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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學♡書堂

柳氏二外甥求筆跡

by 권석낙 2025. 4. 20.

柳氏二外甥求筆跡  

유씨이외생구필적 
유씨 성을 가진 두 생질이 글씨를 요구하다 


         蘇東坡

其一
退筆如山未足珍/퇴필여산미족진

퇴필이 산처럼 쌓여도 대단할 거 없으나
讀書萬卷始通神/독서만권시통신

書 일만권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하네

君家自有元和脚/군가자유원화각

그대 집안엔 원화각(유공권필법)이 있으니
莫厭家雞更問人/막염가계갱문인

그 필법을 버리고 다시 남에게 묻지 마라

 

其二

 

一紙行書兩絶詩/일지행서양절시

한장에 행서로 칠언절구 두 수

遂良須鬢已如絲/수량수빈기여사

저수량은 벌써 파뿌리 다 되었네

何當火急傳家法/하당화급전가법

하루빨리 원화각을 이어받아

欲見誠懸筆諫時/욕견성현필간시

유공권 필법으로 간언하는 모습 보고싶네


이 시는 희녕 7년(1074) 1월에 유근(柳瑾:柳公權의 後人)의 집에서

술잔치가 베풀어졌는데, 이 자리에서

유근의 두 손자(소동파 사촌여동생의 아들)

굉(閎)과 벽(闢)이 소동파에게 시 한 수를 청하였다.
이 때에 소동파가 조카들에게

위의 두 수의 시를 지어 글씨로 써 주었다.


☞. 외생(外甥) : 누나 또는 여동생의 아들.
☞.  유씨이외생(柳氏二外甥) : 유굉과 유벽을 말함.
☞.  퇴필(退筆) : 독필(禿筆)과 같은 뜻. 몽당 붓.

지영(智永)이라는 스님이 영흔사(永欣寺)에서 글씨공부를

할 때에 글씨를 쓰고 닳은 몽당 붓이 열 항아리나 되었고,

항아리마다 수천 개씩의 몽당 붓이 들어 있었는데,

나중에 이것들을 땅에 묻고 퇴필총(退筆塚, 몽당 붓 무덤)이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음.
☞.  여산(如山) : 산과 같이 많음. 산처럼 언덕을 이룸.
☞.  미족진(未足珍) : 진기할 게 없음. 보배로울 게 못됨.
☞. 통신(通神) : 신명에 통함. 신령에 통함. 도통한 경지에 들어감.
☞. 글씨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해도 그다지 대단한 게 아니고,

독서를 해서 일만 권쯤은 읽어야 도통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임. 조카들에게 서예에

지나치게 관심 갖지 말고 책읽기에 치중하라고 충고를 한 것으로 보임.
☞.  군가(君家) : 그대의 집안.
☞. 자유(自有) : 절로 있음. 본디 있음.
☞. 원화각(元和脚) : 유굉 형제의 조상 가운데

유공권(柳公權 778-865)이라는 분이 있는데

당나라 원화년간(806-820)에 진사시에 급제하여 서예로 이름을 떨쳤음.
각은 날각(捺脚)의 의미로 필법을 말함.

후대에 원화각은 유공권의 필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임.
☞.  염가계(厭家雞) : 염가계는 집안에 있는 닭.

염가계 애야치(厭家雞 愛野雉)라는 말은,

집안에서 기르는 닭을 싫어하고 들에 야생하는

꿩을 좋아한다는 말로서, 자기가 소유한 것을 가

벼이 여기고 타인의 물건을 선망한다는 의미로 쓰임.

때로는 자신의 본처를 버리고 밖에서 만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으로도 쓰임.
☞. 갱문인(更問人) : 다시 남에게 물음.
☞.  그대 집안에 훌륭한 필법이 집안 전통으로

전해져 오는데 그것을 익히면 그만이지,

굳이 다른 사람, 즉 나에게 필법을 배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말함.

 

柳氏二外甥求筆跡二首其一

 

退筆如山未足珍(퇴필여산미족진)

讀書萬卷始通神(독서만권시통신)

君家自有元和脚(군가자유원화각)

莫厭家계更問人(막염가계갱문인) -東坡 蘇軾-

몽당 붓이 산처럼 쌓여도 그리 대단할 거 없고

책 만권을 읽어야 비로소 신명이 통하는 걸세.

그대 집안엔 대대로 전해오는 필법이 있으니

그 필법을 버리고 다시 남에게 묻지 마시게.

 

- 蘇東坡 偈頌 -

溪聲便是長廣舌 (계성변시장광설) : 시냇물 소리 그대로가 부처님의 장광설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 산빛 그대로가 어찌 청정법신이 아니겠는가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 밤새 들은 팔만사천 법문의 이 소식을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 뒷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소동파의 쉬어가는 공부란 육신이 지닌 마음, 즉 에고를 쉬게 하는 공부를 말합니다. 우리의 근원 의식은 이 에고와 두꺼운 업장이라는 카르마에 가려서,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를 닦는다는 말은 이 에고와 카르마를 벗겨내서, 본성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에고는 없앨 수는 없지만, 초월하는 법은 익일 수가 있습니다. 속된 말로 도를 닦으려면 반(半)은 미쳐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미친다는 말은 정신이 나간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out of mind 란 에고가 빠져나간다는 말입니다. 에고가 빠져나가고 나면, 본성은 자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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