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에 “그래서 장경 화상과 육긍 대부를 생각하니 웃어야지, 통곡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줄 알았네. 아이쿠()!”라고 읊고 있다. 이 역시 고사 있는 말인데, 생략하자. 말하자면 설두는 동산이 “삼 세근”이라고 대답한 것은 세간의 인정(人情)과 분별적인 상식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으니, 수행자들은 이 공안을 잘 사유하여 참구해야 한다는 주의를 하고 있다.
♣마삼근麻三斤/법전스님
석마천임경石馬穿林徑하고
철우도해문鐵牛渡海門이로다
일언요경상一言寥景象하니
조우모운둔朝雨暮雲屯이로다
돌로 만들어진 말은 숲속의 오솔길을 지나고
무쇠를 부어 만든 소는 바다 저쪽으로 건너간다.
단한마디에 온 세상이 고요해지니
아침엔 비내리고 저녁에는 구름끼는구나.
동산수초洞山守初선사에게 어떤납자가 물었습니다.
“여하시불如何是佛이닛고. 어떤것이부처입니까?”
선사께서대답했습니다.
“마삼근麻三斤이니라. 삼서근이니라.”
동산스님의 ‘삼서근’ 화두는 참으로 씹기가 어려워도 대체 입을 댈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담박하여 맛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금에 앞뒤가 꽉 막힌 많은 납자들이 잘못알고 있는 대표적인 공안중의 하나입니다. 예로부터 선지식들은 부처님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하면서 참으로 많은 답변들을 줄줄이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동산선사는 일언지하에 한마디로 잘라서 ‘마삼근’이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그 동안 자기 입이라고 마음 놓고 나불거리던 모든 이의 혓바닥을 옴짝달싹도 못하도록 했다고 할 것입니다. 참으로 제대로 된 답변중의 답변이요, 활구중의 활구라고 할 것입니다.
예로부터 많은 납자들은 흔히 이말 저말 둘러대면서 ‘마삼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동산선사가 그때 창고에서 삼을 저울질하고 있는데 때마침 어떤 납자가 부처를 물었기에 이같이 대답하였다”고 하기도 하고, 또는 “동산선사가 동문서답했다”하기도하고, 또는“ 그대가 부처인데 다시 부처를 물으니 동산스님이 한바퀴 핑돌려 우회적으로 답변했다”라고도 합니다.
더욱이 썩어 빠진 놈들은 한결같이 말하기를,
“이 마삼근이 바로 부처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전혀 앞뒤를 모르고 하는 엉터리 소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설두선사는 ‘만약 삼서근을 상대의 근기에 맞춘 답변으로 이해한다면 마치 절름발이 자라와 눈먼 거북이가 빈골짜기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등줄기가 서늘해 지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세치혀로 깝죽대고 있으니 어느 세월에 미혹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만약 결제대중들이 이와같이 동산선사의 마삼근에 더듬거리면서 우물쭈물 답변하려고 하다가는 서강의 물을 다 마실때까지 참구하여도 절대로 깨치지 못할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말이란 도를 담아 내는 그릇일 뿐인데, 고인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한 채 다만 그 말만 가지고 따지니 어찌 그것을 제대로 알아 차릴 수 있겠습니까?선인들께서는 도란 본디 말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말로써 도를 나타낼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를 깨치고 나면 반드시 그 말을 잊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운문종의 동산수초선사는 운문문언선사의 법을 이었습니다.
어릴때 부터 선근이 있어 종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갑자기 밥을 먹다가도 수저질을 뚝 그치고 서똑바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그런 선사를 어머니 여씨는 일부러 흔들어 깨워서 밥을 먹이지도 않았고 또 그 시간에 없어져도 일부러 찾지도 않았습니다. 16세에 꿇어 앉아 출가하기를 청하니 모친은 바로 허락하였습니다. 계를 받은 이후에 율장을 열람하고 나서 천하를 돌아다니며 안거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운문선사회상을 찾아가니 운문선사가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
“강남의 사도渣渡에서 왔습니다.”
“여름에는 어디에서 살았는고?”
“호남보자사報慈寺에서 지냈습니다.”
“언제 그곳을 떠났느냐?”
“8월25일입니다.”
“이런 멍청한 놈. 내가그걸물었느냐?”
그 자리에서 몽둥로 세방망이를 내리치면서 말했습니다.
“큰 방으로 꺼져버려.”
머리에 혹 세개를 달고서 그 자리를 물러 나온 선사는 저녁에 다시 입실하여 운문선사의 턱밑으로 바짝 다가가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제가 낮에 무엇을 잘못 대답한 것입니까?”
“이 멍청한 놈아! 강서와 호남의 회상에서도 그렇게 대답했겠구나.”
그 말에 동산선사는 크게 깨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뒷날 인적이 끊긴 곳에 암자를 세우고, 한톨의 쌀도 저축하지 않고, 한포기채소도 심지 않고서 항상 시방으로 왕래하는 모든 납승들을 맞이하여, 그들에게 자기의 본래면목을 얽어매는 못과 문설주를 모조리 뽑아 주겠습니다. 그리하여 땟국물에 누렇게 젖은 적삼을 훌훌 던져 버리고서 그들에게 청정한 경지에서 할 일없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당당히 말하고는 운문선사를 하직했습니다.
그리하여 이후 동산洞山에서 법석을 펴고는 납승들을 지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선사는 참선학도들에게 대갈일성으로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 가운데 말이 있는 것을 사구死句라고 이름하며, 말가운데 말이 없는 것을 활구活句라고한다.
제방에서는 줄탁동시의 안목은 갖추었으나 줄탁동시의 용用은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여기에 이르러서는 실로 사람을 얻기란 어렵다. 다만 부동不動의 일진一塵과 불발不撥의 일경一境만을 좋아하여 사事를 보는 것을 문득 도道라고 하니 이러한 무리가 동서남북에 부지기수이다. 요컨대 형식을 간략하게 하여 사람을살리는 안목은 어느 누구도도 무지 말하지 않고 다만 가히 말만적게 하여 모두 앉아 있기만할 뿐 근원을 통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음계陰界에 떨어져서 망령되이 편안하다고 하면서 죽음의 물에 떨어지는 줄을 알지 못하고 꼬리없는 원숭이만 희롱하고 있다. 죽는 날에 북소리는 이미 그치고 원숭이는 도망가고 손과 발과 온몸에 미친 듯이 경련이 일어나면 후회해도 소용없느니라. 만약 진정한 납자라면 얼어 죽고 배가 고파 죽더라도 끝까지 누린 냄새나는 장삼은 입지 말아야 한다.”
이런 기상을 가진 선사였기에 ‘여하시불如何是佛’을 물으니 ‘마삼근麻三斤’이라고 한마디로 말했던 것입니다. 하안거 반산림을 맞은 총림의 결제대중들은 ‘부처를 물었는데 왜 삼서근’이라고 대답했는지 이 공안을 통하여 자기의 한철동안의 중간 살림살이를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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