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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講座

難得糊塗(난득호도)

by 권석낙 2019. 12. 2.

http://blog.daum.net/781202/5039308

難得糊塗(난득호도) -어리숙한 척하기는어렵다

<난득호도難得糊塗, 탁본, 43.5x101cm>

어느 일간신문에 서울대학교 권장도서 100권 중의 하나로 <<변신인형 變身人形>>이란 소설책이 소개되어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이 소설은 정판교의 글씨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인 언어학자 니자오는 1980년 독일을 방문하여 아버지의 옛 친구인 한 독일인 학자의 집을 찾아간다. 그는 그곳에서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판교 정섭의 글이 쓰인 편액扁額을 발견하고 읽는다. “어리석어지기가 어렵다”는 뜻의 판교 정섭의 글과 글씨를 보고 있다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 소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니자오의 시선이 오른쪽으로 움직여 문이 있는 쪽의 벽을 향했다. 눈이 부릅떠지고 입이 벌어졌다. 그는 놀랐다.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고자古字가 탁본으로 횡폭이 보였던 것이다. 왜 가슴이 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어나서 그 횡폭으로 다가갔다. 맞아. 바로 이거야. '난難'자가 '난'으로 씌어 있었다. 이건 정판교의 글씨였다. 필체는 힘찼고, 그 밑으로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리석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어리석음으로 나아가기는 더욱 어렵다. 내버려두고 한 걸음 물러서면 곧 마음이 편안해지나니, 뒤에 복이 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판교가 적는다'라고 씌어 있었는데, 이는 그가 이미 옛날에 마음속 깊이 익혀 욀 수 있었던 문구였다. 그때는 그 뜻을 알지 못했었고, 그 뒤로는 깨끗이 잊어버렸던 것이다.” (왕멍, 전형준 옮김, <<변신인형>>, 문학과 지성사, 2004, P.35-36)

이야기에 나오는 <난득호도>라는 작품은 중국인의 집이라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유명한 판교 정섭의 글과 글씨다. 아마 이 소설에 나오는 독일인 주인은 중국에 살 때 이 작품의 사본을 한 점 사가지고 독일까지 가져온 모양이다. 나도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여 홍콩, 대만, 중국 등지를 여행하다 눈에만 띄면 이 작품을 모사한 편액이 되었건 목각이 되었건 부채가 되었건 보dl는 대로 여러 점 구하여 사왔다.

難得糊塗 어수룩한 척하기는 어렵다

聰明難 糊塗難 총명난 호도난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유총명이전입호도갱난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방일착 퇴일보 당사심안

非圖後來福報也 비도후래복보야

판교 정섭이 산둥지방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 만난 호도노인糊塗老人 이란 은거隱居(은퇴를 하여 숨어 사는 생활을)하고 있는 옛 고관의 비범함에 놀라 지은 글이다.

판교 정섭이 하루는 내주 지방의 거봉산을 찾았다. 육조시대에 세워진 정문공비鄭文公碑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가다가 시간이 늦어 산속에 있는 모옥茅屋(띠나 이엉 따위로 이은 허술한 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다.

모옥의 주인은 유생儒生(유가의 도를 닦은 선비)의 티가 나는 노인으로 스스로 호도노인糊塗老人(어수룩한 늙은이)라고 소개하였다. 모옥에는 네모난 탁자만큼이나 큰 좋은 돌에 조각을 잘 새겨 넣은 벼루가 있었다. 판교 정섭은 좋은 벼루를 보고 크게 감탄하였다.

다음날 아침 어수룩한 노인은 판교 정섭에게 벼루에 새기기 좋게 글을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였다. 판교 정섭은 즉석에서 ‘난득호도’라는 네 글자를 먼저 쓰고 이어 자신을 다음과 같은 글로 써 남겼다.

康熙秀才 강희수재 강희제 때 수재 합격

雍正擧人 옹정거인 옹정제 때 거인 합격

乾隆進士 건륭진사 건륭제 때 진사 합격

당시의 과거제도는 3단계의 시험을 치렀는데, 향시鄕試(고향마을에서 치르는 1단계 시험)에 합격을 하면 수재라 불렀고, 각 성省에서 치르는 2단계 시험에 합격하면 거인, 마지막으로 황제 앞에서 치르는 3단계의 전시殿試에 합격을 하면 진사가 되었다. 정판교는 글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나, 과거시험에는 좀 늦어 늦은 나이에 산동山東의 현령縣令이 되었을 뿐이다.

벼루가 워낙 컸으므로 정판교는 자신의 글을 쓰고 남은 빈 자리에 노인에게 발문跋文을 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노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得美石難 득미석난 아름다운 돌은 얻기 어렵다

得頑石尤難 득완선우난 굳센 돌을 얻기도 또한 어렵다

由美石轉入頑石更難 유미석전입완석갱난 아름다운 돌이 굳센 돌로 바뀌기는 더더욱 어렵다

美於中頑於外 미어중완어외 아름다움은 속에 있고, 굳셈은 밖에 있으니

藏野人之廬 장야인지려 시골사람 오두막에 숨어 살뿐

不入富貴門也 불입부귀문야 재산과 지위를 위해 드나들지 않는다

글을 지어 쓰기를 마친 다음 노인은 낙관을 썼다.

