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如鳥數飛(여조삭비)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이다.
如 : 같을 여(女/3)
鳥 : 새 조(鳥/0)
數 : 자주 삭(攵/11)
飛 : 날 비(飛/0)
출전 :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數飛(삭비)
數: 셈 수, 자주 삭, 빠를 속, 촘촘할 촉
飛: 날 비
*어미 새가 새끼에게 여러 번(자주) 날게 하다.
* 학이시습지의 습(習)과 같이 어린 새가 날개(羽)를 퍼드덕거리며 스스로(自) 날기를 연습한다는 뜻과 맥이 통함
* 모산재에서 멀지 않은 경남 산청군 신등면 소재지에 있는 단계 초등학교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솟을대문으로 지어진 교문이 있는데 교문 이름이 삭비문(數飛門)이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둥둥 떠 있어도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는 끊임없이 갈퀴질을 한다? 이 그럴듯한 말은 동물학자들에 의해 거짓으로 판명 났어도 섭섭하게 여기며 믿고 싶은 사람이 많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연습해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옥그릇은 갈고 닦은 장인이 있었다며 옥불탁 불성기(玉不琢 不成器)라 했고, 작은 바늘부터 높은 태산까지 갈고 쌓은 노력에 의해 마부작침(磨斧作針), 진합태산(塵合泰山) 등의 좋은 성어가 많다. 마찬가지로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도 태어날 때부터 그 능력을 가졌을 리는 없다.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다.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날갯짓을 반복했듯이 새와 같이(如鳥) 부단히 날아갈 노력을 한다(數飛)는 말은 배우기를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뜻이다. 유학(儒學)의 사서(四書)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논어(論語)'는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의 문답을 모은 책이란 것은 모두 안다. 이런 것을 알면서 그 무게감 때문에 공부할 엄두를 내지 않은 사람이라도 제일 첫머리에 나오는 말은 안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혀 나가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제일 첫 마디를 따서 지은 전체 20편의 편명 중에서 1편인 학이(學而)편이다. 물론 이때의 '말씀 설(說)'은 '기쁠 열(悅)'과 같다는 것도 안다.
잘 알아도 더 주의해야 하는 것이 시습(時習)이다. 때때로, 시간 나는 대로가 아닌 때에 맞춰 반복해야 한다고 함께 붙여 썼다. 새가 끊임없이 날아가기 위해 노력한다는 성어는 원문이 아닌 주자(朱子)의 해설서 '논어집주(論語輯注)'에 '익힐 습(習)'을 설명하면서 나온다. 부분을 보자.
習, 鳥數飛也(습 조삭비야)
습이란 어린 새가 반복하여 나는 것이라.
學之不已(학지불이)
如鳥數飛也(여조삭비야)
배움을 꾸준히 하는 것을 새가 날갯짓하듯 하라.
셈 수(數)는 '자주'의 뜻으로는 삭뇨(數尿)와 같이 '삭'으로 읽고, 빽빽한 그물 촉고(數罟)라 할 때는 '촘촘할 촉'의 독음도 있다.
새가 둥지에서 깨어나 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싶을 때만 연습한 것이 아니듯, 배움도 때에 맞춰 반복하여 익혀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위인전에 전해 오는 훌륭한 위인들은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한결같은 배움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다.
잘 된 결과만 부러워하고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결실이 따르지 않는다. 배움 바로 뒤에 따르는 유명한 말도 같이 익혀 두자. 역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여조삭비(如鳥數飛)
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알게 된다고 하니 "아는 만큼만 세상이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논어 학이편에 '여조삭비(如鳥數飛)'라는 말이 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자주 날갯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배우기도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노력하고 익혀야 한다.
맹자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한 지 오래지않아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떻게든 아들을 공부시켜 큰 사람을 만들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가 묻는다. "공부는 마쳤느냐?" 맹자가 대답한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왔습니다." 어머니는 즉시 칼을 들어 짜고 있던 베틀의 베의 날실을 자른다. 맹자가 놀라 묻는다."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어머니가 대답한다. "네가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고생하며 짜던 베를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맹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 학문에 전념하여 큰 학자가 되어 공자 다음으로 추앙받는 사람이 된다.
맹자는 항상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시대를 살았지만,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꺾이지 않았다. 어려움이란 새로움의 시작일 뿐이다. 어려움을 이겨낸 자만이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상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에 얼마나 능동적이냐, 소극적이냐의 문제다.
'종의 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남는 것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니고,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
빌 게이츠도 같은 말을 한다. "나는 힘이 쎈 강자도 아니고,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이것이 나의 비결이다."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꾸면 chance(기회)가 되는 것처럼 '변화 속에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하루하루 변화에 대해 애써 눈을 감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과 순간순간 변화에 깨어 있으면서 당당히 맞서는 사람과의 차이는 각도계의 눈금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살아온 날이 중요한가, 살아갈 날이 중요한가?' 변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그저 머무르게 될 뿐이다.
버나드 쇼의 저 유명한 묘비명처럼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렇게 될 줄 알았지!" 힘차게 흐르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멈추게 된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봐야 소용이 없다. 상처만 남을 뿐이다. 물이 가득 채워져 넘쳐흐를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사람의 그릇은 이처럼 구덩이에 빠진 고난과 시련과 역경 속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이는 구덩이에 갇혀 있는 자신을 할퀴고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하는데 어떤 이는 물이 구덩이를 채워 넘쳐흐를 때까지 마음을 다잡고 재기를 노려 오히려 구덩이에 빠지기 전보다 잘나가는 사람이 있다.
'세한도'를 그린 조선시대 붓글씨의 추사 김정희를 봐라. 35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병조참판까지 잘나가다 모함에 빠져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떠나게 된다. 그는 삶의 구덩이에 빠진 걸 한탄하지 않고 그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먹을 가는 벼루만 해도 10개가 밑창이 나고 붓은 천 자루가 달아서 뭉개졌다.
조선 후기 실학의 대가 정약용은 18년이라는 길고 긴 귀양살이를 전남 강진에서 보내게 된다. 삶과 죽음이 오가는 유배지 구덩이에서 역경과 시련과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면서 책을 쓰기 시작한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대작과 수많은 저서를 남겨 후대에 삶의 지표를 남긴다. 그는 귀양살이 유배지에서 역경과 시련과 절망과 분노와 좌절을 극복하고 삶의 희망과 꿈을 실현하였다
우리는 스스로 change(변화)의 g를 c로 바꾸면 우리 삶의 새로운 chance(기회)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 변화해야 새로운 기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몸과 마음에도 힘이 있어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몸은 좋은 음식과 0.9% 소금물로 건강을 얻고, 마음은 올바른 생각으로 건강을 얻습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함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오늘 내가 누군가를 만남에 감사하고!
감사가 넘치다 보면 우리의 삶도 저절로 행복해집니다.


'인생♡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가족간 송금 & 현금 거래 이렇게 바꿔요 (0) | 2025.09.19 |
|---|---|
| 청산도-장응두 (0) | 2025.09.16 |
|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 , 아버지!!! (4) | 2025.08.28 |
| 線(선) 50만 번 그어 한 폭의 水墨畵(수묵화) (4) | 2025.08.21 |
| 웃음 꽃피우는 법 (10) | 2025.08.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