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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學♡書堂

회소서자서첩(초서)

by 권석낙 2019. 9. 15.

자서첩(自敘帖)
두루마리(卷), 종이에 먹, 28.3 x 755 cm

회소(懷素)의 성은 전(錢)씨이며 자는 장진(藏真)으로 회소는 그의 법명이다.

호남성(湖南省) 영릉현(零陵縣)에서 태어나 훗날 장사(長沙)로 옮겨왔다.

어려서부터 불교를 신봉하여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초서 예술에 심취하였다.

대력(大曆) 7년(772)북쪽 지방으로 가 장안(長安)과 낙양(洛陽)에서 발전의 기회 찾았다.

개성이 탈속하고 초서에 매우 탁월하여 안진경(顏真卿) 등 서예가와 시인 등

당시 명류(名流)와 귀족들의 찬송을 받았고 다투어 시를 증정하였다.

대력 12년(777)증정 받은 시와 서문을 뽑아서 광초(狂草)로 써서 완성하는데 바로 이 자서첩이다

 

이 작품에서 회소는 가는 붓으로 큰 글씨를 쓰고 있다.

둥글고 강건하며 기세가 좋은 필치는 마치 둥글리고 구부려진 철강선과 같고,

필획의 시작과 마무리가 갈고리나 바늘같이 예리한데 ‘철강과 같은 당당한 기세와

은과 같은 부드러운 필체(鐵畫銀鉤)’가 융합한 것과 같음을 일컫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이어지는 초서의 기세를 강조하고 있는데 운필에 있어서

상하좌우로 종횡무진하며 기복이 요동치는 듯 하지만

그 중에 빠른 것과 느린 것이 있고 또 가벼운 것 무거운 것이 있어

마치 박자가 분명한 음악 선율처럼 동감이 풍부하다.

서로 떨어져 있는 필과 획들이 끊어짐이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필세(筆勢)를 형성하며 글자와 행, 행과 행 사이 점과 획들도

서로 호응하고 있다. 이 작품은 법도를 지키면서도 자유롭고 변화무쌍하여

초서 예술의 최고 경지를 표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사서첩의내용에 관해서는 초서라 너무 어려워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윤봉주님의 번역문이 있어 전제합니다.

 

<懷素自敍帖의 飜譯>

 

自敍帖

 

1. 懷素家長沙하고 幼而事佛하며 經禪之暇에 頗好筆翰이라 然恨未能遠覩前人之奇迹하고 所見甚淺하여 遂擔笈杖錫하고 西遊上國하여 謁見當代名公하고 錯綜其事하니 遺編絶簡을 往往遇之하고 豁然心胸하여 略無疑滯하다 魚牋絹素에 多所塵點을 士大夫不以爲怪焉이라.

 

懷素1)는 長沙2)에서 살았고, 어려서 부처를 섬겼으며, 讀經과 參禪하는 여가에 매우 글쓰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멀리 전인들의 기이한 자취를 보지 못하고, 볼 수 있는 것은 매우 淺近함을 한탄하여, 마침내 책 상자를 메고 錫杖3)을 집고, 서쪽의 上國(洛陽)을 유람하여, 그 당시의 明公을 만나보고, 그 일을 錯綜4)하게 되었으니, 남아있는 책과 끊겨진 편지들을 때때로 보고, 마음을 豁然하게 하여 전혀 막힌 것이 없게 되었다. 魚箋5)과 흰 비단에 많은 얼룩진 점들을 士大夫들은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

 

2. 顔刑部는 書家者流이며 靜極筆法하다 水鏡之辨(喩)은 許在末行이라 又以尙書는 司勳郞盧象과 小宗伯張正言으로 曾爲歌詩하여 故敍之曰 開士懷素는 僧中之英으로 氣槩通疎하며 聖靈豁暢하다. 精心草聖하야 積有歲時하더니 江嶺之間에 其名大著라 故吏部侍郞偉公陟은 覩其筆力하고 勖以有成하다 今禮部侍郞張公謂 賞其不羈하여 引以遊處하며 兼好事者同作歌以贊之하니 動盈卷軸이라하다.

