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懷 - 金宏弼 회포를 적다.
處獨居閑絕往還(처독거한절왕환)
只呼明月照孤寒(지호명월조고한)
煩君莫問生涯事(번군막문생애사)
數頃烟波數疊山(수경연파수첩산)
한가로이 홀로 살며 오고 감을 끊은 채
다만 밝은 달 불러 차고 외로움 비치었네.
그대는 아예 생애의 일 묻지 마오.
두어 이랑 흰물결에 몇겹의 청산뿐이로다.
*出典:
1.續東文選卷十。2.退溪先生文集攷證卷之六,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 제48권 예문지(藝文志)에는 '孤'가 '淸'으로, '烦(번)'이 '憑(빙)'으로, '數頃(수경)'이 "萬頃(만경)'으로 되어 있다.
*攷證(고증): 유물(遺物)이나 문헌(文獻)을 상고(詳考)하고 증거(證據)를 대어 설명(說明)함, 攷(고): 상고하다. 考의 古字,
*處獨居閑(처독거한): 혼자 한가롭게 지내다.
*住還(왕환): 갔다가 돌아옴, 오고 감.
*孤寒(고한): 매우 쓸쓸하고 가난한 생활, 의지할 곳 없고 가난함, 寒士
*煩(번): 번거롭다. 수고스럽지만~, 죄송(미안)하지만.
*君(군): 군주, 임금, 타인에 대한 존칭,
*莫問(막문): 묻지 마라.
*生涯事(생애사): 세상 살아가는 일.
*數頃煙波(수경연파): 연무(煙霧)에 잠긴 물결,
*數疊山(수첩산): 몇 겹으로 겹쳐 있는 산들, 深深山中(심심산중),
서회(書懷)-김굉필(金宏弼)
處獨居閒絶往還(처독거한절왕환) :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只呼明月照孤寒(지호명월조고한) :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비추네
憑君莫問生涯事(빙군막문생애사) : 그대 생각으로, 나의 생애 묻지 말라
萬頃煙波數疊山(만경연파수첩산) :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들이 가득하니라
<감상1>
김굉필(1454-1504)은 김종직의 제자로서, 조광조에게 학문을 전한 대학자이다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로 이어지는 조선 성리학의 정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사림파로 지목되어 그들과 정치적 영욕을 같이한 풍운아이기도 했다. 그는 무오사회에 연관으로 극형에 쳐해졌으나 중종반정 후 신원되어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이 시는 그의 정치적 좌절기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1구를 보자
處獨居閒絶往還(처독거한절왕환) : 홀로 있으며 한가한 곳에 사니, 오가는 이 드물고
<독처(處獨)>는 사람을 피하여 혼자 있음을 뜻한다
<거한(居閒)>는 일을 피하여 한가히 살아감을 뜻한다
<절왕환(絶往還)>은 오고감이 없음을 뜻한다
작가는 사람을 피하여 혼자 있다고 한다
왜, 작가가 사람을 피하는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사람들은
불필요하거나 부질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경우는
사람으로부터 심각한 충격이나 피해를 당한 경우다
작가의 경우는 어떠한 경우인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또, 작가는 한가한 일에 처한다고 한다
세상일이란, 대부분 이익을 목적으로 경쟁을 한다
그래서 한가하게 살기란 쉽지가 않다
경쟁은 상호간 견제와 비방도 따른다
견제와 비방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무리함에서 오는 신체적 정신적 질병도 발생한다
그래도 사람은 하던 일을 그만 두지 못한다
삶이 우리를 쫓고 있다
평범한 인간은 병이 난 뒤에야 어쩔 수 없어 중단한다
그렇지 아니한 경우, 한가함의 선택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
결단과 용기는 신념에 의한 가치관에 의존한다
그러나
또 하나의 문제는 남는다
그것은 인간적 고독과 빈궁한 생활의 문제다
성가신 사람을 피하고, 번거롭고 무리한 일을 피하면
혼자 있는 외로움과 가난함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것 또한 만만한 문제는 아니다
평범한 인간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고독과 가난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높은 가치를 목표로 한 특별한 철학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러한 능력이 없을 경우, 쉽게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자는 현재 이것을 선택한 처지이다
여기서는
작자가 관계를 떠나,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산다는 사실과
한적한 곳에 사는 관계로 자신이 잊혀져
