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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

吳昌碩

by 권석낙 2019. 10. 22.


<吳昌碩(오창석 : 1844~1927)>


吳昌碩이 지닌 사상은 <老子(노자)>와 <莊자(장자)>에 가깝다.

이런 藝術(예술)의 解放(해방) 정신은 西洋(서양) 美學者(미학자)들의

見解(견해)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다.

吳昌碩은 篆刻(전각)에서 매우 독특한 재능을 발휘했듯,

그의 篆書(전서) 또한 아주 독특한 氣風(기풍)을 수립했다.

그러니까 "詩(시), 書(서), 畵(화), 刻(각)"의

소위 <四位一體(사위일체)>式(식)의 <共同體藝術공동체 예술)>로

발표한 인물은 <吳讓之(오양지 : 1799~1870)>이며,

이를 발전시킨 인물이 <趙之謙(조지겸)>, 이를 近代化(근대화)한 인물이

바로 吳昌碩과 齊白石(제백석)이다.

나중에 이것을 완성한 인물로 "徐悲鴻(서비홍)"이라 하지만,

나 方外人畸은 개인적으로 이 徐悲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吳昌碩의 솜씨는 古今(고금)을 통해

<第一人者(제일인자)>라 하여 전혀 모자람이 없다.















 











 

 






[슬픈 사연이 깃들어 있는 篆刻(전각)]

流 水 今 日 

明 月 前 身 

흐르는 물이

오늘의 모습이라면 

휘영청 밝은 저 달님은 

前生(전생) 모습이라네 

 

이 구절은 [詩品 24] 가운데 "洗鍊(세련)"을 표현한 것이다. 즉, "단련하고 정제됨"의 뜻이다. 

이 구절에서 "明月前身"으로 인장을 새긴, 중국의 유명한 墨客(묵객)인 "吳昌碩[우창숴 : 1844~1927]의 가슴 뭉클한 사연이 있어 方外畸人의 다정한 이웃님들께 소개해 드린다. 

본시 이 詩句(시구)만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기도 하다.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는 알듯도 하지만, 솔직히 꼭 집어 이것이다라고 말은 하지 못하겠다. 

하늘에 둥두렷이 뜬 저 달님은 "그리운 님의 화신?" 아니면 "그 님의 前生(전생) 모습"일까? 

글은 길다고 명문장이 아니다. 

吳昌碩은 淸(청)나라 말, 서예와 전각의 마지막 大家(대가)이다. 

그는 이 구절을 자신의 夫人(부인)을 몹시 그리워하며 書畵(서화)에 찍는 도장 돌에 새겼던 것이다. 

바로 그의 말년 작품으로 대표적인 名品(명품)으로 꼽는다. 

이 도장은 새긴 솜씨로도 뛰어난 것이지만, 이를 새긴 사연은 더더욱 가슴 뭉클하다. 

1860년 무렵, 吳昌碩의 나이 겨우 16세! 

그 당시 풍속에 따라 "章(장)"이라는 성을 지닌 여인과 약혼을 했다. 그러나 곧 "태평천국의 난"이 발발하여 吳昌碩은 일가족과 함께 "章"이라는 여인과 더불어 피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여성들은 "전족" 때문에 먼 길을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망할 놈의 폐습] 

章씨 소녀는 吳昌碩의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에 남았던 것이다. 

吳昌碩은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다시 꼭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어디 내 마음 같은 일이 있으랴!  

세월은 흘러 2년이 흐르고 말았다. 부랴부랴 고향에 돌아온  吳昌碩은 그의 약혼녀인 章씨 소녀는 안타깝게도 굶주림에 병이 겹쳐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吳昌碩은 하늘을 우러러 통곡했으나, 한번 간 그 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후 吳昌碩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하고 가슴에 담아 두었다.

 

그 후로 세월은 물처럼 흘러흘러 어느덧 50여 년이 지났다. 

어느 날  吳昌碩은 꿈길에서 章씨 소녀를 만난 뒤, 바로 소개한 "明月前身"이라는 인장을 정성을 다 하여 새긴 것이다. 인장의 측면에 비록 꿈에서나마 본 흐릿한 모습이지만, 그리운 님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또, 

"元配(원배) 章씨 부인이 내 꿈속에서나마 그립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바를 새기고 그 형상을 만들어 본다. 老缶(노부)는 쓰다." 

[元配章氏夫人夢中示形, 刻此作造像觀, 老缶記]


라고 인장을 새긴 동기를 기록한 것이다. 

전혀 그의 감정은 노출시키지 않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다. 

그 어느 멍청한 인간처럼 무슨 유전자 검사 할 용의 있다느니, 선후배들이 자기 자신을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느니 하며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짤막한 吳昌碩의 글을 보면 무한한 비애가 절절히 묻어나는 것이다. 

 吳昌碩의 제자가 나중에 이렇게 전한다.

"스승님께서 이 인장을 새기시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해 눈물이 칼에 뚝뚝 떨어져 몇 번이고 새기는 것을 멈추셨다." 

吳昌碩은 하늘의 깨끗하고 밝은 달을 보며 章씨 부인을 생각한 것이다. 

吳昌碩은 이후 이 인장을 몹시 아껴 그의 得意의 작품에는 반드시 이 인장을 찍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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