院試第一 원시에서 일등

鄕試第二 향시에서 이등

殿試第三 전시에서 삼등

노인이 쓴 대구對句(짝을 맞추어 쓴 글)을 읽고 판교 정섭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비로소 이 모옥에 묻혀 사는 노인이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이다. 노인은 고관을 지내고 은퇴하여 숨어 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판교 정섭은 다시 붓을 들어 앞에 쓴 <난득호도> 네 글자에 보태어 다음과 같은 대구對句를 썼다.

聰明難 糊塗難 총명하기도 어렵고, 어수룩하기도 어렵다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총명한 사람이 어수룩하게 되기는 더 어렵다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한 생각을 버리고 한 걸음 물러서면 마음이 편안해 지리니

非圖後來福報也 도모하지 않아도 나중에 복된 응보가 올 것이다

이후로 ‘난득호도’는 판교 정섭의 좌우명이 되었고 그는 이 글을 그의 특유의 글씨체로 써서 책상 머리에 붙여놓았다. 그러나 판교 정섭이 ‘난득호도’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느끼고 깨달은 것은 관직을 떠나 고향 양주로 돌아갈 때였다.

판교 정섭이 관직에 있는 동안 큰 가뭄이 들어 농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자 자기가 책임을 지리고 하고 즉각 관청의 창고를 열어 백성들의 기근饑饉을 구하였다. 상부에 허가를 받기 위해 공문을 올리고 조정의 비준을 기다리다가는 백성들이 모두 굶어죽고 말 형편이었다. 한시가 급한 사정에 판교 정섭은 관청의 창고를 모두 열어 구재미救災米를 나누어주니, 현성縣城 안팎의 길 위에는 벌떼와 같은 백성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았으나, 집집마다 모두 구재미를 받아 잠시나마 기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판교 정섭은 그때 백성의 어려움을 <도황행逃荒行>이란 시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十日賣一兒 십일매일아 열흘만에 아이 하나 팔고

五日賣一婦 오일매이부 닷새만에 부인을 팔고

來日勝一身 래일승일신 내일은 제 몸만 남아

茫茫郞長路 망망랑장로 망망한 유랑길 오르네

그러나 이런 판교 정섭의 선행은 도리어 부패한 고관들과 돈 많은 부호들의 미움을 사는 빌미가 되었다. 그는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예순 한 살 때 일이다. 마침내 그가 근무하였던 현을 떠날 때 현의 모든 백성들이 길거리로 나와서 울며 그를 전송하였다. 이때 세 필의 당나귀 가운데 한 필에는 자신이 타고, 또 한 필에는 길을 인도하는 서동書僮 한 사람을, 나머지 한 필에는 자신의 옷과 서화 그리고 거문고 하나를 실었다.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현령으로 지낸 판교 정섭의 삶이 얼마나 청빈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다. 관직에서 물러나면서 그는 난득호도의 뜻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그는 에순을 넘긴 나이에 파면을 당하고서야 비로서 삶의 예지를 처절하게 깨닫고, 스스로 총명함보다는 ‘호도’의 길을 택하였다.

호도란 바보라는 뜻으로도 통한다. 따라서 난득호도는 바보인 척하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이 말은 혼란한 세상에서 자신의 능력을 다 드러내 보이지 말고 되도록 자신의 재주를 감추고, 그저 바보인 척 인생을 살아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혜로우나 어수룩한 척하고, 기교가 뛰어나나 서투른 척하고, 강하나 부드러운 척하고, 곧으나 휘어진 척하며 ……

예나 지금이나 총명하기도 어렵고 또한 총명한 가운데 멍청하기도 어려운 세상이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멍청한 사람이 총명한 사람으로 바뀌기도 어렵고, 또한 총명한 사람이 멍청한 사람으로 바뀌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이지 않듯이, 사람도 너무 깐깐하면 친구가 없고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멍청한 듯 행동하는 것이 늘 지나치게 똑똑하고 예민하여 모든 일에 즉각 즉각 빠르게 반응하는 것보다 한결 나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판교 정섭이 이 글을 짓고 쓴 다음부터 난득호도는 많은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생활 속의 격언이자 금언이 되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자기의 집의 거실이나 서재, 또는 현관 아니면 사무실에 판교 정섭이 쓴 난득호도라는 편액을 즐겨 걸고 있다. 이 판교 정섭의 바보철학이 중국인들의 인생철학이자 생활철학의 하나가 된 것이다.

