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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筆♡揮之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by 권석낙 2025. 5. 28.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

 

滄浪歌(창랑가) : 굴원(屈原)의 어부사(漁夫辭)

 

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창랑지수청해 가이탁아영)

창랑의 물이 맑으면 그 물로 내 갓끈을 씻을 것이며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아족)

창랑의 물이 흐리면 거기에 나의 발을 씻으리라

[출처] 창랑가(滄浪歌)

 

“창랑수(滄浪水) 맑아지면 내 갓끈을 씻을 것이며, 창랑수 흐려지면 내 발을 씻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노래이다.

 

《맹자(孟子)》에 보면 아이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 공자(孔子)는 제자들에게 “저 노래를 들어 보아라. 갓끈을 씻건 발을 씻건 모두 물이 스스로 저지른 일이다”라고 하였다.

 

또 《초사(楚辭)》의 <어부사(漁父辭)>에는 어부가 굴원(屈原)을 향해 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 뜻은, 인간의 세계는 좋건 그르건 그때그때의 세속을 따라야 하며, 자신의 주장을 지나치게 내세우지 않는 것이 처세를 잘하는 것인데, 굴원과 같이 초나라 관료사회의 부패에 항거하여 청렴과 정의를 주장함으로써 도리어 몰락한다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내용으로 되었다.

 

창랑이란 흔히 중국의 한수(漢水)를 가리키나 그렇지 않다는 설도 있다.

 

<맹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느날 공자가 제자들과 공부를 하고 있는데, 이웃집 담너머로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창랑의 물 맑으니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 흐리니 발을 씻는다네." 공자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노래를 들어 보아라. 물이 맑으면 사람들이 와서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사람들이 와서 발을 씻는다고 하는구나. 갓끈을 씻느냐,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에 달려 있구나.”

 

신분을 상징하는 갓끈을 씻느냐, 더러운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이 깨끗한가, 흐린가에 달려 있으니, 오로지 물이 불러들인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모욕을 당하고, 집안이 무너지며, 나라가 망하는 것은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는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좋은 인재가 주위에 많기를 바란다면 인재가 저절로 찾아들도록 먼저 자신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문 -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김태완 저)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 고전인 《초사 楚辭》의 내용과 관련이 깊다. 《초사》 어부편(漁父篇)을 보면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라는 구절이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 漁父歌>, 또는 <창랑가 滄浪歌>라 이름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다.

 

<창랑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을 하였다.

 

그는 이것을 다시 인간의 삶의 태도에 비유하여 말하되,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라야 남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은 반드시 그 자신들이 파괴한 뒤에야 남이 그 가문을 파괴하고, 나라는 그 자신들이 망친 뒤에야 남이 그 나라를 토벌한다. 그러므로 태갑(太甲: 書經의 편명)에 ‘하늘이 지은 재(災)는 그래도 피할 수가 있으나, 자기가 지은 재는 모면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

 

《孟子》, 離婁 라고 하였다.

 

맹자는 <창랑가>의 의미를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던 것이다.

 

이경윤(李慶胤)의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

 

고사탁족도는 선비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탁족 행위는 단순히 더러워진 발을 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던 선비들의 이상과 상고주의(尙古主義) 정신이 깃들어 있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그 보이지 않는 측면을 알아본다.

 

〈탁족도〉는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꼰 채 발을 물에 담그고 있는 (실제로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선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주변의 경관은 매우 간소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형식은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 형식을 취하고 있다. 탁족도류의 그림에는 보통 한 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그림에서는 시중을 들고 있는 시동이 함께 등장하고 있어 이채롭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사(故事)에 근거하여 그 내용을 설명적으로 그린 그림을 ‘고사인물화’라고 일컫는다. 예컨대 〈노자출관도 老子出關圖〉나〈강태공위수조어도(姜太公渭水釣魚圖)〉 같은 그림이 그것이다.

 

고사인물화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과 그의 실제 행적을 주제 삼아 그리기 때문에 일종의 기록화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탁족도〉는 고사와 관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탁족’행위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엄밀한 의미에서 고사인물화라고는 볼 수 없다.

 

*탁족놀이의 성격

 

조선 시대의 세시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조(六月條)에,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씻기놀이를 한다.”

