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步詩 - 曹植
煮豆燃豆萁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 가마 속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 어찌 이렇게 급히 삶아대는가
칠보시(七步詩)-조조의 자식 조비와 조식의 권력싸움에서 비롯된 피비린내가 깃든 시
콩을 삶는 것에 대한 시라 해서 자두시(煮豆詩)라고 부른다.
세설신어에 실린 시는 약간 다르다.
煮豆持作羹 (자두지작갱)콩을 삶아 국을 끓이고
漉豉以爲汁 (녹시이위즙)메주를 걸러 즙을 낸다
萁在釜下燃 (기재부하연)가마 밑에선 콩깍지를 태우니
豆在釜中泣 (두재부중읍)콩은 솥 안에서 우네
本自同根生 (본자동근생)본래 한 뿌리에서 났건만
相煎何太急 (상전하태급)어찌 이리 급하게 삶아대느뇨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조비가 조식에게 소 두 마리가 싸우다가 한 마리가 밀려 구덩이로 떨어지는 모습의 그림을 보여주며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 그 그림을 묘사한 시를 짓되 "두 소가 싸워서 한 마리는 우물 속으로 떨어져 죽었다"는 말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제약을 걸었다. 제대로 시를 짓지 못하거나 조건을 어기면 사형시키겠다고 했다. 조식은 즉시 걸음을 떼면서 시를 지었다.
兩肉齊道行 (두 덩이의 고기가 길을 가지런히 가는데)
頭上帶凹角 (머리엔 볼록한 뿔이 달렸다)
相遇凸山下 (서로 철산 밑에서 만나)
欻起相唐突 (홀연 서로 싸움이 벌어진다)
二敵不俱剛 (두 대적이 다 함께 강할 수는 없어)
一肉臥土窟 (한 고깃덩이는 토굴 속으로 쓰러진다)
非是力不如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닐세)
盛氣不泄畢 (기운을 다 쏟지 못함일세)
건안 25년(220년)에 조조 나이 66세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자리를 태자 조비(曹丕)가 물려받아 위나라 왕이자 승상이 되었다. 이제 조정의 대권은 조비의 손으로 넘어갔다.
누군가 조비의 동생인 임치후 조식(曹植)이 늘 술에 취하여 조정을 욕하고, 조정에서 보낸 사신을 가두고 놓아주지 않는다고 고해 바쳤다. 조비는 즉시 조식을 업성으로 잡아 올려 심문했다.
조비와 조식은 모두 조조의 처 변태후의 소생이었다.
조식은 조조의 둘째아들인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읽고 글도 빼어났다. 조조는 평소 문학을 즐겼으며, 문객들을 아꼈다. 그는 조식의 출중한 글을 보고 처음에는 남이 대신 써주지 않았나 의심했다.
그래서 앞에서 글을 써보게 했는데 글 재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조조는 조식을 매우 총애하여 왕태자로 삼으려고 했지만 많은 대신들이 강하게 반대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조식 때문에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자 조비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다.
하루는 조조가 전쟁터로 나가는데 조비와 조식이 전송을 했다. 조식은 그 자리에서 조조의 공덕을 찬송하는 시를 지어 읊어 뭇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조비한테 이렇게 조언했다. “대왕님께서 떠나실 때 태자님은 그저 얼굴에 슬픈 빛만 가득 보이십시오.”
그 말에 따라 조비는 아버지가 떠날 때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것을 본 조조는 조비의 효성이 진정이라고 생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조조가 살아 있을 때, 조비는 동생 조식이 술을 좋아한다는 약점을 이용하여 여러 번 망신을 주었다.
조식에 대한 아버지 조조의 신임을 없애려는 목적에서였다.
조비는 왕이 된 후에도 조식을 미워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일을 핑계로 조식을 아예 죽이려고 작심했다. 그런데 어머니 변태후가 이를 알고 조비를 불러다가, 조식이 아무리 잘못했어도 한 어미의 소생인데 형제의 정을 봐서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꾸지람했다.
조비는 어머니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일로 동생을 죽인다는 것도 체통에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놔둘 수는 없어서 낮은 작위로 강등시켰다.
그런 다음 조식을 불러 네가 글을 잘 짓는다고 늘 뻐기는데 그렇다면 일곱 걸음을 걸을 동안 시를 하나 지어보아라, 그렇게만 한다면 죽을죄를 벗겨주겠다고 했다. 조식은 잠깐 궁리하더니 걸음을 떼며 시를 지어 읊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 안에서 우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자랐건만
왜 서로 들볶아야만 하는지.
그 시를 듣고 조비는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조식을 죽이지 않고 도로 봉읍지로 돌려보냈다. 조식은 그 후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군에 있다가 울화병으로 죽었다.
조비가 왕이 된 해의 가을에 그의 친신들이 황제 자리를 양도하라는 상주서를 헌제에게 계속 올렸다. 30여 년 동안 이름만 황제로 있던 헌제는, 대신들의 상주서를 보자 곧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비는 그를 산양공(山陽公)으로 봉했다. 그리고 친신들의 옹위를 받으면서 ‘추위양국(推位讓國)’, 즉 황위를 넘겨주고 나라를 양도하는 선양 의식을 성대히 치렀다. 220년, 조비는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위(魏)로 고쳤다. 그가 바로 문제(文帝)이다. 이렇게 해서 후한 왕조는 막을 내렸다.
근대 중국에서는 반(反) 칠보시라는 것도 창작되었다.
煮豆燃豆萁 (자두연두기)콩대를 때서 콩을 삶으니
豆熟萁成灰 (두숙기성회)콩이 익으면 콩대는 재가 된다
熟者席上珍 (숙자석상진)익은 콩은 밥상의 진미이거늘
灰作田中肥 (회작전중비)콩대의 재는 밭의 비료가 된다
不为同根生 (불위동근생)본래 한 뿌리에서 난 것이 아니라면
缘何甘自毁 (연하감자훼)어찌 자신의 몸을 바치겠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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