중국인들은 본래 자기의 깊은 속내와 생각을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집이나 건물의 밖도 될 수 있으면 요란하게 치장하지 않는다. 그저 처음 집을 지을 때의 모습 그대로 꾸밈없이 가꾸고 산다. 판교 정섭의 난득호도의 영향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방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 글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고 한 걸음 물러남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판교 정섭이 말하였듯이 뒷날 저절로 찾아 오는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노자가 말한 대변여눌大辯如訥(말을 썩 잘하는 것은 도리어 말이 서투름과 같다)와 대교약졸大巧若拙(크게 기교가 많음은 졸박한 것과 같다)나 송나라 때의 소동파蘇東坡가 말한 대지약우大智若愚(큰 깨달음은 어리석음과 같다)는 말 모두는 이런 동양인의 깊은 속마음과 지혜의 표현일 것이다.

<소지도인 강창원 작 <대변여눌>, 38x132cm, 1977년 작, 김종헌 소장>

그의 바보철학에 관한 생각은 우리나라에서도 <바보경>이란 제목으로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스성史晟이란 사람의 편저인 이 책에서 판교 정섭의 “난득호도”의 사상은 노장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되고 설명되었다.

內智外愚 지혜로우나 겉으로는 어리석다

內巧外拙 빼어나지만 겉으로는 서투르다

大柔若剛 부드러운 것은 강함과 같다

大進若退 크게 전진하나 후퇴하는 척하라

居安思危 편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라

無爲而爲 행함이 없이 행하라

판교 정섭의 글과 글씨도 이와 같은 그의 경지가 드러난 까닭에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정판교의 " 난득호도" 글씨입니다

 

 

 

 

 

 

 

 

내력

청대의 서화가이자 문학가인 정판교는 몇 점의 저명한 편액을 쓴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난득호도難得糊塗"와 “흘휴시복吃虧是福”의 두 폭이다.


 난득호도 네 글자는 산동성 내주(箂州)의 운봉산(雲峰山)에서 쓴것이라고 한다.

어느 해 정판교가 정문공의 비석을 보기위해 특별히 이곳에 이르렀는데,

노는데 정신이 팔린 나머지 해가 저물어 부득이하게 산간모옥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집주인은 기품이 있는 노인장이고, 스스로 호도노인(糊塗老人)이라 여기는 사람이었는데,

말투가 속되지 않았다.


노인의 방안에는 탁자만한 크기의 벼루가 놓여 있었는데, 석질이 매끈하고 부드러운 매우 좋은

품질의 것이어서 정판교가 감탄을 하며 감상을 하였다.

노인이 정판교에게 제자(題字)를 하여 벼루의 뒷면에 각을 하도록 청하였는데,

정판교가 노인에게 필시 내력이 있으리라 짐작하여 “難得糊塗”의 네 글자를 쓰고

 “강희수재, 옹정거인, 건륭진사 康熙秀才,擁正擧人,乾隆進士”의 네모난 도장을 찍었다.



  因砚台地,尚有许多空白,板桥说老先生应该写一段跋语。老人便写了“得美石难,得顽石尤难,

由美石而转入顽石更难。美于中,顽于外,藏野人之庐,不入宝贵之门也。”他用了一块方印,

印上的字是“院试第一,乡试第二,殿试第三。”板桥一看大惊,知道老人是一位隐退的官员。

有感于糊涂老人的命名,见砚背上还有空隙,便也补写了一段话:“聪明难,糊涂尤难,

由聪明而转入糊涂更难。放一著,退一步,当下安心,非图后来福报也。” 


  허나 벼루에 많은 공백이 남아있어서 장판교가 노선생에게 일단의 발어(跋語)를 제안하자

노인이 “아름다운 돌을 얻기는 어렵고, 미련한 사람을 얻기는 더 어우며, 아름다운 돌에서

나쁜 사람으로 변하기는 그 보다 더 어렵다. 아름다움은 그 속에 있고, 어리석음은 그 밖에 있으니,

산야의 숨어사는 이의 초가집에 보귀의 문을 들이지 않음이라. 得美石難, 得頑石尤難,

由美石而轉入頑石更難. 美于中, 頑于外, 藏野人之蘆, 不入寶貴之門也.”라 쓰고 나서

사각도장을 찍는데

그 내용이 “원시제일, 향시제이, 전시제삼. 院試第一, 鄕試第二, 殿試第三.”인지라 정판교가

이를 보고 깜짝 놀라 알아보니 노인은 은퇴한 관원이었다.

이윽고 노인이 호도노인이라 명명한 것에 느끼는 바가 있어, 벼루의 나머지 공간에 덧붙여

 

“총명하기는 어렵고, 어리석기 역시 어렵다. 총명한 사람이 어리석게 되기는 더욱 어렵다.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고, 마음을 비우고 있노라면

후일 복으로 그 보답이 오리라.

 聰明難, 糊塗尤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著, 退一步, 當下安心,

非圖後來福報也.”라는

글귀를 적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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