 

顔刑部6)는 書家者의 流派이며, 필법에 精密하고 至極하였다. 水鏡7)의 辨은 末行에 있다. 또한 尙書(:刑部尙書,稱顔眞卿)는 司勳郞盧象8)과 小宗伯張正言9)과 함께 한때 시가를 지었기 때문에 서문에 말하기를, “開士(보살)인 懷素는 중 가운데에 영재로, 氣槩가 通疎10)하며, 性靈이 널리 통하였다. 草聖11)에 오로지 마음을 갖고 여러 세월동안 계속 하더니, 江嶺12)의 사이에 명성이 크게 떨쳤다. 故人인 吏府侍郞韋公陟13)은 그의 필력을 보고서 힘써 성취함이 있게 하였다. 현재 禮部侍郞張公謂는 그가 拘束되지 않음을 讚揚하고, 그를 이끌고 유람하며 쉬었다. 아울러 好事者들과 함께 시가를 지어 贊하니, 순식간에 卷軸(권축: 두루마리)을 채웠다.”

 

3. 夫草藁之作은 起於漢代에 杜度․崔瑗是以妙聞하고 迨乎伯英尤擅其美라. 羲․獻玆降엔 虞․陸相承하여 口訣手授하여 以至吳郡長旭하다. 長史 雖姿(資)性顚逸하고 超絶古今하나 而模楷精法1)詳하여 特爲眞正이라.

 

草藁(:草書)2)가 쓰여 진 것은 漢代에서 시작되었고, 杜度3)와 崔瑗4)이 매우 뛰어난 명성이 있었고, 伯英5)에 이르러서 그 명성이 더없이 우뚝 솟았다. 羲之6)와 獻之7)이후에는, 虞世南8)과 陸柬之9)가 서로 이어서, 口訣을 손으로 전하여, 吳郡의 張旭10)에 까지 이르렀다. 長史(:張旭)은 資質과 天性이 顚逸11)하여 고금에 가장 뛰어났으나, 楷書를 익힘이 精密하고 仔詳하여 특히 眞正이라 했다.

 

4. 眞卿早歲에 常接遊居하고 屢蒙激昻하여 敎以筆法하나 資質劣弱하며 又嬰物務하여 不能懇習하여 迄以無成하다 追思一言하니 何可復得이리오. 忽見師作인데 縱橫不群하고 迅疾駭人하니 若還舊觀이라. 向使師得親承善誘하고 函揖規模하면 則入室之賓은 捨子奚適리이다. 嗟歎不足하여 聊書此以冠諸篇首하노라.

 

顔眞卿은 일찍부터 항상 한가하게 거처하며, 자주 激昻(마음속에 분발하여 감정이 고조됨.)하여 필법으로 가르침을 입었으나, 자질이 용렬하고 나약하며, 또한 당면한 일에 얽매여, 능히 정성 들여 익히지 못하고, 끝내는 이루지 못했다. 一言을 미루어 생각하니 언제 다시 얻겠는가? 문득 스승(張旭)의 작품을 보았는데, 자유자재하여 뛰어나고, 글씨를 신속히 쓴 것이 사람을 놀라게 하니, 마치 옛날에 보던 때로 돌아온 것 같다. 가령 스승으로부터 친히 가르침과 인도함을 받고, 規模(書法)를 函挹(남모르게 취하다.)할 수 있다면 入室之賓12)은 스승을 버리고 어디론가 갈 것이다. 嗟歎하여도 부족하여 더욱이 이를 써서 글의 첫머리에 올린다.” 라고 하였다.

 

5. 其後繼作不絶하여 溢乎箱篋하다 其述形似엔 則有張禮部니 云奔蛇走虺勢入座하고 聚雨旋風聲滿堂이라하다.

 

그 후에도 계속하여 글 쓰는 것이 끊이지 않아 箱篋(상자)에 넘쳤다. 그 形式과 外觀이 비슷함을 저술한 것에는 張禮部(張謂)가 있으니, 이르기를 “나르는 뱀과 달리는 이무기의 형세가 자리에 들어오고, 소나기와 회오리바람 소리가 집에 가득하다.”라고 하였다.

 

6. 盧員外는 云初疑輕煙澹古松요 又似山開萬仞峰이라하다.

