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年作 - 劉長卿
鄕心新歲切, 天畔獨潸然. 향심신세절 천반독산연
老至居人下, 春歸在客先. 노지거인하 춘귀재객선
嶺猿同旦暮, 江柳共風煙. 영원동단모 강류공풍연
已似長沙傅, 從今又幾年. 이사장사부 종금우기년
[註釋]
1. 切(절): 간절하다. 새해가 되어 고향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는 뜻이다.
2. 天畔(천반): 하늘가. 여기서는 유장경이 폄적당한 남파(南巴)를 가리킨다.
3. 潸然(산연): 줄줄. 눈물 흘리는 모양.
4. 居人下(거인하): 남의 밑에 있다. 관직이 남보다 낮은 것을 가리킨다.
5. 客(객): 나그네. 여기서는 시인 자신을 가리킨다.
6. 嶺(영): 고갯마루. 중국의 영남(嶺南)지방인 광동성(廣東省) 일대를 가리킨다.
7. 風煙(풍연): 바람과 안개.
8. 長沙傅(장사부): 장사왕(長沙王)의 태부(太傅)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그는 한(漢) 문제(文帝) 때 20세의 나이로 태중대부(太中大夫)라는 높은 관직에 올랐으나 대신들의 모함을 받아 장사왕의 태부로 폄적되었고, 또 양회왕의 태부로 좌천되었다가 33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9. 又幾年(우기년): 또 몇 년이나 있어야 할까? 여기서는 폄적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解釋]
<새해를 맞이하여 짓다>
새해 되니 고향생각 더욱 간절해져,
하늘가에서 홀로 줄줄 눈물 흘리네.
늙어 다른 사람 밑에 있는데,
봄이 돌아오니 나그네보다 먼저이네.
고개 원숭이와 아침 저녁을 함께하고,
강가 버들과 바람 안개를 함께하네.
이미 장사왕 태부 가의와 같아졌거니,
지금부터 또 몇 년이나 있어야 할까?
[感想]
시인은 숙종(肅宗) 건원(乾元) 원년(758)에 광동성 반주(潘州)의 남파현위(南巴縣尉)로 좌천되었는데, 이 시는 그곳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감회를 노래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시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뿐만 아니라 좌천의 슬픔까지 나타나 있다. 새해에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것이 중국의 풍습인데, 작자는 중국의 남쪽 끝으로 옮겨 와서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나이가 든 것도 서러운데, 현위라는 말단관직에 있으면서 젊은 사람들의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처지가 더 서럽다. 세월은 흘러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는데, 자신은 아직 고향에 가지 못하고 있다. 봄이 오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더구나 여기에는 그 봄을 즐길 친구나 가족은 없고 단지 원숭이나 물가 버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신세가 예전에 폄적당해 젊은 나이에 죽어 버린 가의와 비슷하지만, 자신의 이러한 신세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태여서 더욱더 비참해진다. 첫 부분을 신년으로 시작하였지만, 마지막에 ‘또 몇 년’으로 마무리하면서 앞으로 지내야 할 세월이 얼마나 길고 힘들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작자 소개]
유장경(劉長卿, 709~780)은 자가 문방(文房)이고 하간(河間, 하북성 하간현) 사람이다. 개원(開元) 21년(733)에 진사가 되었다. 숙종(肅宗) 지덕(至德) 연간에 감찰어사를 지내던 중 오중유(吳仲孺)의 음모로 소주 감옥에 갇혔다가 반주(潘州)의 남파(南巴) 현위(縣尉)로 편적되었다. 뒤에 그를 변호해 준 사람이 있어 다시 목주사마(睦州司馬)가 되었고, 수주자사(隨州刺史)까지 지냈다.
그는 성당 시기의 사람이나 창작활동은 중당 시기에 많이 하였고 시풍도 대력십재자와 비슷하다. 그는 오언시에 뛰어나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 칭해졌으며, 관료생활의 고독감, 이별의 슬픔이나 한적한 심경 등을 많이 읊었다. 작품집으로는 《유수주집(劉隨州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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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年作 劉長卿
鄉心新歲切, 고향 생각 새해 되니 간절해져
天畔獨潸然。 하늘 끝에서 홀로 눈물 흘리네
老至居人下, 늙도록 남의 밑에서 지내노라니
春歸在客先。 봄은 객보다 먼저 돌아 가버렸네.
