飮酒 其五 - 陶淵明
結廬在人境(결려재인경)
而無車馬喧(이무차마훤)
사람들 틈에 농막 짓고 살아도,
수레나 말 타고 시끄럽게 찾아오는 자 없노라.
問君何能爾(문군하능이)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어찌 그럴 수 있는가 묻기도 하지만,
마음 두는 곳이 원대하니 몸담은 땅도 스스로 외지게 되노라.
採菊東籬下(채국동리하)
悠然見南山(유연견남산)
동쪽 울타리에 피어난 국화꽃을 딸 새,
무심코 저 멀리 남산이 보이노라.
山氣日夕佳(산기일석가)
飛鳥相與還(비조상여환)
가을 산 기운 저녁에 더욱 좋고,
날새들 짝지어 둥지로 돌아오니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欲辨已忘言(욕변이망언)
이러한 경지가 바로 참맛이려니,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노라.
♧ 語釋 (어휘 풀이)
0 結廬在人境 而無車馬喧
*結廬(결려) : 농막을 짓다. (*結(결): 짓다, 세우다 *廬(려): 농막, 오두막, 초가집)
*在人境(재인경) : 사람들이 사는 고장에. 즉 깊은 산중에 농막을 짓고 은퇴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들 틈에 끼어 살면서 고고하게 탈속한다는 뜻. (*人境(인경): 사람이 사는 마을, 세속)
*而(이): 그런데, 그러나, 그러면서도.
*無車馬喧(무거마환) : 정치나 벼슬살이에서 벗어났으므로 고관이나 관리가 수레나 말을 타고 시끄럽게 찾아오는 일이 없다. (*車馬(거마): 관리가 타는 수레. 수레와 말, 즉 사람들의 왕래. *喧(훤): 시끄럽다. 소란, 시끄러움.)
→ “오두막은 사람 사는 마을에 지었으나, 수레와 말의 소란함은 없다”
→ 세속 안에 살되 속세의 번잡함과는 단절된 삶을 말한다.
0 問君何能爾 心遠地自偏
*問君(문군) : 그대에게 묻는다는 뜻. 그러나 시에서는 '자문자답(自問自答)의 뜻으로 풀어도 좋다.
*何能爾(하능이) :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爾(이): 그렇게, 그와 같이 (=然))
*心遠地自偏(심원지자편) : 나의 마음이 속세에서 멀리 떨어져 한가하니까 따라서 내가 사는 곳이 비록 지리적으로는 거리 한복판일지라도 정신적으로는 편벽된 구석같이 조용하다는 뜻. 이 구절은 사뭇 유명한 시구다. (*偏(편): 외따르다, 한적하다.)
→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리 살 수 있는가? 마음이 멀어지니, 땅도 저절로 한적해지는 것이다”
→ 외적인 은거가 아니라 내면의 거리두기, 즉 마음의 초연함이 진정한 은거임을 말한다.
0 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
*採菊(채국) : 국화꽃을 따다.
*東籬下(동리하) : 동쪽 울타리 아래 (*籬下(리하): 울타리 아래)
*悠然見南山(유연남견산) : 한가로운 심정으로 남산을 바라본다. 인간 속세의 야심이나 욕심이 없으니까 자연을 마냥 유연한 태도로 바라볼 수가 있다. 남산(南山)은 여산(廬山)이다. 구강(九江) 남쪽에 있으므로 남산이라고 했다. 도연명은 그 밑에서 살았다. (*悠然(유연): 한가롭게, 유유히 *見(견): 의식적으로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보인다는 뜻. 따라서 望(망)이라고 한 판본은 잘못이며 시의 맛을 깎는다고 소동파가 평했다.)
→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다가, 유유히 남산을 바라본다”
→ 전원생활의 고요한 풍경과 자연과의 교감을 함축한다.
→ 이 구절은 후대 문학과 회화에서 가장 널리 인용된 명구이다.
0 山氣日夕佳 飛鳥相與還
*山氣(산기) : 가을의 산책(山色), 또는 산을 둘러싼 운치나 기색.
*日夕佳(일석가) : 저녁이 되자 더욱 아름답다. (*日夕(일석): 낮과 저녁, 혹은 해 질 무렵 *佳(가): 아름답다)
*相與還(상여환) : 서로 짝을 짓고 돌아온다. (*相與(상여): 서로 함께)
→ “산의 기운은 저녁 무렵 더욱 아름답고, 나는 새들은 서로 짝지어 돌아간다”
→ 자연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을 노래한 부분이다.
0 此中有眞意 欲辨已忘言
*此中有眞意(차중유진의) : 이러한 경지에 참다운 뜻이 있다. 욕심에 엉키고 농간질하는 속세가 아닌 '悠然見南山(유연남견산)할새, 아름다운 가을 황혼, 새들이 집을 찾아 돌아오는 경지'의 참 맛을 찾을 수 있다.
*欲辨(욕변) : 그 진의를 분석해 가지고 말로 표현하고자 해도, (*辨(분별할 변): 설명하다, 분별하다.)
*已忘言(이망언) : 이미 표현할 말을 잃었다. 즉, 말로는 표현할 도리가 없다는 뜻.
→ “이 속에는 참된 뜻이 있으나, 말로 설명하려 하면 이미 잊고 만다”
→ 언어를 초월한 자연의 진리, 직관적 깨달음을 강조하며 시를 맺는다.
♧ 漢字 申解 (한자 풀이)
*結(결) 짓다. 세우다. 맺다. *廬(려) 오두막, 초가집. *喧(훤) 소란, 시끄러움. 시끄럽다. *爾(이) 그렇게, 그와 같이 *偏(편) 외곬, 시골, 궁벽한 곳. 외따르다, 한적하다. 치우치다, 쏠리다. 편향되다. *籬(리) 울타리. 대나무. *悠(유) 멀다. 아득하다. 한가하다. 한가로이. *佳(가) 아름답다. *辨(변) 설명하다. 분별하다.
♧ 大意(대의) 및 解說(해설)
이 시는 도연명이 자연 속에서의 은거 생활을 통해 깨달은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 그는 사람이 사는 세속의 경계 안에 오두막을 짓고 살지만, 그곳에는 수레와 말의 소란함이 없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 때문이 아니라, 마음이 세속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거처 또한 저절로 한적해졌다는 의미이다. 시인은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유유히 남쪽 산을 바라본다. 그러한 한가롭고 평화로운 순간 속에서, 해 질 무렵 산의 맑은 기운과 짝을 지어 돌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이 자연의 조화로운 풍경은 시인에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깨달음을 안겨주지만, 그것을 표현하려 하자 말은 이미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 속 삶의 고요함과 조화로움 속에서 언어를 초월한 참된 뜻을 느끼며, 진정한 은거와 자유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달려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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