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茶山 丁若鏞(정약용)의 霞帔帖(하피첩)
[노을 하(霞),치마 피(霞帔),문서 첩(帖)]
02.
"霞帔帖(하피첩)"은' 노을빛 치마로 만든 소책자' 이다.
2005년에 수원의 어느 모텔 주인이 파지를 마당에 내다 놓았는데, 폐품을 모으는 할머니가 지나가다가 파지를 달라고 했다.
모텔 주인은 할머니 수레에 있던 이상한 책에 눈이 갔고, 그는 책과 파지를 맞바꿨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KBS'진품명품'에
내놓았다.
김영복 감정위원은 그 책을 보는 순간 덜덜 떨렸다.고 했다.
03.
"진품명품" 현장에서 감정가 1억원을 매겼고, 떠돌던 이 보물은 2015년에 서울 옥션 경매에서 7억 5,000만 원에 국립민속박물관에 팔렸다.
'霞帔'(하피)는 옛날 禮服(예복)의 하나다.
'붉은 노을빛 치마'를 말한다.
茶山은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전남 강진으로 귀양을 갔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마재에 남았던 아내 홍 씨는 남편 귀양 10년째 되는 해, 시집 올 때 입었던 치마를 그리운 마음을 담아 남편에게 보냈다.
그 치마에 茶山이 두 아들에게 주는 당부의 말을 쓰고 책자로 만든 것이 하피첩이다.
04.
茶山은 치마의 한 조각을 남겨'매화'와 '새'를 그려서 족자를 만들어서 시집을 가는 딸에게 주었다. 이것이 '梅鳥圖'(매조도)이다.
'부지런함(勤)과 검소함(儉),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나은 것이니 한 평생을 써도 닳지 않을 것이다.' 라고 어머니의 치마에 사랑을 담아 쓴 글씨, 세상에서 이보다 더 값진 보물이 있을까?
茶山 부부의 애절했던 사랑을 담고서 세상을 떠돌아 다니던 하피첩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
정약용의 위대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아내의 노을빛 치마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200년의 세월을 넘어 지금도 우리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
다산 정약용의 매조도
매화쌍조도
05.
가경18년(1813) 계유 7월14일 열수 늙은이는 다산의 동암에서 쓴다.
내가 강진서 귀양 산 지 여러 해가 지났다.
홍부인이 여섯 폭짜리 낡은 치마를 부쳐왔다.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 빛이 바랬기에 이를 잘라 네 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었고 그 나머지를 써서 작은 가리개로 만들어 딸에게 준다.
매화독조도
06.
1813년 8월 다산 정약용이 그린 또다른 매조도.
시집 간 딸에게 결혼선물로 주기 위해 같은 해 7월에 그린 매조도와 구도가 비슷하지만, 이 그림에는 새가 한마리만 있다.
강진에서 얻은 딸 홍임을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매조도는 2009년 처음 공개됐다.
유배중에도 딸이 시집간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음을 전한 정약용 선생의 '매화쌍조도'
강진 유배 생활 13년째인 1813년 여름, 다산초당으로 부인 홍 씨가 해진 치마를 보내왔다.
다산은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바로 옆 바다가 보이는 곳(지금의 천일각)으로 올랐다.
남양주의 가족들은 잘 있는지, 흑산도로 유배 간 형 정약전은 무사한지. 다산은 그 비단 치마폭 위에 그리움을 흠뻑 담아 그림을그렸다.
그게 바로 <매화쌍조도>이다.
이 그림은 참 단순해 보인다.
매화꽃 핀 나뭇가지에 참새 두 마리...
하지만 그 사연을 들여다보면 그 애잔함에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07.
다산은 그림 아래쪽에 시 한 편을 적었다.
저 새들 우리집 뜰에 날아와
翩翩飛鳥 息我庭梅
매화나무 가지에서 쉬고 있네
有烈其芳 惠然其來
매화향 짙게 풍기니 그 향기 그리워 날아왔구나
이제 여기 머물며 가정 이루고 즐겁게 살거라
爰止爰棲 樂爾家室
꽃도 이미 활짝 피었으니 주렁주렁 매실도 열리겠지
華之旣榮有蕡其實
다산은 그림을 그리게 된 사연도 함께 써 넣었다.
강진에서 귀양살이한 지 몇 해 지나 부인 홍 씨가 해진 치마 6폭을 보내왔다.
余謫居康津之越數年
洪夫人寄敝裙六幅
너무 오래되어 붉은색이 다 바랬다.
그걸 오려 족자 4폭을 만들어 두 자식에게 주고
歲久紅渝剪之爲四帖
以遺二子
그 나머지로 이 작은 그림을 그려 딸아이에게 전하노라
用其餘爲小障
以遺女兒
-곧 출가를 앞둔 딸의 아버지 마음-
08.
동영상 https://youtu.be/TaeUv7PWpw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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