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집주(論語集注) - 19 - 자장(子張) - ②
논어집주 (論語集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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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論語) - 19 - 자장(子張) - ② | |
| 1 | 子張이 曰 執德不弘하며 信道不篤이면 焉能爲有며 焉能爲亡리오. |
| 2 | 자장이 왈 집덕불홍하며 신도불독이면 언능위유며 언능위망리오. |
| 3 | 자장이 말하기를, “덕을 잡는 것이 넓지 못하며,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능히 있다고 하며, 어찌 능히 없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 4 | Tsze-chang said, “When a man holds fast to virtue, but without seeking to enlarge it, and believes in right principles, but without firm sincerity, what account can be made of his existence or non-existence?” |
| 논어집주(論語集注) - 19 - 자장(子張) - ② |
| 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 자장이 말하기를, “덕을 잡는 것이 넓지 못하며,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지 못하면, 어찌 능히 있다고 하며, 어찌 능히 없다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有所得而守之太狹 則德孤 有所聞而信之不篤 則道廢 焉能爲有無 猶言不足爲輕重 터득한 것이 있을지라도 너무 좁게 지키면, 덕이 외롭게 되고, 들은 바가 있을지라도 독실하게 믿지 않으면, 도가 없어진다. 어찌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은 경중을 따지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말과 같다. 慶源輔氏曰 德孤言不能兼有衆德而孑然固守一節者也 德得諸己而居之不弘 則輕喜易足 有一善 則自以爲天下莫己若矣 道有所聞而信之不篤 則亦或作或輟 銳始怠終 終亦必亡而已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덕이 외롭다는 것은 여러 덕을 겸비하지 못하여 외롭게 하나의 절개만을 고수하는 것을 말한다. 덕을 스스로에게서 터득하였음에도 그것에 居함이 넓지 않다면, 가벼이 기뻐하고 쉽게 만족하여, 만약 하나라도 선함이 있게 된다면, 곧 천하에 자기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를 들었지만 믿음이 독실하지 못하면, 또한 혹은 하다가 혹은 그만두고, 날카롭게 시작하였으나 게으르게 끝나서, 결국에는 역시 반드시 없어지고 말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弘是廣大之意 若信道不篤 則容受太廣 後隨人走作 反不能守正理 信道篤而不弘 則是確信其一說而或至於不通 故須著並說弘篤 猶言弘毅相似 주자가 말하길, “弘은 광대하다는 뜻이다. 만약 도를 믿는 것이 독실하지 않다면, 수용하는 것이 너무 넓고, 나중에 남을 따라서 행하기에, 도리어 올바른 이치를 지킬 수 없다. 도를 믿는 것이 돈독하나 넓지 않다면, 그 하나의 주장을 확신하다가 혹은 불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弘과 篤을 붙여서 함께 말해야 하는 것이니, 弘毅라고 말하는 것과 서로 비슷하다.”라고 하였다. 有此人亦不當得是有 無此人亦不當得是無 言皆不足爲輕重 이런 사람이 있다고 또한 이것이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니고, 이런 사람이 없다고 역시 이것이 없어야 마땅한 것도 아니므로, 모두 경중을 따질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弘之爲寬廣以人之量言也 人所以體道者 存乎德 所以執德者 存乎量 量有大小之不同 故人所以執德有弘有不弘也 非其量之大 則所以執德者 孰能寬廣而不迫哉 信道之貴乎堅確者 此以人之志言也 人所以進德者 由乎道 而所以信道者 存乎志 志有强弱之不同 故人所以信道者有篤有不篤也 非其志之强 則所以信道者 孰能堅確而不移哉 觀此二言 爲學之道 信非褊心狹量質薄氣弱者所能及也 弘을 관대하고 넓다고 한 것은 사람의 도량으로써 말한 것이다. 사람이 도를 體行하는 것은 덕에 달려 있고, 덕을 붙잡는 것은 도량에 달려 있는 것이다. 도량에는 크고 작은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덕을 붙잡는 것에는 넓음이 있고 또 넓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그 도량이 크지 않다면, 덕을 붙잡는 것이 어찌하여 관대하고 넓으면서 급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도를 믿음에 있어서 굳고 확실한 것을 귀하게 여기는데, 이는 사람의 의지로써 말한 것이다. 사람이 덕에 나아가는 것은 道를 말미암지만, 도를 믿는 것은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의지에는 강약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도를 믿는 것에는 독실함도 있고 독실하지 못함도 있는 것이다. 그 의지가 강하지 않다면, 도를 믿는 것이 어찌하여 굳고 확실하여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 말을 살펴보면, 학문을 하는 도는 정말이지 편협한 마음과 협소한 도량을 가지고 있고 자질이 천박하며 기운이 약한 사람은 능히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닌 것이다. 問執德不弘 言其不廣也 纔狹隘則容受不得 故纔有片善 必自矜 見人之善 必不喜 人告之以過 亦不受 從狹隘上生萬般病痛 누군가 執德不弘에 대하여 물었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이 넓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편협하면 곧 수용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약간의 善이 있다면, 반드시 스스로 자랑하고, 남의 선을 보면 반드시 기뻐하지 않는다. 남들이 그에게 잘못을 알려주면 역시 받아들이지 않는다. 편협한 것 위에서 수많은 병통이 생겨나는 것이다.” 問如何是執德不弘底樣子 曰 子貢若只執貧而無諂 富而無驕之德而不聞夫子樂與好禮之說 子路若只執不恥縕袍之德而不聞夫子何足而臧之說 則其志皆未免止於此 蓋義理無窮心體無限 누군가 묻기를, “어떤 것이 執德不弘의 모습입니까?”라고 하였다. 말하길, “자공이 만약 그저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는 덕만을 붙잡고서 공자님의 ‘가난하지만 즐거워하고 부유하지만 예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듣지 않았고, 자로가 만약 그저 ‘헌 솜옷을 입고서도 담비가죽옷 입은 사람 옆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덕만을 붙잡고서 공자님의 ‘그것만으로 어찌 충분히 좋다고 할 수 있겠는가?’ 라는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의 뜻이 모두 여기에 그침을 면하지 못하였을 것이니, 대체로 義理는 무궁하고 心體는 무한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執德弘者 器局大 信道篤者 志操堅 如此方是世間一箇卓然底人 若執德旣不能弘 信道又不能篤 這般人雖有之 亦不足以爲當世重 無之亦不足以爲當世輕 如此說方透 쌍봉요씨가 말하길, “덕을 붙잡음이 넓은 사람은 그릇과 국량이 크고, 도를 믿음이 독실한 자는 지조가 굳세다. 이와 같아야만 바야흐로 세간에서 말하는 한 사람의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약 덕을 붙잡음이 이미 넓지 못하면서, 도를 믿음도 또한 독실하지 못하다면, 이러한 사람은 비록 그가 있다 할지라도 역시 당세를 무겁다고 여기기에 부족하고, 그가 없다 할지라도 역시 당세를 가볍다고 여기기에 부족한 것이니, 이와 같이 말해야만 바야흐로 통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厚齋馮氏曰 觀此二章 皆躬行切己之論 則知子張之學異於前日矣 후재풍씨가 말하길, “이 두 장을 살펴보면, 모두 몸소 행하고 자신에게 절실한 것들에 대한 논의이니, 곧바로 자장의 학문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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