 

盧員外(盧象)은 이르기를, “처음에 가벼운 안개는 澹澹(담담)한 古松인가 여기고, 또한 산이 열리게 되니 萬仞의 봉우리와 같다.”라고 하였다.

 

7. 王永州邕 曰寒猿飮水撼枯藤하고 壯士拔山伸勁鐵이라하다.

 

王永州邕1)은 이르기를, “ 추운 원숭이는 물을 마시며 마른 등나무를 흔들고, 壯士는 산을 뽑아 강철을 伸張한다.”라고 하였다.

 

8. 朱處士遙(逵) 云筆下唯看激電流요 字成只畏盤龍走(去)이라하다.

 

朱處士遙2)는 이르기를,“글을 쓰는 신속함이 오직 번개 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글자의 완성은 서려 있는 龍이 가려고 하는 자태를 心腹한다.”라고 하였다.

 

9. 敍機格엔 則有李御使舟니 云昔張旭之作也에 時人謂之張顚이라하고 今懷素之爲也에 余實謂之狂僧이라하다. 以狂繼顚인데 誰曰不可리오하다.

 

機格(格式)을 서술하는 데에는 李御史舟3)가 있는데 이르기를, “옛날에 張旭이 글을 씀에 당시 사람들이 그를 張顚이라고 불렀고, 지금 懷素가 글을 쓰니, 나는 실로 그를 狂僧이라고 불렀다. 狂(懷素)이 顚(張旭)을 잊는데, 누가 아니라고 말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10. 張公 又云稽山賀老粗知名이나 吳郡張顚曾不面(易)이라하다.

 

張公(張謂)은 또한 이르기를, “稽山賀老4)는 대략 그의 이름을 알고 있으나, 吳郡의 張顚은 아직도 보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11. 許御史瑝(瑤) 云志在新奇無定則이오 古瘦灕纚半無墨이라 醉來信手兩三行는 醒後却書書不得이라하다.

 

許御史瑤1)는 이르기를, “意志가 新奇에 있으니 일정한 법이 없고, 古瘦(나이가 많아 쓴 획이 가느다란 것)는 灕纚(스며들어 이어지는 것)하여 반은 먹물이 없더라. 술기운에 손 가는 데로 쓴 두서너 줄의 書는, 술이 깬 후에는 오히려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었다.”라고 하였다.

 

12. 戴御史叔倫 云心手相師勢轉奇하니 詭形怪狀飜合宜라 人人欲問此中妙나 懷素自言初不知이라하다.

 

戴御史叔倫2)이 이르기를, “마음과 손이 서로 본받아 筆勢가 기이하게 변하여, 怪異한 형상을 해도 도리어 서법에 합치되더라. 사람들은 이 가운데 오묘함을 물으려 했으나, 懷素자신은 말하기를, ‘처음부터 알 수 없다.’ ”라고 하였다.

 

13. 語疾速엔 則有竇御史冀니 云粉壁長廊數十間에 興來小豁胸中氣하야 忽然絶叫三五聲하니 滿壁縱橫千萬字이라하다.

 

빨리 쓰는 것을 말함엔 竇御史冀3)가 있었으니 말하기를, “석회 바른 긴 행랑 수십 간에 興이 일어 가슴속의 氣가 다소 소통된다. 忽然히 三五 聲을 絶叫하니, 벽안에 縱橫으로 천만 자가 가득했다.”라고 하였다.

 

14. 戴公 又云馳毫驟墨列奔駟하니 滿座失聲看不及이라하다.

 

戴公(戴叔倫)은 또한 이르기를, “몰아치는 붓과 먹물은 달리는 사륜 말을 列擧하니, 가득히 앉은 사람은 숨을 죽이고 보았으나 미치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15. 目愚劣엔 則有從父司勳員外郞吳興錢起니 詩云遠錫(鶴)無前侶하고 孤雲寄太虛로다 狂來輕世界하고 醉裏得眞如이라하다.

 

愚劣을 지목하는 데는 從父司勳員外郞吳興錢起1)가 있었으니, 이르기를,“遠錫은 전에도 벗할 것이 없고, 외로운 구름은 太虛(하늘)에 기대고 있다. 狂(懷素)이 와서 세계를 경시하고, 취중에 眞如(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얻었다.

