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李凝幽居-李凝의 幽居에 題함
閑居隣竝少, 한적한 거처는 이웃도 드물고,
草徑入荒園. 풀밭길은 황량한 들판으로 들어가네.
鳥宿池邊樹, 새들은 연못가 나무에서 잠자고,
僧(敲)月下門. 스님은 달빛 아래에서 문을 두드리네.
過橋分野色, 다리를 건너니 들 경치가 바뀌고,
移石動雲根. 돌을 옮기니 구름들이 움직이네.
暫去還來此, 잠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니,
幽期不負言. 은거의 기약은 말로 담을 수 없네.
-賈島-
*推:밀 퇴‧옮을 추. 敲:두드릴 고
[출전]《唐詩紀事》〈卷四十 題李凝幽居〉
민다, 두드린다는 뜻으로, 시문(詩文)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을 이르는 말.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賈島:자는 낭선(浪仙),777~841]가 어느 날, 말을 타고 가면서〈이응의 유거에 제함[題李凝幽居]〉이라는 시를 짓기 시작했다.
이웃이 드물어 한거하고 [閑居隣竝少(한거린병소)]
풀숲 오솔길은 황원에 통하네 [草徑入荒園(추경입황원)]
새는 연못가 나무에 잠자고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 [僧敲月下門(승고월하문)]
그런데 마지막 구절인 ‘중은 달 아래 문을……’에서 ‘민다[推]’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두드린다[敲]’라고 하는 것이 좋을지 여기서 그만 딱 막혀 버렸다.
그래서 가도는 ‘민다’‘두드린다’는 이 두 낱말만 정신없이 되뇌며 가던 중 타고 있는 말이 마주 오던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무례한 놈! 뭣하는 놈이냐?”
“당장 말에서 내려오지 못할까!”
“이 행차가 뉘 행찬 줄 알기나 하느냐?”
네댓 명의 병졸이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가도를 말에서 끌어내려 행차의 주인공인 고관 앞으로 끌고 갔다.
그 고관은 당대(唐代)의 대문장가인 한유(韓愈)로, 당시 그의 벼슬은 경조윤(京兆尹:도읍을 다스리는 으뜸 벼슬)이었다.
한유 앞에 끌려온 가도는 먼저 길을 비키지 못한 까닭을 솔직히 말하고 사죄했다. 그러자 한유는 노여워하는 기색도 없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역시 ‘민다’는 ‘퇴(推)’보다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네.”
이를 계기로 그후 이들은 둘도 없는 시우(詩友)가 되었다고 한다.
[주] 가도
당나라의 시인. 하북성 범양(河北省范陽) 사람. 자는 낭선(浪仙). 일찍이 불문(佛門)에 들어감. 법명(法名)은 무본(無本). 한유(韓愈)와의 사귐을 계기로 환속(還俗)한 후 시작(詩作)에 전념함.
※
題(제) : 애초에는 건물의 벽이나 기둥, 서화(書畵) 등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기물에 시를 적는 것을 의미하였는데(때로 거기에 적은 시를 가리키기도 함), 나중에는 읊고자 하는 아무 대상 앞에 이 글자를 적어, 읊는 대상을 특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도는 이 시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라는 구절에서 '문을 밀다(推·옮을 추, 밀 퇴)'라고 쓰고는 '두드리다(敲·두드릴 고)'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아니면 그대로 밀다로 쓰는 것이 좋을까" 하는 갈등이 생겼다. 두 개의 문자를 놓고 고민하면서 길을 가다가 마침 경윤(京尹)이었던 한유(韓愈)의 행차를 가로지르는 불경을 범했다. 가도가 불경할 의도가 아니라 '밀다'와 '두드리다'를 놓고 고민하던 중이라고 사연을 말하자 한유는 "민다는 퇴(推)보다는 두드린다는 고(敲)가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면서 좋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당시기사(唐詩紀事)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완성된 글을 다시 읽어 가며 다듬어 고치는 일'을 가리켜 퇴고라 하는 말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아 고치는 교열(校閱), 교정지와 원고를 대조해 틀린 글이나 빠진 글자를 찾아 바로잡는 교정(校正), 맞춤법의 오류나 잘못 표현된 어구를 바로잡는 교정(校訂)에 비하여, 퇴고는 이미 글쓰기를 마친 상태에서 보다 적절하고 적확한 문자와 단어를 찾아 표현함으로써 아름답고 온전한 글을 쓰려는 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당대의 대문장가 소동파는 '적벽부'를 탈고한 뒤 자신을 찾아온 친구에게 이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글의 빼어난 기상과 아름답고 매끄러운 문장에 감탄하며 글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물었다. 소동파는 "지금 이 자리에서"라고 대답했는데 그가 앉았던 자리가 불룩하게 솟아 있어 들춰보니 퇴고한 원고 뭉치가 한 삼태기나 깔려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최고 문장가 투르게네프는 작품을 쓰면 일단 서랍에 넣어 두고 3개월에 한 번씩 고쳤다고 하고, 시인 안도현은 시 한 편에 40∼50번의 퇴고를 거친다고 한다.요즘 철자가 틀렸을 뿐 아니라 맞춤법을 파괴하는 문자와 변형된 단어, 갖가지 이모티콘 등으로 만들어진 메시지를 받으면서 묘한 거부감을 넘어 불쾌함을 느끼는 건 세대차이일까.예수 문장은 여인 생명도 살려예수께서는 자신을 고발하려고 올무를 놓는 종교지도자들 앞에 목숨을 걸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한 줄의 글을 썼고, 다시 몸을 굽혀 땅에 쓰신 글은 간결하지만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우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한 여인의 생명을 살리는 문장이었다(요 8:2∼11). 복음사가 누가는 사실에 대한 전언과 사료를 가지고도 '자세히 미루어 살핀 후'에 글을 썼다고 했다(눅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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