이제는 찾아오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 외로운 처지임을 드러내고 있다
♪2구를 보자
只呼明月照孤寒(지호명월조고한) : 오직 달을 부르니, 가난하고 외로운 나를 비추네
<고한(孤寒)>은 외롭고 빈한하다
<지호명월(只呼明月)>은 다만 달을 부른다
외롭고 가난한 처지의 작가가 찾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이다
푸른 산과 맑은 하늘, 밝은 해와 달
짐승과 온갖 새들 그리고 초목들이다
외로움이 짙어지는 밤이면, 푸른 산에 떠오르는 밝은 달
언제나 저녁이면, 대하는 익숙한 달이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변함 없이 작자를 찾는다
달은 날씨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한다
이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처럼 살아있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달은 더 밝기도 하고 덜 밝기도 한다
이는 사람의 나를 대하는 태도나 표정의 변화 같기도 하다
대체로 달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많지만
어떤 경우는 내가 먼저 달을 찾는 경우도 있다
너무 외로운 날
내가 달을 부르니, 달은 곧 다가와 외롭고 가난한 나를 비춘다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나를 위로나 하려는 듯이 말이다
왜 그렇게 외로워보이고, 가난해보이는지 물어보기라도 하려는 듯이
달은 더 가까이 다가와 빛을 밝게 비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작가가 인간사회를 떠나사는 철저한 외로움이 드러난다
오직 산과 달만이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1구가 외면적 자연적 외로움의 묘사라면
여기서는 심리적 정신적 외로움이 표현되고 있다
♪3구를 보자
憑君莫問生涯事(빙군막문생애사) : 그대 생각으로, 나의 생애 묻지 말라
<빙군(憑君)>은 그대생각에 근거하여, 즉 그대 마음대로라는 뜻이다
여기서 <군(君)>은 <달>을 의인화한 것이다
<막문(莫問)>은 묻지 말아라
<생애사(生涯事)>는 평생의 겪은 일
순진하기 까지한 그대의 단순한 호기심 어린 생각으로,
나에게 <왜냐고>를 묻지 말라
왜 그렇게 외롭게 보이는지, 어째서 그렇게 궁색해보이는가를 말이다
여기서는, 자신의 처지가 외롭고 궁색해 보이는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갑자기 말함으로써
서정적 자아가 제시하는 이유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함으로써 분위기가 전환되고 있다
그 이유가 다음 구절에 제시될 것임이 암시되고 있다
♪4구을 보자
萬頃煙波數疊山(만경연파수첩산) : 넓은 바다 안개 낀 물결, 첩첩한 산들이 가득하여라
<만경(萬頃)>은 <만 이랑>이다. 이는 <넓은 것>을 의미한다
<연파(煙波)>는 <안개 낀 물결>이다. 이는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을 뜻한다
<첩산(疊山)>은 <봉우리가 중첩된 산>이다. 이는 <위험하고 험한 것>을 뜻한다
<수(數)>는 <몇>이다
인생살이란 한없이 넓고 거친 바다
그 바다의 안개 낀 물결을 건는 것과 같고
봉우리가 중첩된 깊고도 험한 여러 산길을 지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렵고 위험하고 거친 곳이라는 뜻인 것이다
도처에 위험이 깔려있고
또 그러한 위험이 언제 본인에게 닥쳐올는지도 모르는 곳이라는 것이다
온갖 위험한 것이 가득한 예측불허의 거친 들판, 황야의 택사스라는 것이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된다
불타는 욕심과 질긴 질투심에 몸이 쫓기고
끊없는 경쟁에 심신이 지치고, 마음에 병이 생기는 아비규환의 생지옥이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과 가난함이라는 댓가를 지불하고
이 산속에 스스로 안기어
한적한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택한 것이라는 서정적 자아의 심경을 보이고 있다
이 시는 학문으로 다진, 처사로서의 확고한 인생철학이 드러나고 있다
눈앞의 저급한 부귀영화보다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내면의 추구가 더 나은 삶이며
자신은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선택하여 살고 있다>고 , 이 시를 지어서 보여주고 있다
이시는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인생 마당에
은은한 대나무밭을 만들 것인가
향기로운 꽃받을 만들 것인가
진수성찬의 연회장을 만들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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