 

16. 皆辭旨激切하고 理識玄奧하여 固非虛蕩之所敢當하다 徒增愧畏耳이로다.

 

모두 말한 뜻이 지극히 간절하고, 理解와 認識이 깊고 奧妙하여, 진실로 虛蕩(허랑 하고 방탕함)한 말이 감당 할 바가 아니다. 다만 부끄럽고 두려움을 더할 뿐이다.

時는 大曆丁巳冬十月卄有八日이다.

때는 대력(大曆) 정사(丁巳: 777)年 겨울 10月 28日 이다.

 

<인물탐구 ; 회소 [懷素, 725~785]>

 

중국 당나라의 서예가. 술을 좋아해서 만취한 상태로 붓을 종횡으로 놀려 연면체(連綿體)의 초서 즉 광초(狂草)를 잘 썼다고 한다. 필적으로 《자서첩》, 《초서천자문》, 《성모첩》등이 남아 있다.

 

별칭 자 장진

국적 중국 당

활동분야 예술

출생지 중국 창사

주요작품 《자서첩》 《초서천자문》 《성모첩》

 

원래는 승려로, 자는 장진(藏眞), 속성(俗姓)은 전씨(錢氏)이다. 창사[長沙] 출생. 일찍이 불문에 들어갔으며 어려서부터 서도를 좋아하여 연찬(硏鑽) 끝에 일가를 이루었다. 초서로는 그 당시 장욱(張旭) 다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술을 좋아해서 만취가 되면 흥에 못 이겨 붓을 종횡으로 놀려 연면체(連綿體)의 초서, 즉 광초(狂草)를 잘 썼다고 한다.

필적으로 《자서첩(自敍帖)》 《초서천자문》 《성모첩(聖母帖)》 《장진첩(藏眞帖)》 등이 남아 있다.

 

<회소의 초서를 찬양한 시>

 

회소스님의 초서를 노래하다

(懷素上人草書歌)

소환(蘇渙)

 

張顚沒在二十年 장욱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20년

謂言草聖無人傳 초성의 글씨 전하는 이 없다고 하네.

零陵沙門繼其後 영릉의 스님인 회소가 그 뒤를 이어

新書大字大如斗 새로 쓴 큰 글씨는 말만큼 크네.

興來走筆如旋風 흥이 일어 휘호하면 회오리바람 이는 것 같고

醉後耳熱心更凶 술 마신 후 취기 오르면 마음 더욱 거세지네.

忽如裴旻舞雙劍 문득 배민이 쌍 칼춤 추는 것 같이

七星錯落纏蛟龍 칠성보검은 검법이 교룡을 휘감아 놓은 듯.

又如吳生畵鬼神 또 오도자가 귀신을 그린 것 같아

魑魅魍魎驚本身 도깨비와 괴물이 놀라게 하는 듯.

鉤鎖相連勢不絶 획과 획이 필세는 끊어지지 않고

倔强毒蛇爭屈鐵 꿋꿋하고 굳세어 독사가 굴철을 다투는 듯.

西河舞劍氣凌雲 서하검기라는 칼춤을 본 후

孤蓬自振唯有君 초서 필법 깨달은 자 오직 그대뿐이네.

今日華堂看灑落 오늘 대청에서 얽매임 없는 글씨를 보고

四座喧呼嘆佳作 사방에 앉은 이들 소리 내어 감탄하네.

回首邀余賦一章 머리 돌려 나에게 시 한 수 지어 달라 하니

欲令羨價齊鍾張 성망의 지위를 종장과 나란히 올리고자 하였네.

琅誦○句三百字 시구 300자를 또랑또랑 낭송하나

何似醉僧顚復狂 어찌 취승이 쓴 광초와 같겠는가?

忽然告我游南溟 갑작스레 나에게 광주 유람 간다고 알리기에

言祈亞相求大名 아상인 서호를 만나 명성 얻기를 기원하였네.

亞相書翰凌獻之 서호의 붓글씨는 왕헌지를 능가하니

見君絶意必深知 그대를 보면 반드시 깊이 알아주리라.