(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

 

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가 당시의 풍속을 기록하고 있는 문헌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아 탁족놀이가 일부 특수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유행했던 여름 풍속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일반 서민들에게 있어서 탁족놀이는 단순한 피서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았지만, 선비들에게 있어서는 피서의 차원을 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그들이 실제로 즐겼던 피서 방법에는 ‘탁족’ 외에도 ‘물맞이’나 ‘목물하기’등 여러 가지가 있었겠으나,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서 오직 ‘탁족지유(濯足之遊)’만을 소재로 그림으로 그리고 또 감상하기를 즐겼다는 사실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탁족놀이와 창랑가

 

선비들이 특별히 ‘탁족지유’에 부여하고 있는 의미는 중국 고전인 《초사 楚辭》의 내용과 관련이 깊다. 《초사》 어부편(漁父篇)을 보면 어부와 굴원(屈原) 사이의 문답을 서술한 마지막 부분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며, 노를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을 것이다’ 라고 하면서 사라지니 다시 더불어 말을 하지 못했다.”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 不復與言)라는 구절이 있다.

 

후세 사람들은 이 부분을 특별히 〈어부가(漁父歌)〉, 또는 〈창랑가(滄浪歌)〉라 이름지어 불렀는데, 이 노래에 나오는 ‘탁족(濯足)’과 ‘탁영(濯纓)’이라는 말을 특별한 의미로 새겼다.

 

〈창랑가〉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서 맹자는,

 

“맑으면 갓끈을 씻고, 흐리면 발을 씻는다고 하니, 이것은 물 스스로가 그런 사태를 가져오게 한 것이다.”

(淸斯濯纓 濁斯濯足矣 自取之也)

라고 해석을 하였다.

 

그는 이것을 다시 인간의 삶의 태도에 비유하여 말하되,

 

“사람은 반드시 자신을 욕되게 한 뒤에라야 남이 그를 모욕하고, 가문은 반드시 그 자신들이 파괴한 뒤에야 남이 그 가문을 파괴하고, 나라는 그 자신들이 망친 뒤에야 남이 그 나라를 토벌한다. 그러므로 태갑(太甲: 書經의 편명)에 ‘하늘이 지은 재(災)는 그래도 피할 수가 있으나, 자기가 지은 재는 모면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런 점을 두고 한 말이다.”

 

[출전]《孟子》, 離婁 라고 하였다.

 

맹자는 〈창랑가〉의 의미를 행복이나 불행은 남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처신 방법과 인격 수양 여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른 관점에서 〈창랑가〉의 의미를 해석하기도 하였다. 즉,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도의(道義)와 정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말함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도의가 무너진 어지러운 세상을 비유한 말이라고 했다.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세상이 올바를 때면 나아가 벼슬을 한다’는 뜻이요, ‘발을 씻는다’는 것은 ‘풍진에 찌든 세상을 백안시하고 은둔하며 고답을 추구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밖에 〈창랑가〉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시구(詩句)들이 많이 있는데, 예컨대 왕찬(王粲)은 〈칠석 七釋〉에서,

 

“창랑에서 몸을 씻고, 높은 산에서 옷을 턴다.”

(濯身乎滄浪 振衣乎高嶽).

 

라고 한 것은 풍진에 찌든 때를 씻고 털어낸 후 고답과 은일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고사성어처럼 선비들의 시문에 자주 인용되고 있는 ‘탁족만리류(濯足萬里流)’라는 말은 속세에서 초연함을 상징하는 말이다.

 

이상의 몇 가지 내용을 미루어 볼 때 ‘탁족지유’는 인격수양이나 처신, 또는 은둔과 고답의 상징으로 해석되고, 또 수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탁족’을 소재로 한 그림은 중국 송(宋) 무렵부터 등장하였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다소 그려졌다. 〈탁족도〉의 화본(畵本)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림이 청대(淸代)에 간행된 《개자원화보 芥子園畵譜》의 인물옥우(人物屋宇) 조에 수록되어 있다. 어부 모습을 한 사람이 삿갓을 쓰고 바위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꼰 채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그와 관련된 ‘강호만지일어옹(江湖滿地一漁翁)’ 이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미학

 

이경윤의 〈탁족도〉의 주인공도 이 화본의 인물처럼 두 다리를 꼰 채 오른쪽 발바닥을 위로 제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탁족의 자세는 거의 정형화되어 그림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처럼 정형화된 모습을 답습하여 그리는 것은 동양화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상의 수인(手印)이 자세가 다른 불상과 같다고 탓하지 않는 것은 불상의 수인과 자세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변하지 않는 영원무궁한 형태로 환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탁족도〉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의 정형화된 자세도 단순히 다양한 행동을 부정한 모습이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수많은 화가에 의해 정제되고 정형화된 모습인 것이다. 군더더기를 떨어버린 정제된 모습은 가장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들은 그런 모습을 그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감상

 

