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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情趣(정취)"를 "墨趣(묵취)"라 한다. 누구나 처음 글씨를 배울 때에는 단지 필획을 거두고 들이거나 붓을 전환시키고 결구를 하는 것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墨色(묵색):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고 글씨에 관한 깨달음도 깊어질 즈음, 비로소 墨色에 눈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글씨에 있어 숙달도 중요한 것이지만, 이 墨色이 書藝(서예)의 아름다움을 더욱 조장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옛날에는 石墨(석묵)을 썼다고 하는데, 이 먹은 아교를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 후, 비로소 아교를 섞는 방법을 깨닫게 되어 먹의 제조가 훨씬 깊고 다양해지기 시작하였다. 글씨가 이 아교로 인해 글씨에 광채가 나타나고 기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다만, 능숙한 書藝家(서예가)들은 먹빛의 기호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濃墨(농묵)을 좋아하는 사람과 淡墨(담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기록에 보면 고대인들은 거개가 다 이 濃墨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한 개의 점획이 칠흑 같다." 는 표현도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전해 내려오는 寫經(사경)이라든가 육조인들의 墨蹟(묵적), 唐(당)나라 사람들이 남긴 墨蹟 등을 보면 거의가 먹빛이 검푸르면서도 아주 짙다. 특히 蘇東坡(소동파)의 글씨를 보면 아주 진한 먹을 사용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지은 詩(시)를 부인에게 보내면서 뒷면에, 아주 좋은 먹과 종이를 칭찬하면서, "먹빛이 마치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다." 솔직히 때묻지 않은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보노라면 검으면서도 神靈(신령)스러운 것이 꼭 집어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빛을 띠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주의할 점은 이 濃墨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오히려 병통이 발생한다. 그것은 대개 점획이 뚱뚱해진다는 것이다. 東坡의 글씨와 劉石菴[유석암, 墉(용)]의 글씨를 "먹돼지[墨猪(묵저)]"라 불렀던 것이다. | ||
[蘇東坡 글씨] | 松雪體(송설체)의 주인공인 조맹부도 濃墨을 즐겼던 것으로 전한다. 이와는 반대로 淡墨을 즐긴 인물로는 "黃庭堅(황정견)"이 있다. 이유는 마음 내키는 대로 글씨를 쓰기 위함이었다. 이는 가족들이 이를 위해 늘 벼루 하나 가득 淡墨을 준비하여 그가 언제든지 글씨를 쓸 수 있 | |
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또 화선지가 너무 매끄럽고 반들거리는 것은 먹을 잘 흡수해 낼 수가 없다. 매우 진하고 아주 特上品(특상품)의 먹이 아닌 것은 쉽사리 墨色을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글씨 초보자가 지나치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 단, 먹 제조 공장에서 이미 갈아서 판매하는 "먹물"은 절대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쓸 먹은 자신이 직접 갈아서 써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좋아하는 墨色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먹을 간다는 노릇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너무 세게 갈아도 안 되고, 또 급히 갈아서도 안 된다. 즐기면서 갈라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면 붓을 손에서 놓기 바란다.
내가 직접 먹을 간다는 것은 하나의 취미도 되지만, 다르게 표현하자면 快樂(쾌락)도 될 수가 있다. 北宋(북송) 때의 呂行甫(여행보)는 먹을 가는 것을 매우 즐겼는데, 가끔씩 먹을 다 갈면 씹고 있던 음식물을 꼴깍 삼키곤 하였다. 趙松雪(조송설)은 먹을 가는 것을 詩로 다음과 같이 표현해 놓았다.
古 墨 輕 磨 滿 几 香 硯 池 新 浴 燦 生 光
古墨을 가볍게 가노라면 책상 위에 香氣(향기) 그들먹하고 硯池(연지)를 깨끗이 씻노라면 찬란한 빛마저 감도는구나
하였으니, 靜坐(정좌)하여 천천히 벼루에 먹을 가는 정취[墨趣]를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벼루를 깨끗이 씻어 놓고 거기에 훌륭한 먹을 천천히 갈아 보자. 처음에는 墨華(묵화)가 얇은 기름처럼 떠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점점 벼루 주변에 구름이 맴돌고 있는 것 같더니 墨色이 점차로 짙어짐에 따라 깊숙하면서도 먼 세상처럼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됨을 깨닫게 될 것이다. 墨色은 점점 紫色(자색)과 藍色(남색) 등의 빛깔이 배어나와 변화무쌍한 빛이 한데 어우러지게 된다. 이러한 妙(묘)한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을 보는 것이 어찌 하나의 快樂이 아니겠는가! 예나 지금, 먹을 收藏(수장)하는 이가 많은데, 귀한 먹은 마치 황금보다 더 귀하게 여겨 소중히 보관한다.
좋은 먹은 아교가 지나치게 많이 함유되어서도 안 된다. 나, 芝山房은 절대로 "古梅園(고매원)" 먹은 사용하지 않는다. 日本製墨(일본제묵)인 탓도 있으나, 아교를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 먹이기 때문이다. 또 中國(중국)의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胡開文(호개문)" 먹도 쓰지 않는다. 이것은 아교가 소[牛]가 아닌 돼지[豚] 힘줄로 아교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이다. 墨色 역시 매우 濁(탁)하다.
먹을 갈되 벼루에 닿는 면이 세워도 넘어지지 않을 정도로 편평하게 갈아야 한다. 먹을 보관하되 반드시 상자에 넣어 바람과 햇볕, 물기가 닿지 않게 하는 것이 좋다. 이것이 좋은 먹을 보관하는 세 가지 주의점이다. | ||
▲ 芝山房所藏, 端溪硯 | 오늘은 중국으로부터 "微細(미세) 먼지)"라는 듣도보도 못한 불청객이 온다고 한다. 문 닫고 들어앉아 唐詩集(당시집) 보며 천천히 먹을 갈아야겠다.
小 窓 虛 幌 相 無 媚 令 君 曉 夢 生 春 紅 작은 창에 빈 휘장 드리우니 서로가 어여쁨이요 그대 단잠 깨우니 봄꽃이 활짝 피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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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人 단계연이라 이름 붙인 중간 크기의 벼루. 조각이 아름답다.
[芝山房이 收藏하고 있는 다양한 먹들]
[濃墨과 淡墨으로 표현한 모란 그림]
[墨 緣] [學然後知不足] | ||
一筆♡揮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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