南中紙價當日貴 남방의 종이 가격 당일로 비싸질 것이고

只恐貪泉成墨池 단지 탐천이 묵지가 될까 걱정스러울 뿐이라네.

 

스승 회소의 초서를 노래하다

(懷素師草書歌)

마운기(馬雲奇)

 

懷素才年三十餘 회소 나이 30이 넘도록

不出湖南學草書 호남에서 초서를 공부 하였네.

大夸羲獻將齊德 이왕을 칭찬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였지만

切比鍾繇也不如 내심 종요와 비교하니 미치지 못하네.

疇昔闍梨名蓋代 도리의 명성은 세상에서 으뜸이었고

隱秀于今墨池在 지금의 묵지에서도 그윽한 품위가 있네.

賀老遙聞怯後生 하지장의 칭찬소리가 멀리에서 들리고

張顚不敢稱先輩 장욱은 스스로를 선배라고 기업렵다 하네.

一昨江南投亞相 일전에 강남에서 아상에게 의탁하여

盡日花堂書草障 종일 화려한 대청에서 가리개에 초서를 썼었네.

含毫勢若斬蛟龍 필호의 기세는 교룡을 벨 듯하고

挫管還同斷犀象 필관의 움직임은 코뿔소 뿔을 자를 덧하네.

興來索筆縱橫掃 흥이 나면 붓을 찾아 종횡으로 휘호하니

滿望詞人皆道好 성망이 높은 문인들 칭찬이 대단하였네.

一點三峰巨石懸 점획의 기운은 낭떠러지 바위 같고

長畵万歲枯松倒 필획은 고송의 기세로세.

叫噉忙忙禮不拘 술 마시고 취함이 구속 받지 않았으며

萬字千行意轉殊 수많은 작품들은 변화와 남다른 운치가 있네.

紫塞傍窺鴻雁翼 큰기러기 날개 같이 빼어난 자태

金盤亂撒水晶珠 금 쟁반에 수정 구슬처럼 진귀한 가치로세.

直爲功成歲月多 공적은 수많은 세월도 같이하여

靑草湖中起墨波 청초호에 먹물 물결 일어났네.

醉來只愛山翁酒 술 취하면 오직 취옹됨을 좋아하고

書了寧論道士鵝 서작은 차라리 도사의 거위와 같이 여하네.

醒前猶自記華章 깨기 전에도 여전히 화려한 시문을 기록하고

醉後無論絹與墻 술 취한 후에는 비단과 담장을 가리지 않네.

眼看筆掉頭還掉 시선은 붓 가는대로 따라가고

只見文狂心不狂 외형은 제멋대로 인듯하나 흐트러짐 없네.

自倚能書堪入貢 작품 실력은 황제에게 바칠 자신이 있었지만

一盞一回捻筆弄 술 한 잔 마시고는 붓을 잡고 놀았네.

壁上颼颼風雨飛 벽에 쌩쌩 비바람 나리더니

行間屹屹龍蛇動 행간은 용과 뱀이 꿈틀거리네.

在身文翰兩相宜 작품은 문장과 필묵이 서로 잘 맞으며

還如明鏡對西施 또한 거울상의 서시를 보는 것 같네.

三秋月澹靑江水 9월의 달빛 가늘고 강물은 푸르고

二月花開綠滿枝 2월의 꽃 피고 가지는 녹색이라네.

聞道懷素西入秦 회소가 서쪽 진나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客中相送轉相親 여행 중에도 배웅하여 서로 가까워졌네.

君王必是收狂客 임금이 반드시 회소를 받아들인다고

寄語江潭一路人 강가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전하네.

 

【설명】

이 시는 회소가 서호(徐浩)에게 의탁한 후 장안(長安)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마운기가 지었다. 회소의 뛰어남을 들은 작가는 회소를 만나 그의 초서를 직접 확인하고 감동하여 회소를 스승으로 모시고 시를 바쳤다. 당나라 시대에는 아주 뛰어난 서예가가 많았고 또 왕후장상이나 문인묵객의 칭찬을 받은 서예가도 매우 많았다. 그러나 당시 문인묵객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은 바로 회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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