것처럼 할 따름이라면, 덕을 갚아주는 것은 겨우 그와 비슷한 정도에 나아갈 것이고, 원한을 갚아주는 것은 거꾸로 덕을 갚는 것보다 훨씬 두터운 것이 될 것이다. 또한 군부의 원수일지라도 또한 장차 그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을 것이니, 이 어찌 도리어 人情을 거스르고 天理에 위배됨이 심한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말하길, “군부의 원수에는 또한 마땅히 갚아야 하고 마땅히 갚지 않아도 되는 구별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주례에 그런 것이 있는데, ‘사람을 죽였지만 의롭다면 원수를 갚지 않도록 하고, 원수를 갚는다면 사형에 처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갚지 않아야 마땅한 것이다. 춘추전에 이르길, 아비가 마땅히 받을 주벌을 받지 않고 죽었다면, 자식이 복수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마땅히 갚아야 하는 것이다. 갚아야 마땅해서 갚고, 갚지 않아야 마땅해서 그치는 것, 이것이 바로 이른바 곧다는 것이다. 주공의 법과 공자의 말씀은 마치 여기에서 부절을 합하는 것과 같이 일치하니, 이로써 성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렇다면, 양씨가 말한 ‘조금 상세한 곡절을 더하여 유공지사와 같이 한다면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이 뜻은 참 좋기는 하지만, 역시 다소 미진한 부분이 있다. 대체로 천하의 일에는 공정한 의로움도 있고 사사로이 베푸는 은혜도 있는데, 이 두 가지는 항상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니, 그 道를 다하되 사욕을 위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혹 서로 방해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 경중을 저울질하여 처리함으로써 公義가 위에서 행해지고 私恩이 아래에서 펼쳐지게 한 연후라면, 괜찮을 뿐인 것이다. 만약 조금 委曲을 더했을 뿐이라도 천하의 공정함에 해가 된다면, 이 역시 군자가 행할 바는 아닌 것이다.”라고 하였다. 以德報怨 於怨者厚矣 而無物可以報德 則於德者不亦薄乎 以直報怨 則不然 如此人舊與吾有怨 今果賢邪 則引薦之 果不肖邪 則棄之絶之 是蓋未嘗有怨矣 덕으로 원한을 갚으면 원한이 있는 자에게 후한 것이지만, 덕을 갚을 만한 사물이 없다면 덕을 베푼 사람에게는 또한 야박하지 아니한가? 곧은 것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면 그렇지 않으니, 만약 이 사람이 옛날에 나와 원한이 있었지만, 지금 과연 현명하다면 그를 이끌어 천거하고, 과연 불초하다면 그를 버리고 끊어버린다면, 이는 대략 일찍이 원한이 있지 않았던 것이다. 雙峯饒氏曰 直是直道 當報則報 不當報則不報 是之謂直 老氏之說 不問道理曲直 只是不欲與人結怨而已 以德報怨 說殺了 不若以直報怨之語 中間有涵蓄 當報而報與不當報而不報 皆在其中 學者玩味其意 觸類而長 則可爲處事之權衡矣 쌍봉요씨가 말하길, “곧은 것이란 곧 直道이니, 갚아야 마땅하면 갚고, 갚지 않아야 마땅하면 갚지 않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곧다고 하는 것이다. 노씨의 말은 道理의 곡직을 불문하고, 그저 남과 더불어 원수를 맺지 않고자 할 뿐이다. 덕으로 원한을 갚는다고 말하고 그냥 끝내는 것은, 곧은 것으로 원한을 갚는다는 말 가운데에 함축하고 있는 바가 있어서, 갚아야 마땅하면 갚고 갚지 않아야 마땅하면 갚지 않는 것이 모두 그 안에 있는 것만 못한 것이다. 배우는 자가 그 뜻을 잘 음미하여 觸類而長한다면, 일을 처리하는 權衡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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