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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첩

歲寒圖 - 阮堂

by 권석낙 2026. 1. 26.

세한도 (歲寒圖) /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 - 長毋相忘(장무상망)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 1786 ~1856)의 유명한 그림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 180호)!

 

제주도 유배 시절, <논어>의 글귀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시들지 않음을 안다) 에서 제목을 따와, 어설픈 집 한채와 나무 서너그루의 단순한 구도, 거친 붓자국, 버쩍 마른 붓의 흔적 등으로 자신의 고독하고 외로운 처지의 처연한 심정을 드러낸 그림인가요?

 

우선(藕船) 이상적(李尙迪 1804 ~1855)은 완당의 애제자로 완당이 절해고도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을 때, 현실의 모든 권력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배신하지 않고 한결같이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도움을 아끼지 않고, 계속해서 중국의 신간 서적 등을 보내준 제자이지요.

 

이같은 제자의 한결같은 마음씀씀이에 완당은 감격하여, 1844년 제주도에서 유배생활 5년째 되던 해, 곧 59세 환갑 바로 한해 전에 이 세한도를 그려 제자에게 주게 됩니다.

 

그림 옆에 덧붙여 발문을 쓰기를,

 

'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날씨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공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어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 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사귐이 시들해진다'고 하였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속에 있는 사람인데, 세상의 권세와 이익을 초연하게 벗어났으니....그대는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귀양 온 후나 변함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송을 받을만하지 않겠는가?"

 

라며, 그 고마움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제자에게 선물로 그려주었다는 그림이지요.

 

이처럼 두 사람의 애틋한 사제지정이 깃든 그림이 바로 '세한도'라고 한답니다.

 

헌데 그림 오른편 맨 구석엔 `長毋相忘(장무상망)`이라는 네 글자의 붉은 낙관이 희미하게 찍혀 있지요.

 

`長毋相忘(장무상망)!'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

 

완당은 과연 무얼 잊지 말자고 이 낙관으로 마무리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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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한도 발문(歲寒圖 跋文)

 

< 내용 >

지난 해(1843, 헌종9)에 『만학집(晩學集)』과 『대운산방집(大雲山房集)』 두 책을 부쳐주었고, 금년에 또 우경(藕畊)이 지은 『황청경세문편(皇淸經世文編)』을 부쳐주었다. 이들 책은 모두 세상에서 언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아니니, 천만리 먼 곳에서 구입한 것이고 여러 해를 거듭하여 입수한 것이지, 한 때에 해낸 일이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도한 풍조는 오로지 권세가와 재력가만을 붙좇는 것이다. 이들 책을 구하려고 이와 같이 마음을 쓰고 힘을 소비하였는데, 이것을 권세가와 재력가들에게 갖다주지 않고 도리어 바다 건너 외딴섬에서 초췌하게 귀양살이 하고 있는 나에게 마치 세인들이 권세가와 재력가에게 붙좇듯이 안겨주었다.

 사마천(司馬遷)이, “권세나 이익 때문에 사귄 경우에는 권세나 이익이 바닥나면 그 교제가 멀어지는 법이다” 하였다. 그대 역시 세속의 거센 풍조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런데 어찌 그대는 권세가와 재력가를 붙좇는 세속의 도도한 풍조로부터 초연히 벗어나, 권세나 재력을 잣대로 삼아 나를 대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마천의 말이 틀렸는가?

공자(孔子)께서, “일년 중에서 가장 추운 시절이 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대로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셨다. 소나무 · 잣나무는 사철을 통해 늘 잎이 지지 않는 존재이다. 엄동이 되기 이전에도 똑같은 소나무 · 잣나무요, 엄동이 된 이후에도 변함 없는 소나무 · 잣나무이다. 그런데 성인께서는 유달리 엄동이 된 이후에 그것을 칭찬하셨다.

지금 그대가 나를 대하는 것을 보면, 내가 곤경을 겪기 전에 더 잘 대해 주지도 않았고 곤경에 처한 후에 더 소홀히 대해주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의 곤경 이전의 그대는 칭찬할 만한 것이 없겠지만, 나의 곤경 이후의 그대는 역시 성인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만하지 않겠는가? 성인께서 유달리 칭찬하신 것은 단지 엄동을 겪고도 꿋꿋이 푸르름을 지키는 송백의 굳은 절조만을 위함이 아니다. 역시 엄동을 겪은 때와 같은 인간의 어떤 역경을 보시고 느끼신 바가 있어서이다.

 아! 전한(前漢)의 순박한 시대에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 같이 훌륭한 사람들의 경우도 그 빈객들이 그들의 부침(浮沈)에 따라 붙좇고 돌아섰다. 그러고 보면 하규(下邽) 땅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방(榜)을 써 붙여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풍자한 처사 따위는 박절한 인심의 극치라 하겠다. 슬프다!

완당 노인(阮堂老人)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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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의 끝에 보이는 적공(翟公)의 고사는 이러하다.

 

“한(漢) 나라 때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각하자 이내 그의 대문에는 참새 그물을 칠 정도로 인적이 끊기고 말았다. 그 뒤 그가 다시 정위가 되자 또 당초처럼 사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에 그는 대문에다 ‘죽고 사는 갈림길에 서봐야 교정을 알게 되고, 사업에서 망하고 흥해봐야 교태를 알게 되며, 벼슬길에서 귀천을 겪어봐야 교정이 나타난다.[一生一死, 乃知交情, 一貧一富, 乃知交熊, 一貴一賤, 交情乃見.]’라고 써 붙여 세상 사람들의 염량세태를 신랄하게 책망하였다.”(『史記· 汲鄭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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