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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감상

여승 - 백석

by 권석낙 2019. 1. 27.

 

https://youtu.be/QBp4028Kye0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 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여승(女僧)  / 백석

 

 

읽는 맛으로 따져 백석만큼한 이가 달리 있을까.

생경스런 단어툭툭 튀어나와도 전혀 암시랑토 않다.

  

가지취가 뭔지 까치취의 평안도 말인가?

여튼 취의 한 종류려니...

 

승려 몸에서 취나물 냄새가 날 정도면

속세의 일을 잊은지는 한참이겠다.

 

......옛날 같이 늙었다.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싯적 은유가 기가 막힌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는 또 뭔가?

사납고 성질이 급한 벌에 섶벌이란게 있나?

 

밀랍으로 제대로 집을 지어 꿀을 간수하지도 못하고

급한 대로 장작더미 귀퉁이에다 꿀을 모우는 실속없는 벌처럼

기댈 데 하나 없는 무능한 지아비는 궁리 끝에  금전판이라도 찾아간 것일까?

 

더는 어쩔 방편이 없어 주저 앉으면 안될세라

뿌리치듯 횡하니 나아간 모습이 섶벌...이런가?

 

지어미는 기다리다 오지 않는 지아비 행방을 수소문하며 

어디 금전판 언저리에 옥수수 행상이라도 벌인걸까?

 

어린 딸아이는 어디가 아파서 칭얼거렸을까?

어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그 막막함에

보채는 아이를 때리며 또 얼마나 더 아팠을까.....

 

......가을밤처럼 차갑게 울던 어미의 울음.

 

애장터 돌무덤 언저리면 피던 도라지 꽃,

딸아이는 얼마나 더 앓다가 묻혔을까?

 

...도라지 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단다....

 

아흐....

 

속세를 버리던 날...눈물처럼 떨어지던  머리오리 ...

이제 막 목울대 한켠이 매어올 참이다.

  

시 한 편에 한 여인의 기구했던 인생여정을 다 담을 수야  없지만

과거형 시문에 담고있는 저 정경... 참 아리고 아린다.

 

시를 읽는 일은  어쩌면 등불을 들어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저켠을 비춰보는 일이려니....

 

내 마음 안에 등불 하나 켜는 일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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