嶺猿同旦暮, 고갯마루 원숭이와 아침저녁을 함께하고
江柳共風煙。 강가의 버들·바람·이내와 함께 하네
已似長沙傅, 이미 長沙王太傅의 3년만큼 흘렀는데
從今又幾年。 지금부터 또 몇 해나 지내야 할까?
[集評]
○ 三·四佳 上句尤警策 - 淸 喬億, ≪大曆詩略≫
○ 3·4구가 아름다운데, 앞의 구(3구)가 더욱 경계할만한 계책이다.
○ 三·四費無限思索乃能之 - 元 方回, ≪瀛奎律髓≫
○ 3·4구는 무한한 사색을 소비하여야만 이를 수 있다.
○ 周王廷曰……客久滯他鄕 感時觸物 無有不傷悲者 篇中只春歸在客先一句 了却新歲鄕心 無限悽愴 勝人多多許 - ≪詩選脈會通評林≫
○ 주왕정이 가로되 “……좌천된 사람이 오랫동안 타향에 머무니 시절의 느낌과 사물에 접촉함이 상심하고 슬프지 않음이 없다. 시 가운데 다만 ‘春歸在客先’ 한 구는 마침내 새해가 되어 고향 생각이 무한히 애달파 하고 슬퍼함을 표현하였으니 남들보다 뛰어난 부분이 허다하다.”고 하였다.
○ 三·四乃初唐之晩唐……(按……回收此詩爲宋作) 似從薛道衡人日思歸詩化出 三四二句 漸以心思相勝 非復從前堆垜之習矣 妙於巧密而渾成 故爲大雅 - 淸 紀昀, ≪瀛奎律髓刊誤≫
○ 3·4구는 곧 초당시의 만당풍이다. ……(살피건대……방회는 이 시를 회수해 송지문의 작품이라고 했다.) 薛道衡의 〈人日思歸〉 시로부터 변화하여 나온 것 같다. 3·4구 두 구는 점점 심사가 상승해져 다시는 종전에 글방에 쌓아두던 습관은 아니다. 교묘하고 치밀한 면에 뛰어나면서 혼연하게 이루어졌으므로 大雅가 된다.
○ 三四雋甚 語何其鍊 - 明 陸時雍, ≪唐詩鏡≫
○ 3·4구는 심히 뛰어나니, 말을 어찌 그렇게 단련하였는가.
○ 劉長卿 體物情深 工於鑄意 其勝處 有逈出盛唐者 黃葉減餘年 的是庾信王褒語氣 老至居人下 春歸在客先 春歸句 何減薛道衡人日思歸語 - 明 陸時雍, ≪詩鏡總論≫
○ 유장경은 사물을 체득하는 정이 깊고 뜻을 주조함에 공교로운데, 뛰어난 곳은 盛唐을 멀리 뛰어넘는 것이 있다. ‘黃葉減餘年’은 진실로 庾信과 王褒의 語氣이다. ‘老至居人下 春歸在客先’에서 ‘春歸’ 구는 薛道衡의 〈人日思歸〉의 말보다 어찌 못하겠는가.
○ 老至二句 巧句 別于盛唐正在此 - 淸 沈德潛, ≪唐詩別裁集≫
○ ‘老至居人下 春歸在客先’ 두 구는 공교로운 구이다. 성당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譯註]
[解題] 이 시는 유장경이 大曆 12년(777) 약 52세 전후에 睦州司馬로 폄적되어 있을 때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45세 무렵 시인은 租庸使란 직책을 맡게 된다. 안사의 난 이후 국가재정이 파탄 난 상황에서 당나라의 재정은 실제 강남에서 떠맡고 있었으므로 중요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 있은 지 1년이 못 되어 당시 郭子儀의 사위인 卾岳觀察使 吳仲儒와 불화하게 되고 결국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된다. 이 사건은 오중유의 장인으로 당시 권세를 잡고 있던 곽자의와, 유장경의 후원자로 곽자의와 경쟁관계에 있었던 元載 사이의 알력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은 시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쳐 이를 계기로 사회현실을 반영한 시 세계에서 개인적인 심사를 토로하는 방향으로 시를 쓰게 된다. 中唐 시기에 일어난 이런 변화가 이 시에도 드러난다. 강개한 기세는 점차 약해지는 반면 애처로운 기세는 더욱 더해지게 되는데, 자신의 불만스러운 감정이 담겨 있다. 賈誼에게 자신을 가탁하는 마음은 다른 시인 〈長沙過賈誼宅〉을 통해 뚜렷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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