조선의 선비들은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강과 계곡에서 ‘탁족지유’의 풍류를 즐겼다. 그들은 탁족놀이를 하면서 아득한 옛날 〈창랑가〉를 통해 어부가 말했고, 성현들이 해석한 ‘탁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 자신도 그런 경지에 들어있음을 자부하기도 했다. 이런 마음의 경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탁족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탁족지유’를 소재로 한 그림 중 현존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이경윤의 그림 외에 이정(李禎)의 〈노옹탁족도〉(개인 소장), 작자 미상의 〈고승탁족도〉(개인 소장), 그리고 조선 후기 최북의 〈고사탁족도〉(간송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이경윤(1545~1611)은 조선 중기 화단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왕족출신의 사대부 화가로 특히 산수인물화(山水人物畵)를 잘 그렸다. 그 중의 〈고사탁족도〉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선비와 그 옆에 술병을 받쳐 들고 서 있는 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꽃향기 가득하고 산들바람 불어오는 한적한 맑은 시냇가 그늘 아래서 도포자락을 풀어헤쳐 불룩한 배와 가슴을 내보이며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꼰 채 발을 물에 담그고 있는 선비는 곧 술도 한잔 할 것 같아 무척이나 한가로워 보인다.

 

♣중국 남방문학인 초사(楚辭)의 한 편.

 

전국(戰國)시대 초나라 정치가이며 시인인 굴원(屈原)이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는 운문·산문 혼합의 문답체 작품으로, 《사기(史記)》의 〈굴원가생 열전(屈原賈生列傳)〉에도 실려 있다.

그러나 첫머리의 굴원기방(屈原旣放: 굴원이 이미 추방되어)이라는 말이나 한(漢)나라 때의 문장 표현 기교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후세 사람이 굴원의 청렴결백한 태도와 충성심을 애모하여 지은 위작(僞作)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모함을 받고 장강(長江: 양쯔강) 남쪽으로 추방되어 초조히 강가를 방황하는 굴원에게 은자(隱者)인 어부가 추방된 이유에 대해 묻는다.

 

이에 굴원은 이 세상의 오탁(汚濁)에 물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결백하게 살려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들려주는데 어부는 이 세상의 시류에 자유자재로 적응하여

살라면서 떠나간다는 내용이다.

 

다른 초사 작품인〈복거(卜居)〉에서는 굴원의 태도에 관한 정사선악을 점에 의해 판단하고자 하나 〈어부사〉에서는 점에 의하지 않고 신과 인간이 직접 문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은자의 행색을 취한 어부는 그 지방의 민간 신앙에 따르면 바로 신이라 할 수 있다.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에 굴원의 성격을 명료하게 묘사한 수작(秀作)이다.

 

※본래 〔어부사〕라고 하면 [漁夫辭]라고 써야 하며 [漁父辭]라고 쓰면 [어보사]라고 읽는 것이 바름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굴원기방 유어강담 행음택반 안색초췌 형용고고 어보견이문지왈 자비삼려대부여

굴원(屈原)이 쫓겨나, 강호를 헤매고 못 가를 거닐면서, 시를 읊조리니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어보(漁父)가 그를 보고 물었다. “선생은 삼려대부(三閭大夫)가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하고지어사 굴원왈 거세개탁 아독청 중인개취 아독성 시이견방

무슨 연고로 여기에 까지 이르게 되셨습니까?” 굴원(屈原)이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해있는데 나만이 홀로 깨어 있으니, 이런 까닭에 추방된 것이라오.”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其泥而揚其波.

어보왈 성인불응체어물 이능여세추이 세인개탁 하불 기니이양기파

어보(漁父)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성인(聖人)은 세상 사물에 막히거나 얽매이지 않고 세상의 추이에 따라 변해 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왜 진흙을 휘저어 흙탕물을 높여 일으키지 않습니까?

 

衆人皆醉, 何不?其糟而?其?.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중인개취 하불 기조이 기 하고심사고거 자령방위

뭇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다면 어째서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나마 마시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깊은 생각과 고결한 처신으로 스스로 추방당하게 하십니까?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굴원왈 오문지 신목자필탄관 신욕자필진의 안능이신지찰찰 수물지문문자호

굴원(屈原)이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冠)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소. 어찌 결백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 鼓?而去. 乃歌曰,

영부상류장어강어지복중 안능이호호지백 이몽세속지진애호 어보완이이소 고예이거 내탄왈

차라리 소상강(瀟湘江) 강물에 달려들어서, 물고기 뱃속에 장사지낼지언정,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어보가 굴원의 말을 듣고는 빙그레 웃더니 뱃전을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노래하여 말했다.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수거불복여언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창랑(滄浪)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면 되는 것을!“ 그리고는 떠나가서 다시는 함께 이야기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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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보(漁父= 어부(漁夫))는 당시에 은둔한 선비일 것이다. 혹자는 이르기를 이 또한 굴원이 가설한 말이라 한다. 우제(迂齊)가 말하기를 ,“어부(漁父)는 옛날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무리이며, 하궤장인(荷궤丈人)의 등속이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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