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누군가를 막연하게 기다렸어요.
서산머리 지는 해 바라보면
까닭없이 가슴만 미어졌어요.
돌아보면 인생은 겨우 한나절
아침에 복사꽃 눈부시던 사랑도
저녁에 놀빛으로 저물어 간다고
어릴 때부터 예감이 먼저 와서
가르쳐 주었어요.
이제야 마음을
다 비운 줄 알았더니
수양버들 머리 풀고
달려오는 초여름
아직도 초록색 피 한 방울로
남아 있는 그대 이름...
아시나요?
종일토록 아무 생각없이
태양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대가 태양이 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 위해
해바라기는 여름이 다 가도록
그대 집 마당 가에 서 있습니다.
가을이 오면 그대 기다리는
일상을 접어야겠네.
간이역 투명 한 햇살 속에서
잘디잔 이파리마다
황금빛 몸살을 앓는
탱자나무 울타리
기다림은 사랑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밀려드나니
그대 이름 지우고
종일토록 내 마음
눈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으로나 걸어 두겠네.
어쩌자고 하늘은 저리 높은가
이 풍진 세상에 가을빛 짙어
날아가는 기러기 발목에
그대 눈물 보인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
겨울이 너무 깊어 사랑조차
증거가 인멸 되었습니다.
올해도 무기질의 시간이나
파먹으면서 시정잡배로 살았습니다.
법률은 개뿔도 모르지요.
그래도 희망을
목조르지는 않았으므로
저는 무죄를 주장합니다...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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